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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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명 이상 모인 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주로 남의 말을 듣는 편인데다 내향형인 나 같은 사람은 그 자리가 괴롭다. 그리고 나 자신이 사라진 투명 인간 같아 외로워진다. 남의 이야기를 듣다가 성의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맞장구쳐 주며 듣다 보면 내 에너지는 이미 소진되어버린다. 또 내가 들어주는 사람들은 내게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 만나서 기나긴 침묵을 견디다 못해 나는 또다시 먼저 질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만다. 그리고 내 고갈된 에너지를 발견한 나는 후회한다. '왜들 자기밖에 모르지?'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그러다 읽은 이 책에서 상대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의 답을 찾았다.

단말기 확대, SNS의 사용으로 우린 서로에 대해 피상적인 단면만을 확인한다. 그리고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좌절은 우리의 내면을 갉아먹는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너무나도 분주한 하루하루를 지내며 우리는 관계를 확대할 수는 있었으나 깊어지는 건 어려워졌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 증명'을 위해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내가 말할 차례가 오길 기다리며 남의 말이 끝나길 기다린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기도 한다. 극단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비난을 쏟아붓거나, 어마어마한 인명피해를 감행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와 달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돌파구를 찾기 어렵거나 존재를 잃어버린 상황에서는 어떨까? 희망을 찾기를 실패한 이들은 우울함과 무기력에 빠진다. 한 개인으로 살다가 '엄마'로 위치가 달라진 출산 직후 엄마의 산후우울증이 그렇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산 가장의 인생에 남은 것이라곤 고독과 가난뿐인 어르신들의 우울함이 그렇다. 그런 감정을 아이를 낳고 나도 경험했다. 아이가 크고 나니 자연스레 회복은 됐다. '시간이 약!' 그 말은 맞았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약이 되기도 전에 극단적인 결론에 치달을 수도 있다. 그때는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 일도 아니고, 내게는 아직 오지 않은 그 깊은 우울과 무기력에 대해, 겪는 이들에게 냉담해진다. 혹은 가까운 사이에선 뻔하디 뻔한 '괜찮아질 거야!'라는 위선의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스스로가 이겨내야지 어쩌겠나?' 싶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우리에게 저자는 우울과 무기력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병이 아니라 삶의 그 자체다!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수용해야 할 삶의 중요한 감정이다. 그와 함께 '우울증'이란 테두리에 가두고 명명하는 사회에 일침을 놓는다. 일방적이고 일반적으로 '우울증'으로 몰아붙이는 약 처방으로 자신의 의무는 다했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지니는 현대 정신 의학계에 쓴소리를 내뱉는다. 너무 안일한 시각으로 '우울증'자체를 개인의 나약함으로 단정 지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나 자신 또한 우울함을 갖고 있던 것을 무작정 떨쳐버리려고만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우울증을 의미 있는 대화와 생각으로 이끌어 줌으로 개인과 자신에 대해 근본적으로 알 수 있는 메시지로 본 저자의 시각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위와 같이 개인의 감정과 존중을 깊게 바라보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시선이 간다. 바로 '자녀'에게다. 훈계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체벌하던 모습을 나는 정당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런 행동이 훈육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내 존재 확인 욕구가 반영된게 아닐까 돌아보았다. 아이 양육의 최선은 바른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의 행동만 지적하기에 급급했다. "엄마 미워!", "엄마는 내 이야기도 안 듣고!"라며 부르짖던 둘째의 얼굴이 떠오르며 아이의 감정은 바라봐 주지 않고, 그에 대한 지지조차 보내주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양육서를 보면서 참고해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안도감은 이 책을 읽으면서 무너졌다. 내게는 몸에 밴 습관처럼 기존의 방식을 바꾸기 힘들지만, 이 책에서 다룬 것들이 아이를 대할 때마다 떠올라 내 행동을 다잡곤 한다.

 

'당신의 감정은 옳아요.라고 토닥이는 한 마디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필요한가? 온전한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신이 혹은 내 자녀가 그럴만했다는 공감이 우리에게 얼마나 힘이 될까? 어르신들이 왜 태극기를 흔들기 위해 광장으로 나갔는지? 일베 사이트에서 누군가는 비상식적인 글을 올렸는지? 그는 그 많은 탑승객들을 죽음으로 몰았는지? 그들의 감정이 이 책을 읽으니 이해가 된다. 개인에게 어떠한 논리나 지식이 도움이 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누구나 감정은 옳고, 공감 받아야 마땅하다. 개개인이, 한 존재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된 책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저자의 말처럼) 그들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을 이야기함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개인에게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깊이 알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지지하고 공감하며 끊임없이 받아줄 여유가 어느 정도일까? 가족이나 마음을 놓을 친구가 없는 이들에게 이 사실은 꼭 이와 같지 않을까? 내가 배가 고파서 빵을 먹으면 된다는 걸 아는데, 돈이 없는 것과 같은 상황말이다. 그래서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한 채 이 책을 덮었다. 내용이 너무 좋고 도움이 되었음에도 뭔가 마냥 좋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자기성(自己性)이 소거된 채 부모의 기대나 사회적 역할, 가치 등에 전적으로 기대어 살아가던 사람은 절대적 의존 대상이던 그 부모나 배우자와 이별하거나 절대적인 내 역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일이 없어지거나 그 가치가 빛을 잃을 때 광활 발작을 경험할 수 있다. 예견된 수순이다.

p.40

 

젊든 늙든 우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이젠 알 것 같다. 자기 존재에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노인도 그렇고 청년이나 아이들도 그렇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p.47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p.59

 

... 그런 감정들을 떠올리고 얘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존재 자체에 대한 얘기다. 내 상처의 내용보다 내 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 상처가 ‘나’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나’라는 말이다.

p.105

 

언제나 나를 놓쳐선 안 된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그게 공감의 중요한 성공 비결이다. 공감하는 일은 응급실 당직 의사처럼 상대에게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의무가 되면 결국 내가 먼저 나가떨어진다.

