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 누군가가 자살을 했고, 그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들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 간에 그런 일은 실로 긴장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을 자살로 몰게 한 이들 한 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그들의 죄를 낱낱히 테이프를 빌려 말하고 있다.
왜 하필 받은 게 나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처음에 테이프에 흘러나오는 해나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맹랑하게 앙칼지게 느껴졌다. 말투만으로 죽음 선택한 이의 목소리를 나는 가볍게 여겼다. 무서운 복수극이거나, '사실은 나 살아 있었지!'하고 짠 하며 나타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읽어갈 수록 테이프의 화자인 해나의 부르짖음은 처절했고, 도와줄 이 하나 못찾아 외로웠고, 더이상 나아갈 길이 없이 막힌 벽에 부딪힌 사람과 같았다. 한 사람 한사람이 그녀에게 적이 되었다. 그리고 돌이키지 못할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왜? 그게 정말 내가 원했던 거야. 무슨 말을 들었든, 나는 사람들이 날 믿어주길 바랐어. 무엇보다 날 제대로 봐주길 원했어. 그들이 짐작하는 모습이 아니라 내 진짜 모습. 소문 따위는 흘려버리길. 내 소문을 뛰어넘어서 봐주기를,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인정하지 않겠지. 사람들이 나를 대우하기 원하면 나 역시 그들을 그렇게 대우해야 하잖아. p.164
소설의 전개방식은 화자인 클레이 젠슨의 시선과 경험 그리고 고인이 된 해나의 테이프의 말들을 짜깁기되어 전체가 완성되는 식이다. 테이프의 표적이 된 이들에겐 테이프가 수치와 모욕감을 주는 것이었을테다. 클레이 젠슨은 해나가 마무리하고 싶었던, 이렇게라도 표현해야했던,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면서 후회와 애통함으로 그녀를 애도한다.
요즘 꼭 봐야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드라마 중 <더글로리>란 드라마가 있다. 이 책과 조금은 다르지만 한사람을 겨냥한 왕따의 모습을 다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다. 차라리 드라마처럼 화끈하게 복수라도 하면 좋았겠지만, 이 책의 '해나'는 테이프를 돌려서 진실폭로를 한 게 전부였다. 자신을 괴롭힌 이들이 똑같이 이 테이프의 진실을 듣고 괴로워하길 바란 복수 같아 보이지만, 그렇게만 보긴 어렵다. 이미 죽은 이에게 복수가 무슨 의미이며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해나가 이 테이프로 바란 건. 아마도 복수보다는 당신들의 작은 행동에 나는 이랬었다는 걸 알게 하고 싶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알릴 수 있었던 건, 자살 그리고 테이프가 아니었을지.
절대로 없어야 하는 일이 이 소설에 나와있다. 바로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남은 건 삶을 져 버리는 것 뿐이라고 판단하는 상황이다. 이 책은 지금과는 조금은 다른 면이 있지만, 미성년자들의 가해가 미성숙으로 치부되고, 피해가 하나의 성장통으로 여겨지는 상황인 것 만큼은 지금과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성인이 아닌 청소년들이라 '청소년 소설'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란 말처럼 나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겐 커다랗게 다가오는 한 사람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볼 하기에 이 책은 한번쯤 읽어 볼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