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 - 펼치는 순간 단숨에 6,000년 역사가 읽히는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시리즈
임소미 지음, 김봉중 감수 / 빅피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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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찬이에게

뜬금없이 편지로 책 이야기를 쓰는 엄마의 글을 보면, 너는 엄마가 왜 이러나 싶겠지? ㅎㅎ

사실 나도 너를 팔면서 이렇게 쓸 생각은 없었단다. 리뷰는 써야 하는데 이것 말고도 3편을 더 쓸라고 하다 보니 부담이 되지 뭐냐? 그래서 어떻게 쓰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편지처럼 편안하게 쓰면 리뷰가 쉽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써봤다. 너의 존재를 팔지만, 아마 네가 읽지 않으리라는 것은 잠재적으로 참고하면서 쓰고 있다.ㅎㅎㅎ


네 엄마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란다. 엄마 어릴 적에는 <조선왕조 500년>과 <한명회>, <장희빈>,<여인천하> 등 드라마가 있어서 꼬박꼬박 시청하며 국사 공부를 재밌어했어. 그런데! 희한하게 공부하기 시작하게 된 역사, 특히 세계사는 너무 방대해서 책을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버겁더라. 전혀 재밌지 않아졌어! ㅠㅠ 그래도 너를 낳고 너랑 대화하는 엄마가 된답시고 다시 책을 읽게 되면서 역사 관련 책을 읽었더니 이젠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더라? 웃기지? 너한텐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네 엄마도 책을 던지고 싶을 만큼 공부가 싫었단.... 이하 생략


뉴스를 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왜 또 전쟁인지, 중국은 왜 홍콩을 자치권을 박탈하며 자신의 지배하에 두려는지 나오잖니? 그때마다 현상만 알지, 국가들 간의 이해관계나 대립 등 배경은 잘 모르잖아. 그러니 '쟤들은 왜 저래?'라는 생각만 들지. 그러다 보니 궁금하기도 한데, 찾아보려고 하면 세계 역사를 뒤져서 보기엔 엄마의 열정은 거기까지 미치진 못했어.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이 책을 보면 '최소한의 세계사'래. 그것도 어른들을 위한! 아마 나 같은 어른 독자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 유튜브 채널까지 하시는데다 8개월 만에 10만 명까지 구독자 수를 늘렸다고 하니 이 책 재미는 보장된 거 아니겠니? 그리고 네 엄마의 기대는 맞아떨어졌다! ㅎㅎ얏호!


일단 이 책에서는 몰랐던 문명의 역사를 알게 되어 옛 세계사를 다시 훑어보는 듯하면서도 흥미로웠단다. 너는 나중에야 배우겠지만, 세계 4대 문명이라는 게 있거든? 물론 여기선 아메리카 쪽의 아스테카문명과 이집트 문명, 황하문명을 다뤘지만 인류의 시작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읽다 보니 재밌더라. 더군다나 이집트문명은 성경에서도 나오잖니? 이집트 파라오를 떠올리며, 그렇게 미인이었다는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리며 읽었단다.


그리고 1,2차 세계대전뿐 아니라 다른 여러 전쟁사들을 다뤘어. 엄마가 역사책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여태껏 본 것과는 달라서 새로운 구성이었어. 베트남과 중동의 경우 학교 다닐 때 세계사 공부에서도 많이 다뤄지지 않았거든. 별로 관심 있게 보이지도 않았고 말이지. 그런데 우리가 조만간 베트남으로 여행도 갈 계획인데, 그냥 휴양지로서의 베트남이 아닌 그 역사를 알게 되니, 국민성과 문화 등 많은 것이 새롭게 보이더라. 중동도 우리가 접하는 매체 등이 늘 미국 이스라엘 중심으로 보여주다 보니 중동은 우리에게 호의적인 곳은 아니지. 오스만 제국부터 이슬람 종교와 문화, 그리고 이스라엘과의 끊임없는 대립 등 왜 그리 이스라엘과 사이좋을 수 없는지 알 것 같더라. 최근 시작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의 가장 깊은 배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면 네가 어른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딱 그 부분만이라도! 아마 조금만 시간을 내면 읽을 수 있을 거다. ㅎㅎ


그 외에도 스페인과 영국, 러시아 동슬라브 국가가 다뤄진 세계사 이야기가 있어. 몇 나라의 역사 지식이 전 세계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굉장히 재미있게 읽혔단다. 그런데다 러시아 동슬라브엔 최근 2년 넘게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가 거론되니 두 나라의 관계와 배경적 상황이 이해되더라. 그렇다고 전쟁을 지지하는 건 절대 아니야! 단연코 아니지! 미국이 1,2차 세계대전에서 어떻게 참전하여 지금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유럽과 미국, 아시아 여러 국가들 간의 연합과 대립의 이야기들이 헷갈리지만 쉽고 술술 읽히게 적혀있어. 특히 우리가 광복이 되기 전, 일본이 패전을 인정하기까지 미국과 일본이 이렇게 지겹게 전쟁을 치러냈다는 걸 알면 기절할 듯 놀랄 거다.


