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활의 이해다 PEACE by PEACE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홍규 옮김 / 들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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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작품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이라면 읽어봤을 만큼. 문학에 있어서 톨스토이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를 '인류의 교사'라 부를만큼 실제로 가난한 농노들의 자제를 위해 학교를 세우기도 하고, 러시아 문학의 주류와 문명 중심 사상을 끊임없이 비판하기도 하였다. 하여 톨스토이의 사상과 작품은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현재까지도 주고 있다.


지금까지 문학 작품으로만 보아왔던 톨스토이의 세계를 이번에는 전혀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

지극히 기독교적인 느낌이 난다.

톨스토이가 기독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문학 작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라고 말하였지만, 다르다기보단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바탕을 이루는 사상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나는 '악에 대한 무저항'이라는 문제의 역사에 대해 내가 얻은 정보를 말하겠다. 이어 종교계, 즉 기독교를 믿는다고 공헌하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견해, 그리고 보통사람들, 즉 기독교를 믿는다고 공언하지 않는 사람들이 갖는 견해에 대해 말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의 역사적 사건들에 비추어 이 보든 것에 의하여 내가 이르게 된 결론을 말하겠다. p 29


톨스토이가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쓰게 된 이유를 밝힌다.

1884년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였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많은 기독교 교회의 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의 결여'라고 지적하고 바로 이 부분에서 교회 교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왜곡하였다고 하였고, 이에 대한 많은 비판들에 대해 새로운 결과와 결론을 드러내고자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의 부제는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활의 이해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삶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1장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의 사상사에서는 퀘이커파, 게리슨등의 무정한 사상사에 대해 들려주고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서 말한다.

제 2장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에 관한 비판으로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종교적 비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러시아 정교회의 기독교 복음에 대한 해석에 대한 반론을 볼 수 있다.

제 3장 '기독교의 기독교 오해'에서는 대다수가 오해한 기독교 교리와 그리스도의 최초의 가르침, 이단, 러시아 교회가 하는 일, 교회의 최면술과 기만술에 대해 말한다. 3장에서의 소제목들만 보더라도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기독교들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복음의 진정한 의미는 이처럼 믿는 사람에게는 교회에 의해,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학문에 의해 숨겨져 있다. p 99


제 4장 학자들의 기독교 오해에서는 종교란 무엇인지, 기독교적 인생관에 대한 학자들의 오해와 기독교의 무저항 교리에 대한 오해등에 대해 말한다.

학자들의 오해 두 가지.

첫째 오해, '실천 불가능성'. 이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실천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의무적인 것이 아니고 반드시 우리 사회 안에서 실천 가능한 한계에 맞게 변형되고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 오해 ' 신에 대한 봉사를 인류에 대한 봉사로 대체'. 이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모호하고 신비스러우며 막연한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그들은 신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의무를 배제하려 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과 인류를 위한 사랑의 교리가 훨씬 더 명료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제 5장 '생활과 양심의 모순'에서는 빈부갈등의 경제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등에 대해 말한다.

제 6장과 제 7장에서는 전쟁과 병역의무를 비판한다.

제 8장에서는 무버항 수용의 필연성을, 제 9장에서는 기독교적 인생관의 수용이 유일한 해방임을 . 제 10장에서는 국가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제 11장에서는 기독교적 인생관이 폭력을 끝낼 수 있음을 말하고, 제 12장에서는 앞의 여러 장을 요약하고 요지를 반복하여 주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로 이 책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


참된 의미의 기독교는 국가를 파괴한다. 기독교의 시초부터 그렇게 인식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국가라는 것을 굳이 인정할 필요가 없었던 기독교인들이 언제나 깨달은 내용이었다. 다만 여러 국가의 수뇌들이 명목상의 형식적인 기독교를 택하면서부터 기독교가 국가와 공존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이론을 교활하게 고안하기 시작했을 따름이다. p 336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데 기독교가 이용되었다. 아니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든 힌두교든 종교들이 권력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용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권력을 사용하여야 하고, 권력을 유지하여야 하고,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기독교를 이용하여 잘못된 기독교 교리와 예수님의 가르침이 왜곡되어 국민들에게 인식시켰다는 것이다.


