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버 노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어느 정도는 나의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에서다. 먼 훗날 나 역시 일자리를 찾아 배회하는 육십대 여성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소설을 쓰며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는 소설가는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소설을 써서 먹고 사는 일이 참 위태롭다는 생각을 하는데, 육십대가 되어서도 소설 쓰기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는다.
실버 노동은 다른 노동 문제에 비해 답을 찾기가 정말로 어려운 것 같다. 노년층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청년층 일자리가 더욱 시급하단 생각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앞으론 노년층 일자리 문제에 모두가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그린 육십대 여성들은 노동을 원하거나,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들의 풍족하지 않은 삶은 은퇴 후 연금 수령이라는 안정적인 루트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내가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는 육십대 여성들 역시 그런 경우가 많았다.

87/13

언젠가 공원에서 이웃 노인들과 한참 수다를 떨고 온 엄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다들 3천 원만 벌더라도 누군가 일 좀 시켜줬으면 좋겠대."
"3천 원? 너무 적은 거 아니야?"
"우리한텐 아니야. 3천 원만 벌어도 좋겠어."
나는 엄마에게 일자리를 같이 찾아보자고 말하며, 하루에 3천 원이 아니라 3만 원도 벌 수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88/103

과일을 정말 좋아하는 우리는 재래시장 과일 가게에 자주 간다. 그러나 먹고 싶은 과일을 사는 게 아니라 그날 싸게 파는 과일을 산다. 과일 가게가 사라고 제안하는 과일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과일은 맛있지만, 어떤 과일은 아무런 맛이 나지 않거나 신맛만 날 때가 있다. 싸게 파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맛이 없으면 잼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더라도 잼이 되는 과일보다 뱃속으로 곧장 들어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과일이 더 좋으니 매우 심혈을 기울여 과일을 고른다.

89/103

어릴 때부터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지만,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어야 했다. 왜 그런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았더니 아무래도 엄마가 범인인 것 같았다.
엄마는 후회를 정말 많이 한다. 틈만 나면 후회를 한다. 젊은 시절의 잘못된 선택과 결혼, 그 이후의 달라진 삶과 노년으로 접어든 지금의 삶을 모두 다 후회한다. 어찌나 후회가 깊고 자세한지 엄마의 말을 듣다보면 엄마를 환생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시 태어나서 엄마가 원하는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봐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론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후회하며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열심히 그것을 하고, 후회는 절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살아보면 안다. 후회가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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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해도 된다.
엄마처럼 아주 많이 후회해도 된다. 완벽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책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걸 깨달을 때까진. 그걸 깨닫고 나면 후회가 아무런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다. 완벽한 삶이란 원래부터 없다는 뜻이다.
90/103

이 글을 쓰며 제목을 ‘나의 엄마, 나의 딸 연에게’라고 지었다가, 지웠다. 엄마의 엄마인 척하지만, 나는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보다 엄마에게 훨씬 못해준다. 엄마의 엄마인 척하지만, 나는 여느 엄마들이 하지 않는 생색내기를 참 많이 한다. 엄마의 엄마인 척하지만, 멀리서 엄마를 보면 잘 못 알아본다. 모르는 아주머니를 엄마로 착각한 적도 부지기수다. 그렇더라도 나는 엄마가 나의 딸 같다는 글을 잘도 쓴다.
엄마가 이 뻔뻔한 글을 읽을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무지개떡 배우의 사진을 한 번이라도 더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92/103

소설 작법에서는 인물을 그릴 때 그의 행동의 동기, 또는 그가 지닌 욕망을 제시하라고 말한다. 소설은 근대의 산물이고, 근대는 개인의 자유 의지가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시대였으므로, 소설의 인물을 소개할 때도 무엇이 그의 행위를 추동하는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서수의 소설에서 인물은 주거, 노동, 그리고 채무의 조건과 함께 독자에게 소개된다. 인물의 동기는 그것들과 분리되지 않고 단단하게 결부되어 있다. 모든 인물은 주거와 노동과 가처분 소득으로 설명되는 존재, 다시 말해 살이와 벌이와 씀씀이의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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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십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이분께 소설 강의를 들었을 것 같다. 오늘 소설창작강의 안내를 보면서, 이분 수업을 듣게 될 수강생들이 부러웠다.
나는 이제 소설의 형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투잡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처럼 말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데, 엄마는 알까. 실은 소설 쓰는 게 너무 즐겁다. 즐거운데 즐겁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로 느끼는 엄마처럼 나 역시 그런 어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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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엄마처럼 나 역시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이 없었다. 설렘은 고작 한 달도 지속되지 못했고, 자꾸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는 현실은 무거웠다. 나는 결혼이라는 미래를 그려볼 수가 없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엔 기혼 여성인 선배가 없었다. 그러므로 결혼은 나의 미래가 될 수 없었다. 나는 나만 믿고 엄마를 지키면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절절한 사랑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지만 로맨스 소설을 쓰며 온갖 판타지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일엔 부동산과 연금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로맨스 소설을 쓸 땐 회사에서 겪은 분통 터지는 일을 잊을 수 있었고, 죽이고 싶을 만큼 얄미운 상사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사랑만 하면 되었다. 열렬히 사랑만 하면 페이지가 가득 채워졌다.
첫 달엔 28만 원을 벌었다. 다음 달엔 19만 원을 벌었다. 그리고 그다음 달엔 8만 원을 벌었다. 수익이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는 새로운 로맨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30/103

