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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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볼 품 없는 남자였다.'

빅토리아 내시(주인공)가 말하고자 한 이 책의 서사 첫 마디는 이랬다. 어릴 적에 엄마와 칼 오빠, 이모를 잃고 남은 남자(가족)들 사이에서 토리(빅토리아의 애칭)는 순종적이며 묵묵히 주어진 집안일을 해냈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일상에서 그녀는 생전 보지 못한 느낌의 한 남자를 마주한다. 어색한 듯 알 수 없는 묘한 끌림으로 의식하지만, 시작은 별일이 아니었다. 그저 길을 물어본 것뿐이었다.


... 술 취한 남자애의 아귀힘이 풀리고 술병이 떨어지고. 발목을 삐끗하고. 원피스 소맷자락이 찢어지고. 그러나 이런 사소한 일, 마치 나를 부르는 듯한 석탄 수송 열차의 기적 소리, 사거리에서 마주쳐 길을 묻는 이방인, 흙길에 떨어진 갈색 술병처럼 별일 아닌 사건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어도 우리 존재는 탐스럽게 잘 익은 복숭아를 조심스럽게 수확하듯 신중하게 형성되는 게 아니다. 끝없이 발버둥 치다가 그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을 거둘 뿐이다. p.35


인연은 인연을 알아보는지, 토리가 그랬듯 그('윌', 윌슨 문) 또한 그녀와 같은 호기심과 끌림 있어 그녀의 뒤를 밟는다. 하지만 가족 특히 토리의 남동생인 세스가 윌을 이방인을 대하는 적대감으로 대한다. 윌은 도둑의 누명을 쓰고 결국은 동네에서 현상금까지 걸리는 처지가 된다. 토리와 같은 처지로 가족을 잃고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는 루비-앨리스. 모두가 그녀를 미쳤다고 피해 다니지만, 바로 그녀가 윌을 그녀의 집에 보호해 주며 그 사실을 알고 토리와 윌의 만남은 급진전이 이루어진다. 이들은 사랑의 결실로 아기가 생기지만,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 시점부터 윌은 더 이상 토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끔찍이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토리는 아기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윌과 자주 갔던 빅 블루 크리크 산장으로 들어가 몇 달을 지내며 아기를 낳는다. 아기를 돌볼만한 몸도 처지도 되지 못한 토리는 결국 베이비 블루(아기 애칭)을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부부의 차 뒷자석에 두고, 그 가정에서 아이가 무럭무럭 잘 자라주길 바란다. 이후 아빠와 루비-앨리스까지 잃으며, 아이올라에 댐을 건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과감히 자기 집과 복숭아밭의 땅을 국가에 판다. 모든 것을 잃은 그녀,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인식(토리의 남동생 '세스' vs 토리의 연인 '윌')


콜로라도 주는 중서부에 있는 주로 1800년 후반에 미국이 서부로 영역을 넓혀갔던 때라 인디언과의 충돌도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위키백과 참고) 때문에 그 당시에 자신의 터전에서 도주했을 거라 추측되는 인디언인 윌(윌슨 문)의 등장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아이올라에 목축과 농업 등으로 정착하던 백인들의 눈에 그들과는 전혀 다른 피부색, 생김새를 갖고 있는 '윌'이 어떻게 보였을지 세스와 가족들 그리고 동네 주민들의 시선을 보면 이해가 된다. 가장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던 세스에게서 '우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공동체에 반하는 이방인이 등장했을 때 어떻게까지 극단적으로 반응하는지를 볼 수 있다. 이는 세스가 아이올라 주민 전체를 대표하는 극적인 반응이기도 하다.(주민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이가 하나라도 나왔을 때 그를 처절히 (심리적으로) 매장하는 모습을 이후에도 보여준다.) 누가 저질렀을지 모르는 죄도 덮어씌우고, 죄까지도 만들어내는 인간의 잔인함이 세스를 통해 잘 드러난다. 세스 또한 가족을 잃고 더 이상 자신을 이끌어 줄 사람이 없는 슬픔과 아픔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타고난 본성과 성품은 주변 사람들 그리고 독자에게도 그의 존재만으로 공포심을 줄 정도다. 총을 들고 강인하게 대적한 토리의 모습에 슬프게 뒤돌아서는 세스의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다.


본능과 모성애


두 아이를 산부인과에서 남의 손에 맡겨 낳았다. 임신을 하고 난 후 주기마다 검사를 받고, 아이의 상태를 초음파로 확인했다. 양수란 무엇이고, 피가 보일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검색을 하거나 산부인과에 물어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토리는 윌슨 문의 죽음을 듣고, 자신의 배에 태동을 느꼈다. 그것이 임신이라고 말해주는 엄마도 없었다. 임신을 축하한다고 말해줄 남편이나 가족도 없었다. 그녀는 여러 생각 끝에 묵묵히 산장으로 올라갔다. 아기를 지키기 위해, 이 세상에 그 아기를 살아남기기 위해 지금의 집을 떠났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그녀의 임신 출산 장면은 내가 겪은 그것들을 떠올렸다. 나는 몰라서 물어물어 지금까지 왔지만, 우리는 동물적인 본능과 이성을 갖고 준비하며 또 닥치는 상황에서 최종적인 한 목표를 향해, 삶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토리의 모습에게 볼 수 있었다.


아이를 보내고 난 후, 모든 감정을 빼낸 모습, 그러면서도 계속 아이와 헤어진 그곳을 떠올리는 모습, 그리고 자기의 아기가 자랐을 나이의 아이를 보며 사무치게 자신의 핏줄을 그리워하는 마음... 모두 엄마다 보니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됐다.


다 성인이 된 후도 과거 귀여워했던 아기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사랑을 아끼지 않는 엄마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자식은 다 커도 엄마에겐 평생 자식이란 말이 틀리지 않나 보다.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키며..