당신이 어느 순간에라도 그분의 뜻에 따라 돌아가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영원 뒤에 무의식으로 숨어 있는 그분의 뜻에 따라 불려나온 피조물로서, 존재로서의 영원한 당신의 진정한 지위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의 의무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의 토지에 대한 지주로서의 의무, 당신의 사업에 대한 상인으로서의 의무, 황제, 장관, 또는 관리의 국가에 대해 가상의 의무로서가 아니라, 당신의 진정한 의무, 이 세상에 부름받고 이성과 사상을 부여받은 존재로서의 진정한 지위에 따르는 의무를 생각해보라. p 491


톨스토이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에서 권력을 거부한다. 전쟁을 거부한다. 국가를 거부한다.

이 모든 것이 신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이유로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정작 톨스토이의 나라인 러시아에서는 출판되지 못했었다고 한다.

'비폭력 무저항'을 말하고 있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간디에게 영향을 끼쳤고 하여 '비폭력 민족해방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기독교에 관한 책이지만 더 넓게는 세계의 인류를 위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갔다는 논리가 아닌, 기독교 교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닌..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복음의 진리를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권력자들의 이익에 맞게 왜곡되어졌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행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진리와 얼마나 모순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100년 전에 쓰여진 톨스토이의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이지만 지극히 현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깨닫게 해주고, 기독교인들의 실상과 권력과 기독교, 국가와 기독교에 대한 관계와 모순등에 대해서도 알게 해준다.


간디에게 영향을 준 것처럼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가 많은 이들에게 좋은 깨달음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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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온 아이
에오윈 아이비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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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으로 가득한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눈에서 온 아이>.

유럽에서 <백설공주>와 <인어공주>로 변형된 근간 설화인 러시아의 <눈 소녀>라는 동화가 모티브가 되고, 신선하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눈에서 온 아이>.


춥디 추운 강에 빠져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한 생활을 하고 있던 메이블.

너무도 척박한 알래스카의 땅을 죽을 힘을 다해 개간을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패배감을 안고 사는 메이블의 남편 잭.

메이블과 잭에게는 아이가 없다. 그리고 그들은 알래스카 땅의 한 부분을 개척하고 개간하며 간신히 끼니를 때우며 산다. 메이블과 잭에게 처음부터 아이가 없었던 건 아니다.

알래스카에 오기전, 책과 그림을 좋아하던 메이블과 농사일에 자신 있던 잭에게 아이가 있었지만 그만 유산되고 만다. 그 이후로 메이블과 잭의 사이는 서로가 알 듯 모를 듯 거리감이 생기고..서로는 같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진심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외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어느 날, 알래스카에 첫 눈이 오던 날..

아주 오랜만에 그들은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부터 잭은 소녀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다. 근처에 마을과 사람이라고는 없는 메이블과 잭의 집이었는데 소녀가 숲 속을 뛰어다니는 것을 보게 된 것..

이후 메이블도 소녀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메이블과 잭은 소녀가 자신의 딸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드디어 소녀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식사도 하게 된다..

그러나 소녀는 메이블의 집에서 자려고 하지 않는다.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그리고 메이블은 기억해낸다. 어릴 적에 아빠가 읽어주시던 동화 스네구로치카의 <눈 소녀>(1857년)와 많이 닮았다는 것을..

메이블은 눈사람이 소녀가 되어 아이가 없는 그들에게 나타났고, 아이는 눈 소녀이기에 더우면 녹아내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소녀에게 애정을 쏟게 된다.

메이블과 잭에게 나타난 소녀의 이름은 '파이나'.



 잠시 후 늙은 여자가 밖을 내다보니, 남은 거라고는 아이의 빨간 장화와 파란 장갑, 눈이 녹아 고인 물뿐이었어. p 178


동화 <눈 소녀>에서는 소녀가 녹아 사라지는 비극적인 결말이 된다.

그렇다면 <눈에서 온 아이>에서는 어떤 결말이? ^^ 여기에서는 여기까지만...남겨두어야 겠다.


