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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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친해지고 싶지만 선뜻 다가가기 어려울 때가 많다. 무언가 어렵고, 지금 시대와는 거리감이 있으며, 전문가나 특정 계층 위주의 지식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알아서 라기보다 그 클래식한 느낌이 좋아서 음악을 듣고, 전시를 찾아가고, 책을 읽는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이,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혹은 그게 그런 것일까 알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관련 전문가를 지인으로 두고 있지 않아서 않아서, 원하는 고전 작품에 대한 강의도 듣기 어려우니 인터넷 동영상이나 책에서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미술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찾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제목 또한 방구석에서 작품과 해설을 즐길 수 있는 느낌을 주니 더욱 친근하다.

14명 이상 각 화가의 주요 특성을 단순하며 흥미로운 내용으로 구성한 이 책은 화가의 삶과 관련 작품을 잘 연관 지어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얼핏 보면 알기 어려운 작품이지만, 저자가 알려주는 뒷이야기로 그들이 왜 그런 작품을 다루고 주력했는지 납득이 간다. 화가들의 모험과 도전은 시대를 앞선 것이었으며, 오히려 그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대전과 함께 개인사를 보면 예술가들에겐 어쩌면 그렇게도 기구한 삶이 많은가 싶다. 그러한 고통이 예술가를 만드는 것인지, 예술가이기 때문에 그들 특유 성향으로 삶이 순탄치 않는 것인지, '닭과 계란 중 무엇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과 같은 의문을 갖는다. 저자가 '일부러 그런 역경이 많은 화가들만 묶어 다룬 것일까' 싶을 정도로 공통점을 갖고 있는 화가들은 자신의 한계를 예술에 돌진함으로 극복한다. 가난, 불행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작품을 향한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러한 의지 덕분에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기억에 남는 이들로 우리 곁에 남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한때 어떤 화장품 파우더 겉을 장식해서 알게 되었다. 4~5개의 무늬만으로도 나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그녀가 누구인지 찾아볼 정도였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알게 된 그녀에게 예술은 진심과 열정이 담겨있는 그녀 자체였다. 그녀의 작품은 강렬한 색상과 그림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를 통해 예술이란 매개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말로 주고받지 않아도-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고, 영감을 주는데 그게 바로 예술이 갖고 있는 저력이란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 <스타>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드가가 독신의 삶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멘토들의 충고를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평생을 바쳐서 그렇게도 예술을 사랑할 수 있다니 놀랍다. 내가 알고 있는 늦은 나이 미혼의 예술가들도 드가와 같이 예술을 선택한 걸까? 생각하게 하는 드가의 선택이었다. 그가 상류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가수, 세탁부 같은 하류층 여인들의 애환에 주목할 수 있었다는 사실 또한 의외다. 예술에 자신의 삶을 바치고, 남들은 다루지 않는 다른 이들의 모습에 주목한 데서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엿볼 수 있다. 그런 걸 보면 어떤 인생도 같지 않으며, 각기 다른 성격, 환경에 따라 각자만이 해낼 수 있는 사명을 신에게서 부여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는 어떤 사명이 있을지, 내게 주어진 삶 속에서 어떤 모양으로 삶에 기여할 수 있을지, 나는 그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았다.

마르셀 뒤샹은 처음 알게 된 화가인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 처음엔 난감했다. 하지만 뒤샹만의 철저함과 논리적임으로 고정과 편견에 일침을 가하는 모습은 통쾌하기도 하고 혁신적이라 보였다. 작품이나 예술에 자신의 삶을 가두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들고자 하여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보인 모습에서 예술가들 중 '자기신뢰'자의 끝판왕이라 생각했다.

왜 그림을 직접 찾아가서 봐야 하는지 이 책을 보니 알 것 같다. 예술가가 의도한 세부적인 사항에서 지닌 의미를 알려면 되도록 직접 그리고 여유롭게 볼 수 있어야겠는데, 작품을 보기엔 책이나 영상은 확실히 한계를 갖고 있어 보였다. 이 때문에 작품을 직접 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매일 평범한 일상을 사는 내게 화가들의 삶은 상당히 유별나고 이질감이 느껴졌다. 또한, 그 삶이 내 삶이 아님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들의 삶을 책을 통해 작품을 통해 너무나 쉽게 엿보는 것 같아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들의 삶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고, 삶의 궁지에 몰린 그들의 환경이 결국 그들을 지금의 명성과 작품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한편으로 그들 특유의 강한 의지와 예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타고나지 않고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서 예술이 근접하지 못할 고차원의 혹은 상류층 고유의 분야라고 여긴 것이 섣부른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예술은 인간의 모든 것을 녹여낸 우리 삶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란 것이다. 예술에서 우리는 현실을 보고 이상을 보고 삶의 본질을 발견한다. 방구석의 순수한 관심과 흥미로 시작했지만, 예술과 삶의 긴밀한 연결 관계를 알고 삶에 있어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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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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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Pooh)근한 인상으로 친숙하면서도 통찰과 분석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그를 다른 사람들도 그렇듯 '알쓸신잡'이란 프로그램에서 보았다. 새로운 분야 뇌과학이란 분야와 신선한 과학적의 접근으로 더이상 푸근함보단 지식인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얼핏 '뇌과학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원래는 물리학자였다고 한다. 물리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그의 뇌과학 연구는 크로스오버같은 느낌이다.