그런데다 아이티라는 나라는 어떻고? 이 책에서 그 나라를 다뤘다는 게 놀라웠는데, 내용은 처참했다. ㅠㅠ 너가 태어나기도 전인 2010년에 아이티라는 작은 섬나라가 초토화될 정도의 큰 지진이 일어났었던 적이 있거든. 모금과 구호활동으로 전 세계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뻗쳤었는데, 엄마도 그제야 그 나라의 존재와 나라의 경제적 상태를 알게 되었었단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흉내 내고 밤마다 생각나서 잠도 못 자게 하는 좀비가 이 나라에서 시작됐다는 거 너는 알 리가 없겠지? 엄마도 처음 알았으니까. 좀비가 나올 수밖에 없던 그 나라의 비참한 현실과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이야기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어떻게 이렇게 막 다루고 잔인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 소름 끼치는 내용이었어. 이런 내용을 안다면 네가 좀비를 함부로 흉내 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엄마가 요즘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걸으며(?) 세계 기행 다큐를 많이 보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알게 되었는데 말이야. 이 책에서도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다루고 있더구나. 킬링필드란 한 사람의 독재와 반지성적인 광기로 전 국민의 4분의 1이 끔찍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대학살을 말하지. 무려 200만 명이나 말이야. 그걸 기념하는 곳이 캄보디아에 킬링필드 추모지로 여러 곳에 있다고 하더라. 참 이런 죽음을 보면, 엄마는 너랑 세 끼 이상으로 잘 먹고, 자유롭고 건강하게 잘 지내는 데다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하나도 불평하고 살 게 없을 정도로 우리는 그 어느 시대, 어느 나라 못지않게 풍족한 세상에서 살고 있어. 이런 내용이 너에겐 와닿을까?


네 엄마 편하게 쓴다면서, 왜 이렇게 길게 쓴 거니? ㅋㅋ 이제 마무리해야겠다.

아무튼 한 책으로 기나긴 역사를 한번 관통해 훑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으라고 하고 싶다. 엄마는 여태까지 배워온 모든 역사 조각들을 이 책을 읽으며 부분 부분을 예전보단 조금 더 크게 완성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단다. 새로운 역사적 지식을 알게 되어 무척 뿌듯하면서도 재밌어서 신이 날 정도였다. 누구나 그렇듯이 새로운 걸 알게 되면 짜릿한 느낌이 들거든?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세계사에서는 새롭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지.^^ 아직 완전히 하나로 하나의 큰 그림이 나오기엔 엄마가 이 책을 몇 번이고 읽고, 다른 책들도 다양하게 읽어봐야 할 것 같다.(이 책을 옮겨 적는데, 왜 내용이 새로운 거니? 네 엄마의 기억력도 나이를 먹고 있는 게 확실해.ㅠㅠ) 위에 이미 썼지만, 주요 강대국의 이야기뿐 아니라 전반적인 문명과 전쟁 이야기로 인류 초기의 모습을 볼 수 있어. 그리고 우리의 시선에서 아직 사각지대에 있는 나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간다면 꼭 이 책을 읽어봐라! 엄마는 이 책의 이런 내용이 너무 좋았단다. 새로운 걸 알아서 즐겁고, 끔찍하고 잔인한 역사가 슬프고, 인간의 광기와 탐욕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지 경악하고 치를 떨었던 엄마가 한 경험을 이 책을 읽어보며 너도 해보았으면 한다. 그래서 (더 좋은 재밌는 책은 많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언제가 되었더라도 이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이제 그만 써야지. 진짜로 그만 써야 해. 계속 이 리뷰를 붙들고 있으면, 리뷰에 질려버려서 다른 리뷰 쓸 부담에 도미노처럼 리뷰 펑크를 낼지도 몰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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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소중한 사람이 생겨버렸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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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이런 책을 좋아할지 모르겠다며 추천해 준 책이다.

