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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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읽었던 책,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책에서 이 책을 소개했다. 책 <흐르는 강물처럼>이 이 책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뒤를 이어 차세대 모던 클래식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읽어보고 싶었다.

차세대 모던 클래식이란 장르? 느낌의 책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일단 1900년대 중반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클래식함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물과 문체는 확실히 다르지 않나 싶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주인공과 같이, 그를 있게 한 선조들이 그렇듯이 진행과 문장은 건조하고 텁텁한 느낌이 들었다. 거의 모든 인물들이 의욕이 없어 보이거나, 수동적 이어 보였다. 그나마 감정을 드러낸 것은 분노하거나 신경질적인 모습이 전부였다. 이 책을 내가 읽을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고 있을 때, 내 손은 반대로 이 책장을 술술 넘기고 있었다.



줄거리


스토너의 부모님들부터가 농가 일과 관습에 지쳐있어 보였다. 스토너는 순종적이었고, 그의 부모를 잘 돕는 착한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에게서 들은 말로 농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 아들 스토너를 미주리 대학에 보내기로 한다. 스토너도 별생각 없이 대학을 다니다가 영문학에 깊이 빠져든다. 대학이 학문을 향한 그의 열정의 눈을 뜨게 했고, 친구를 사귀게 했으며, 평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스승을 만나게 해주었다. 대학, 영문학은 그의 평생의 사랑이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열정을 불러일으킨 이디스에게 이끌려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이디스와의 결혼은 이디스나 스토너에게 그다지 만족스럽진 못했다. 갑자기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이디스의 요구에 따라 아기를 낳는다. 그 아기가 바로 딸 그레이스였다. 스토너는 이디스를 대신해 교수 일과 병행해 열정적으로 아이를 키워낸다. 하지만, 그레이스와의 관계를 이디스에게서 빼앗기고, 스토너는 자신의 남은 열정을 영문학에 쏟게 된다. 그 후 캐서린이란 제자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가 학교에 퍼지게 되고, 그녀는 스토너를 떠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스토너는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 자신의 정년 끝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불치의 암을 맞닥뜨리게 되어 교육자로서 또 한 인간으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한다.



가장 평범한 이야기


스토너는 참전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대학에 남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 데이트를 하고 프러포즈를 해서 결혼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을 안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문학을 학생들에게 열심히 가르쳤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처럼 죽음을 맞이했다.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그의 삶은 우리의 삶을 닮았다. 집안에서 아내 이디스와 결혼 이후 끊임없는 갈등을 보이고, 학교 내에선 영문학 과장이 되는 로맥스와 죽기 직전까지 대치한다. 한 학생은 로맥스와 함께 스토너를 처참하게 무너뜨리기까지 했다. 딸인 그레이스는 엄마 이디스의 뜻대로 살아가다가 결국은 원치 않는 삶의 끝까지 가게 된다. 녹록지 않은 인생의 굴곡을 거치며 삶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스토너의 삶은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어찌 보면 책 초반에 나온 것처럼 많은 이들은 그가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한 사람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다 읽고난 나로서도 그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 아니었음엔 틀림없었다. 한 농부의 아들로, 성공이라 할만한 큰 업적을 이룬 것도, 부모로서 딸을 멋지게 키워낸 것도, 명언을 남기거나 대학이나 학계에 크게 이름을 알린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스토너를 슬프고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존 윌리엄스-


성공신화와 위인전에 길들여졌고,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려야만, 위대한 업적을 내세울 수 있어야 성공한이라고 불리는 시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스토너'는 그다지 반가운 인물이 아닐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에게 작가는 오히려 반문하는 듯하다. 인생에서 훌륭한 삶이란 무엇이고, 어떤 삶이 가치 있으며, 인생에서 당신은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말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생각했다. p.385




이해할 수 없는 두 인물 : 이디스, 그레이스


없어도 너무 없었다. 사랑도, 열정도, 활기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조인간로봇이란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이디스는 다가오는 스토너에게 무심하고 덤덤했다. 조금의 사랑도 열정도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노력하겠다고만 했다. 그런 이디스를 딸인 그레이스가 그대로 닮았다고 내가 생각한 건, 이 책을 읽고 난 후, 이디스란 캐릭터를 미워하며 곱씹고 있을 때였다.

