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단처럼 검은 머리카락은 물결치는 가리비 모양으로 이마에 붙이고 목 뒤로 감아올려 서양식으로 꾸민 모습이었다. 꽃 자수를 놓은 비단 가죽신 대신 백인 여자들만 착용하는 앙증맞은 명주 스타킹 위로 발등 끈을 조이는 구두를 신은 그는 은실의 사촌인 예단이었다. 가까운 친구들과 구애자들 사이에서는 ‘단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가 이곳에 온 건 월향을 경성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지난 일은 모두 잊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으리라는 명목이었지만, 은실이 그처럼 월향을 멀리 떠나보내는 진짜 이유는 하야시가 월향의 임신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걸 모두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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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는 은화 두 닢을 발견하고는 즉시 제 주머니에 넣었지만, 은가락지와 담뱃갑은 양손에 하나씩 들어 보였다.

"돈은 마음대로 가져. 하지만 그 물건 두 개는 안 돼." 정호가 말했다. 그의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그건 돌려줘."

"내가 미쳤냐? 이걸 돌려주게?" 영구가 코웃음을 쳤다. "부자들이나 갖는 물건이잖아. 너 이거 훔쳤냐? 훔쳤지?"

"아버지가 죽기 전에 남겨주신 물건이야." 정확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베개 아래서 찾아낸 것들이지만, 정호는 결국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이자 후계자이니까. 값어치가 나가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유품이기 때문에 그 물건들은 정호의 것이었다.

작은 땅의 야수들(리커버 특별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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