그리고 아래를 찍어서 보내줬다. 이 내용이 뭔가 의미가 압축된 것 같은데, 뉘앙스를 헤아릴 수 없어서 몇 번을 읽어봤다. 그렇다. 나는 글을 소화하는 면에선 굼벵이처럼 느린 편에 속해서 그러하다. ㅠㅠ




프레드릭 배크만은 <오베라는 남자>, <베어타운>, <브릿마리 여기 있다>라는 책으로 이미 알고 있는 작가였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라니 어떤 책이려나? 냐금냐금 읽다 보니 친구가 추천해준, 그리고 위를 찍어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위 글의 뉘앙스가 이해 됐다.


이 책을 읽다보면 프레드릭 배크만 이란 이름을 검색해 보면 그의 외모가 그렇기도 했지만, <가디언즈 갤럭시>에서 스타로드 역을 맡은 크리스 프랫이 생각난다. 스타로드와 가모라가 결혼했다면 분명 이 글을 썼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우리에겐 베스트셀러 작가로 알려진 프레드릭 배크만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과 유쾌한 생각이 그의 글에 새로운 매력으로 생생하게 살아나서 인상적이었다.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기 위해 한 손으로 아이 배를 누르다 다른 한 손으로 여러 실수를 저지르고, 손으로 아이 코에 (의도치 않게) 쑤셔서 아이를 울리기 일쑤인 초보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스테레오 볼륨을 높이고 아이패드 키패드 암호를 풀었다고 멘사에 전화하는 아들바보의 아빠 모습도 보인다. 서툰 모습이지만, 아들만큼은 나 자신 이상으로 사랑하는 아빠임엔 틀림없었다. 잠을 안 자고, 자신을 물건으로 내리쳐 깨우는 아기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기도 하는 귀여운 아빠이기도 하다. '이걸 먼저 시작한 쪽은 너였다는 걸 절대 잊지 마라.'라는 문구를 이 책의 앞뒤에 적어두어 뒤끝 작렬인 아빠도 보여준다. 키득키득 웃게 되는 포인트 많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에세이만큼 재미나게 아이에게 편지를 써보고 싶어졌다. 속 터지게 하는 아이의 행동을 더 적나라하게 까발리지 못했던 나의 육아일기를 후회했다. 연년생 육아로 미쳐버릴 것 같은 당시 핵폭탄 하나 쥐고 있던 내 마음을 더더더!!! 솔직하게 글에 쏟아붓지 못한 게 아쉬웠다. 혹시나 앞으로도 내 삶의 육아가 더 미쳐버릴 예정이라면 내 속 끝까지 뒤집어 파서 뭔가라도 써봐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글이었다. 온갖 실수투성이인 엄마더라도, 부드럽고 인격적인 엄마가 아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엄마여도(배크만 작가가 아기에게 소리지르진 않았습니다만...), 요즘 그렇게 필요하다는 정보력이 마이너스 대인 엄마일지라도 이 책 속 프레드릭 배크만을 통해 괜찮다는 위로까지 받았다.ㅋㅋ 위로받으면 안 되나?ㅋㅋ


그래도 자식은 부모에게 목숨과 같으며, 자식은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최고의 행복 덩어리라는 걸 알고!

그렇게 나도 키웠지, 그래서 자식 키우지! 하는 마음에 공감과 함께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극과 극을 달리는 저 안드로메다에 달린 생각이라도 글에서만큼은 용납될 수 있다는 글쓰기의 포용력을 배크만의 글에서 다시끔 생각하게 됐다. ㅋㅋㅋ (이건 뭔소리여 하는 소리도 내겐 많았다는 말 ㅋㅋㅋ)


은행에서 강도에게 총맞아 벌어진 이야기는 너무 웃긴데 웃기만 할 수도 없는... 정말 대략난감한 이야기였다. 어찌됐든 그런 위기를 지나 너가 태어났다고, 그런 경험을 이야기할 우리 아빠는 원래 실없는 사람이라고 친구들한테 말할 거고 ㅋㅋ 아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임테기를 가지고 자고 있는 배크만의 이마빡에 툭툭 치며 이게 뭐로 보이냐고 묻는 아내의 모습도 상상이 되어 끝까지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너와 네 엄마(아기와 아내)는 그의 인생의 최고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결론으로 감동넘치게 마무리한다.