<눈에서 온 아이>의 결말이 너무도 궁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여 새벽까지 읽어갔다.

파이나와 메이블과 잭의 관계에서, 결말에 이르는 과정중의 이야기 중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본능이 <눈에서 온 아이>의 신비감을 약간 감소시키는 듯 싶었다..내게는 그랬다.


그러나 <눈에서 온 아이> 파이나는 메이블과 잭에게는 기적같은 존재였다.

동화에서처럼 마법이 이루어진 듯 눈 사람이 소녀가 된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인 소녀가 그들에게 찾아왔지만 알래스카 개척에, 두 부부 사이에 절망감만을 느끼고 있던 그들에게는 희망이자 기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파이나를 통해서 거의 포기직전이었던 그들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눈에서 온 아이>는 1920년대의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 당시 황량하기만 한 알래스카를 개척하고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실패하여 돌아간 사람도 있고,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눈에서 온 아이>를 보면 알래스카 개척자들의 고단하고 너무도 힘겹고 외로웠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눈에서 온 아이>의 저자인 '에오윈 아이비'는 알래스카에서도 가장 척박한 땅인 북쪽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알래스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

<눈에서 온 아이>는 알래스카라는 이름만큼이나 신비롭고 추위가 가득하고 외로워보이고 고요한 분위기가 가득한 이야기이다.

<눈에서 온 아이>는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볼 수 있고, 신비로움과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고, 고독과 사랑이 공존하고 아름다움과 순수함이 곳곳에 묻어 있는 정말 첫 눈 같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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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 죽기 전에 꼭 1001가지 시리즈
장일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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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화 유산은 얼마나 될까?

그 갯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사실은 전혀 없다. 아니 우리 문화 유산의 갯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우리 문화 유산의 갯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문화 유산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얼마나 많이 보았을까?


 이런 생각들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이라는 책을 본 순간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의 제목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문화 유산이 1001개는 넘는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 중에서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 유산>을 1001개로 지정한 것이 아닐까?

여튼 우리의 문화 유산이 1001개라.. 생각보다 참 많다.

이 1001개의 문화 유산 중에서 내가 보았고, 이름이라도 들어본 문화 유산은 불과 몇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은 2013년 12월까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중심으로 선정하였다고 한다.

1001개의 문화유산을 행정 구역을 기준으로 묶어 서울권,경기권, 강원권, 충청권, 경상권, 전라권, 제주권, 국외권으로  편집하였다. 각 행정구역의 해당 문화유산은 가나다순으로 찾아볼 수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문화유산은 사적  제 117호 경복궁.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법궁'이라는 표현처럼 각 문화유산의 의미를 짧은 글로 표현하여 주고, 문화유산의 세부 분류와 문화유산의 위치를 나타내는 주소도 표기되어 있다.  주소는 개정이전의 주소로 표기되었지만 개정된 주소도 함께 볼 수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부분은 글 읽는 이가 문화유산을 직접 바라보는 시각으로 서술한 것이라고 한다.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각이란 예를들어 석탑의 경우, 맨 아래 바닥돌부터 시작하여 머리장식의 순서로 시선을 옮겨가며 석탑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직접 문화유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편안한 시각으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에 수록된 문화유산을 사진을 보며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 중에서 '성공회 서울성당'과 '제주권'을 우선적으로 찾아보았다.^^

대한 성공회를 다니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성공회 서울성당'.

'성공회 서울성당'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1914년부터는 계획을 세우고, 1922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926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공사비가 모자라서 양쪽 날개와 아래쪽 일부를 뗀 채 작은 '일(-)자형'으로 지었다가 그 뒤 창립 100주년인 1991년에 확장공사를 하여 1996년에서야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성공회 서울성당'은  전체적인 높낮이가 달라서 생동감과 경쾌함을 느낄 수 있으며, 서울에서는 유일한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라고 한다. 또한 세계의 건축가들이 선정한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찾아본 '제주권'.

제주권은 아쉽게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중에서 15개에 불과하다.

아무래도 섬이라는 지역적인 영향때문에 제주에는 문화유산이 많지 않은가 보다.

제주에도 석탑이 있다는 사실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다.

