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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 - 일에 대한 관점도, 삶을 위한 태도도
김도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평점 :

내 주변에 있는 브랜드를 그리고 제품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다들 필수품으로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 살고 있는 아파트, 워시 타워, 냉장고, 인덕션, 식기세척기 등등의 가전제품과 식사 후 식기세척기에 꽉꽉 채워 넣은 식기, 아침저녁으로 문지르고 바르는 화장품, 추워서 걸친 아우터, 빠르고 편하게 아이 픽업에 동행하는 자동차에, 이 글을 쓰게 해주는 노트북, 키보드. 마우스까지...
내 삶에 이렇게까지 브랜드가 밀접하게 살았단 말인가? 브랜드 의존도를 수치로 매길 수 있다면 92.5프로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말은 내 삶의 대부분에서 브랜드를 경험하며 선택하고 그 삶을 누린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브랜드는 당연 내가 선택하는 상품이라고만 생각했다. 써보고 좋았던 제품의 브랜드를 선택하고, 광고와 제품 소개를 보고 브랜드와 제품을 선택한다.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을 눈여겨보며, 브랜드를 상징하는 이미지와 로고 등은 내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브랜드의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며, 누군가와 그것 때문에 자기가 선호하는 게 더 좋다며 팽팽한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브랜드가 다르게 보였다.
브랜드는 브랜드가 브랜드가 되기까지 애쓰고 달려온 여정을 갖고 있다. 그 노력과 맥락이 여러 소비자들에 의해 선택되었고, 그 과정을 거쳐 나한테까지도 왔다. 브랜드가 브랜드로 지속적으로 살아남아 소비자들의 손에 붙들리기란 쉽지 않다. 그들 안에 무엇이 있었기에 그들은 여태까지 살아남아 사용되고 있을까? 어떤 가치가 담겨있기에 소비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이번엔 내가 브랜드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가 브랜드로부터 배울 차례구나 생각을 전환해 보게 해 준 책이었다.
죄다 모르는 브랜드야!!
책을 받자마자 차례부터 훑어봤다. 내게 익숙한 브랜드가 있는지 찾아보고, 내가 선호하는 브랜드를 저자도 선택했을까 궁금해서였다. 웃기게도 내가 선호하는 브랜드는 0개, 책에 나온 브랜드 18개 중 내가 아는 건 반도 안 됐다. 내가 모르는 브랜드를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싶어 이 책을 잡는데 잠깐의 주저함이 있었다.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 책의 처음을 열어준 브랜드 '네스프레소'를 읽고나니 주저함이 사라졌다. 내가 아는 브랜드도 제대로 몰랐다는 생각에 모르는 브랜드도 차차 알아가는 것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네스프레소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겠다. 내가 알던 네스프레소는 그저 캐주얼하면서도 센서티브 한 감각의 디자인에, 작은 공간만 필요로 하는 실용적이면서도 편의성을 갖춘 캡슐 커피(기계)에 불과했다. 읽고 나서 알게 된 건, 네스프레소는 다양성을 포용하고, 너그러움이 가득한 '충분함'이란 매력이 담은 브랜드였다. 막연하게 네스프레소 브랜드를 보며 느꼈던 의구심을 해결해 주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커피?? 그래 네스프레소야말로 다양하지! 그런데 커피 품질은 어떻게 말할 건데?라고 물으면 대답해 주고, '그럼 캡슐의 플라스틱은 어쩔 건데?'라면 '이렇게!'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반응해 주는 듯 보였다. 그리고 '사실은 내가 그동안 말하지 않았는데, 이런 면이 있었어!'라고 말해주는 듯 네스프레소만의 감성과 여유가 느껴졌다. 소문만 듣던 인싸 친구를 제대로 알게 되어 오해를 푼 것처럼 네스프레소를 알게 됐다.
몰라도 이젠 좋아!
