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이 투자가 아닌 이유는 도박이라는 상품이 문제이기 때문이고

너도나도 주식으로 돈을 벌 때

당신이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시기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투자는 상품과 시기가 절묘한 균형을 이룰 때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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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가져오는 위험 중 가장 명백한 위험은 경계를 넘어가 죽는 것이다. 이 위험이 제일 중요하며, 또 언젠가는 이 위험을 피할 수 없는 날이 오고야 만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다른 위험이 있는데, 바로 질병에 집착하게 되는 위험이다. 질병을 자신과 마주하지 않고 또 다른 이들과 마주하지 않으면서 뒷걸음질 치는 핑계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질병은 계속 매달리고 있을 만한 무엇이 아니다. (할 수 있다면) 그저 회복하면 된다. 그리고 회복의 가치는 새로 얻게 될 삶이 어떤 모습일지 얼마나 많이 알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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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진찰을 받을 때마다, 보험 서류를 작성할 때마다 암에는 차도가 있을 뿐이지 ‘완치’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하지만 암이라는 질환의 생리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암 경험이 미친 영향이다. 암을 앓고 난 후에는 예전에 있던 곳으로 전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변화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도 비싼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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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이 질병의 이상적인 결말이라고 보는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 어떤 이들은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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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갖고 있는 공포감. 특히나 전자기기들. 중금속들과 기기 속 내 정보들이.

당신은 매주 화, 목, 일요일에 쓰레기를 내놓는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그간 쌓인 쓰레기를 정리한다. 전염병의 시대를 살게 된 이후로 당신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는 더 늘어난 것만 같다. 줄이려고 애쓰는데도 금세 쌓인다. 당신이 이 지구에 없을 훗날에도 당신이 썼던 모가 닳은 칫솔, 끊어진 머리끈, 깨진 머그잔은 땅속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썩지도 않고 남겨질 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당신은 질끈 눈을 감는다.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물론 괜찮지 않다. 살아가는 일이 죄스럽다. 당신은 수거차가 다녀가기 전에 늦지 않게 쓰레기를 내놓기로 한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반투명한 비닐봉지에서 달그락달그락 앓는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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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물건들은 아니다. 잼이나 소스, 피클이 들어 있던 병, 차나 쿠키, 디퓨저가 담겨 있던 상자들이다. 당장은 쓸모가 없지만, 막상 버리려고 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들이 당신에게 소중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소중해질 기회조차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색이나 은색의 병뚜껑, 맑게 빛나는 유리,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틴케이스와 단단한 마분지로 만들어진 상자. 버려지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

당신에게는 더는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이름들이 있다.
서서히 멀어졌거나 뒤돌아 떠났거나, 결코 돌아올 수 없을 이름들. 대답을 들을 수 없다고 부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자주 그 이름들을 부른다. 묵독을 할 때처럼,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을 때처럼 호명한다. 그 이름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지만 당신은 선명하게 듣는다. 고유한 말투. 희미한 미소, 가만가만한 고갯짓을 본다. 때때로 그 이름들이 당신의 일상에 불현듯 출몰하기도 한다. 한 줄기 바람이 당신의 머리칼을 흩어놓고 나뭇잎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갈 때, 잔물결 위 빛 조각 하나가 끈질기게 당신의 눈길을 따라와 반짝거릴 때, 그것들이 매단 투명한 이름표를 목격한다. 당신은 당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는다. 곧바로 알아차린다. 아니, 덮어놓고 믿어버린다. 해묵은 그리움과 간절한 기도가 다르지 않다고 당신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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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죽음을 소재로 삼지 않겠다.
2001년 여름, 당신은 일기장에 쓴다.





 
나는 수첩에 적힌 외마디 단어들 위에 검은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다. 봄이 오면 뿌리려고 하얀 종이에 고이 싸놓은 작은 씨앗들 같다. 까맣게 지워졌어도, 아니 까맣게 말랐어도 당신은 이제 안다. 씨앗들이 품고 있는 소리를, 하나하나의 이름을. 이 씨앗들을 당신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씨앗들은 당신에게로 가서 어떤 이야기로 자랄까. 부디, 당신과 당신의 이야기가 무탈했으면, 덜 쓸쓸했으면 좋겠다.
씨앗들은 이제 내게 없고 당신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 부질없는 일일까.
과연 시간은 잘도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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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하던 날에요. 제 생시는 왜 물어보셨던 거예요?
아…….
숙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 기운이 많다고 해서, 이 집터에. 나도 그렇고. 목 기운이 들어오면 좋대서.
저 몰래 제 사주를 보신 거예요?
기운만 봤지, 기운만. 다행이었지 뭐. 302호 아가씨가 목 기운이 강하다고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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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의 장례는 공영장례로 치러졌다. 전용 빈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간소하게 예식을 치렀다. 참석한 사람은 숙분과 기연, 미리내의 직장 상사와 동료 둘이 전부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숙분은 사십구재가 되는 날까지 매일 302호의 현관문을 열어두고 향을 피웠다. 미리내의 유품은 상자에 담아 4층에 올려놓았다. 혹시 나중에라도 누군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릴 수가 없었다. 사십구재 날에는 302호 안방에 조촐한 제사상을 마련했다. 그날은 단심도 일찍 가게를 접고 따로 부쳐두었던 전을 싸 들고 숙분을 만나러 갔다. 사위에 어둠이 내리자 빌라의 세입자들과 주변 이웃 몇이 302호를 찾아왔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제삿밥을 먹고 돌아갔다.
사십구재를 지내고 나서야 숙분은 벽지와 장판을 새로 갈았다. 처음에는 단심이 들어올 계획으로 집을 내놓지 않았는데, 단심이 살던 집과 20년 가까이 해오던 백반집도 정리하기로 하면서 이사가 계속 미뤄졌다. 숙분과 단심은 상의 끝에 일단 302호에 세를 놓기로 했다. 그해 가을, 302호로 나경이 이사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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