저자의 분야를 TV로 보면서 관심을 갖기는 했지만, 책의 두께와 과학자가 낸 책이라는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비유와 자료를 통해 보다 쉽게 설명해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어! 나도 그런데!'에서 '아! 그래서 그렇구나!'로 탄성과 함께 공감하며 설득되는데, 이 책이 베스트 셀러란 사실을 납득할 수 있었다.

12가지의 발자국으로 된 이야기는 그가 강의한 것들을 선별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을 과학적으로 해석했다. 우리가 흔히 행하고 지니고 있는 습관, 인식에서 나와 우리의 모습을 직시해 볼 수 있다. 나에게 결핍은 어떤 것이었을까부터 나는 무얼하고 놀지? 무얼하고 놀면 즐겁지?,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가? 인정욕구가 강한가? 내 성격과 특징에 무감각하게 여기며 살던 것이 이 책을 통해 이해가 된다. 이를 알고 어떻게 할지 저자가 약간의 행동개시를 제안하는데, 각자가 고민해보며 자신이 원하는 다른 모습으로의 변화를 위해 시도해봐야 할 것이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필자의 말대로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고, 반복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일을 시도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하나씩 파악한 후 올해 새해 목표로 하나씩 도전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용'의 필요함을 실감한다. 회의적인,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동시에 마음을 크게 열 수 있어야겠고, 나의 생각을 피력하다가도 다른 이들이 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지도 관점을 이해해 봐야 할 것이다. 디지털화 되어 빠른 변화에 순응하면서도 사색하며 몸으로 받아들이는 균형이 필요하다. 중요성은 너무나 당연할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 연달아 제시하는 이 중용, 즉 중도적이고도 균형있는 판단과 방향, 실행은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우리가 잡아야 할 기준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보면서 나도 나이가 들고 있고, 보수적으로 변화하는건 아닌가 생각했다. 아니 보수에서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멈칫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변화와 흐름에서 그것들을 흘러가게 두지 않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다. 현재의 상태가 안정적이어서 유지하고 싶고, 보다 더 안전하고 싶은 마음의 관성이 작용했다고 본다. 그게 나뿐 아니라 내 주변까지 그 관성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통제하고 싶어진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없이, 변화에는 눈살부터 찌뿌리며 보는 관성이 진행되는 내 삶에서 이 책에서 제시한 단어 '혁명'이란 단어가 내 마음에 꽂혔다.

투쟁, 혁명의 시대가 없었더라면 현재 누리는 자유도 편리함도 평등의 상황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역사 속의 혁명은 필요했다고 여기면서 현재의 혁명에 대해서는 냉소적이고 과소평가하는 내 모습이 모순으로 보였다. 비트코인을 대하며, 4차산업혁명이란 상황을 보며 그랬다. 내 편향적인 시각을 돌이키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 머물러 있는데서 거리감이 느껴졌다. 조금더 열린 자세와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예전에도 지금도 관성과 습관에 매여있는 나 자신이 얼마나 거기서 풀려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그래도 읽은 게 내가 나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 고민이라도 하니 나은 거겠지 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앞으로도 나는 책을 읽게 될 거니 비교적 덜 치우치고, 덜 눈살을 찌뿌리며 나를 돌이켜 보겠지? 점차 보수가 되는 데에서 조금 덜 보수가 되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혹시나이면서도 역시나 관성을 밟고 있을 1년 후의 내게 이 책을 다시 건내주고 싶다.

위트있고, 재미있다. 신선하고,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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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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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에서 그냥 버티어 가는 사람, 평범하지 않고 자기의 패턴대로 사는 사람, 그다지 남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

현실에서 환영받을 타입은 아니다. 아니 그다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이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상수와 경애다.