삼양 1동에 있는 원당봉 아래의 불탑사의 뒤뜰에 있는 석탑인 '제주 불탑사 5층 석탑'.

보물 제 1187호 이며 고려시대에 현무암으로 만든 제주 유일의 석탑이라고 한다.

또한 현재 전하는 현무암으로 만든 유일한 탑이기도 하단다.


우리 문화유산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

이 책을 보는 순간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아니 마음이 무척이나 뿌뜻해지기까지 했다.

우리가 사는 곳곳에 우리의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는데도 무심결에 지나쳤던 많은 순간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을 보니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 많은 우리 문화유산을 죽기 전에 다 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우선은 내가 사는 곳의 문화유산을 찾아가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좋을듯 하다. 

답사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주고 있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우리 문화유산 1001>.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관심을 더욱 갖게 하여 주고,  아이들에서부터 어른까지 서로 같이 보며 즐길 수 있는 유익하고 무척이나 훌륭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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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즐거움 - 7:5:1 정리 법칙으로 일상이 행복해지는 기술
야마시타 히데코 지음, 박선형 옮김 / 생각정거장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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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의 물건들을 차근차근 보기 좋게 정리하여야 된다는 의무감, 아니 주부들의 숙제라고 해두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 듯 하다.  

어느 날은 마음 잡고 정리를 싹 해놓다가도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마구 복잡해져 있는 물건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은데 문이나 서랍을 열면...아~~ '정리해야 되는데~~' 하기 일쑤..


요즘 부쩍 정리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지라  정리에 관한 책만 보면 읽고 도움을 받고 싶어진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정리하고 나면 항상 정리 상태가 되는 것일까 하고..


<버리는 즐거움>은 7:5:1 이라는 정리 법칙을 알려준다 하여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

7:5:1의 정리 법칙은 보여주지 않는 수납이 70퍼센트, 보이는 수납이 50퍼센트, 보여주는 수납이 10퍼센트라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런 정리법칙을 통해 '단샤리'를 실천하게 되면 공간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바뀌면서 방이 안락하게 느껴지고 청소도 즐거워질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단샤리'는

단: 넘쳐나는 물건을 '끊는다'

샤 : 불필요한 물건을 '버린다'

리 : 끊고 버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물건의 집착에서 '벗어난다'.


우리집에도 보면 왠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물건들이 제법 된다.

이런것이 물건의 집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아끼는 것이라고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지 모르니 놓아두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건에 대한 집착이었나 보다.


여튼 <버리는 즐거움>은 7:5:1 이라는 비율로 '먹는 공간, 입는 공간, 자는 공간, 지내는 공간, 씻는 공간, 배우는 공간, 다니는 공간'으로 구분하여 각 공간에 맞는 정리 방법을 보여준다.


<버리는 즐거움>에서 알려주고 있는 독특하면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정리 방법 몇 가지만을 간단하게 적어본다.


-행주는 필요 없다,

단샤리의 근본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소비절감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물들이 잘 사용되게끔 집중하는 것이다. p 25

 그래서 천으로 된 행주를 사용하지 말고 일회용 키친타월로 하는 것이 더 청결하고 효율적이라고 한다.


-식기건조대는 두지 않는다.

식기건조대를 두지 않고 씻은 그릇을 키친타월을 펼쳐 뒤집어 놓고 물기를 뺀 다음에 선반에 집어 넣으라고 한다. 식기건조대는 무의식적으로 무질서해지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란다.

정말 그렇다. 식기건조대는 차근 차근 놓다가도 그릇이 많아지면 어쩔수 없이 쌓아 놓을 수 밖에 없다.


- 전기밥솥, 전자레인지를 단샤리 하기.

이 방법은  잘 사용하지 않는 전자레인지는 없애고, 전기밥솥 대신에 가스에 밥을 짓는 압력 솥을 이용하라고 한다. 싱크대 위에 가전제품을 올려 놓지 않아야 깔끔해진다는 것.

이건 좀..과연 될까 싶다.^^


- 거실에 소파를 두지 않는다.