현재 육아에 고단한 부모님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육아를 하면서도 킥킥 웃으며 에세이를 즐기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그냥 프레드릭 베크만을 좋아하는 독자분도 이 책을 읽어보셔요! 그의 에세이는 또 다른 매력입니다!!^^

아직 애들 방학이 안 끝나서 더는 못 쓰겠다. ㅋㅋㅋㅋ 리뷰는 요걸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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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강창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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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카페에서 누군가 이 책으로 만든 드라마를 소개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왓챠에서 22년 나온 휴먼 웹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였다. 한석규 배우가 주연이라기에 '언제 이런 드라마가 있었던가?' 싶으면서 담담한 독백체 대사, 요리하는 동안 어리둥절한 표정, 아내의 반응을 기다리는 표정 등 모두가 너무도 자연스러워 빠져서 봤다. 따뜻하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드라마였다.


암 투병을 하는 아내를 위한 요리를 하는 과정, 음식 재료의 속성과 영양 등 아내를 향한 섬세한 고심이 담겨있다. 페이스북에 글로 담아냈고, 편집자를 통해 책으로 묶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낸 책이었다. 드라마와 책의 내용은 약간의 설정을 제외하고 음식이 다뤄진 것은 흡사해 보였다. 특히 내가 드라마에서 봤던 건 '돔베 국수'편이었는데, 책에서는 돔베 국수를 만드는 과정과 아내가 친정 자매들과 함께 간 제주도의 내용이 담겨있다. 드라마에선 여러 차례 실패? 후 최후에 만든 국수로 아내는 제주도에서 먹었던 돔베 국수와 제주를 떠올리며 아이처럼 기뻐하며 국수를 먹는 장면이 가미되어 있다.


요리를 위한 계량이 아닌 먹는 이를 배려하고, 사랑의 마음을 담아 재료를 넣었기에 그의 음식은 언제나 1인분이 아닌 2인분만큼 넘치게 나왔다. 음식을 위해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는 글에서 상대를 향한 사랑과 배려가 느껴지고, 맛있게 맛보고 즐기는 이에게서 만든 이를 향한 감사가 그려져 마음이 도닥여진다.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게 여길 일상이 적혀있다. 음식 중간중간 아내의 암 투병 주기가 오고 가면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나또한 일상에 대한 감사를 붙들게 하는 책이었다.


담담하고 소박해 보이는 글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암 투병의 아내와 함께 긴장과 일상을 오가면서 한고비 한고비 넘기는 데에 나도 함께 안도하면서 일상이 소중하고 또 귀하게 여겨졌다. 그의 레시피에서는 식재료가 온전히 내어주는 건강함이 느껴졌고, 재료 본연의 맛이 담겨 상대를 향한 마음이 음미되어지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울컥하고, 또 그러면서도 피식하고 웃게 되는 그런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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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8 - 박경리 대하소설, 2부 4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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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단으로 다산 책방에서 새로 나온 토지 1권을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했다. 조금 우습지만, 그 이후가 궁금해 도서관으로 야금야금 매달 두 어권씩 희망도서로 신청했었다. 예산 부족으로 23년 말에는 희망도서를 받지 않았고, 24년이 되어 신청을 재개했다. 그에 따라 나 또한 희망도서 신청을 재개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 그런고 하니, 올해 초에 도서관에서 다산 책방의 토지 전권을 (알아서?) 이미 보유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마음 편히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됐고, 도서관에서 전권을 마련해 주셨으니(그게 내가 꼭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책임을 갖고 읽을 동기가 생긴 셈이다.


그간 등장했던 모습, 즉 독립군에 동학군 그리고 불교의 스님이 가담한 듯 보이는 기세가 내겐 썩 흥미롭진 않았다. 뻔히 보이는 암담한 일제 치하의 상황, 쉬이 나아질 줄 모르는 백성들의 현실이 조선 말고 간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편에서는 삶(탄생)과 죽음이 오가고, 숨겨진 비밀들이 드러나고(환의 정체) 이제 최서희가 평사리로 돌아갈 준비까지 하는 상황이니 꽤 술술 읽혔다.