너를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공감하는 일이다. 대개는 여기서 걸려 넘어져 공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람 구하는 일에 결정적으로 실패한다. 상대에게 더 집중하려고 자기감정은 누르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감정 노동에 시달리다가 결국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p.120

 

감정과 정서가 개입된 주제에서 논쟁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설득시켜 내 관점이나 의견을 수용하게 만들긴 어렵다. 그건 고속도로 운전법의 논리다. 여긴 포장도로다. 논쟁과 설득으로 사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서 토론이나 논쟁은 오히려 상대방이 자기 마음을 더 강하게 닫게 만들 뿐이다.

p.134

 

공감은 누군가의 불어난 재산, 올라간 직급, 새로 딴 학위나 상장처럼 그의 외형적 변화에 대한 인정이나 언급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그 사람 자체, 그의 애쓴 시간이나 마음 씀에 대한 반응이다. 그럴 때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인정받고 보상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면 사람은 그런 외형에 덜 휘둘리며 살 수 있게 된다. 공감은 쓰러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울 만큼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힘은 그가 고요하게 가만히 있어도,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만으로도 초조하지 않을 수 있는 차돌 같은 안정감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공감의 힘은 그렇게 입체적이다.

p.143

 

어떤 이의 생각, 판단, 행동이 아무리 잘못됐어도 그의 마음에 대해 누군가 묻고 궁금해한다면 복잡하게 꼬인 상황이 놀랄 만큼 쉽게 풀린다. 자기 마음이 공감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나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기꺼이 진다. 자기 마음이 온전히 수용되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억울함이 풀려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다.

p.161-162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고 싶어도 그 마음은 옳다. 그 마음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만 하면 부술 마음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비로소 분노의 지옥에서 빠져나온다.

p.167

 

공감은 상대를 공감 '해주는'일이 아니다. 내 상처가 공감 받는 것에 예민하지 못하면 공감하는 일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어렵다. 나와 너, 양방을 공감하지 못하면 어느 일방의 공감도 불가능한 것이 공감의 오묘한 팩트다. 그래서 공감은 너도 살리고 나도 구한다. 그래서 공감은 치유의 온전한 결정체다. 이 온전함의 토대는 오로지 자기 보호에 대한 감각에서 시작되고 유지되면 자기 보호는 자기 경계에 대한 민감성에서 시작된다.

p.187

 

우리 모두는 자기 보호를 잘해야만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처 입은 존재들이다. 예외가 없다. 공감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기준을 내게 묻는다면 단연코 자기 보호에 대한 민감함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기간 동안, 어떤 특정 맥락과 상황 속에서는 내가 참고 견딜 수 있지만 나는 항상 그래야 하는 존재,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자기에 대한 감각이 살아 이어야 공감자가 될 수 있다. 나와 너를 동시에 공감하는 일은 양립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와 너 모두에 대한 공감'의 줄임말이 '공감'이다.

p.191-192

 

관계에서의 상처는 경계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얘는 딱 자기 아빠야, 얘는 딱 어릴 적 나야, 얘는 나랑 정반대야"와 같은 말들은 내 아이를 부모와의 연결 속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나와 '내가 아닌 너'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의 언어다. 자식을 바라보는 게으른 시선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이런 게으른 시각은 큰 둑의 작은 구멍이다. 결국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

p.198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기쁨과 즐거움이거나 배움과 성숙, 성찰의 기회일 때다. 그것이 관계의 본질이다. 끊임없는 자기학대와 자기혐오로 채워진 관계에서 배움과 성숙은 불가능하다. 자기 학대와 자기혐오가 커질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끊어야 한다.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면 끊어야만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관계들이 의외로 많다. 관계를 끊으면 그때서야 상대방도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계기가 만들어진다. 그런 계기로 삼지 못해서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되어도 그건 그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p.204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는 건 좋은 일인가. 좋을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얼마든지 있다. 때론 위험하기도 하다. 긍정적 감정은 자기 합리화와 기만이 만들어내는 결과일 때도 있고 자기 성찰의 부재를 뜻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성찰이 깊고 스스로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 불안하고 흔들리게 된다. 상황을 더 깊고 입체적으로 보는 과정에서 만나는 불안은 불가피한 것이다. 깊은 성찰은 여러 갈래의 길과 전망을 보여준다. 복잡한 갈래 길들을 바라보며 인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은 불안을 전제로 진행되는 것이다.

p.217

 

감정은 판단과 평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내 존재의 상태에 대한 자연스러운 신호다. 좋은 감정이든 부정적 감정이든 내 감정은 항상 옳다.

