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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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읽었던 책,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책에서 이 책을 소개했다. 책 <흐르는 강물처럼>이 이 책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뒤를 이어 차세대 모던 클래식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읽어보고 싶었다.

차세대 모던 클래식이란 장르? 느낌의 책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일단 1900년대 중반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클래식함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물과 문체는 확실히 다르지 않나 싶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주인공과 같이, 그를 있게 한 선조들이 그렇듯이 진행과 문장은 건조하고 텁텁한 느낌이 들었다. 거의 모든 인물들이 의욕이 없어 보이거나, 수동적 이어 보였다. 그나마 감정을 드러낸 것은 분노하거나 신경질적인 모습이 전부였다. 이 책을 내가 읽을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고 있을 때, 내 손은 반대로 이 책장을 술술 넘기고 있었다.



줄거리


스토너의 부모님들부터가 농가 일과 관습에 지쳐있어 보였다. 스토너는 순종적이었고, 그의 부모를 잘 돕는 착한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에게서 들은 말로 농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 아들 스토너를 미주리 대학에 보내기로 한다. 스토너도 별생각 없이 대학을 다니다가 영문학에 깊이 빠져든다. 대학이 학문을 향한 그의 열정의 눈을 뜨게 했고, 친구를 사귀게 했으며, 평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스승을 만나게 해주었다. 대학, 영문학은 그의 평생의 사랑이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열정을 불러일으킨 이디스에게 이끌려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이디스와의 결혼은 이디스나 스토너에게 그다지 만족스럽진 못했다. 갑자기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이디스의 요구에 따라 아기를 낳는다. 그 아기가 바로 딸 그레이스였다. 스토너는 이디스를 대신해 교수 일과 병행해 열정적으로 아이를 키워낸다. 하지만, 그레이스와의 관계를 이디스에게서 빼앗기고, 스토너는 자신의 남은 열정을 영문학에 쏟게 된다. 그 후 캐서린이란 제자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가 학교에 퍼지게 되고, 그녀는 스토너를 떠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스토너는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 자신의 정년 끝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불치의 암을 맞닥뜨리게 되어 교육자로서 또 한 인간으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한다.



가장 평범한 이야기


스토너는 참전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대학에 남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 데이트를 하고 프러포즈를 해서 결혼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을 안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문학을 학생들에게 열심히 가르쳤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처럼 죽음을 맞이했다.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그의 삶은 우리의 삶을 닮았다. 집안에서 아내 이디스와 결혼 이후 끊임없는 갈등을 보이고, 학교 내에선 영문학 과장이 되는 로맥스와 죽기 직전까지 대치한다. 한 학생은 로맥스와 함께 스토너를 처참하게 무너뜨리기까지 했다. 딸인 그레이스는 엄마 이디스의 뜻대로 살아가다가 결국은 원치 않는 삶의 끝까지 가게 된다. 녹록지 않은 인생의 굴곡을 거치며 삶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스토너의 삶은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어찌 보면 책 초반에 나온 것처럼 많은 이들은 그가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한 사람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다 읽고난 나로서도 그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 아니었음엔 틀림없었다. 한 농부의 아들로, 성공이라 할만한 큰 업적을 이룬 것도, 부모로서 딸을 멋지게 키워낸 것도, 명언을 남기거나 대학이나 학계에 크게 이름을 알린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스토너를 슬프고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존 윌리엄스-


성공신화와 위인전에 길들여졌고,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려야만, 위대한 업적을 내세울 수 있어야 성공한이라고 불리는 시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스토너'는 그다지 반가운 인물이 아닐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에게 작가는 오히려 반문하는 듯하다. 인생에서 훌륭한 삶이란 무엇이고, 어떤 삶이 가치 있으며, 인생에서 당신은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말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생각했다. p.385




이해할 수 없는 두 인물 : 이디스, 그레이스


없어도 너무 없었다. 사랑도, 열정도, 활기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조인간로봇이란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이디스는 다가오는 스토너에게 무심하고 덤덤했다. 조금의 사랑도 열정도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노력하겠다고만 했다. 그런 이디스를 딸인 그레이스가 그대로 닮았다고 내가 생각한 건, 이 책을 읽고 난 후, 이디스란 캐릭터를 미워하며 곱씹고 있을 때였다.