공노인은 하동 등 조선을 거닐면 서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사방으로 돕고 있다. 조준구와 만나면서 환을 사주관상 봐주는 도사로 조준구에게 소개하면서 서서히 조준구를 몰락시키는데 환이 기여한다. 서희는 이미 길상과 두 아들, 환국과 윤국을 낳았다. 서희는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지만, 길상은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있어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공노인은 (서희가 부여한)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고, 그의 조카딸 월선은 서희가 보내준 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린다. 홍이가 아버지 용이를 데려오려고 편지도 보내고 아버지에게 가고서야, 용은 자신의 일을 다 마친 후 월선이 죽기 전에 그녀를 만나 그녀의 임종을 지킨다. 서희가 모든 장례 비용을 책임질 뿐 아니라, 장례식에 참석해 (신분이 자신보다 미천한) 용이에게 맞절을 하며 월선의 죽음을 애도한다.

환은 간도로 와서 공노인을 통해 길상을 먼저 만난다. 서로 비슷한 처지이기에 서로를 위로하고, 여행도 가고, 같은 뜻을 품고 있음을 알고 지낸다. 길상을 통해 환은 서희도 만난다. 그리고 그 둘은 간도를 떠나 하얼빈의 독립투사들을 만난다. 고향으로 갈 시간은 다가오는데 길상은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서희는 계획대로 하동 평사리로 돌아가려고 한다. 장남 환국이는 아버지 없이 안 간다고 떼를 쓰지만, 결국 서희는 간도를 떠나고 만다.


이 편에서 인상적인 사건은 역시 월선의 죽음과 서희의 귀향이다.

사랑하는 이를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았으나 부부로는 연을 맺지 못했다. 그의 아들만이라도 품에 두었던 월선. 참 가련하고 안쓰러운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용이가 돌아올 것을 믿었고, 그를 기다렸다. 그가 온 후에야 숨을 거뒀다. 무슨 사람 심보가 저러나 싶을 정도로 죽음을 앞둔 월선에게 쉬이 가지 않고 버티는 용이를 보고 처음엔 어이없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에게 가하는 징벌이었고, 월선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는 용이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뭐 그래도 이해는 안 된다만....ㅎㅎㅎ


서희가 등장하여 할머니 때부터 이어진 월선네와의 인연을 끝까지 책임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서희는 평사리의 공주급이었을 텐데, 그런 신분차에도 용이에게 맞절을 하는 모습이 그 당시엔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그걸 콕 짚고 넘어가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음이 분명한 장면이었다.


이 권이 되면서 서희는 아들 둘을 낳은 상황이었다. 주변인들에게는 친일파 소리를 들으면서도, 결국 조준구에게서 자신의 땅을 하나하나 거둬들여 되찾고야 말았다. 결국 그녀는 해냈다! 최서희는 현실적이면서 목표 지향적으로 집념과 감각이 남다른 인물이다. 그녀의 할머니 윤씨 부인을 쏙 빼닮았다. '친일' 자체만을 볼 때 그녀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살짝 달리 보게 됐다. (친일을 미화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나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나라를 잃으면 누구나 '조국 독립'만 답으로 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최서희에게 평사리는 선조들이 유일한 혈육인 자신에게 남긴 정신이었고, 가치였으며, 생명이었다. 제목과 같이 바로 그곳 '토지' 그것이 최서희에겐 전부였다. 반드시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 자신이 끝까지 지켜야 할 유산이다. 그랬기 때문에 '친일'은 그녀에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선택이었다. 평사리가 그녀의 목표가 아니었더라면, 그녀에게 목표가 조국의 독립이었더라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가 되었을까? 그 이야기의 개연성에 과연 납득이 될까? 의문도 든다. 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다는 건, 보편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확실히 최서희는 이상보다는 지금 눈앞에 마주치고 있는 현실을 본 인물이다. 문득 최근 읽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 떠오르는데, 스칼렛 오하라가 딱 그랬다. 그녀 또한 이상보다는 생존, 현실이 목표였고, 그러기 위해서 지키려 애썼던 게 바로 땅, 타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상은 그녀와 다른 가치와 꿈을 가지고 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길상의 처지이기에 그가 이해도 된다. 그래도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어미로 서희를 생각할 때면 아들과 아내를 저버리고 있는 길상이 원망스럽다. 모든 수치와 모욕을 이겨내고 결국 목표에 다다랐지만, 함께해 주거나 기뻐해 주는 이 하나 없이 홀로 선 서희의 모습은 못내 쓸쓸하고 처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버지가 함께 가지 않으면 자기도 안 가겠노라고 고집부리는 아들을 두고 함께 목놓아 우는 서희의 고독, 수차례 너(길상)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서희의 이를 가는 분노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윤씨 부인이 느꼈던, 별당아씨가 느꼈던 그 고독이 서희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긴 여정이었다. 아직도 꽤 남았지만.

