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벚꽃 에디션)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 이런 에세이가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위로하는 책, 나를 찾는 책, 자존감을 북돋워주는 책....

힘들지 않았고 그럭저럭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라 나라면 선택하지 않을 책이었다. 독서토론 모임에서 선정된 책이어서 이번 기회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 보고 언뜻 '이 분 어쩌려고 이러시나?'라는 생각을 했다. 읽어보니 더 가관이었다. 인생의 필수 체크 코스 직장, 결혼, 자녀, 소유 주택 여부 기준에 한 개도 부합하지 않았다. '우와! 주변에서 잔소리 한 바가지 어찌 감당하려고?' 그리고 그가 말하는 건 '이제 열심히 살아야겠다'가 아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다. 이제 열심히 안 산다고 세상에 선전포고한 것 같다.

이 책은 프롤로그부터 웃겼다. 누구나 부담을 갖는 단어 '불혹'에 과감히 쓴소리로 쏘아붙인다.

웬만한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누가 그딴 소릴! 나 엄청 흔들리고 있다고!

불혹에게 감히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민망하면서도 속이 시원해지는 소리다. 40은 안 됐지만, 냉정히 말하면 나도 저 소리까지는 못해도 저기에 숟가락 하나 얹으리라..

무한도전! 저자는 대한민국의 한 남자로 무모한 실험, 도전을 하는 듯하다. 자신의 인생을 건 실험을 한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우면서도 그런 실험이 짠해지고 안쓰러운 것은 그가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겪은 환경과 시대가 내가 살던 것과 같기 때문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2002년 월드컵의 붉은 악마 슬로건처럼 우린 '꿈'이라는 무언가를 향해 10대와 20대를 치열히 살았다. 공부가 전부인 줄 알았고, 취업이 전부인 줄 알았다. 결혼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일, 결혼, 자녀, 집 등 이 미션에 대한 잔소리도 싫고 손가락질도 싫어 하나하나 클리어했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위 미션을 클리어 한 많은 이들이 꼭 행복에도 클리어 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자의 현재의 삶이 우리에게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불안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거기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차곡차곡 밟았던 그 길을 돌아보는 것이다.

노력은 정말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나?

열정은 과연 제때 제대로 쓰였나?

내 가치와 방향을 따라 살고 있나?

남들의 속도에 왜 조바심 부리나?

꿈은 행복을 가져다 주나?

마조히즘을 즐기나?

'뭐야 열심히 살 뻔했다고?' 제목만 보고 이 책이 당신이 사는 삶을 무력하게 만들까 봐 겁나는가?

그렇다면 그런 걱정은 넣어둬 넣어둬!!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그리고 당신!

행복을 위해 살고 있다고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나는 이 책을 권한다.

ps: 가볍게 툭 뱉어내고, 삶에 있어 진지하지 않게 여기는 듯해도, 인생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저자가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라 열심히 노력하는데 고작 이 정도고, 누구는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도 많은 걸 가져가서다. 분명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배웠는데, 또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고 배웠는데 이상하다. 뭔가 속은 것 같다. 잘못 살아온 것만 같다. 그렇다고 노력을 멈출 수도 없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지금 정도도 유지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어서 괴롭다.

p.21

"제 일에 열정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고민인데, 나는 이런 고민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뭐랄까, 눈앞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앉혀놓고 "저는 왜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거죠?"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무리 애를 써도 어떤 일에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 거다. 열정은 애정을 기반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니 당연히 열정도 없다. 열정 콘텐츠로 반짝 의욕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강요로 만들어진 열정은 대개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경우가 많다.

p.31

열정도 닳는다.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

p.34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내가 욕망하여 좇은 것들은 모두 남들이 가리켰던 것이다.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게 부끄럽다.

p.39

노력은 고마운 것이었고 확실히 효과도 있었다. 노력으로 자신의 타고난 환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신화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그래, 내 환경이 아니라 내 노력이 부족했던 거야.'라면 모든 부족함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착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흙수저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자신을 탓하는 것도 지쳤다. 화가 난다. 더 노오력하라고? 내가 이 모양인 건 노력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이건 모욕이다. 금수저는 노력해서 금수저가 됐더냐?

p.58

계단의 시작과 끝을 다 보려고 하지 마라. 그냥 발을 내딛어라.

