세 갈래 길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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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나라 다른 여성이 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처지에서 하나의 위기를 만난다.

그녀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관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대부분의 여성은 견뎠고, 순종했고, 순응했다.

책 속의 그녀들은 과연 자신들의 한계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책은 말한대로 다른 나라, 다른 신분의 처지, 환경, 위기의 상황에 있는 세 여성의 이야기다.

작가의 필체는 굉장히 무덤덤하게 서술하는 듯 하지만, 상황을 은유적이고 감각적인 단어들을 선택해 상황의 묵직함을 과감없이 표현했다.

오히려 담담해보이는 투와는 달리, 느낌을 주는 단어들이 각자의 길에 놓여진 여성들의 아픔과 처절함을 더욱 깊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여성의 인권은 점차 긍정적으로 신장되고 있다....라고 생각하며 믿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관습과 환경은 책 내에서는 제자리 걸음인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인도는 1955년 불가촉천민법으로 신분제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차별이 여전할 뿐 아니라 여성에게 있어서는 특히나 더욱 비참한 현실이 존재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데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차원은 다르지만 여성의 인권이 비교적 나아진 선진국에서조차 어느 정도의 차별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여성은 더욱 피마르는 상황을 이겨내며 살아내야 한다.


그러한 이들을 좌절하고 낙담하게 하는 상황들이 온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딸이 자신과 같은 비참한 환경에서 살아갈 미래가 불보듯 뻔하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의 사업 부도와 가정경제의 악화라는 상황이 내 삶에 들어왔다.

-그동안 뼈를 깎아내며 올라온 자리인데 '암'이라는 병으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되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몰라도(?) 이 소설에서의 인물들은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그들에게 분명 고통스럽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지만 새로운 희망이 찾았고, 극복할 용기를 얻었다.

기회를 찾아냈고 그 안에서 자신의 환경을 넘어설 의지를 내보인다.

속았고, 당했고, 쓰라린 환경에서 그들은 신에게서, 한 사람에게서, 그리고 그들에게서 받은 머리카락에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빛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간다.


읽으면서 각 나라에서 여성의 상황들을 서슴없이 이야기 한 것은 좋았다.

그런데 이 여성들을 마지막에 연결하려는 시도를 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따로 저자의 말이 없기 때문에 그 의도를 알 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기로는...

여성이라는 같은 성별로 차별받는 환경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각자의 위기를 극복하고 주어진 환경에 부딪혀보는데에 서로 공생되는 상황에서 뭔가 희망을 주고 싶은게 아니었을까?

한 사람의 강한 의지는 정말로 중요하다. 그러한 한사람의 의지가 다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하지만 더욱 강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들을 연결함으로 서로가 힘이 되고 그것이 변화로 나아가는데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각자가 머리카락이라는 소재로 연결되었다는 걸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머리카락이라는 것을 가지고 새로운 희망을 보았고, 용기를 얻었다. 머리카락은 이 책에서 큰 역할을 하는 소재임에 틀림없다.

왜 저자는 머리카락이라는 소재를 선택했을까?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머리카락은 여자에게 하나의 상징과 같다.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기르기도 해왔지만, 여자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은 하나의 표현수단이고 여성성을 부여한다. 그것은 나라와 상황 모든 것을 초월하여 어쩌면 약속되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듯한 여성에게 있어 가치있는 소유물이다.

또한, 머리카락은 누구에게나 계속 자라나는 것일 뿐 아니라 잘라내도 전혀 인체에 무해하다. 이것이 누구에게는 버려야 할 것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필요한 것이 될 것이 된다. 썩지 않고, 지속되며, 무해하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소재 선택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성이라는 성을 연결할 수 있고, 충분히 융통가능한게 바로 머리카락이다.


페미니즘 관련한 책들이 최근들어 많이 보인다.

여권 신장과 함께 더욱 여성들의 음지에서 자행되었던 일들이 이제는 드러나고 있다.

더이상 아픔을 자신 안에 품지 않고 그것을 꺼내어 극복하고자 일어나고 있다.


이전에 그런 페미니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작가가 나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과 의도에 따른 것이지만 그 책을 읽고난 후는 씁쓸함과 찝찝함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생각한 것보다 더 끔찍한 상황들이 양지로 드러났지만, 그 상황에서도 작가는 희망을 보고자 했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이 책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더이상 여성들이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나 또한 여자로써 필요한 태도를 발견했으며, 용기를 얻었다.


이 책을 여성만 보고 용기를 얻는데서 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의 사회적 현실을 좀더 넓게 보고 씁쓸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꿈꿀 수 있길 소망한다.

여성이라는 성을 떠나서 평등하게 다뤄져야 할 인권이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또한 이를 함께 해결할 수 있었으면 한다.

표지에 함께 잡은 손 그림과 같이....

 

사라는 아이라는 무게를 떠맡지 않아도 되는 남편의 홀가분함, 남자들만 가지고 있는 매혹적인 가벼움을 질투했다. 남자들은 이상하게도 아이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전혀 미안한 생각 없이 현관문을 빠져나갔다. 출근할 때 남자들은 필요한 서류만 챙겨나갔지만, 사라는 무거운 등껍질을 지고 다니는 거북이처럼 죄의식을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p.40

'달리트는 얼마나 많은 호수를 우리의 피로 채워야 이 족쇄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체념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채,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다음 생은 더 좋을거야.'라는 희망을 품고서.
 고통스러운 윤회를 끝내기 위해서는 갠지스로 가야 한다. 신성한 강물에 몸을 씻으면 영혼이 윤회에서 벗어나 휴식할 수 있다고 했다. 절대에 녹아들어 우주와 하나되는 니르바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행운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다. 종착점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거듭해서 생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다. 세상의 질서는 신이 내린 형벌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생은 끝없이 반복되니까. 순응하고 다음 생을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달리트는 굴종의 삶을 견뎠다.

스미타는 다르다. 그는 굴복할 생각이 없다.
그는 삶을 잔인한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딸마저 굽실거리며 살게 할 수는 없다. 모두가 잠들어 버린 어두운 움막 안, 비슈누 신의 제단 앞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안 돼, 랄리타가 그들 앞에 무릎 꿇게 할 수는 없어.'
그의 반란은 말없이 고요하다. 그의 결심은 정적에 가려 들리지도 않고 어둠에 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오늘, 그의 반란이 움텄다.
p.88-89

"달리트 여자가 최고 자리에 올랐어!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 여자는 헬리콥터를 타고 다닌대. 그 여자는 허리 굽혀 순응한 것이 아니야. 죽음이 자신을 현생에서 해방시켜주기를 기다리지 않았어. 대신 자신을 위해, 자신과 같은 처지의 모두를 위해 투쟁했어!"
p.120

"다른 사람이 반대한다고 해서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을 포기하지는 마. 너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해. 넌 의지가 굳은 아이야. 나는 네 능력과 힘을 믿는단다. 끈질기게 밀고 나가야만 해. 삶이 네 몫으로 중요한 일을 마련해놓았어."
p.249

"병과 싸우면서 자신을 방치하지는 말아요. 자신을 존중하는 것도 회복을 위한 투쟁이니까요.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당신의 동맹군이어야지, 적이어서는 안 돼요."
p.284

상점을 나서면서 사라는 세계 저편, 인도에서 자기 머리카락을 내어준 사람을 그려보았다. 머리카락을 참을성있게 고르고 손질했을 시칠리아의 장인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온 세상이 그의 회복에 협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생명을 구하는 자가 온 세상을 구한다."
탈무드의 구절이 떠올랐다. 오늘, 온 세상이 그를 구하러 나섰다.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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