p.219

 

사람은 옳은 말로 인해 도움을 받지 않는다. 자기모순을 안고 씨름하며 그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이해와 공감을 받는 경험을 한 사람이 갖게 되는 여유와 너그러움, 공감력 그 자체가 스스로를 돕고 결국 자기를 구한다.

p.239

 

'우리'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구두 위에서 간지러운 발가락을 긁는 행위다. 내 마음, 내 느낌 등 고유하고 개별적인 존재로서 내 육성에 접근해 가는 것이 제대로 된 관계의 시작점이고 그게 바로 공감이다. 다양하게 깎인 수많은 입체적인 면면들 때문에 빛이 드는 방향에 따라 빛깔과 분위기가 달라지는 예각의 크리스탈 조각 같은 존재가 사람이다. 그런 존재를 집단적 정체성이라는 둔각으로 뭉개는 일은 자신에 대한 폭력인 동시에 자기 은폐나 억압,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무지다.

p.249

 

...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다. 그 상태가 되면 상대방 감정결에 바짝 다가가서 그 느낌을 더 잘 알고 끄덕이게 된다. 상대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상관없다.

p.268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 자신이 공감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공감하는 일은 감정 노동이든 공감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를 공감하는 일은 시늉할 수 없다. 남들은 몰라도 자기를 속일 방법은 없다.

p.274

 

'나는 아이가 여섯 살일 때도, 열일곱 살일 때도 애가 힘든 얘기를 하면 옳고 그름을 먼저 가리고 그다음에 다른 사람 입장을 말해주고 난 후 아이에게 "왜 그런 일이 있었니?"라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타이밍이 다 지난 다음에 아이 마음을 물었던 거다. 아이는 참다 참다 어렵게 엄마한테 말을 꺼낸 건데도 그랬다.

내가 엄마라서 나에게 SOS를 보낸 건데, 다정한 엄마면 족한 건데 나는 결과만 가지고 '그러면 안 되고 바르게 커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부터 챙겼다.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나는 훈육이 교육이라고 알고 살았다. 다른 사람들한테 욕 안 먹고, 잘 키우려는 마음이 늘 먼저였다. 타이밍이 있는 건데, 그 타이밍을 놓치면 죽을 수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가 살아준 게 되게 고맙다. 다음 일은 다음에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p.303

 

나만 여러 생각과 걱정을 한다고 여긴다면 아이를 한 개별적 존재로 바라보지 않아서다. 나도 생각하고 아이도 생각한다. 아이도 나와 같은 한 개별적 존재다. 남편에게 하는 하얀 거짓말은 그닥 염려를 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겐 강박적으로 거짓말을 절제하는 건 아이를 가르침의 대상으로만 여겨서다. 아이는 내가 가르치지 않으면 모른다고 믿고 있어서다.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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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벚꽃 에디션)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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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런 에세이가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위로하는 책, 나를 찾는 책, 자존감을 북돋워주는 책....

힘들지 않았고 그럭저럭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라 나라면 선택하지 않을 책이었다. 독서토론 모임에서 선정된 책이어서 이번 기회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 보고 언뜻 '이 분 어쩌려고 이러시나?'라는 생각을 했다. 읽어보니 더 가관이었다. 인생의 필수 체크 코스 직장, 결혼, 자녀, 소유 주택 여부 기준에 한 개도 부합하지 않았다. '우와! 주변에서 잔소리 한 바가지 어찌 감당하려고?' 그리고 그가 말하는 건 '이제 열심히 살아야겠다'가 아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다. 이제 열심히 안 산다고 세상에 선전포고한 것 같다.

이 책은 프롤로그부터 웃겼다. 누구나 부담을 갖는 단어 '불혹'에 과감히 쓴소리로 쏘아붙인다.

웬만한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누가 그딴 소릴! 나 엄청 흔들리고 있다고!

불혹에게 감히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민망하면서도 속이 시원해지는 소리다. 40은 안 됐지만, 냉정히 말하면 나도 저 소리까지는 못해도 저기에 숟가락 하나 얹으리라..

무한도전! 저자는 대한민국의 한 남자로 무모한 실험, 도전을 하는 듯하다. 자신의 인생을 건 실험을 한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우면서도 그런 실험이 짠해지고 안쓰러운 것은 그가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겪은 환경과 시대가 내가 살던 것과 같기 때문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2002년 월드컵의 붉은 악마 슬로건처럼 우린 '꿈'이라는 무언가를 향해 10대와 20대를 치열히 살았다. 공부가 전부인 줄 알았고, 취업이 전부인 줄 알았다. 결혼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일, 결혼, 자녀, 집 등 이 미션에 대한 잔소리도 싫고 손가락질도 싫어 하나하나 클리어했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위 미션을 클리어 한 많은 이들이 꼭 행복에도 클리어 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자의 현재의 삶이 우리에게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불안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거기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차곡차곡 밟았던 그 길을 돌아보는 것이다.

노력은 정말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나?

열정은 과연 제때 제대로 쓰였나?

내 가치와 방향을 따라 살고 있나?

남들의 속도에 왜 조바심 부리나?

꿈은 행복을 가져다 주나?

마조히즘을 즐기나?