_마틴 루터 킹

p.68

그러고 보면 직장인들이 자신의 자유(시간)을 팔아 번 돈을 열심히 모으는 이유는 나중에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가 아닌가. 결국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은 다시 자유를 사는 데 쓰이게 될 테니 지금의 내 상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이런 걸 생각하면 인생은 커다란 모순처럼 느껴진다. 이걸 누구에게 따져야 할지 모르겠다.

p.95

그러니 인생은 오죽할까. 안전하다고 유혹하는 '남'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선택은 어쩌면 '고독한 실패자'의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을 가면 적어도 남들이 하라는 대로 사는 '남'의 인생을 살게 되진 않는다.

모두가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갈 때 용기 있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의 인생을 살게 된다. 실패해도 좋다. 실패했을 땐 후회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남의 말만 듣고 우르르 몰려갔던 사람들 대부분도 후회하긴 마찬가지다. 안 그런가?

실패를 두려워 말자.

고독한 실패가가 되자.

p.131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노동이 진짜 가치 있고 신성하다면 값을 잘 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소진될 때까지 일해서 우리가 받는 액수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것이 신성한 노동의 가치란 말인가. 더 환장할 노릇은 노동의 값어치를 매기는 사람, 우리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일하지 않는 자본가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노동을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뼈빠지게 일해서 받는 돈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현실이 이러니 노동이 신성하다, 가치 있다 찬양하는 건 노동자들을 더 값싸게 부려먹으려는 자본가계급의 세뇌 교육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아니면 노동자들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소리거나. 아차,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계급투쟁(?)이나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모독할 생각은 없다. 그냥 돈 버는 게 너무 힘들어서 소설 한 번 써봤다. 우리 사회는 평등사회고, 신분이나 계급 같은 건 없다는 거 다들 아시죠?

p.183

시도가 낳은 모든 것들은 당신을 시험한다.

당신이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지를.

거부를 당한다 해도 그 일을 할 것인가를.

_영화<삶의 가장자리> 중에서

남들과 꼭 속도를 맞춰 살아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이 살기 싫다고 말하면서도 왜 똑같이 맞추려고 애를 쓰고, 뒤처지면 불안해하는 걸까? 그리고 설령 뒤처지고, 느리다고 한들 그게 큰일일까? 사람은 각자의 속도가 있다. 자신의 속도를 잃어버리고 남들과 맞추려다 보면 괴로워진다. 남들과 다르게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남들과 전혀 다른 삶이 된다. 개성이다. 오우, 유니크!

p.223

기대에 못 미치는 지금의 내 모습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꿈을 이뤄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꿈을 이뤄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꿈이 뭐라고. 꿈을 이룬다면 정말 좋겠지만 이루지 못해도 그만이다. '에이, 아쉽다' 정도로 훌훌 털고 지금 주어진 삶에서 행복을 찾아 누리기에도 짧은 생이다. 꿈꾸던 대로 되지 못했다고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실패한 인생은 없다.

p.232

나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가 자존감이 가장 낮았고, 나 자신이 별거 아니라고 인정하고 나서야 자존감이 지금의 '보통' 수준으로 올라온 것이니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p.249

인간은 자신이 행복한 이유를 찾기보단 불행한 이유를 찾는 데 평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도 일종의 마조히즘(masochism)일까.

p.253

무언가를 얻었을 땐 얻은 것에 집중하느라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무언가를 잃었을 땐 잃은 것에 집중하느라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무언가를 얻었다고 느낄 땐 기쁨이 크니까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낄 때다. 상실의 슬픔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 슬픔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만약 상실로 괴로워할 때, 상실로 반드시 무언가를 얻게 된다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슬픔을 더 잘 이겨낼 수 있을까?

p.268

이제 열심히 사는 인생은 끝이다. 견디는 삶은 충분히 살았다. 지금부터의 삶은 결과를 위해 견디는 삶이어서는 안 된다.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다.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뿅 하고 건너뛰고 싶은 시간이 아닌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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