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학력가지고 너무 무시하는 거 보면 좀 웃기다.
우리 업계도 좀 그런 게 있는데, 특히 나같은 사람 보면, 고졸+사연많은 경단녀+초짜로 본다. 너보다 경력이 오래 됐다고 말해주고 싶다.
늘 엄마아빠가 비싼 거 사주려고 하면 됐어, 저런거 들고다녀봤자 짝퉁인 줄 알아. 한다. ㅋㅋㅋ

아빠 엄마는 평생 이렇게 무시당하며 살아오시고 남들은 똑똑할 거라 착각하시는데, 본인들 생각만큼 상대가 똑똑하지 않으면 충격을 받고 이해를 못하신다. 근데 그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래. 그게 엄마 아빠 기준이 높은 거라니깐? 똑똑한데 학벌 없으면 얼마나 세상살기 힘든지 늘 간접체험한다.

나는 눈물을 그친 엄마의 팔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엄마, 저 스님이 알아챘나보다.
뭘?
엄마가 여기 빌붙어 살려는 걸.
엄마는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며 말했다.
눈치도 빠르네……. 가자.
엄마를 따라 일어서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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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쓴다는 걸 알았고, 자신의 첫사랑을 넌지시 말해주기도 했다. 도움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엄마는 짝사랑하는 남학생에게 고백 한번 해보지 못하고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엔 입학하지 못했다. 곧바로 타지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첫사랑은 로맨스 판타지라는 장르에 전혀 걸맞지 않았다. 듣다보면 딸을 차별한 할아버지에게 화가 나고, 검정고시를 보거나 방통대에 가지 않은 엄마가 답답하고,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되는 종류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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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중졸인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훨씬 똑똑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에게 그렇지 않다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상한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나는데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엄마는 똑똑한 편이라고 말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법정 스님의 수필을 필사하는 걸 알고, 『좋은생각』을 읽다가 좋은 구절에 밑줄을 긋는 것도 알고, 수필에 가까운 일기를 쓴다는 것도 알지만, 이건 나만 아는 사실이다. 엄마는 늘 사람들에게 자기는 가방끈이 짧아서 무식하다고 말했다. 남편이 결혼하자마자 도망갔고 혼자 딸을 키웠다고 말했다.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평생 몸 쓰는 일을 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처음엔 엄마를 동정했지만 다툼이 일어나면 엄마를 깔보았다. 그런 일들이 엄마에겐 모두 상처가 되었다.
엄마는 간병인으로 일하다가 기저귀 도둑으로 몰린 뒤 화병이 났고, 결국 집에 틀어박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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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선의 글을 읽고 웃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와이셔츠로 변하다니. 현실성이 없었다. 내가 말하는 현실성이란 사람이 셔츠로 변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버지와 와이셔츠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이선은 나의 아버지가 공장에 다녔으며 평생 와이셔츠를 입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상상을 한 거겠지. 나는 이선에게 재밌네, 라고 톡을 보냈다. 이선은 틈을 두었다가 답했다.
 
— 나 이제 이런 글 안 쓰려고.
— 그럼 무슨 글 쓰려고?
— 현실적인 글.
— 그런 글은 피곤해. 그냥 와이셔츠로 변하는 글이나 계속 써. 나쁘지 않으니까.
— 좋은 게 아니라 나쁘지 않은 거잖아. 난 좋은 걸 쓰고 싶어.
— 이선, 좋기만 한 건 없어. 그러니까 나쁘지 않은 걸 선택하고 살아. 살아보니까 그게 정답이야. 나쁘지 않은 게 선택지에 있다는 걸 고마워하며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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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해봐. 그러면 간병 생활 다시 시작이야. 그 지옥 같은 일을 또 반복해야 돼.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연을 끊는 게 나아. 차라리 그게 더 나아.
엄마의 말에 이모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얘,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사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이 아니야.
이모들은 어떻게든 엄마를 위로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엄마의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알았어, 엄마. 출가해. 우리 이제 자유롭게 살자.
엄마는 소주잔을 들어 올리더니 건배 없이 원샷했다. 그러곤 설탕을 한 숟갈 삼킨 사람처럼 인상을 찡그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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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곁에 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엄마. 그런 엄마와 아버지를 부양하기 위해 쉼 없이 일해야 하는 나. 우리는 서로의 사정을 모른 척하고 싶어서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마다 아버지가 집에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버지 방에 있어? 내가 물으면, 어디로 갔어, 엄마가 답하는 식으로. 그러나 나는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았고, 엄마도 아버지가 어딘가로 가버리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걸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옥수수를 삶다가 내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을 때, 나는 딱딱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이제 와서 엄마 혼자 죽으면 내가 돈도 벌면서 아버지 간호도 해야 하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고. 이 집에선 누구도 도망쳐선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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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버지가 모기로 태어날 게 틀림없다고 며칠 내내 중얼거리더니 잡화점에서 전기 모기채를 사왔다. 그리고 밤마다 그걸 들고 집 안을 서성였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팔을 늘어뜨린 채로, 악귀를 떨치려는 퇴마사처럼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모기가 감전사로 죽는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를 두 번 죽이려는 엄마가 무섭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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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페이지마다 기만자… 라고 말하면서 읽는다. 너무 잘 그리신다. 그거 구경만으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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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다. 그걸로 충분하다. ㅋㅋㅋㅋㅋㅋ
gigi님은 민희진 님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위버스 플레이어 대신 스트리밍으로 기존에 듣던대로 들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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