그레이스는 엄마 이디스의 원대로 인기 있는 여자아이가 되기로 한다. 대학을 가서도 그렇게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을 하고, 아이를 갖지만 결국 전쟁으로 남편을 잃는다. 그레이스는 아빠인 스토너에게 고백했다. 엄마를 떠나기 위해서 남편을 택했고, 임신하기로 했다고 말이다. 남편은 자신 때문에 죽은 거라고 그레이스는 말한다. 이디스 또한 그녀의 삶이 무심하고 무정하게 그녀의 부모로부터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래서 이디스는 스토너가 프러포즈했을 때의 반응이 그렇게 없었던 거다. 그런 무정한 부모를 떠나기 위해 자신이 좋다는 스토너를 선택했다. 이디스 또한 남편 스토너를 수도 없이 죽였다.(물론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행동과 마음으로 말이다. 그를 비난하고, 비아냥대며 대했다.)


그레이스 남편이 전쟁을 선택했듯이 스토너는 자신의 열정과 도피처로 영문학을 선택했을 거란 생각이 내게 들었다.

이 두 여자들은 시대적인 상황(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경제공황 등)이 만든 무정하고 무심한 인물일까?

그녀들 또한 자기들의 삶도 불행했고 억울했다고 내게 부르짖을지 모르겠으나, 어찌 됐든 스토너를 주인공으로 본 나로선 그녀들의 조금도 변치 않는 수동적이고 무정하며 조금의 열정도 보이지 않는 그녀들을 '사람'으로 보기가 힘들었다.



모든 사람이 위대할 수 없다. 하지만 훌륭할 수 있다.


스토너의 삶을 보며 그의 삶을 위대하다곤 할 수 없을 거다. 꼭 닮아가고 싶은 위인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열정만큼은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충실했고, 곳곳에 열정을 담았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가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어도 부모님의 뜻에 반하면서까지 영문학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 이디스가 그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어도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녀를 향해 열정을 다했다. 그는 영문학을 사랑하여 깊이 파고들었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열정을 다했다. 학계에 있어서만큼은 정직했고, 거기서만큼은 고집을 부릴 만큼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디스가 그레이스에게 헌신적이지 않을 때도 그는 그녀의 딸을 아기 때부터 보살폈고, 서재에서 깊이 있는 시간을 보냈다. 비록 이디스에게 그레이스를 빼앗겼지만 말이다. 불륜을 대놓고 응원할 수 없지만, 캐서린에게까지도 스토너는 진심 '사랑'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그는 온전히 열정을 쏟아부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는 그 열정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스토너가 훌륭하다고 할만한 부분이겠다.

그러면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인가? 나에게는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사람이, 분야가 있나?

모든 사람이 위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삶, 열정을 가지고 온전히 사랑할 수 있지 않나?

그것만으로 훌륭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스토너의 눈으로 본 곳곳의 인물들의 수시로 변하는 표정과 행동들이 세심하게 표현된 작품으로 충분히 긴장감과 여러 감정이 전해 느껴졌다. 이런 느낌의 묘사와 표현들이 낯설기는 했지만, 이런 소설도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그랬던 내 모습이 놀랍기도 했다.

작가처럼 스토너의 삶을 '영웅'이라고까지 하기는 쉽지 않지만, 한 사람의 삶이 충분히 훌륭할 수 있고, 훌륭할 수 있는 삶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어서 의미 있었다.

주변의 상황들이 낡아져가는 형광등이 깜빡거리듯 서서히 희미하게 인식이 되며 깊은 잠으로 빠져가는 스토너의 마지막 의식의 흐름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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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들려주는 실전 글쓰기 노하우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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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점의 다른 분 서재를 보고 충동에 이끌려 읽은 책이다.

사실 글쓰기의 노하우나 스킬에 관심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러니 '글쓰기'가 책 제목에 들어간 책을 봐도 굳이 찾아 읽지 않았다. 마치 자기개발서를 읽어봤자 내가 그대로 살지도 않을 거니 내 방식대로 살테야!'라는 외침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내가 왜 이 책을 집어들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ㅎㅎ


이 책은 <피너츠>란 만화 작가인 찰스 M, 슐츠의 아들인 몬티 슐츠와 바나비 콘라드가 세계 유명 작가들 32명에게 글쓰기에 관련된 자신들의 경험을 받아 엮은 글이다. 그리고 이 책을 소설가 김연수 작가님이 번역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선 한번 더 이 책을 눈여겨 보게 될 책이겠다.