그랬기 때문에 이 책을 시작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게 쉽지 않다. 경애와 상수는 사회의 부적응자들 같아서 현실과 동떨어져 보였고, 그런 모습이 내게 설득력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이들과 달리 나는 현실에 수긍하며, 필요를 따라 나를 끼워 맞추거나 나를 바꾸어 사는 사람이고, 매번 옳은 것을 따르는 융통성 없는 삶을 비난하며, 싫은 것도 옳지 않다는 걸 알아도 사회의 흐름을 따라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인물들이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모티브 하나하나의 점을 이어서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 보인다. 한 인물에게 살아온 환경이, 겪었던 상황들이, 살아내었던 과거가, 함께 한 이들이 그가 살아가는데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것들이 아니라 마치 충돌로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듯 사람을 깨지고 부수고 단단케 하고 여물게 하며, 다르게는 좌절케 하며 무기력하게도 하는지 사람과 그 삶에 대해 바라보게 된다.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개인이 모여, 서로 자극이 되며 그들의 연결 연결을 통해 서로 의지하고 극복할 힘이 됨을 인식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상실이고, 결핍이고 고통이 되지만, 그 죽음의 존재가 그 누군가에게는 남아 그들의 새로운 삶을 일으키고, 생명이 발현되는 일이 될 수 있음에 주목한 작가의 시선이 굉장히 신선했다. 그와 더불어 그들이 처한 현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반영하고 있어 씁쓸했다. 학력주의, 유전무죄, 부정부패 등 서로를 기만하고 은폐하려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슬아슬하고 고독하게 느껴져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상수와 경애는 덤덤해 보였다. 하지만 작가의 한 문장 문장을 읽다 보면 쓰디쓴 무언가를 고되게 삼킨 듯 인물들의 그리움, 고독, 슬픔, 억울함이 읽는 내내 그대로 전해진다. 인물들의 시선, 행동, 표정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아도 절로 그려지고, 점차 인물의 감정 하나하나가 느껴져 그 어떤 표현보다 강렬했고, 그래서 마음이 묵직해졌다. 처음에는 그렇게 동떨어진 인물처럼 여겨지더니 그들의 과거를 한켜한켜 들여다보면서는 그들이 견뎌내야 했던 세월의 짓누름이 절로 헤아려지기도 했다.

참 글을 잘 쓴다 생각했다. 절차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것이나 누구나 경험해봄 직한 일상적인 행위로 감정을 쉽고 획기적으로 전달한 것(굳이 예를 들자면...'오늘이 첫 회식이라는 생각에 육즙이 남은 고기와 함께 그 감정을 꿀꺽 삼켰다.'-페이지 못찾음)에서 작가의 필력이 느껴져 감탄이 됐다. 베트남이란 공간을 끌어들이고, 생소한 미싱기계회사가 주 배경으로 등장하고, 상수 엄마의 장례가 일본식 츠야라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 등 작가가 선택한 소재들이 독특하다 여겨졌다. 그것들을 통해 인물들 간에 소통하게 하려 하고, 인물의 감정을 끌어내려고 한 것이 작가의 의도된 방식이라 생각한 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일지 모르겠다.

나라면 경애와 같이 '타인에 의한 판결'을 거스르고 한 직장에서 정당치 못한 것을 향해 끝까지 싸워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마 끝까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지키려는 용기가 있고, 그것들을 우리 또한 우리 자신에게 기대하는지라 저자는 제목과 같이 (상수가 아닌) 경애의 마음에 주목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흐름을 당연하다 여기며, 판단 없이 사는 나를 무심한 듯 흔드는 경애였다.

어떤 배우가 이 연기를 하면 어울릴지? 자꾸 상상하며 읽었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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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인문학 - 그 골목이 품고 있는 삶의 온도
임형남.노은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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톽톽톽톽 톽톽톽톽

넓은 길에서 뛸 때는 알 수 없는, 골목길에서 달려야만 나는 소리가 있다.

골목길 안을 뛸 때, 그 좁은 골목을 만드는 양쪽 벽 혹은 테두리, 면을 튕기며 울리는 소리가, 그 느낌이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숨바꼭질을 하며 혹은 하굣길로 찾아보는 골목길은 지름길이고, 모험을 꿈꾸며 묘한 쾌감을 자아내는 의미있는 길이기도 했다. 들어갈 때는 미로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통과하면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것이 알던 길도 새롭게 느껴졌다. 새로운 길을 찾아냈을 때 기분이란 탐험가 혹은 개척자가 된 것 같다.

 

골목은 개인의 역사이자 도시의 기억이다.

