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리카에게는 온 도시에 깔린 그 그늘 속에서 관광객도, 지역 주민도 아닌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멍하니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오래 여행을 해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 싸구려 마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 돌아갈 곳을 잃은 사람들. 사정이 있어서 도망쳐온 사람들. 이 도시의 혼잡과 그늘은 그들이 그곳에 계속 멍하니 서 있는 것을 허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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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시뮬라크르 언급을 보다니.


그런데 내내 불편한 지점들이있다. 쓰레기들이 만든 작품을 불태워버리는 것에 옛날엔 동의했지만 그렇게도 내 취향에 맞는 예술 작품이라면, 본인들이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작품을 좋아하는데 실망스럽지만 그 작품을 만든 인간이 완벽하진 않았고, 그뿐 아니라 범죄자라고.
왜 개새끼들의 작품을 소비하는데 부정한 방법으로 소비하는 걸 합리화하지?
예를 들어 포르노라면 공짜로 보는 것이 맞나. 아예 소비하지 않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불법적인 건 불법적으로 소비한다? 도덕적으로 켕기는 건 도덕적으오 켕기는 방법으로 소비한다? 이게 뭔 소리야. 인문학자라면서 말들이 왜 다 감정적이야. 왜 선비질하면서 본인들 방법의 문제는 고민하지 않는거야. 결국 피씨는 진정으로 피씨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잡도리 하고 줘패고 싶은 폭력성을 표출하는 언피씨한 사람들의 놀이라는 생각밖엔 안들고 나는 이 지점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함. 존나 absurd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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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후지시로가 등 뒤로 다가가며 하루에게 말했다. 봄 잔디 같은 냄새가 났다. 머리칼 냄새일까 목덜미 향기일까.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열기가 가셨다. 현상액 속의 붉은 소나기구름에 음영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후지시로가 되풀이했다. 그런데 하루가 갑자기 집게로 인화지를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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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잔디 같은 냄새까진 괜찮은데 그 다음은 좀…ㅋㅋㅋ


"조금만 더." 후지시로가 등 뒤로 다가가며 하루에게 말했다. 봄 잔디 같은 냄새가 났다. 머리칼 냄새일까 목덜미 향기일까.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열기가 가셨다. 현상액 속의 붉은 소나기구름에 음영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후지시로가 되풀이했다. 그런데 하루가 갑자기 집게로 인화지를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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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시로는 여전히 아세트산 냄새가 남아 있는 하루의 사진들을 들척였다. 사각형 빌딩에 잘려나간 하늘 사진이 이어지다가 뜬금없이 남자 얼굴이 나타났다.
포커스가 안 맞는 옆얼굴. 은색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전철 안에서 문 옆에 선 채 온 얼굴을 구기며 웃고 있었다. 아이가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틈에 찍혔을까. 마음이 술렁이고, 심장 고동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그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신의 웃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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