여기에 있는 작가들이 세계 유명작가라고 소개되는데, 내가 아는 작가라곤 어릴 적에 <마음을 열어 주는 101가지 이야기>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로 유명했던 잭 캔필드 한명 뿐이었다. 잭 캔필드 덕분인지 이 책에서 다룬 작가들이 유명 트렌드(?)가 조금 지난 감이 있어보인다 생각했다.(책의 1판 1쇄가 2006년이니 오래된 책이 맞다.) 다만, 청탁 거절에 좌절하지 말라고 하거나, 무조건 쓰라고 하는 조언은 여느 글쓰기 책들에서 본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마치 그건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글쓰기의 진리라듯이... 다뤄진 작가들이 거의 소설가여서인지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소설을 쓰고자 하시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만 하겠다. 작가들은 작가로서 이런 일도 겪고, 이런 일도 감수해야 하는구나! 작가들의 경험을 소소하게 바라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틈틈히 글쓰기 계명들 사이에 나오는 '스누피'의 글쓰기 고난 과정이 깨알같이 재밌다. 그가 단골처럼 사용하는 문구 '어둡고', '어둡고 바람이 부는' 이 나오면 피식 웃음이 난다. 나는 이리도 유명해 글쓰기 책에 초보작가 대표로 들어가는 스누피, 즉 그가 나온 만화 <피너츠>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스누피의 매력을 잘 모르고 봤는데, 그의 글쓰기 재능과 도전 정신이 귀여우면서도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을 만화다운 표정과 그림으로 무심한듯 재치있게 보여주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루시의 'T'(MBTI)같은 조언은 내게 했다면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나 스누피가 특유의 엉뚱함과 재치로 쿨하게 받아서 만화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씨가 작고 글자색이 연한 건(연한 갈색 같음) 개정전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불편했다. 글자크기가 조금만 크고 글자색은 검정이었으면 좋겠다. 반면 만화 속 대화의 글씨체는 지나치게 명조체여서 그림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글쓰기에 대한 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보인다. 글쓰기 선배들의 조언은 조금씩 다르지만 한결같다. 조금씩 다른 부분들은 읽으시며 자신의 것으로 만드시길..^^ 이 책을 읽으며 작가를 꿈꾸는 모든 초보작가님들이 사랑스러운 캐릭터 스누피로부터 함께 위로받으며 더 나은 글쓰기로 정진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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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1-16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이 책을 집어들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 ㅋㅋㅋ

렛잇고 2024-01-16 22:36   좋아요 1 | URL
제가 넘 솔직했죠? ㅎㅎㅎ 그래도 재밌게 읽었어요. ㅎㅎㅎㅎ 서곡님 감사합니당^^

서곡 2024-01-16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한 글이 최고 아닐까요 ㅋㅋㅋ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주무세요!!

렛잇고 2024-01-16 22:57   좋아요 1 | URL
진심으로 읽기는 잘 한 책인데 어쩌다 읽기로 결심했는지 모르겠단 뜻이었어요. ㅎㅎㅎ 혹시나 오해가 없으시길요.^^
제가 글쓰기에 좀 욕심을 내주었음 더 좋을 책이었을텐데 그 부분이 아쉽습니다.ㅠㅠ 서곡님도 좋은 밤 보내셔요!

서곡 2024-01-17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해는당연히안하죠 ㅋㅋ 스누피 너무 귀여워요 오늘 잘보내시길요 ~~~

렛잇고 2024-01-17 13:0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눈이 많이 오네요! 오늘도 눈처럼 아름다운 하루 보내셔용!^^
 
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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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볼 품 없는 남자였다.'

빅토리아 내시(주인공)가 말하고자 한 이 책의 서사 첫 마디는 이랬다. 어릴 적에 엄마와 칼 오빠, 이모를 잃고 남은 남자(가족)들 사이에서 토리(빅토리아의 애칭)는 순종적이며 묵묵히 주어진 집안일을 해냈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일상에서 그녀는 생전 보지 못한 느낌의 한 남자를 마주한다. 어색한 듯 알 수 없는 묘한 끌림으로 의식하지만, 시작은 별일이 아니었다. 그저 길을 물어본 것뿐이었다.