도시는 사람의 몸과 똑같다. 큰길이 굵은 핏줄이라고 보면 큰길 뒤로 뻗어 있는 길들은 가는 핏줄이다. 큰길 뒤로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는 그 길이 골목이다. 도시에는 무수한 골목이 있다. 사람의 몸처럼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골목이 잘 살아 있고 건강 해야 도시도 생기 있게 살아난다. 골목은 도시의 맨 얼굴이며 도시의 정체성이며 삶의 여유를 주는 공간이다. 골목에는 달팽이 속도처럼 느리기 그지없는 시간이 시루떡처럼 쌓여있고, 무수한 집과 흉터 같은 삶의 웅숭깊은 사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

우리는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오랜 풍상을 겪으며 생긴 얼굴의 주름살과도 같은 골목을 없애버렸다. 그래서 작고 사소한 개인의 역사와 도시의 기억도 함께 묻혔고 증발되어 버렸다.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시간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덮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그 아름다움은 시간이라는 포장이 덮이며 다양한 연상과 감흥을 불러온다. 사람이나 도시는 시간이 담기고 기억이 담겨 품위와 개성이 살아있어야 한다.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는 내가 살았고, 누볐고, 알아내었던 곳의 그 골목길을 떠오르게 한다. 아이들과 사는 현재 내 동네는 좀처럼 골목길을 찾기 어렵다. 아파트로, 빌라로 채워진 동네에서는 아이들이 누빌 수 있는, 새로운 호기심과 도전을 자극할만한 골목이 없다. 그나마 빌라의 틈사이가 있어 아이들이 들어가 서로 뛰노라면 왜 여기서 노냐고, 여기 입주민이냐고 꾸지람을 들을 게 걱정된다. 자신의 공간을 어느 누구와 공유하기 꺼려하고, 자기 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안전을 향한 욕구를 보면, 내가 살았던 이전 시대와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와 공간을 공유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는지 비교하게 된다. 현 모습이 마냥 씁쓸하고 서운하다.

 

이 책은 저자 두사람이 건축 동문으로, 부부로 건축을 다루면서 옛집, 골목 등을 거닐고 산책해서 발견한 것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골목도 소개되는데, 그 지역의 모습과 뒷 이야기가 꽤나 흥미롭다. 모르면서 읽기에는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읽어야 하는데, 그게 수고로우면서도 중간중간 내가 아는 길이 나오면 반갑고 친숙해 신나게 읽게도 된다. 서울 중심부 쪽을 읽으면서 아련하게 거닐던 길들이 떠올라 설레이기도 했다. 옛 역사와 연관지은 지역과 건물의 존폐를 알게 되는데서도 여러 감정을 고루 불러일으킨다.

삽화는 이책에서 느낄 수 있는 온기를 한층 더한다. 상상하다가 피로감이 생겼을 때 그림을 보면서 어딘가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림에 마음을 턱하니 넘겨 보기도 한다. 손수 그려진 그림, 색감에서 골목에서 따뜻함과 친근함이 절로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했다. 길을 다닐 때, 차를 피하거나 멈추어 선 경험이 당연한 듯 여겨지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들에게서 차를 피하게 하면서도 그 공간이 인간의 것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편리를 추구함이 한편으로는 인간을 밀어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싶기도 하고, 너무 무뎠던 것 같아 쓸쓸했다. 그래서 골목이 더욱 그립기도 하지만, 현재 내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정말 힘들다.

 

나도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했다. 청결하고, 바르게 정돈된 집에서 살고 싶어서이다. 그런 편리함이 좋아 골목이 주는 애틋함을 그리워하는 마음조차 사라졌다. 이 책은 그런 애틋함을 그리움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그리고 골목이 주는 의미와 그 따스함을 다시 상기시켰다. 막힘과 고루고루 펼쳐있는 길이 공존하며, 이리저리 연결되고, 그런 것들 사이에서 헤매다가 빠져나오게 되는 그 기분...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만, 내가 살던 곳을 찾아가도 이제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아직은 살아남은 골목들을 보고, 그 안에서 삶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음이 즐거웠다. 최근 알쓸신잡 부산편에 나온 아미동비석마을과 감천문화마을이 떠오르며 글을 읽으며 나도 마음 속으로 뛰고, 막혀보고, 또 다시 만나고, 빠져나오는 느낌을 이어받았다.

이런 마을이 한 도시의 생살이며 역사이며, 누군가에게 사연이고 기억이 되는 그 의미를 다시한번 발견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골목이 아름답다는 것을 켜켜히 살아간 우리의 삶의 흔적이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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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취향 -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특별한 책 읽기
고나희 지음 / 더블:엔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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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고유한 취향을 갖고 있다. 취향은 우리의 삶에 쉽게 접하는 음식, 패션, 거주하는 집, 음악, (이 책과 같이) 독서 등 전반적인데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취향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고 시도하면서 우리는 더욱 즐겁고 행복함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취향'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매력있는 단어다. 호기심이 인다. 설레인다. 자꾸 보고 싶다. 사랑하는 연인처럼...