나는 벌레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엄마가 알면 엉뚱하다고 하겠지만, 엄마는 모른다. 내가 엉뚱한 소녀라는 것을 예전에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맨날 돈 얘기만 하니까 엄마는 내가 어른인 줄 알지만 나는 자라지 않았다. 아홉 살 언저리, 많아도 열한 살 어디쯤에서 멈추어버렸다. 그때부터 내가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엉뚱한 공상을 자주 한다는 걸 숨기고, 반 친구들에 비해 일기를 세 배 이상 길게 쓴다는 사실을 숨기고, 일기가 아니라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숨기고, 담임이 나의 상상력을 칭찬하며 모험 소설이 아니라 일기를 써오라고 말해도 좀체 듣지 않으며. 담임은 그런 나를 엉뚱하다고 비난하는 대신 작가가 되어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척하며 귀담아들었다. 작가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인지 물었더니 담임의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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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학력가지고 너무 무시하는 거 보면 좀 웃기다.
우리 업계도 좀 그런 게 있는데, 특히 나같은 사람 보면, 고졸+사연많은 경단녀+초짜로 본다. 너보다 경력이 오래 됐다고 말해주고 싶다.
늘 엄마아빠가 비싼 거 사주려고 하면 됐어, 저런거 들고다녀봤자 짝퉁인 줄 알아. 한다. ㅋㅋㅋ

아빠 엄마는 평생 이렇게 무시당하며 살아오시고 남들은 똑똑할 거라 착각하시는데, 본인들 생각만큼 상대가 똑똑하지 않으면 충격을 받고 이해를 못하신다. 근데 그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래. 그게 엄마 아빠 기준이 높은 거라니깐? 똑똑한데 학벌 없으면 얼마나 세상살기 힘든지 늘 간접체험한다.

나는 눈물을 그친 엄마의 팔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엄마, 저 스님이 알아챘나보다.
뭘?
엄마가 여기 빌붙어 살려는 걸.
엄마는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며 말했다.
눈치도 빠르네……. 가자.
엄마를 따라 일어서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22/104

엄마는 내가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쓴다는 걸 알았고, 자신의 첫사랑을 넌지시 말해주기도 했다. 도움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엄마는 짝사랑하는 남학생에게 고백 한번 해보지 못하고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엔 입학하지 못했다. 곧바로 타지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첫사랑은 로맨스 판타지라는 장르에 전혀 걸맞지 않았다. 듣다보면 딸을 차별한 할아버지에게 화가 나고, 검정고시를 보거나 방통대에 가지 않은 엄마가 답답하고,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되는 종류의 이야기였다.

30/104

엄마는 중졸인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훨씬 똑똑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에게 그렇지 않다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상한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나는데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엄마는 똑똑한 편이라고 말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법정 스님의 수필을 필사하는 걸 알고, 『좋은생각』을 읽다가 좋은 구절에 밑줄을 긋는 것도 알고, 수필에 가까운 일기를 쓴다는 것도 알지만, 이건 나만 아는 사실이다. 엄마는 늘 사람들에게 자기는 가방끈이 짧아서 무식하다고 말했다. 남편이 결혼하자마자 도망갔고 혼자 딸을 키웠다고 말했다.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평생 몸 쓰는 일을 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처음엔 엄마를 동정했지만 다툼이 일어나면 엄마를 깔보았다. 그런 일들이 엄마에겐 모두 상처가 되었다.
엄마는 간병인으로 일하다가 기저귀 도둑으로 몰린 뒤 화병이 났고, 결국 집에 틀어박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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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선의 글을 읽고 웃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와이셔츠로 변하다니. 현실성이 없었다. 내가 말하는 현실성이란 사람이 셔츠로 변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버지와 와이셔츠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이선은 나의 아버지가 공장에 다녔으며 평생 와이셔츠를 입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상상을 한 거겠지. 나는 이선에게 재밌네, 라고 톡을 보냈다. 이선은 틈을 두었다가 답했다.
 
— 나 이제 이런 글 안 쓰려고.
— 그럼 무슨 글 쓰려고?
— 현실적인 글.
— 그런 글은 피곤해. 그냥 와이셔츠로 변하는 글이나 계속 써. 나쁘지 않으니까.
— 좋은 게 아니라 나쁘지 않은 거잖아. 난 좋은 걸 쓰고 싶어.
— 이선, 좋기만 한 건 없어. 그러니까 나쁘지 않은 걸 선택하고 살아. 살아보니까 그게 정답이야. 나쁘지 않은 게 선택지에 있다는 걸 고마워하며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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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해봐. 그러면 간병 생활 다시 시작이야. 그 지옥 같은 일을 또 반복해야 돼.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연을 끊는 게 나아. 차라리 그게 더 나아.
엄마의 말에 이모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얘,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사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이 아니야.
이모들은 어떻게든 엄마를 위로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엄마의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알았어, 엄마. 출가해. 우리 이제 자유롭게 살자.
엄마는 소주잔을 들어 올리더니 건배 없이 원샷했다. 그러곤 설탕을 한 숟갈 삼킨 사람처럼 인상을 찡그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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