... 술 취한 남자애의 아귀힘이 풀리고 술병이 떨어지고. 발목을 삐끗하고. 원피스 소맷자락이 찢어지고. 그러나 이런 사소한 일, 마치 나를 부르는 듯한 석탄 수송 열차의 기적 소리, 사거리에서 마주쳐 길을 묻는 이방인, 흙길에 떨어진 갈색 술병처럼 별일 아닌 사건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어도 우리 존재는 탐스럽게 잘 익은 복숭아를 조심스럽게 수확하듯 신중하게 형성되는 게 아니다. 끝없이 발버둥 치다가 그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을 거둘 뿐이다. p.35


인연은 인연을 알아보는지, 토리가 그랬듯 그('윌', 윌슨 문) 또한 그녀와 같은 호기심과 끌림 있어 그녀의 뒤를 밟는다. 하지만 가족 특히 토리의 남동생인 세스가 윌을 이방인을 대하는 적대감으로 대한다. 윌은 도둑의 누명을 쓰고 결국은 동네에서 현상금까지 걸리는 처지가 된다. 토리와 같은 처지로 가족을 잃고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는 루비-앨리스. 모두가 그녀를 미쳤다고 피해 다니지만, 바로 그녀가 윌을 그녀의 집에 보호해 주며 그 사실을 알고 토리와 윌의 만남은 급진전이 이루어진다. 이들은 사랑의 결실로 아기가 생기지만,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 시점부터 윌은 더 이상 토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끔찍이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토리는 아기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윌과 자주 갔던 빅 블루 크리크 산장으로 들어가 몇 달을 지내며 아기를 낳는다. 아기를 돌볼만한 몸도 처지도 되지 못한 토리는 결국 베이비 블루(아기 애칭)을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부부의 차 뒷자석에 두고, 그 가정에서 아이가 무럭무럭 잘 자라주길 바란다. 이후 아빠와 루비-앨리스까지 잃으며, 아이올라에 댐을 건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과감히 자기 집과 복숭아밭의 땅을 국가에 판다. 모든 것을 잃은 그녀,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인식(토리의 남동생 '세스' vs 토리의 연인 '윌')


콜로라도 주는 중서부에 있는 주로 1800년 후반에 미국이 서부로 영역을 넓혀갔던 때라 인디언과의 충돌도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위키백과 참고) 때문에 그 당시에 자신의 터전에서 도주했을 거라 추측되는 인디언인 윌(윌슨 문)의 등장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아이올라에 목축과 농업 등으로 정착하던 백인들의 눈에 그들과는 전혀 다른 피부색, 생김새를 갖고 있는 '윌'이 어떻게 보였을지 세스와 가족들 그리고 동네 주민들의 시선을 보면 이해가 된다. 가장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던 세스에게서 '우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공동체에 반하는 이방인이 등장했을 때 어떻게까지 극단적으로 반응하는지를 볼 수 있다. 이는 세스가 아이올라 주민 전체를 대표하는 극적인 반응이기도 하다.(주민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이가 하나라도 나왔을 때 그를 처절히 (심리적으로) 매장하는 모습을 이후에도 보여준다.) 누가 저질렀을지 모르는 죄도 덮어씌우고, 죄까지도 만들어내는 인간의 잔인함이 세스를 통해 잘 드러난다. 세스 또한 가족을 잃고 더 이상 자신을 이끌어 줄 사람이 없는 슬픔과 아픔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타고난 본성과 성품은 주변 사람들 그리고 독자에게도 그의 존재만으로 공포심을 줄 정도다. 총을 들고 강인하게 대적한 토리의 모습에 슬프게 뒤돌아서는 세스의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다.