처음엔 엄마와 칼 오빠 그리고 이모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진심을 다해 사랑한 윌슨 문이 죽었다는 비보를 주민들의 대화에서 듣게 된다. 고백할 수 없는 사랑과 임신을 숨기느라 아기까지 숨어 낳고, 그 아기를 누군가에게 버리듯 맡겨둔 후에야 아빠를 만났다. 그런데 그 아빠마저 머지않아 피를 토하며 토리를 떠났다.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그녀에게 복숭아나무와 밭을 유지할 힘이 없는걸 주민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았다. 주민들은 토리에게 등을 돌렸다.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엄마의 상실로 집안일을 묵묵하게 감당했던 어린 토리의 뒷모습이, 작은 손이 그려졌다. 사랑에 충실하며 그때만큼은 자신만을 생각하며 행복해했던 토리의 미소가 그 기쁨이 읽는 내내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 아픔이, 지켜주지 못하고 비보를 듣고 난 것 말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그 자책에 아파하는 그녀의 애끓는 부르짖음이 읽는 곳곳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추위와 배고픔에 동물적인 감각과 본능을 총동원해 출산을 하고, 아기를 안아 함께 잠드는 장면을 보며 생명의 존귀함과 위대함을 느꼈다.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아이를 남의 차 시트에 내려놓으며 자신의 슬픔조차 느끼는 게 사치라 여겨 모든 감정을 꾹꾹 눌러 참아야 했던 토리의 숨길 수 없는 모성을 함께 느끼며 나도 마음으로 울었다.


끝없는 상실을 마주한 자에게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토리를 보며 생각했다. 매몰차게 자신을 타격하는 운명 앞에서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단지 사랑한 게 전부인데,,, 하지만 토리는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떠나보냈다. 그녀는 그녀의 삶을 일으킬 수 있을까?


사슴 그리고 복숭아


사실 뒤에 작가님의 인터뷰에 나오는 이야기기도 하다.(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하세요)

하지만 산장에서 아이를 낳기 전, 그리고 낳은 후 토리가 마주한 사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원래 사슴은 조심성이 많은 동물이라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고 잘 도망간다.(저희 집이 사슴농장을 해서 잘 압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슴은 토리를 위로하고, 그녀에게 자연의 본능을 그리고 자연의 위대한 질서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그런데다 사슴이 등장하는 장면은 묘사까지 묘하고 신비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토리가 자신의 믿음과 의지할 대상을 사슴에 투영해 의미를 부여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중요한 과일 '복숭아'다. 미국에서도 이렇게 복숭아가 있을 줄 몰랐다. 새로운 지대에서 품종의 개발에 힘써 기반을 다진 토리네 가족의 가업이기도 한 복숭아나무는 토리에게 최후에 남은 희망이다. 그러면서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복숭아의 향과 신선한 과즙은 읽는 사람의 오감을 자극한다. 그런데다 토리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맡길 때 그녀의 굶주림과 슬픔에도 위로와 힘이 되는 게 바로 이 복숭아다.


그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복숭아는 그녀의 삶의 시작과 끝이 되었지만, 그녀에게 힘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것은 결국 복숭아다. 끝까지 그녀에게 응원이자 희망으로 등장한 복숭아 때문에, 더위가 싫어 그리고 싫어하는 그 여름의 복숭아를 나 또한 떠올리며 침을 삼켰다.




한 여인의 성장... 흐르는 강물처럼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았던 토리... 그녀가 빚어가는 삶을 읽어 내려가며 내 삶을 떠올렸다.

내가 그때 무엇을 했더라?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어떠한 감정이었던가?

아이와 마주하면서, 아이를 키우며 어떤 마음이더라?

딸로서, 연인으로서, 엄마로서 살아왔던 인생을 토리와 함께 보는 듯했다. 나 자신은 토리와 같이 어떤 일을 이룩한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일에서 매일 별거 아닌 일을 대하고 나니 여기까지 왔다는 점에서는 토리나 나나 비슷하다 여겨졌다. 내 앞에 다가와 주어진 단계들을 하나하나 거쳐왔던 건, 그녀나 나나 같을 테니까 말이다.

인생이란 게 특별히 어떠한 운명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것보다 책 제목이 그렇듯, 윌슨 문이 인생을 말해줬듯 '흐르는 강물처럼'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것 아닐까?


... 새로운 삶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지난날의 선택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의심했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지금을 지나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가 없고 초대장이 없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공간으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 ... 그것이 옳든 그르든, 내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가 내 앞에 펼쳐져 있었고, 나는 그걸 믿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 장례식을 끝으로 아이올라와 나 사이 인연의 끈이 끊길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곧 내 길을 떠날 것이다. p.274


이 책을 다 읽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을 것 같다. 개발되고 변화하는 상황에서 터전을 뺏기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말하고 싶었지만, 분량이 이미 많아 쓰지 못했다. 그런 독자들의 분출 욕구를 알았는지 '독서모임 가이드'도 있다.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하면 더욱 풍성한 독서가 될 것 같다.


아직 2024년 1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은 벌써 내게 '올해의 책'이 되었다.

영화처럼 꽉 채운 듯한 자연이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서 숨 쉬며 다가왔고, 마음을 가득 채우며 감정을 들썩이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토리의 삶이 빅토리아의 삶이 되면서 내 삶을 하나하나 돌아보게 됐고, 읽고 난 후도 그 여운과 감동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토리가 만약 살아있다면, 지금쯤 할머니가 되어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른 이들과 어떤 삶을 나누고 있을까?

가끔 정신없이 내 삶을 살고 있을 때, 나에게 말해줄 그녀가 떠오를 것 같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고 말하는 그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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