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선의 글을 읽고 웃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와이셔츠로 변하다니. 현실성이 없었다. 내가 말하는 현실성이란 사람이 셔츠로 변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버지와 와이셔츠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이선은 나의 아버지가 공장에 다녔으며 평생 와이셔츠를 입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상상을 한 거겠지. 나는 이선에게 재밌네, 라고 톡을 보냈다. 이선은 틈을 두었다가 답했다.
 
— 나 이제 이런 글 안 쓰려고.
— 그럼 무슨 글 쓰려고?
— 현실적인 글.
— 그런 글은 피곤해. 그냥 와이셔츠로 변하는 글이나 계속 써. 나쁘지 않으니까.
— 좋은 게 아니라 나쁘지 않은 거잖아. 난 좋은 걸 쓰고 싶어.
— 이선, 좋기만 한 건 없어. 그러니까 나쁘지 않은 걸 선택하고 살아. 살아보니까 그게 정답이야. 나쁘지 않은 게 선택지에 있다는 걸 고마워하며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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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해봐. 그러면 간병 생활 다시 시작이야. 그 지옥 같은 일을 또 반복해야 돼.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연을 끊는 게 나아. 차라리 그게 더 나아.
엄마의 말에 이모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얘,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사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이 아니야.
이모들은 어떻게든 엄마를 위로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엄마의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알았어, 엄마. 출가해. 우리 이제 자유롭게 살자.
엄마는 소주잔을 들어 올리더니 건배 없이 원샷했다. 그러곤 설탕을 한 숟갈 삼킨 사람처럼 인상을 찡그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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