본능과 모성애


두 아이를 산부인과에서 남의 손에 맡겨 낳았다. 임신을 하고 난 후 주기마다 검사를 받고, 아이의 상태를 초음파로 확인했다. 양수란 무엇이고, 피가 보일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검색을 하거나 산부인과에 물어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토리는 윌슨 문의 죽음을 듣고, 자신의 배에 태동을 느꼈다. 그것이 임신이라고 말해주는 엄마도 없었다. 임신을 축하한다고 말해줄 남편이나 가족도 없었다. 그녀는 여러 생각 끝에 묵묵히 산장으로 올라갔다. 아기를 지키기 위해, 이 세상에 그 아기를 살아남기기 위해 지금의 집을 떠났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그녀의 임신 출산 장면은 내가 겪은 그것들을 떠올렸다. 나는 몰라서 물어물어 지금까지 왔지만, 우리는 동물적인 본능과 이성을 갖고 준비하며 또 닥치는 상황에서 최종적인 한 목표를 향해, 삶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토리의 모습에게 볼 수 있었다.


아이를 보내고 난 후, 모든 감정을 빼낸 모습, 그러면서도 계속 아이와 헤어진 그곳을 떠올리는 모습, 그리고 자기의 아기가 자랐을 나이의 아이를 보며 사무치게 자신의 핏줄을 그리워하는 마음... 모두 엄마다 보니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됐다.


다 성인이 된 후도 과거 귀여워했던 아기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사랑을 아끼지 않는 엄마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자식은 다 커도 엄마에겐 평생 자식이란 말이 틀리지 않나 보다.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키며..


처음엔 엄마와 칼 오빠 그리고 이모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진심을 다해 사랑한 윌슨 문이 죽었다는 비보를 주민들의 대화에서 듣게 된다. 고백할 수 없는 사랑과 임신을 숨기느라 아기까지 숨어 낳고, 그 아기를 누군가에게 버리듯 맡겨둔 후에야 아빠를 만났다. 그런데 그 아빠마저 머지않아 피를 토하며 토리를 떠났다.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그녀에게 복숭아나무와 밭을 유지할 힘이 없는걸 주민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았다. 주민들은 토리에게 등을 돌렸다.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엄마의 상실로 집안일을 묵묵하게 감당했던 어린 토리의 뒷모습이, 작은 손이 그려졌다. 사랑에 충실하며 그때만큼은 자신만을 생각하며 행복해했던 토리의 미소가 그 기쁨이 읽는 내내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 아픔이, 지켜주지 못하고 비보를 듣고 난 것 말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그 자책에 아파하는 그녀의 애끓는 부르짖음이 읽는 곳곳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추위와 배고픔에 동물적인 감각과 본능을 총동원해 출산을 하고, 아기를 안아 함께 잠드는 장면을 보며 생명의 존귀함과 위대함을 느꼈다.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아이를 남의 차 시트에 내려놓으며 자신의 슬픔조차 느끼는 게 사치라 여겨 모든 감정을 꾹꾹 눌러 참아야 했던 토리의 숨길 수 없는 모성을 함께 느끼며 나도 마음으로 울었다.


끝없는 상실을 마주한 자에게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토리를 보며 생각했다. 매몰차게 자신을 타격하는 운명 앞에서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단지 사랑한 게 전부인데,,, 하지만 토리는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떠나보냈다. 그녀는 그녀의 삶을 일으킬 수 있을까?


사슴 그리고 복숭아


사실 뒤에 작가님의 인터뷰에 나오는 이야기기도 하다.(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하세요)

하지만 산장에서 아이를 낳기 전, 그리고 낳은 후 토리가 마주한 사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원래 사슴은 조심성이 많은 동물이라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고 잘 도망간다.(저희 집이 사슴농장을 해서 잘 압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슴은 토리를 위로하고, 그녀에게 자연의 본능을 그리고 자연의 위대한 질서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그런데다 사슴이 등장하는 장면은 묘사까지 묘하고 신비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토리가 자신의 믿음과 의지할 대상을 사슴에 투영해 의미를 부여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중요한 과일 '복숭아'다. 미국에서도 이렇게 복숭아가 있을 줄 몰랐다. 새로운 지대에서 품종의 개발에 힘써 기반을 다진 토리네 가족의 가업이기도 한 복숭아나무는 토리에게 최후에 남은 희망이다. 그러면서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복숭아의 향과 신선한 과즙은 읽는 사람의 오감을 자극한다. 그런데다 토리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맡길 때 그녀의 굶주림과 슬픔에도 위로와 힘이 되는 게 바로 이 복숭아다.