어쩌면 제가 이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일 수 있겠다 싶네요. 비교적 남들에게 덜 알려져 있는 브랜드든, 수없이 많이 다뤄지고 평가되어진 브랜드든 간에 제가 느끼고 받아들인 것을 제 경험과 버무려 한 그릇 담아낼 수 있다는 것. 아마 거기서부터 출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p.258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후반부에나 나왔지만, 이미 저자의 경험이 버무려진 브랜드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읽어가고 있었다. 모르는 브랜드든 '아! 이게 그거였어?' 모른다고 생각했던 뱅앤올룹슨이나 뵈브 클리코는 브랜드 이름을 몰랐으나 눈에는 많이 익은 브랜드였다. 특히 뱅앤올룹슨은 디자인만큼 어느 집 인테리어의 거실에 단골처럼 있는 스피커를 만든 업체였다. 예쁜 것만 만드는 업체라는 인식과 달리 음질인 기본에도 충실했으면서 기존의 틀을 깨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디자이너들을 특히 더 대우했다는 등 브랜드의 속 이야기가 재밌었다. 아예 몰랐다가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브랜드도 있다. 자신만의 향을 만들어주는 크리드, 그리고 종이만큼은 다르다 느껴지는 로디아 메모지, 지구에 어떤 해도 주지 않고 그대로 지구에 스며드는 와사라까지 써보고, 경험해 보고 싶은 브랜드가 되었다. 사용한 이들만이 뱉어내는 감탄과 팬심을 나도 한번 느껴보고 싶어진다.
전혀 알 수 없던 부류의 사람에게 새로운 브랜드도 소개받고, 알던 브랜드에 대해 몰랐던 사실도 전해 들은 느낌이었다. 한 사람의 섬세한 시선과 산뜻한 감성으로 버무려진 브랜드 이야기는 그 어느 스토리보다 참신했고 흥미로웠다. (저자가 소개에 이 책을 브랜드 번역서라고 말함) 브랜드를 제대로 번역할 줄 아는 저자이고, '~요'라고 끝나는 글투가 사람의 마음이 부드럽게 열리게 만드는 데다, 브랜드를 향한 독자들의 호기심과 욕구를 예상하는 기획자만의 감각 덕인지 이 책은 자꾸만 알고 싶고 읽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브랜드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되돌아보다
.. 그래서 저는 각도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틀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집단이나 공동체가 아닌 우리 개개인에 주목해보는 거죠. 꼭 '퍼스널 브랜딩'같은 거창한 용어를 쓰지 않아도 우리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이 가진 역량으로 자기다움을 완성해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니까요. 한 사람의 인생을 몇 개의 시대로 나누고 다시 그 안에서 몇 가지 가치관을 추려본 다음, 나를 대표할 수 있는 아이콘은 무엇이 있을까 떠올려보는 것도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매개체로 브랜드를 활용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 책의 전반에서 강조하고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저는 브랜드야말로 나에게 맞는 관점과 태도를 배우기에 더없이 좋은 자료이자 교재라고 보거든요. 그냥 특정 브랜드가 마음에 들어서 계속 좋아하고 소비할 수도 있겠지만, 단 하나를 갖더라도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느끼고 이해하려고 한다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효용을 얻을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p.144
무엇보다 브랜드를 통해 나 개인이 누군지 바라보게 되는 시선이 뜨끔하면서도 고민해 볼 만해서 좋았다.
남들이 하니까, 유행이니까 '천연', '유기농'이라는 단어를 나도 채택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는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고, 자신의 주관을 놓치지 않으며, 말 하나 단어 하나에도 신중한데다, 자신을 이야기하기 위한 방식을 끊임없이 구상하는 것. 브랜드들의 성장한 모습을 통해 개인적으로 나 자신은 어떠한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있는지, 왜 나는 그 브랜드를 좋아하는지? 그 브랜드가 갖고 있는 가치와 내가 선호하는 가치는 어떤 면에서 만나는지 등 선호하는 브랜드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또한 알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처럼 다가왔다.
저자의 이름이 너무 익숙해서 기존 리뷰를 찾아보니 보니 역시나 저자의 <기획자의 독서>란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세심한 접근과 남다른 관찰, 단어와 문장에서 기획자 다운 한 단어, 한 문장이 인상적이었던 터라 당시에도 저자의 다른 책도 나오길 기대했었다. 이 책에서도 그때 받은 인상을 고스란히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오래전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이 리뷰를 쓰기도 전에 이 책까지 저자의 책들을 동생에겐 미 추천했다.
한 번쯤 머리를 식히고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싶다면,
평범한 것도 비범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찰을 배워보고 싶다면,
자기 계발서에서의 사람이나 기업이 아닌 서서히 스며들듯이 브랜드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솔직히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