여태 달려온 여정을 향해 뒤를 돌아본다. 평사리를 거쳐 간도로 그리고 이젠 다시 평사리로 간다.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행렬에게서 아직도 그들이 가야 할,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여정을

아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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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150
마거릿 미첼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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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영화가 아니라 책으로 봐야 돼!"

새침하게 말하는 폼에 나는 옆집 언니가 내 앞에서 좀 더 아는 척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땐 거슬렸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는 시기쯤이었던 것 같다. 옆집 언니네 집, 따뜻한 온돌방 이불 속에 다리를 넣고 앉아 나무 통에 들어있는 TV에서 나오는 비디오 영화로 이 작품을 접했다. 그때 봤던 영화는 사진같이 한 장 한 장으로 장면만 기억날 뿐이다. 책에서는 모든 대사를 영화에서 나왔던 인물들이 읽어주는 듯 읽혔다.


짧은 시간이 담아내는 영화에 비해 책은 더욱 길고, 깊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내놓았다.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으며, 짧은 시간이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상황이 내재되어 있었으며, 인물의 심경에는 얼마나 여러 가지의 감정과 상황이 개입되고 뒤섞여 행동과 말을 자아내던지. 옆집 언니가 했던 저 한마디가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다. "이건 영화가 아니라 책으로 봐야 돼!"



(하)권의 줄거리

아버지 제럴드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스칼렛은 자신의 또 하나의 목적을 향해 애슐리에게 제안했다. 애틀랜타에서 자신의 제재소를 맡아달라고 말이다. 윌과 스칼렛의 여동생이 결혼한 만큼 더 이상 타라에 남을 이유가 없어진 애슐리는 북부로 떠나 스칼렛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했지만, 스칼렛은 임신을 했다는 것을 핑계로 애슐리를 더 가까이 자신에게 두려고 애틀랜타로 오게끔 한다. 멜라니는 자신의 고향인 애틀랜타로 돌아와 비록 작은 집이지만, 자부심을 갖고 꾸미며 다른 이들을 초대하고 여러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스칼렛은 프랭크의 딸을 낳고, 다시 제재소로 복귀하고자 한다. 프랭크는 출산 후에도 양키와 흑인과의 대립관계 중에도 외출을 감행하는 스칼렛이 양키와 흑인에게 위협을 당하고 오자 클랜이란 이름으로 양키들을 제지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프랭크와 함께한 애슐리 및 남부인들에게 위기가 될 수 있었던 상황을 레트가 정리해 준다. 레트는 더 이상 스칼렛을 놓칠 수 없어 프랭크의 장례가 끝난지 얼마 안 된 스칼렛에게 청혼을 하고 스칼렛과 결혼한다. 레트와 스칼렛은 티격태격했지만, 그들만의 티키타카였고 딸 보니까지 낳아서 그들의 결혼생활은 잘 유지되는 듯했다. 그런데, 애슐리의 생일날, 스칼렛과 애슐리가 어쩌다 했던 포옹이 주변인들에게 발각되고, 스칼렛의 임신이 유산이 되면서 레트와 스칼렛은 조금씩 사이가 벌어진다. 딸 보니로 이어졌던 그들의 관계였지만, 보니가 승마에서 장애물을 넘다가 목 부상으로 죽으며 스칼렛과 레트에겐 크나큰 실연과 아픔이 된다. 이어 멜라니가 연약한 몸으로 임신을 해서 죽는데, 여기서 스칼렛은 레트와 서로 사랑하는 마음임을 확인했지만, 레트의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 그렇게 그 둘은 헤어지게 된다.



전쟁의 두려움 그 이후


남북전쟁으로 남부인들은 북부인들에게 패배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남부인들은 전쟁 이전을 그리워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전쟁에서 가족을 잃고, 집을 잃었으며, 배고픔과 가족을 떠맡은 책임감으로 생존이 절실했던 스칼렛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고, 그렇게 증오하던 양키인들과도 손을 잡았다. 스칼렛이 분명 표독스럽고 이기적이며 물불 안 가리는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생존'이란 단어 앞에서는 과격하면서도 극단적인 그녀의 행동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모두가 살기 위해, 모두가 그녀만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스칼렛은 '생존'을 위한 최선의 행동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은 상황에서 스칼렛을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 스칼렛이 자신의 엄마 엘런에게서 배워왔던 가치와 현실에서 갈등하고 고민했듯, 엄마 엘런의 조언과 충고(여자는 조신해야 한다. 박애 정신 등등)는 과연 전쟁이 끝나 살아내야 했던 이들에도 적절한 것이었을까?