그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복숭아는 그녀의 삶의 시작과 끝이 되었지만, 그녀에게 힘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것은 결국 복숭아다. 끝까지 그녀에게 응원이자 희망으로 등장한 복숭아 때문에, 더위가 싫어 그리고 싫어하는 그 여름의 복숭아를 나 또한 떠올리며 침을 삼켰다.




한 여인의 성장... 흐르는 강물처럼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았던 토리... 그녀가 빚어가는 삶을 읽어 내려가며 내 삶을 떠올렸다.

내가 그때 무엇을 했더라?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어떠한 감정이었던가?

아이와 마주하면서, 아이를 키우며 어떤 마음이더라?

딸로서, 연인으로서, 엄마로서 살아왔던 인생을 토리와 함께 보는 듯했다. 나 자신은 토리와 같이 어떤 일을 이룩한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일에서 매일 별거 아닌 일을 대하고 나니 여기까지 왔다는 점에서는 토리나 나나 비슷하다 여겨졌다. 내 앞에 다가와 주어진 단계들을 하나하나 거쳐왔던 건, 그녀나 나나 같을 테니까 말이다.

인생이란 게 특별히 어떠한 운명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것보다 책 제목이 그렇듯, 윌슨 문이 인생을 말해줬듯 '흐르는 강물처럼'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것 아닐까?


... 새로운 삶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지난날의 선택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의심했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지금을 지나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가 없고 초대장이 없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공간으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 ... 그것이 옳든 그르든, 내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가 내 앞에 펼쳐져 있었고, 나는 그걸 믿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 장례식을 끝으로 아이올라와 나 사이 인연의 끈이 끊길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곧 내 길을 떠날 것이다. p.274


이 책을 다 읽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을 것 같다. 개발되고 변화하는 상황에서 터전을 뺏기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말하고 싶었지만, 분량이 이미 많아 쓰지 못했다. 그런 독자들의 분출 욕구를 알았는지 '독서모임 가이드'도 있다.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하면 더욱 풍성한 독서가 될 것 같다.


아직 2024년 1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은 벌써 내게 '올해의 책'이 되었다.

영화처럼 꽉 채운 듯한 자연이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서 숨 쉬며 다가왔고, 마음을 가득 채우며 감정을 들썩이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토리의 삶이 빅토리아의 삶이 되면서 내 삶을 하나하나 돌아보게 됐고, 읽고 난 후도 그 여운과 감동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토리가 만약 살아있다면, 지금쯤 할머니가 되어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른 이들과 어떤 삶을 나누고 있을까?

가끔 정신없이 내 삶을 살고 있을 때, 나에게 말해줄 그녀가 떠오를 것 같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고 말하는 그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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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사이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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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다 미쳤다!!!

슌스케가 그곳에 도착해 본 그들의 모습만 보면, 부부동반 테니스 모임으로 보인다.

테니스를 다 치고 난 그들은 이곳에 온 슌스케를 서먹하게 여기는 모습이다.

그리고,,, 어른들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별장과는 떨어진) 다른 별관에서 사립 중학교에 가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5명! 아이들 수와 같이 5 부부도 별장에 모였다. 바로 그 부모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공부시키기 위해 별장으로 모인 거였다. 이들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그렇게 다져진 모임이었다. 그런 그곳에 슌스케의 부하직원 다카시나 에리코가 슌스케에게 줄 것이 있다며 난데없이 찾아온다.


그녀는 어떻게 알고 여기에 온 거지?

사건은 슌스케에게 서류만 건네주고 가려고 했던 에리코가 아이들의 선생, 쓰쿠미 선생에게 접근하면서 조금씩 전개된다. 사카자키(학부모 중 한 아빠)가 이성적으로 에리코에게 접근하고, 저녁 식사도 함께 하자는 분위기가 된다.


저녁이 되어 슌스케는 핑계를 대고 자신에게 단순히 서류만 주러 온 게 아닌 에리코가 머무는 레이크사이드 호텔로 가서 그녀를 기다린다. 그녀는 오지 않고, 기다리다 못해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그런데 돌아온 숙소에서 분위기가 이상하다. 바로 ..에리코가 그들의 숙소 침대에 죽어있다.