'뭐야 열심히 살 뻔했다고?' 제목만 보고 이 책이 당신이 사는 삶을 무력하게 만들까 봐 겁나는가?

그렇다면 그런 걱정은 넣어둬 넣어둬!!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그리고 당신!

행복을 위해 살고 있다고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나는 이 책을 권한다.

ps: 가볍게 툭 뱉어내고, 삶에 있어 진지하지 않게 여기는 듯해도, 인생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저자가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라 열심히 노력하는데 고작 이 정도고, 누구는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도 많은 걸 가져가서다. 분명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배웠는데, 또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고 배웠는데 이상하다. 뭔가 속은 것 같다. 잘못 살아온 것만 같다. 그렇다고 노력을 멈출 수도 없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지금 정도도 유지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어서 괴롭다.

p.21

"제 일에 열정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고민인데, 나는 이런 고민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뭐랄까, 눈앞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앉혀놓고 "저는 왜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거죠?"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무리 애를 써도 어떤 일에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 거다. 열정은 애정을 기반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니 당연히 열정도 없다. 열정 콘텐츠로 반짝 의욕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강요로 만들어진 열정은 대개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경우가 많다.

p.31

열정도 닳는다.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

p.34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내가 욕망하여 좇은 것들은 모두 남들이 가리켰던 것이다.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게 부끄럽다.

p.39

노력은 고마운 것이었고 확실히 효과도 있었다. 노력으로 자신의 타고난 환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신화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그래, 내 환경이 아니라 내 노력이 부족했던 거야.'라면 모든 부족함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착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흙수저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자신을 탓하는 것도 지쳤다. 화가 난다. 더 노오력하라고? 내가 이 모양인 건 노력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이건 모욕이다. 금수저는 노력해서 금수저가 됐더냐?

p.58

계단의 시작과 끝을 다 보려고 하지 마라. 그냥 발을 내딛어라.

_마틴 루터 킹

p.68

그러고 보면 직장인들이 자신의 자유(시간)을 팔아 번 돈을 열심히 모으는 이유는 나중에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가 아닌가. 결국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은 다시 자유를 사는 데 쓰이게 될 테니 지금의 내 상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이런 걸 생각하면 인생은 커다란 모순처럼 느껴진다. 이걸 누구에게 따져야 할지 모르겠다.

p.95

그러니 인생은 오죽할까. 안전하다고 유혹하는 '남'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선택은 어쩌면 '고독한 실패자'의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을 가면 적어도 남들이 하라는 대로 사는 '남'의 인생을 살게 되진 않는다.

모두가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갈 때 용기 있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의 인생을 살게 된다. 실패해도 좋다. 실패했을 땐 후회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남의 말만 듣고 우르르 몰려갔던 사람들 대부분도 후회하긴 마찬가지다. 안 그런가?

실패를 두려워 말자.

고독한 실패가가 되자.

p.131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노동이 진짜 가치 있고 신성하다면 값을 잘 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소진될 때까지 일해서 우리가 받는 액수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것이 신성한 노동의 가치란 말인가. 더 환장할 노릇은 노동의 값어치를 매기는 사람, 우리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일하지 않는 자본가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노동을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뼈빠지게 일해서 받는 돈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현실이 이러니 노동이 신성하다, 가치 있다 찬양하는 건 노동자들을 더 값싸게 부려먹으려는 자본가계급의 세뇌 교육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아니면 노동자들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소리거나. 아차,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계급투쟁(?)이나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모독할 생각은 없다. 그냥 돈 버는 게 너무 힘들어서 소설 한 번 써봤다. 우리 사회는 평등사회고, 신분이나 계급 같은 건 없다는 거 다들 아시죠?

p.183

시도가 낳은 모든 것들은 당신을 시험한다.

당신이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지를.

거부를 당한다 해도 그 일을 할 것인가를.

_영화<삶의 가장자리> 중에서

남들과 꼭 속도를 맞춰 살아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이 살기 싫다고 말하면서도 왜 똑같이 맞추려고 애를 쓰고, 뒤처지면 불안해하는 걸까? 그리고 설령 뒤처지고, 느리다고 한들 그게 큰일일까? 사람은 각자의 속도가 있다. 자신의 속도를 잃어버리고 남들과 맞추려다 보면 괴로워진다. 남들과 다르게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남들과 전혀 다른 삶이 된다. 개성이다. 오우, 유니크!

p.223

기대에 못 미치는 지금의 내 모습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꿈을 이뤄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꿈을 이뤄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꿈이 뭐라고. 꿈을 이룬다면 정말 좋겠지만 이루지 못해도 그만이다. '에이, 아쉽다' 정도로 훌훌 털고 지금 주어진 삶에서 행복을 찾아 누리기에도 짧은 생이다. 꿈꾸던 대로 되지 못했다고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실패한 인생은 없다.

p.232

나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가 자존감이 가장 낮았고, 나 자신이 별거 아니라고 인정하고 나서야 자존감이 지금의 '보통' 수준으로 올라온 것이니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p.249

인간은 자신이 행복한 이유를 찾기보단 불행한 이유를 찾는 데 평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도 일종의 마조히즘(masochism)일까.

