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을 창가로 옮기고 어제 사다 놓은 흰 전지를 깔아요. 음식이 담긴 접시를 하나씩 올려요. 육개장, 미역국, 밥, 시금치무침, 콩나물무침, 무나물, 애호박전, 두부부침, 찹쌀떡, 절편, 딸기. 그리고 언니가 좋아하는 냉동실에서 막 꺼낸 차가운 소주, 늘 태우던 담배 한 갑.
언니. 그날로부터 줄곧 언니에게 묻고 싶었던 말을 오늘도 하지 못할 것 같아요.

18/95

임종은 몇 번인가 아주 가까이 엄마에게 다가왔다가 물러갔다. 나는 그만 엄마가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언제까지나 곁에 머물러 있어주기를 바랐다. 그 두 개의 희망이 내 안에서 같은 무게로 번갈아 가라앉을 때마다, 그 일렁임이 내 삶에 멀미를 일으키고 차라리 절망의 편으로 도주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오늘이 아닌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손꼽아보았다. 마땅한 상조와 장례식장을 미리 알아보고, 틈틈이 조문객 명단을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놓았다. 그건 내가 두려움을 외면하는 방식이었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었다.

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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