거기다 에리코를 죽인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내 미나코라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 어딘가 매우 이상하다. 꺼리고 피해야 할 살인사건에서 사체와 증거를 없애기 위해 다 같이 연대하기로 한다. 자기가 죽인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떤 관계이기에 모두가 이렇게 한마음 한뜻이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답게

사건은 문장은 쉽고, 사건은 빠르게 전개되며, 계속되는 반전과 충격의 재미를 선사한다.

자기가 한때 애인이었던 여자인데.. 사체를 없애는데 동조하기 위해 슌스케가 먼저 나서서 그녀의 지문을 없애기 위해 손가락을 태우고, 얼굴을 내려칠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하면서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너무 끔찍한 일이지만, 바람피운 남자에게 가해지는 벌과 같이 느껴져 웃픈 상황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이 상황에서 각 인물에 나를 넣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주변 사람 전부 이 일에 동참하기로 했는데, 나 혼자 자수한다고 슌스케처럼 경찰서를 간다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엮인 사람들이기에 '미나코'의 살인을 덮어주려고 애를 쓰는 걸까?

테니스? 종교? 마약? 그룹섹스? 아이들 교육?

쉽게 읽히고 재밌긴 해도, 개인적으로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

실내에서 아무렇지 않게 흡연하는 모습은 왠지 담배연기를 그 안에서 함께 마시는 기분이었다. 여자들은 나약하고 수동적이고, 감정적인 모습만 그려지는 것도 불편하고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그것도 고작 사립 중학교를 가게 하려고 이렇게 한다고?

우리나라도 그럴까? 일본은 정말 이런 곳이 있어?

소설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일까? 아니면 단지 작가의 픽션일까?

재미로 보기엔 그들은 정말이지 다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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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12-23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렛잇고님 어느덧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따뜻하고 편안한 크리스마스 되시길 바랍니다~~

렛잇고 2023-12-23 21:08   좋아요 1 | URL
서곡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손수 메리크리스마스 인사까지 해주시고요. 서곡님글과 댓글 덕에 독서 생활이 풍요로운 한 해였습니다. 감사드리며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벌써 새해 인사같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보내셔요!!^^

서곡 2023-12-23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답글 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ㅋㅋ 안녕히 주무시고 좋은 꿈 꾸십시오...
 
[세트]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1~2 - 전2권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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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는

책을 추천하는 글을 봤다.


이 책은

책 표지 색이 강렬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저자 이름을 보자마자

6년 전에 서평단에서 읽었던

<볼티모어의 서>란 책이

떠올랐다.

(지금 이 책에서도 <볼티모어의 서>가 등장한다!!)


이 책은 읽어봐야겠다!


1권당 500여 페이지가 좀 못 되는

두꺼운 분량의 책이었다.

즉, 2권이고

1000페이지가 좀 못 된다.

<볼티모어의 서>에서 그랬지만,

작가 조엘 디케르는

세심하고 쉽게 책을 써서인지

분량이 꽤 많다.


하지만 그의 책은

가독성 하나는 보장이 되니까

(고작 2권 읽었지만,

여기서 그의 글쓰기 스타일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무작정 달려들어도

걱정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배경은

뉴햄프셔 주의 자연의 아름다움 매력적인 소도시,

마운트 플레전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조깅을 하던 한 여성(로렌 도노반)은

그레이 비치 근처 모래밭에서

살해된 알래스카 샌더스란 여성의 몸에

곰이 주둥이를 박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곧바로 근처 주유소에 도움을 요청해

경찰이 출동하며

1999년 4월에 그렇게 수사가 시작된다.

1999년의 그 살인사건은

이 책의 1인칭 저자

마커스 골드먼의 현재와

오가며

전개된다.


마커스는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고,

이미 그의 작품은 드라마화될 예정이다.

해리는 그동안 잘 지내왔던

형사 페리 게할로우드와 연락을 이어가던 중에

자신의 연애에 문제가 있고,

페리 또한 그의 삶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1999년 이미 종결된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의

재수사에 페리와 함께 하게 된다.

