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뜨개 작가이자 뜨개 커뮤니티의 운영자인 스테파니 펄 맥피는 뜨개가 중독의 대상인지 아닌지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뜨개인마다 체질과 능력과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떤 사람이 뜨개 중독인지를 보려면 그에게서 실을 빼앗았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봐야 하는데, 그건 뜨개인으로서 차마 못 할 짓이라고(그는 진정한 뜨개인이다). 대신 뜨개에 ‘관여’된 정도를 네 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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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고 덜컥 수세미부터 시작할 게 아니었다. 코바늘 기초부터 알아야 했다. 코바늘 기초를 검색하니 목록 맨 위에 김라희가 있었다. 자네 코바늘 한번 모질게 배워보지 않겠냐는 유튜버 김라희의 권유로 사슬뜨기부터 시작했다. 자기 키만큼 사슬뜨기를 하고, 다시 자기 키만큼 짧은뜨기를 하고 다시 자기 키만큼 한길긴뜨기를 하라는 김라희의 자코빡(‘자네 코바늘 한번 빡세게 배워보겠는가’) 영상은 다시 봐도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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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편한 사람이 되는 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서점가에 심리 치유 에세이가 쏟아지고 그 많은 사람이 심리상담사를 찾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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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가 있는 것 같다.

˝I Knit So I Don’t Choke People.˝
오해일 수도 있는데 ㅋㅋ 이 부분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내가 뜨개를 하지 니(남의) 목을 조를 순 없잖아?

실을 쥐거나 뜨개를 하면서 실을 늘어뜨리고 있는데 choke를 쓰니깐 그 그림이 좀 웃기다.

얀볼을 왜 사? 그 돈으로 실을 더 사지. 송곳으로 구멍만 뚫으면 빈 고추장 통도 얀볼이 되는걸. 그랬던 내가 만 원에 가까운 해외 배송료를 감수하고 얀볼이라는 물건을, 심지어 세라믹으로 된 무거운 얀볼을 구매한 이유는 순전히 거기에 적힌 문장 때문이었다. 나는 감히 이 문장이 뜨개의 정수라고 믿는다.

"I Knit So I Don’t Choke People."

나는 뜨개 덕분에 다른 사람을 숨 막히게 하지 않는다. 오랜 취미 방랑에 종지부를 찍고 뜨개에 정착한 비결이 바로 이 문장 안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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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린이랑 섭섭했던 감정들이 많았구나. 그래도 제이미 린처럼 대놓고 비난은 안 했네.


이 전부분에도 제이미린에 대해 나오지만 같이 있을 시간도 많지 않고 나이 차이도 많지 않아서 싸우고 학대할 시간도 없었다는 점. 제이미 린은 언니가 피성년후견인에서 벗어나는데 언니한테 도움을 주었다고 하지만 제이미린도 열일곱 어린나이에 부모님께 어떤 영향을 미쳤겠으며 임신을 해서 자기 살기 바빴다는 점. 그래서 도움 준 적이 없다는 점.
오히려 열일곱에 임신해서 브리트니가 많이 속상했단 부분이 나온다.

지금 이것도 제이미 린에게 속상한 게 아니라, 자기가 쓰고 만든 곡을 다시 리메이크하고 다시 무대 꾸며서 콘서트 하고 싶었는데 아빠가 신곡 알리는 콘서트 돌리기에만 급급해서 열받았던 거. 피한정 혹은 피성년후견인인 상태에서 자기가 하고 싶었던 무대를 그것도 자기 여동생이 해서 열받고 속상했던 거. ㅠㅠ
책의 대부분을 내가 (옛날말로) ‘금치산자’가 아니었음을 입증하는데 쓰고 있다. 마약도 안했는데 친구랑 술 마셨다고 재활센터에 들어간다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여러개의 앨범을 내고 살인적인 콘서트 스케쥴을 소화했다거나. 이런 책을 쓴다는 거 자체가 브리트니를 금치산자로 보긴 힘든 거 같고 가족들이 과도하게 관리하려 들고 실연이나 이혼같은 심리적인 충격에 위로는 못 해줄지언정 강제로 스케쥴 집어넣고 읽는 내내 힘들어서 어느순간 한문단 읽기도 힘들다.

어서 conservatorship 끝났음 좋겠고 두통도 끝나면 좋겠다.

And sitting there to receive the Icon Award at the Radio Disney Music Awards, even while I was honored by the performances,I was furious. Here were three singers and my sister doing new arrangements—something I had begged for, for thirteen years—having fun with my songs in a way I hadn’t in hundreds of performances, and I was sitting there having to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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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ed to remix my songs for my fans and give them something new and exciting. When I wanted to perform my favorite songs, like "Change Your Mind" or "Get Naked," they wouldn’t let me.

It was so lazy it was actually odd. I worried about what my fans would think of me. I wished I could communicate that I wanted to give them so much more. I loved to go to studios for hours at a time and do my own remixes with an engineer. But they said, "We can’t put remixes in because of the time code of the show. We would have to redo the whole thing." I said, "Redo it!" I’m known for bringing new things to the table, but they always said no.

I feel now that itmight have scared them for me to actually be the star. Instead, my dad was in charge of the sta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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