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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자신의 일에서 그냥 버티어 가는 사람, 평범하지 않고 자기의 패턴대로 사는 사람, 그다지 남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
현실에서 환영받을 타입은 아니다. 아니 그다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이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상수와 경애다.
그랬기 때문에 이 책을 시작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게 쉽지 않다. 경애와 상수는 사회의 부적응자들 같아서 현실과 동떨어져 보였고, 그런 모습이 내게 설득력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이들과 달리 나는 현실에 수긍하며, 필요를 따라 나를 끼워 맞추거나 나를 바꾸어 사는 사람이고, 매번 옳은 것을 따르는 융통성 없는 삶을 비난하며, 싫은 것도 옳지 않다는 걸 알아도 사회의 흐름을 따라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인물들이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모티브 하나하나의 점을 이어서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 보인다. 한 인물에게 살아온 환경이, 겪었던 상황들이, 살아내었던 과거가, 함께 한 이들이 그가 살아가는데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것들이 아니라 마치 충돌로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듯 사람을 깨지고 부수고 단단케 하고 여물게 하며, 다르게는 좌절케 하며 무기력하게도 하는지 사람과 그 삶에 대해 바라보게 된다.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개인이 모여, 서로 자극이 되며 그들의 연결 연결을 통해 서로 의지하고 극복할 힘이 됨을 인식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상실이고, 결핍이고 고통이 되지만, 그 죽음의 존재가 그 누군가에게는 남아 그들의 새로운 삶을 일으키고, 생명이 발현되는 일이 될 수 있음에 주목한 작가의 시선이 굉장히 신선했다. 그와 더불어 그들이 처한 현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반영하고 있어 씁쓸했다. 학력주의, 유전무죄, 부정부패 등 서로를 기만하고 은폐하려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슬아슬하고 고독하게 느껴져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상수와 경애는 덤덤해 보였다. 하지만 작가의 한 문장 문장을 읽다 보면 쓰디쓴 무언가를 고되게 삼킨 듯 인물들의 그리움, 고독, 슬픔, 억울함이 읽는 내내 그대로 전해진다. 인물들의 시선, 행동, 표정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아도 절로 그려지고, 점차 인물의 감정 하나하나가 느껴져 그 어떤 표현보다 강렬했고, 그래서 마음이 묵직해졌다. 처음에는 그렇게 동떨어진 인물처럼 여겨지더니 그들의 과거를 한켜한켜 들여다보면서는 그들이 견뎌내야 했던 세월의 짓누름이 절로 헤아려지기도 했다.
참 글을 잘 쓴다 생각했다. 절차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것이나 누구나 경험해봄 직한 일상적인 행위로 감정을 쉽고 획기적으로 전달한 것(굳이 예를 들자면...'오늘이 첫 회식이라는 생각에 육즙이 남은 고기와 함께 그 감정을 꿀꺽 삼켰다.'-페이지 못찾음)에서 작가의 필력이 느껴져 감탄이 됐다. 베트남이란 공간을 끌어들이고, 생소한 미싱기계회사가 주 배경으로 등장하고, 상수 엄마의 장례가 일본식 츠야라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 등 작가가 선택한 소재들이 독특하다 여겨졌다. 그것들을 통해 인물들 간에 소통하게 하려 하고, 인물의 감정을 끌어내려고 한 것이 작가의 의도된 방식이라 생각한 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일지 모르겠다.
나라면 경애와 같이 '타인에 의한 판결'을 거스르고 한 직장에서 정당치 못한 것을 향해 끝까지 싸워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마 끝까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지키려는 용기가 있고, 그것들을 우리 또한 우리 자신에게 기대하는지라 저자는 제목과 같이 (상수가 아닌) 경애의 마음에 주목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흐름을 당연하다 여기며, 판단 없이 사는 나를 무심한 듯 흔드는 경애였다.
어떤 배우가 이 연기를 하면 어울릴지? 자꾸 상상하며 읽었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