p.253

무언가를 얻었을 땐 얻은 것에 집중하느라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무언가를 잃었을 땐 잃은 것에 집중하느라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무언가를 얻었다고 느낄 땐 기쁨이 크니까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낄 때다. 상실의 슬픔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 슬픔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만약 상실로 괴로워할 때, 상실로 반드시 무언가를 얻게 된다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슬픔을 더 잘 이겨낼 수 있을까?

p.268

이제 열심히 사는 인생은 끝이다. 견디는 삶은 충분히 살았다. 지금부터의 삶은 결과를 위해 견디는 삶이어서는 안 된다.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다.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뿅 하고 건너뛰고 싶은 시간이 아닌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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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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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생명이든 그것을 담는 그릇이 반드시 있어. 제한된 공간 말이야. 그런데 생명은 모두 여기서 벗어나 자신을 확장하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발견하려고 하지. 한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체계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거든.

p.41

적들의 관점을 신속히 수용해서 가르침으로 삼는 거지. 적들이 훌륭한 스승인 경우가 많거든. 그들은 네 인생에 우연히 등장하는 게 아니야. 네 이마에 이렇게 흉터를 남긴 윌프리드조차 네가 그 일을 알릴 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이란 걸 알려 준 셈이잖아. 삶에 실패라는 건 없어. 성공 아니면 교훈이 있을 뿐이지. 내가 뒤집어쓴 페인트도 내게 필요한 교훈이었던 거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p.120

<네 무의식은 너한테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사람과 빼앗아 가는 사람을 단박에 알아본단다>

p.137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은 사람은 정작 하고 싶을 때는 할 수 없을 것이다>

p.226

-혹시 자각몽에 관심 있어요?

아니 없어요. 내가 삶의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자는 시간이에요. 내가 모든 걸 통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멈추기 때문에 그 시간이 좋아요. 꿈에서까지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리려고 잠을 자는 게 아니잖아요.

...

-앞으로 당신한테 벌어질 일을 다 알고 조언도 해줄 수 있는 미래의 당신과 꿈속에서 얘기를 나누게 된다면 뭘 물어보고 싶어요?

글쎄 뭘 물어보나... 없어요. 그래, 없어요.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예요. 그건 항상 내 대신 모든 걸 해주려는 아버지가 옆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나는 열여덟 살에 독립해서 군대에 들어가고, 세상을 돌아다니고, 내 힘으로 먹고살았어요. 아버지가 계속 옆에 있었다면 성숙해지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도 당신 아버지가 도와주겠다고 고집을 피우면요?

나 혼자 실수도 해가면서 마음대로 살겠다고 얘기해야죠. 옆에서 정답을 다 귀띔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시험 보는 재미가 있을까요? 실패할 위험이 없으면 성공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죽음의 공포가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p.3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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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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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쓴 책 <미스 함무라비>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고 유익하게 봤다. 글이 논리적이고 내용이 참신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게 해서 이 저자의 책은 다 읽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지?'라는 궁금증은 이 책으로 풀렸다. 역시나 오랜 독서광이셨다. 그것도 아주 똑똑한. 그의 유려한 글과 깊은 생각은 단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이 책은 어릴 적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부터 과정들을 정직하게 담아내었다. 판사라는 저자의 직업에서 진지함과 무게감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이 책은 그에 비하면 가뿐하게 느껴진다. 야한 소설을 위해 한국소설을 잔뜩 찾아 읽고 <슬램덩크> 만화부터 무협소설까지 섭렵하는 모습에서 친근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저자는 자신이 독서를 하게 된 계기가 불순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거기서 읽는 재미를 느끼고 생각이 꼬리를 물기도 하며 책에서 여러 경험과 글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 당시도 책을 읽는 분위기가 전반적이진 않았겠지만, 저자가 책이 많은 친구를 둬 그 집에서 읽고, 도서관을 찾아가고 관심분야를 좇아 다시 책을 찾게 되는 등 독서를 좋아하게 된 과정을 보면 참 이상적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책을 읽으면 권수를 의식하게 되고, 필독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며, 책에서는 반드시 어떤 깨달음을 끄집어내야 한다는 압박을 묘하게 받는다. 아이들에게는 어릴 적부터 책을 읽지 않으면 독해력이 딸리고, 공부에 지장이 있으며 수능의 지문을 빠르게 읽기 위해 독서습관을 갖추어야 한다고 밀어붙인다. 흥미와 생활의 활력이 되어야 할 책 읽기는 그렇게 자체가 목적이 아닌 학습을 위한 무언가 목표를 위한 도구가 되어간다. 책이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 책에 한 번이라도 다가가는 계기가 된다는데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독서교육을 강조하는 나라에서 정작 성인의 1년간 평균 독서량은 9.9권이라는 게 씁쓸하다. 많은 이들이 책에서 스스로 재미를 찾고, 궁금증을 유발하여 책에 가까워지는 자발적인 환경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독서 습관, 행동, 선호하는 저자 등 책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을 다루었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아 '그렇지!'를 연발했다. 특히 김영하 작가를 설명한 부분은 적절한 키워드로 작가의 글과 특성을 잘 표현해 애 내가 김영하 작가님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는지 저자의 글을 통해 깨달았다. 아주 명쾌했다.

