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고유한 의미를 지닌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지 않으면 각자의 인생을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김성수의 머릿속에서는, 그러한 믿음이 그저 자아의 기초가 되는 주춧돌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물론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자기애와 이기심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기 마련이어서, 그 스스로는 그런 사실을 의식하지도 못했다. 교양 교육을 잘 받은 현대인으로서, 그에겐 자신만의 도덕률이 있었고, 별 어려움 없이 이를 준수하는 스스로에게 매우 만족했다. 말하자면, 그는 한국의 독립 자체에는 찬성했지만,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행동주의 운동이라면 그 어떤 형태이든 반대했다. (사회적 변화는 위에서부터 시작해 아래로 내려올 뿐이며,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미합중국을 향해 한국을 해방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밖에 없다고 그는 믿었다.)
작은 땅의 야수들(리커버 특별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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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그는 일본의 압제에 대해 적절한 비판을 토로하며 그 자신의 유려한 웅변과 입 속에 맴도는 일제 담배의 부드러운 맛을 동시에 즐겼다. 그는 육체적으로, 재정적으로, 때로는 감정적으로도 상당히 빠져들어 가는 연애들을 여유롭게 지속해 나가곤 했지만, 자신의 아내 앞에서까지 그러한 일들을 버젓이 과시하여 굳이 불필요한 수치를 안겨줄 만큼 천박하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한 해에 거의 20만 원씩 벌어들이는 저명한 지주 가문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그 남자의 도덕관념과 인격은 그와 비슷한 삶의 조건을 지닌 다른 한국 남자들에 비해 딱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작은 땅의 야수들(리커버 특별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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