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가 술을 주문하고 얼마 뒤 작은 백자 호리병과 잔 두 개, 방어회가 나왔다. 운두가 낮은 화려한 접시에 방어회가 부위별로 소담하게 담겨 있었다. 제주산 숙성 대방어입니다. 종업원이 나직하게 말했다. 회에 곁들일 기름장, 생와사비, 무순, 백김치, 파래김이 차례대로 상 위에 놓이는 동안 정오와 나는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다시 미닫이문이 조용히 닫혔다. 정오가 호리병의 뚜껑을 따고 병 주둥이를 내 앞으로 기울였다. 붓글씨로 쓰인 ‘安東燒酎’를 보며 안동소주, 하고 속으로 읽었다. 나는 그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요즘은 독한 게 오히려 속이 편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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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방학이 되었을 무렵 정오는 거의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같은 학원으로 수학 특강을 들으러 가고, 돌아오는 길에는 비디오대여점에 들러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와 늦은 밤까지 영화를 봤다. 정독도서관이나 광화문 교보문고에도 자주 갔는데 두 사람은 참고서와 문제집, 소설책을 모두 공유했다. 이따금 말끔한 사복 차림으로 대학로 민들레영토에 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영화인지 사진인지 정확히 어떤 동호회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음 카페에서 만난 다른 학교 또래들과 모임을 하고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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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젠가부터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책을 읽고 밤이면 각자의 잠자리에 누워 이어폰을 꽂고 같은 주파수의 라디오를 듣게 되었다. 두 사람을 통해 나는 오스카 와일드, 랭보, 헤르만 헤세, 알베르 카뮈, 프랑수아즈 사강, 전혜린, 기형도, 진이정을 알게 되었다. 셋이서 비디오로 <길버트 그레이프> <아이다호> <중경삼림> <올리브 나무 사이로> <첨밀밀>을 거실 소파에 기대어 보았던 밤도 기억한다. 두 사람이 모아놓은 『KINO』나 『씨네21』 같은 영화 잡지에서 프랑수와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왕가위, 압버스 키어로스타미의 이름을 처음 보았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그 이름이 좀처럼 외워지지 않아 이삼일을 입 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했다. 두 사람은 <FM 음악도시 유희열입니다>를 즐겨 들었는데 생방송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과 어딘가에서 구해 온 음반을 녹음해 둘만의 카세트테이프를 만들기도 했다. 거기에는 뭔가 연결성이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한 음악들이 녹음되어 있었는데 플레이리스트는 이랬다. 너바나, 쳇 베이커, 사카모토 류이치, 아스토르 피아졸라,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시규어 로스, 카디건스, 신해철, 유재하. 29/95
무엇이 그토록 그 두 사람을, 그리고 우리 셋을 서로 끌어당기게 했는지 지금도 정확히는 모른다. 우리가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었다는 것, 일찍부터 엄마 없는 집에서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익히 알았다는 것, 뭐 하나 특출난 것은 없지만 특별하기를 원하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는 것,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볼 뿐이다. 우리 세 사람은 안전한 집에 모여 앉아서 멀리 떠나 있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낯선 언어와 감정이 우리를 꼼짝없이 포위하는 곳으로. 그도 아니라면, 그저 외로운 아이들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오, 오빠 그리고 나는 우리만의 시공간을 만들어갔다.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은 잘 몰랐다. 두 사람은 어땠는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랬다. IMF 시대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나는 극장에 가 <타이타닉>을 두 번 관람하고 금 모으기 운동에도 동참하는 그런 부류의 아이였다. 3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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