독서에서 잘 다뤄지는 카프카의 책을 '도끼'로 표현하는 부분을 보고는 보통 '아! 그렇지! 책은 우리의 뇌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지!라고 공감하며 책에서 도끼처럼 머리를 친 순간을 겪지 못한 자신을 자책한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알았다 뜻이 저자는 가볍게 한마디 한다. 책은 땅콩이 될 수도 있고, 수면제가 될 수도 있다고.

 

이 책이 인간적이고 솔직한 이 책은 좋기도 했지만, 이 전에 본 책에서 받은 인상을 기대한 나로는 초반에 살짝 당황했다. 혹시 나와 같은 분이 계시다면 후반부 3장 '계속 읽어보겠습니다'까지 계속 읽어보길 바란다. 사회적인 문제(교화, 법조인의 책임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저자의 솔직하고 진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거의 마지막에 여행과 관련 인간의 가난, 고통과 행복을 다룬 부분은 우리의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위선적인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섣불리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우리의 표현이 조금은 신중하고 책임을 느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책 읽기가 취미로 습관으로 다져지고 있다는 데서 나는 내가 행복한 사람구나 싶었다. 이런 책 읽기의 행복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데서 그리고 그런 책을 읽어서 감사했다. 무언가를 가르치려 드는 책이 아니라 우리의 책 읽기를 격려하며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독자, 그와 우리의 모습에 그저 흐뭇함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제목 참 잘 지었다! 그래 그 제목과 같이 책 읽기는 유쾌하고 즐겁다.

 

 

 

.. 호르몬 과잉 사춘기 소년은 불순한 동기로 어른 책들을 마구잡이로 읽어댔지만,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체득하는 것들이 있더란 말이다. 우리의 비극적인 근현대사, 처절한 가난의 고통,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 작가마다 다른 문체의 매력, 이야기 흡인력, 글의 맛과 멋.

p.51

 

나는 왠지 김연수 하면 동시에 김영하가 같이 떠오른다. 아까 '고양잇과의 글'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김연수가 수줍고 순둥순둥한 고양이 느낌이 강하다면 김영하는 성격 나쁘고 까칠한 고양이 같아서 매력 있다. 김영하의 글은 감성 광이라고는 '1도 없는' 쌀쌀맞음과 감탄스러울 정도의 이지적인 매력이 특징이다. 특히 뭔가의 핵심을 논리적이고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대치동에서 학원 강사를 했으면 일타 강사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알쓸신잡>을 봐도 내로라는 말발의 선수들 사이에서 가장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유려하게 이야기하는 건 김영하더라.

p.56

 

..독서도 이런 독서도 있고, 저런 독서도 있는 거다. 카프카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쳐서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책을 읽는 거냐며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된다고 일갈했지만, 수사법은 수사법일 뿐, 책은 도끼일 수도 있고 심심풀이 땅콩일 수도 있고 잠을 재워주는 수면제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책마다 사람마다 다양한 용법이기 마련이다.

p.84

 

...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특별한 존재이길 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무수히 자신이 얼마나 별 볼 일 없고 뻔한 존재인지 자각하게 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시험에 붙고 떨어지고 하는 문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속물, 근성, 이기심, 뻔뻔함, 냉정함, 남들 안 보는 데서 저지르는 실수들 ...... 자기혐오에 빠지게 만드는 자신의 민낯은 언제나 내 뒤를 쫓아온다. 외면해도 소용없다.

p.113

 

유시민 작가가 자신을 '지식 소매상'이라고 규정하는데, 좋은 표현인 것 같다. 왜 소비자들이 직접 도매상, 심지어 공장까지 가서 자기한테 맞지도 않는 물건을 떼와야 하나? 내 아이 밥상에 맛있는 고기 한 점을 올리기 위해 직접 도축장에서 고기를 해체해야 되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원전 목록이 아니라 그중 필요한 것들을 알기 쉽게, 하지만 왜곡하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설명해주는 지식 소매상들의 목록이다. 소매상일수록 사기꾼도 많기 때문에 잘 골라야 하고, 시장의 자정 능력도 필요하긴 하다. 그렇다고 소매상은 미덥지 않으니 소비자들이 직접 원산지를 찾아가야 한다는 건 무리한 이야기다.

p.169

 

..책은 수용하는 속도를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자극받는다. 내 경우, 좋은 책을 읽을 때면 머릿속에서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읽다 멈추기를 반복하게 된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발견하면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귀퉁이를 접기도 한다. 지나고 보면 바로 이 멈추었던 순간들이 독서 경험의 핵심이다. 수동적으로 내 감각 속으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고 마는 것들은 흔적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은 내 것이 된다.

p.174-175

 

"수많은 죄수들이 결국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 될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죄수가 여러분 옆에 살길 원하십니까?(...) 여러분에겐 그들이 좋은 혹은 나쁜 이웃이 되도록 도와줄 힘이 있습니다. 교육만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과학입니다." <래리 뉴턴 에세이 中>

그렇다. 죄수들 중 대부분은 결국 사회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그들을 모두 사형시키거나 무기 복역시키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이 점을 쉽게 잊곤 한다. 그래서 범죄자들에게 어떤 고통을 가해야 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고, 이들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일 때가 많다. 범죄자들은 선천적으로 위험한 괴물이고,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모든 범죄자가 구제불능의 괴물일까.

p.20-202

 