소설의 주제는 생존이다. 재난을 만나도 쉽게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 있고 강하고 용감한데도 굴복하고 마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격변에서 그렇다. 살아남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의기양양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없는 특징이란 무얼까? 나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말하는 <불굴의 정신>이 무엇인지 알뿐이다. 그래서 불굴의 정신을 지닌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마거릿 미첼-

<책 뒤표지 중>


애슐리한테 왜!!! 납득이 안 가네?


그 와중에 스칼렛은 이 책의 상중하의 대부분에서 오직 '애슐리'만 바라본다. 영화에선 몰랐는데, 애슐리란 인물 이렇게 무기력하고 비현실적인 인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력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좋다니 어쩌겠나? 사랑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독자의 입장에선 절대로 납득할 수 없는 사랑이다.

애슐리가 영원한 사랑? 불멸의 사랑?

여기서 그눔의 '사랑'이란 걸 발로 뻥 차 버려서 지구 밖으로 보내버리고 싶게 어이없는 단어다.

문제는 스칼렛이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그 두 남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는 거다.

깨달음도, 사랑도 뒤늦게 찾아왔으니 어찌하겠는가? 그저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망을 한탄할 뿐이다.


그녀를 사랑했던 두 남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랬기 때문에 그들을 잃었다. 이제 그녀는 만일 조금이라도 애슐리를 이해했더라면 절대로 그를 사랑하지 않았겠으며, 레트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그를 절대로 잃지 않았으리라고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녀는 세상의 어느 누구라도 자기가 정말로 이해한 적이 있었을까 막연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p.1835



엇갈린 사랑은 붙잡을 수 있을까?


뒤늦게야 깨달은 사랑... 정말 내가 다 울고 싶었다.


"남자로서는 한 여자를 그보다 더 사랑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생각을 당신은 단 한순간이라도 해봤어? 마침내 당신을 얻게 될 때까지 오랫동안 내가 당신을 사랑했었다는 걸 아느냐고? 전쟁 동안 난 멀리 떠나서 당신을 잊어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를 않아서 항상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 전쟁이 끝난 다음에 난 체포되리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당신을 찾으려고 돌아왔어. 어찌나 당신을 사랑했는지 난 그때 프랭크 케네디가 죽지 않았더라면 내 손으로라도 죽여 없애고 싶은 심정이었지. 난 당신을 사랑했지만, 그런 마음을 당신이 깨닫게 하기가 힘들었어.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무자비해, 스칼렛. 당신은 그들의 사랑을 볼모로 잡아서 채찍처럼 휘두르니까. p.1822


"나는 내가 아는 온갖 방법을 다 시도했지만, 하나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어. 난 당신을 정말로 사랑했어, 스칼렛. 만일 당신이 나한테 용납만 해주었다면, 난 한 여자를 사랑한 어떤 남자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다정하게 당신을 사랑했겠지. 난 당신이 내 진심을 알게 하고 싶지가 않았어. 그리고 언제나 - 언제나 애슐리가 문제였어. 그게 날 미치게 했지. 내가 아니라 내 자리에 애슐리가 앉았기를 당신이 상상하는 줄 알면서 저녁마다 식탁을 가운데 놓고 당신과 마주 앉으면 난 견디기가 힘들었어. ..." p.1825


그눔의 애슐리! 그눔의 애슐리!! 걔가 너한테 뭘 해 줬다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이마 X를 한대 치고 싶을 만큼 깨닫지 못하는 스칼렛,

'여기선 그런 조롱과 비웃음 조금만 거둬줘!'라고 내가 앞을 막아 부르짖고 싶었던 레트의 행동과 한마디들....

남들은 다 아는데, 자신들은 서로 사랑하는 줄 모르는 그들의 엇갈린 사랑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스칼렛은 아플 때 '레트'의 이름을 불렀고, 그와의 하룻밤에 새 신부처럼 설렜으며, 그가 자신의 방에 들어오지 않나 기다렸다. 레트는 스칼렛의 모든 행동과 말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녀의 진심은 언젠간 자신에게 올 거라고 마음속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그 사랑을 온전히 딸 보니에게 바쳤다. 완벽한 딸바보 아빠였다.