모든 범죄에서

증거와 증인이 있으면,

사건은 쉽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지금은 과학수사에

CCTV 도 곳곳에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 주변에도

여러 미제의 사건들이 있듯이

아직은 범인을 찾지 못한,

혹은 범인이 발각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사건들이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과학수사가

익숙하지 않은 과거의 경우 더 그럴 것이다.

또한 이 책 속의 에릭 도노반처럼

무고한 시민이 10년 넘게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재수사를 통해

1999년에는

숨겨져 있었던 이야기,

두려워서 절대 발설하지 않고 싶었던 이야기,

그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보이는 이야기들이

10년이 지난 2010년에는

드러난다.


범인일 줄 알았는데,

여전히 확실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유명한 배우 혹은 모델이 되고 싶었던

그녀들,

지금의 배우자에게 버려질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까 봐

두려워 숨겨온 이야기,

잠깐의 불장난이 짜릿했지만

후회스러워 무마하려 했던 이야기

여기엔 스포 같아서

말할 수 없는 별의별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까도 까도 충격이고 충격인

이 스릴러 책이

일상의 삶을 사는 이들에겐

색다른 재미와 짜릿함을 줄 수 있겠다.


이야기의 흐름이 빠르고

계속되는 충격적인 전개 때문에

인물 한 명 한 명의 아픔이

상당히 큰데도

세세하게 짚고 머무르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도 어김없이

자식을 잃은 아픔과

억울하고 애통한 심정까지

범죄 사건에 가담하거나

연루된다면

삶이 어느 정도까지

나락으로 떨어질지

그 고통을 감당하며

어찌 살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든다.


'인간은 결국

나 자신만을 위해

삶을 영위해 나간다'란

거부할 수 없는 진리(?)가

크게 와닿기도 한다.


독자들을 함정에 빠뜨리려면

어쩔 수 없었겠고

많은 사건을 대하는 경찰분들이라면

정말 저렇게 할 수도 있겠다는 걸

이해는 한다만,

형사 페리를 비롯해

경찰들은 왜 그리 사건에 대해

빠르게 단정 짓는지,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협박으로

왜 그리도

성급히 결론을 내리려 하는지

사건을 대하는 면면들이는

읽으면서 씁쓸했다.


한편으론

이렇게 끔찍한 사건들을 접하고

경찰분들에게

트라우마 같은 것도 무시 못 하겠다?

웬만한 담력으로

경찰일 할 수가 없겠다 싶기도 하고 말이다.


가독성,

빠른 전개로 흡인력

세세한 증거와 증인들의 심리

모든 것들 담아내느라

많은 분량이 쓰였다.


이와 더불어 조금 생뚱맞을 수 있지만,

마커스 골드먼의 해리 쿼버트까지 등장하여

마커스의 글쓰기에 채찍질을 가하며

멘토의 역할을 멈추지 않음으로

1000페이지는 좀 못되지만

굉장한 분량에 보탬이 됐다.


"내가 자네 대신 대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말해도 될 것 같아. 자네가 글을 쓰는 이유는 치유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자네는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써서 나를 치유해주었지. 나는 그 책을 통해 나 자신을 회복할 수 있었어. 자네가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 <알래스카 샌더슨 사건>은 페리 게할로우드를 치유하는 글이 될 거야. 자네가 세상 모두를 치유하고 싶다고 덤벼든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지금은 자네 자신을 생각할 때야. 물론 자네는 문학의 방랑자가 되어 미국 전역을 누비고 다니며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각종 살인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자네 자신이 치유되지는 않아. 자네의 볼티모어 가족에게 일어난 일도 치유되지 않을 거야. 그런 방식으로는 자네의 알렉산드라도, 사촌 형제들도 찾을 수 없어. 이제 자네 자신을 용서해야 할 때가 되었지. 오로지 글쓰기만이 자네가 자신을 용서할 수 있도록 해줄 거야." p.402



많은 이들이 저마다

다른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삶이란

단순하지 않고,

모든 것이 완전히 해결될 수 없으며,

온전하지 않은 인간들이

온전한 삶을 만들기 위해

애쓸 뿐이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치유가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글쓰기가

그를 용서하며

치유해 줄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문제를 끝까지 붙들고

포기하지 않는 결국에

치유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것들을 헤아려야 하기에

분량은 충분한 것도 같지만,

여러 가지를 담아내기엔

분량이 부족해 보이기도 한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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