... '미래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하지?'라는 질문만 하지 말고 '그런데 우리는 꼭 일을 해야 되나? 그런데 일이라는 게 뭐지?'라는 질문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기계에게 일을 빼앗기는 상상만 할 뿐 기계에게 일을 시키고 우리는 노는 상상은 하지 못할까.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시대에 우리가 '일'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이 과거 시대 사람들 눈에는 그냥 쓸데없는 놀이나 미친 짓일뿐일 거다. 혀와 배꼽에 피어싱해주는 직업, 프로 스케이트 보더, 먹방 찍어 돈 버는 유투버들, 주기적으로 돌고 도는 유행의 패션 산업 ...... 인간이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유희의 축적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내곤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여전히 동굴 생활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쾌락은 우리를 단조로운 동굴에서 끌어내어 새로운 모험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쾌락의 카탈로그를 늘리고 늘리며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상상력도 재미도 없는 성공충들의 권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에 즐기는 자들이 이길 것이다.

p.228

 

... 가난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힘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구조적인 가난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답이 없는 질문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책은 구조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개별적인 삶의 행복과 불행은 책이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 책도 무력한 순간이 있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책보다 크다. 나는 버려진 시신이 타고 있는 바라나시의 강변에 앉아 내 법정에서 만난 이들을 생각했고, 언젠가 호주에서 만났던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에서 온 가족의 불행을 생각했다. 여행지에서 또 다른 여행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세상은 원리적으로 불공평하지만, 고통만큼은 냉정할 만큼 평등하게 개개인의 삶을 찾아온다. 그걸 감히 위안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건 단지 아무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동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일뿐이다.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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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
이영미 지음 / 남해의봄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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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도 곧 40이 온다. 몸 여기저기에는 탄력 대신 군살이 늘었다. 얼굴에는 자글자글 하루가 멀다고 주름이 늘어간다. 거기에 체력은 더 꽝이다.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몇 가지 집안일을 하고 나면 닮처럼 졸곤 한다. 어디 외출이라도 다녀와서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곤 한다.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고 두 아이를 출산했다. 그 후 2년이 지나고 내과 검진에서 당뇨전 수치인 100을 찍었다.(100-120사이가 당뇨 전 수치 단계란다) 임당인 사람이 당뇨인이 된다는 건 얼핏 들었지만, 나름 건강하게 살아왔다는 내게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당뇨로 진입을 막기 위해 허벅지 근육을 키우라는 선생님의 조언 그리고 내 인생 열차에 40이란 정거장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운동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와 길잡이가 간절했다.

 

저자는 에디터로 오랫동안 앉아서 일해왔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젊은 나이에 고혈압이 발견되었다. 아이의 학교 운동회 때 넘어지는 망신을 당한 남편이 시작한 달리기에 그녀도 한 발을 담가봤다. 그렇게 운동 인생이 시작됐다.

원래 저자는 운동을 좋아하고 그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크루즈 여행을 꿈꾸고 철학 책을 읽으며, 재즈와 와인을 즐기는 깨끗한 환경을 선호하는 더없는 도시녀였다는데... 그녀의 야성적(?)이고 자연친화적이며, 에너지 넘치는 현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정말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절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여기서는 적용이 안 되나 보다. 운동의 묘미를 알고 그 안에서 얻은 에너지로 새롭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했으니 그녀 입장에선 진리를 찾은 듯 운동 전도사로 이 책을 쓰게 된 게 이해된다.

 

저자는 이 책에 수영, 달리기, 자전거를 거쳐 철인 3종 경기에 참석하기까지 실패와 성공의 과정을 세세하고도 재미나게 담았다. 물속에서 드러나는 두려움에서부터 자전거 트라우마 극복기는 운동을 담쌓는 누구에게나 희망이 될만한 이야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달리기로 시작한 이야기를 하루키 이야기, 달리기의 유익한 점, 마라톤의 경험 등 다채롭게 풀어냈다. 그러면서도 문장은 어찌나 맛깔나고 술술 읽히는지 책에서 여러 가지 매력을 느낀다.

직업이 에디터이셨던지라 다양한 책을 거론하는 것이 좋았다. 인생 선배 언니가 자신의 삶으로 조언하듯 결혼, 직장, 태도를 다룬 이야기도 좋았고 말이다. 챕터 제목도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문장도 짧고 생동감 있게 느껴져 좋다. 무엇보다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강한 동기부여를 주어 좋았다.

 

운동을 통해 인생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리허설하라는 조언은 어린 친구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젊을 때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두 팔 걷고 운동부터 했을 텐데 아쉽다. 운동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되고, 피로에 절어있는 뇌에 육체활동을 가미함으로 오히려 탁월한 성공을 이룬다는 말은 운동의 필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부록처럼 운동 Tip과 Q&A로 운동 관련 궁금증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나도 이번 달 3월부터는 달리는 걸로 시작해야겠다.

활력에 찬 40이 기대된다.