뒤늦게 진실을 고백하는 레트의 말에 가슴이 녹아버리는 줄 알았다. 뒤늦게 스칼렛이 레트와의 사랑을 착착 정리하는 걸 읽으며, '어서 가서 말해!! 당장 레트에게 너의 마음을 이야기하라고!!' 나는 스칼렛을 닦달하는 마음을 담아 눈을 부라리며 거칠게 책장을 넘겼다. '제발! 영화의 마무리가 내가 읽는 책에서는 바뀌어 있어라!' 빌면서....



모두가 속편을 이런 마음으로 기다렸겠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편이 영화로 나오고, 캐스팅에 난리가 났던 기억이 있어 웃음이 난다.

이렇게 엇갈린 사랑을 제발 돌이키고 싶은 마음은 모든 독자들의 염원이었을 거다. 솔직히 그 속편의 내용은 뭔지 모르겠지만, 책의 막판을 읽는데 한 가지 희망을 발견했다. 부디 속편이 나오길 바라는 나도 바라는데, 과거 독자들은 얼마나 간절했을지 상상이 됐다.


레트가 하는 말에 스칼렛이 애슐리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레트의 말을 이어가는 장면이 있다.(p.1832-1833)

레트는 그때 자신의 마음과 연결된 데에 스칼렛에게 살짝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그건 언젠가 오래전에 애슐리가 -옛 시절에 대해서 했던 말이에요."

라고 스칼렛이 눈치 없이 말해 셀프로 판을 깨고 만다.

독자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다. 나도 "야아!!!" 하고 소리 지르고 싶었으니까....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고, 그의 눈에서는 광채가 사라졌다.

"말끝마다 애슐리로구먼." 그가 말했고,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p.1833


여기서 아무리 레트가 스칼렛에게 더 이상 사랑이 안 남았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스칼렛을 향한 약간의 사랑!! 내가 여기 찾았다고!! 그의 사랑에 희망을 품게 된다. 속편을 읽으면 되나요? 여기서 더 이야기 없나요?

누가 레트랑 스칼렛 좀 다시 만나게 해주세요....ㅠㅠ 울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이 책은 다 스칼렛 뜻대로 됐다.(멜라니도 죽었고, 애슐리도 스칼렛의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레트도 분명 돌아올 거라 믿는다!! 스칼렛! 당신의 집념(집착)을 믿어요!! ^^:;;


드라마고, 영화고, 책이고 내가 너무 완성되는 사랑만 봐 온 걸까? 그게 익숙해져서 인지, 이렇게 엇갈리는 사랑에 나는 적응이 안 됐다. 어쩌지 못하고 감정이 복받쳐 울음이 나오려고 했다. 차라리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이라면 사랑으로 끝맺음하는 거라서 다행일 텐데, 이렇게 영원히 연결해 주지 않는 엇갈린 사랑이라니!

'우리 서로 사랑했는데, 우리 이제 헤어지네요' 백지영 노래의 가사가 절절히 가슴을 파고드는 듯 너무 아팠다.

그래서 이 소설이 그 절절함에 여운이 더 남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연결이 안 되어 너무 안타깝게 썼지만, 남북전쟁과 그 전쟁으로 남부인들이 겪었던 고초가 생존과 함께 결부되어 삶의 서사를 깊이 헤아릴 수 있었던 소설로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인종차별과 더불어 철저히 남부인의 시각으로 쓰였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여기선 그 점은 배제하고 리뷰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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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2-14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끝마다 애슐리로구먼.˝ ㅋ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오늘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렛잇고 2024-02-14 10:25   좋아요 1 | URL
레트 입장에서는 진저리 칠 부분이긴 했죠. ㅎㅎㅎ 감사합니다 서곡님 좋은 하루 보내셔요!!^^

stella.K 2024-02-14 1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중학교 때 읽은 기억이납니다. 재미있어 다행이지 넘 두꺼워 읽기쉽지 않죠. 근데 나이들수록 영화 보단 책이 좋고 깊이가 있더군요. 저도 다시 읽고 싶긴한데 언제 읽을지는ᆢ

렛잇고 2024-02-14 10:27   좋아요 2 | URL
중학교 때 읽으시다니 정말 대단하셨네요!!! 맞아요. 재밌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싶기도 하고 새삼 마거릿 미첼이 이런 책을 쓴 게 대단하기도 하더라고요. 손으로 썼을텐데요. 맞아요. 두께가 멈칫하게 하는 책입니다. ㅎㅎㅎㅎ^^ stella.K님 댓글까지 주시고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