내가 좋아하는 '독서'와 좋아하는 단어인 '취향'을 합친 이 책에 나는 그저 끌릴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취향이란 것은 저마다 다른 것이기 때문에 '제목'만 보고 끌린다는 것이 모험적인 일이었을지 몰라도, 난 그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그저 누군가의 독서의 취향은 무엇일까 알아보고 싶었다. 내 취향이 아니면 말고?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독자이자 작가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에 따라 <나누어 읽는 이의 취향>, <여행하는 이의 취향>, <쓰는 이의 취향>, <품은 이의 취향>라는 네 가지 파트 속에 책들을 구분 해 넣었다. 웃겼던 것은, 나 자신을 독서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정작 이 책에 소개된 책 중 내가 읽은 책은 단 한권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익숙한 제인오스틴과 브론테자매의 책과 그리고 드문드문 알고 있는 작가들 외에 책속의 책에 대한 정보는 내게 거의 없었다. 

 그렇게도 책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만반의 준비가 된 작가 앞에서 나는 제대로 된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 같았다. 또한, 소개된 책들은 대체로 손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을 시작하는게 더욱 주저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시작했다. 독서의 취향에 끌렸던 내 직감을 믿었고, 일단은 읽어보고 판단하자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

 저자의 글은 묵직하고, 사색적이었다. 자신의 여행과 과거의 경험을 끌어내어 책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풀어쓰기는 했지만, 그 글은 구체적이고 편의적이기보다 깊이 있고, 신중했다. 다양한 단어들이 글을 통해 생기있었고, 마냥 감정적이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고 은유적인 표현이 인상적이다. 소개된 책 자체가 어렵기도 했지만, 저자 또한 아주 쉽게 써 주지는 않았다. 자신의 생각 그대로를 친절하게 풀어쓰기보다는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독자다운 창의성을 충실히 표현한 것 같다. 평론적인 글의 느낌이 나면서도 시적이고 감성적이었다. 집중을 요하는 걸 지나서 묘하게 그의 글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럴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우리와 같은 문화와 시각, 감정 등을 많은 부분에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 대체로 다뤄진 책들은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에밀 브론테의 소설을 보면서는 약간 멈칫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사회적 시대적인 비판이 담긴 책들을 제대로 읽어보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그저 삶을 되는대로 주어진대로만 충실히 살아왔던 내게 어떤 주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상한 짓이었고, 무모한 짓이고, 통일성을 해치는 짓이었다. 단체를 와해하는 몹쓸 짓에 왕따를 자진하는 짓이어서, 도무지 용기를 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내가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을만한 불씨가 될만한 책을 읽었더라면? 과연 지금과는 다른 가치를 갖는 삶이 될 수 있었을까? 한편으로 아쉽고, 씁쓸한 마음에 그 소설을 다룬 몇 장에 마음 한 켠이 덜컹거렸다.

한동안 글을 쓰고 나누다가 주변과 비교하면서 더이상 쓰는 것이 의미없다고 여겨졌다. 읽기 시작한게 얼마나 되었다고, 쓰기 시작한게 얼마나 되었다고 싶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비교 앞에 힘없고, 완성도 떨어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갈 길을 모르겠는 나의 글쓰기 앞에 나는 멈추어 서있었다. 각자의 상황에서는 그만큼의 글이, 자신에게 적합한 글이 보이는 걸까? 마치 저자가 나를 아는 듯, 저자의 고민과 사색 속에 내 자신이 아파했던 어떤 것이 보이는 것 같아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몇 줄 안되는 글에 내 멈춰있던 시선이 흔들렸다. '글을 쓰는 이는 글을 통해 자신을 확인한다'는 말이 그렇게 힘있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글 쓰는데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내 앞에 막혔던 글쓰기의 벽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제목만 보고 고른 이 책의 저자와의 첫만남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그의 글이 내게는 가볍지 않은 곱씹는 재미가 있고, 다양한 단어사용과 표현이 꽤 신선했다. 일방적으로 그가 책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나는 책들에 무지한 상태를 받아들이고 저자가 보여주는 책과 그에 따른 의미들을 내 방식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가 써내려간 사유을 따라 나도 사유를 걸었다. 책에 대해 갖던 막연한 부담감을 덜었으며, 저자의 접근을 따라 갔던 길을 곁눈질하며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접근을 해 보고 싶다는 기대를 얻었다. 그 책들을 읽고 난 후 이 저자와 그 책들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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