 

 

달리기는 운동복과 운동화만 착용하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비만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이며 내장 기관이 튼튼해지고 이런저런 잔병 치료에 좋다. 관절에 안 좋을 거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오히려 달리기를 하면 허리와 발목 무릎 근육이 강해진다고 한다. 뼈에 가하는 지속적인 자극은 여성에게 치명적인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p.50

 

"로저 배니스터는 4분 안에 주파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처음으로 간 사람이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도달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 위업들이 이루어지기 전에, 수많은 사람이 그것을 시도했지만 그 사람들은 다 실패했다. 그런데 한 번 성공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이 그것을 똑같이 해냈다. 왜일까? 뇌는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그곳으로 가는 대략의 지도를 그린다. 배니스터, 암스트롱, 힐러리는 상식을 거슬러 희망을 품어야 했다. 그들의 뇌에, 목표에 이르는 지도를 그리라고 요구해야 했다. 그들의 뒤를 따른 사람들은 앞서 달성된 위업을 지도로 이용했다."로저 배니스터는 4분 안에 주파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처음으로 간 사람이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도달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 위업들이 이루어지기 전에, 수많은 사람이 그것을 시도했지만 그 사람들은 다 실패했다. 그런데 한 번 성공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이 그것을 똑같이 해냈다. 왜일가? 뇌는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그곳으로 가는 대략의 지도를 그린다. 배니스터, 암스트롱, 힐러리는 상식을 거슬러 희망을 품어야 했다. 그들의 뇌에, 목표에 이르는 지도를 그리라고 요구해야 했다. 그들의 뒤를 따른 사람들은 앞서 달성된 위업을 지도로 이용했다."

<두려움, 행복을 방해하는 뇌의 나쁜 습관> 中

p.77

 

'용기'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가 생기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p.95

 

"연습은 어제보다 잘하려고 매일 단련하는 종류의 끈기를 말한다. 그러니까 특정 영역에 관심을 느끼고 발전시킨 다음에는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난관을 극복하며 기술을 연습하고 숙달시켜야 한다. 하루에 몇 시간씩, 몇 주, 몇 개월, 몇 년 동안 자신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반복 연습해야 한다. 그릿은 현재에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관심이 무엇이든, 이미 얼마나 탁월한 수준에 이르렀든 상관없이 그릿의 전형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보다 나아질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릿> 中

p.100

 

.. 다윗 왕이 세공사에게 명령한다. "전쟁에 이겨 교만할 때는 지혜가 되고, 패배하여 절망할 때는 힘이 되는 말을 찾아 반지에 새겨 오라"라고. 도무지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세공사는 현명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p.114

 

힘들어서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사표를 던지는 것은 언제든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이 아닌가. 내던지기는 쉬워도, 다시 일을 시작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니 정말 멈춰 서는 것 외에 방법이 없을 때까지는 참고 올라가는 것이 낫다. 최대한 안장에서 내려오지 말고, 해볼 수 있을 만큼 페달을 돌리다 보면 의외로 평지 구간이 나오기도 한다. 마지막 히든카드는 정말 마지막에나 써야 한다.

p.116-117

 

그래서 평탄하고 무난한 삶을 살아온 사람일수록 다양한 운동을 통해 좌절과 실패를 연습해 보길 권한다. 혹여 진자 인생길에서 자빠지는 일을 당했을 때, 그렇게 실패를 극복해 본 경험과 요령은 심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p.125

 

그러고 보니 우리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노력과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둘째,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셋째, 꾸준히, 오랫동안 해야만 효과가 나타난다. 넷째, 좋은 건 누구나 알지만 시급하지 않아서, 당장 실천하기 어렵다.

p.141

 

사실 '먼 북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내 마음, 내 심장 속에서 간절히 울리는 소리다. 처음엔 희미하지만, 점점 커져서 도저히 모른 척하거나 거부할 수가 없다. 언젠가 시간과 형편이 될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남이 보기엔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한텐 꼭 달성해야만 하는 간절한 뭔가를.

p.167

 

책으로 남의 생을 주르륵 읽어 내는 것은 쉽다. 하지만 모험을 결심하고 반전을 이뤄 내는 데 들어간 당사자의 시간이나 고통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럼에도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느낌,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할 어떤 것을 하고 있을 때 느끼는 희열"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간다. 조지프 캠벨은 그것을 가리켜서 '블리스'라고 불렀다.

내 인생에 반전이 될지도 모를 블리스를 따라가지 않고 주저앉으면, 어떠한 영웅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닥쳐온 모험을 외면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가장 민감한 내 아킬레스건을 극복해서 반전을 일으켜 보자. <인간의 품격>을 쓴 데이비드 브룩스는 영웅은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에서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데모스테네스는 말을 더듬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위대한 웅변가가 되었다고들 한다. 결함이 오히려 그와 관련된 기술을 완벽하게 연마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p.184

 

소설가이자 마라토너인 하루키도 <먼 북소리>를 쓸 때부터 어느 나라에 가든지 꼭 달리기를 한다.

"여행지에서 그 동네의 길을 달리는 일은 즐겁다. 주변 풍경을 보며 달리기에는 시속 10킬로미터 전후가 이상적인 속도이다. 자동차는 너무 빨라서 작은 것을 놓치기 쉽고, 걷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동네마다 각기 다른 공기가 있고 달릴 때의 기분도 각각 다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길모퉁이의 모습, 발자국 소리, 보도의 폭, 쓰레기 버리는 습관 등도 모두 다르다. 정말 재미있을 정도로 다르다."

p.189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서,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야." <미생> 中

p.222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中

p.24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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