그레이스는 엄마 이디스의 원대로 인기 있는 여자아이가 되기로 한다. 대학을 가서도 그렇게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을 하고, 아이를 갖지만 결국 전쟁으로 남편을 잃는다. 그레이스는 아빠인 스토너에게 고백했다. 엄마를 떠나기 위해서 남편을 택했고, 임신하기로 했다고 말이다. 남편은 자신 때문에 죽은 거라고 그레이스는 말한다. 이디스 또한 그녀의 삶이 무심하고 무정하게 그녀의 부모로부터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래서 이디스는 스토너가 프러포즈했을 때의 반응이 그렇게 없었던 거다. 그런 무정한 부모를 떠나기 위해 자신이 좋다는 스토너를 선택했다. 이디스 또한 남편 스토너를 수도 없이 죽였다.(물론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행동과 마음으로 말이다. 그를 비난하고, 비아냥대며 대했다.)


그레이스 남편이 전쟁을 선택했듯이 스토너는 자신의 열정과 도피처로 영문학을 선택했을 거란 생각이 내게 들었다.

이 두 여자들은 시대적인 상황(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경제공황 등)이 만든 무정하고 무심한 인물일까?

그녀들 또한 자기들의 삶도 불행했고 억울했다고 내게 부르짖을지 모르겠으나, 어찌 됐든 스토너를 주인공으로 본 나로선 그녀들의 조금도 변치 않는 수동적이고 무정하며 조금의 열정도 보이지 않는 그녀들을 '사람'으로 보기가 힘들었다.



모든 사람이 위대할 수 없다. 하지만 훌륭할 수 있다.


스토너의 삶을 보며 그의 삶을 위대하다곤 할 수 없을 거다. 꼭 닮아가고 싶은 위인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열정만큼은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충실했고, 곳곳에 열정을 담았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가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어도 부모님의 뜻에 반하면서까지 영문학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 이디스가 그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어도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녀를 향해 열정을 다했다. 그는 영문학을 사랑하여 깊이 파고들었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열정을 다했다. 학계에 있어서만큼은 정직했고, 거기서만큼은 고집을 부릴 만큼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디스가 그레이스에게 헌신적이지 않을 때도 그는 그녀의 딸을 아기 때부터 보살폈고, 서재에서 깊이 있는 시간을 보냈다. 비록 이디스에게 그레이스를 빼앗겼지만 말이다. 불륜을 대놓고 응원할 수 없지만, 캐서린에게까지도 스토너는 진심 '사랑'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그는 온전히 열정을 쏟아부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는 그 열정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스토너가 훌륭하다고 할만한 부분이겠다.

그러면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인가? 나에게는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사람이, 분야가 있나?

모든 사람이 위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삶, 열정을 가지고 온전히 사랑할 수 있지 않나?

그것만으로 훌륭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스토너의 눈으로 본 곳곳의 인물들의 수시로 변하는 표정과 행동들이 세심하게 표현된 작품으로 충분히 긴장감과 여러 감정이 전해 느껴졌다. 이런 느낌의 묘사와 표현들이 낯설기는 했지만, 이런 소설도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그랬던 내 모습이 놀랍기도 했다.

작가처럼 스토너의 삶을 '영웅'이라고까지 하기는 쉽지 않지만, 한 사람의 삶이 충분히 훌륭할 수 있고, 훌륭할 수 있는 삶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어서 의미 있었다.

주변의 상황들이 낡아져가는 형광등이 깜빡거리듯 서서히 희미하게 인식이 되며 깊은 잠으로 빠져가는 스토너의 마지막 의식의 흐름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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