 작은 집일 경우 덩치 큰 가구들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 화장실 슬리퍼 없애기

화장실 매트나 변기 매트 등과 변기 청소도구 또한 두지 않는다. 대신 일회용 화장실 변기 청소 물티슈로 청소하고 버린다고 한다. 자주 청소해주고 깨끗함을 유지하면 화장실 슬리퍼를 없앨수 있다는 것.

그런데 일회용 화장실 변기 청소 물티슈라는게 우리나라에도 있나?



<버리는 즐거움>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각 공간에서 깔끔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인 '단샤미'를 소개해주고 있는 내용에서 집의 구조가 우리나라와는 약간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활 문화에서도 다른 면이 있었다. 각 공간에서 버리고, 보이게 정리하고, 보이지 않게 정리하는 것들이 소소한 것에서부터 커다란 물건까지 어찌보면 세밀하다 싶게 알려준다.


<버리는 즐거움>외에 정리에 관한 책 몇 권을 읽으면서 공통되게 느껴지는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언젠간 쓰겠지 하며 아껴둔다는 착각하에 깊숙이 넣어 두고는 잊어버려서 혹은 오래되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7:5:1의 정리법칙처럼 보여주지 않는 수납 70퍼센트, 보이는 수납 50퍼센트, 보여주는 수납 10퍼센트 대로 정리를 하는 것이 공간에 활력과 가족들에게는 편안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버리는 즐거움>에서 알려주고 있는 방법중에서 절대, 아니 정말로 포기하지 못 할 몇가지가 나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있지 않을까 ?


우리가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정말 물건의 집착에서 오는게 맞는가 보다..^^

이렇게 7:5:1로 <버리는 즐거움>을 배우다 보면 물건에 대한 집착도 없어지고, 집 안이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가득한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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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 사건 vs 사건 - 이원복과 신병주의 시시콜콜 역사토크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이원복 외 지음, KBS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제작팀 엮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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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줄줄 이야기 하는 사람도 부럽지만, 한국사와 함께 세계사를 같이 이야기 하는 사람을 보면 엄청 부럽다. 도대체 똑같이 학교에서 역사공부를 하였는데 어쩜 그리도 잘 알고 이해하고 잊지않고 역사이야기만 나오면 줄줄 말하는 것인지....


학창시절에 역사를 싫어했던 것에 대해 너무도 뒤늦게 후회하며 때늦은(?) 재미를 가져보지만 아무래도 나이탓인지 어릴 적 만큼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그래도 꾸준히 역사 관련 책을 읽다보면 나도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결해서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공부한다 생각하고 읽어보고 있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은 뭔가 좀 다른 역사책이라 할 수 있겠다.

서술형으로, 시간순으로 역사 이야기를 담은 것이 아니라 사건과 인물을 구분하여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결하여 대화식으로 들려주고 있기때문이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은 KBS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이란 프로그램으로 KBS 1 라디오에서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인 이원복님과 우리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주신다는 신병주 교수님의 역사토크룰 옮겨놓은 것이다.


내가 읽게 된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은 사건vs사건을 다룬 이야기이다.

열 여섯개의 주제로 한국사와 세계사에서의 사건을 그 연관성과 차이점등을 들려준다.

주제의 이름도 참 재미있게 정해져 있다. '삽질로 쓰는 역사', '왕좌의 게임', '쩐의 문화사'등..


'삽질로 쓰는 역사'에는 무령왕릉 발굴 vs 트로이 발굴에 대한 이야기다.

발굴을 삽질이란 표현을 쓴 것인데, 무령왕릉은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었던 1971년 7월 큰비가 내려 배수로 공사를 하던 도중에 발굴이 되었다고 한다. 그 때는 발굴 경험이 없었던 때라 발굴 하면서 유물들이 손상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트로이 발굴은 슐리만이 발굴하였는데 터키, 독일, 러시아 세 나라가 자기네 유물이라고 싸우고 있다고 한다.


'후삼국의 분열 vs 프랑크 왕국'의 분열에서는 시대는 종교로 왕국의 기반을 세우려고 한점, 신분제도 등  다르지만 신기할 만큼 닮은 모습과 또 전혀 다른 모습을 들려준다.

3°1 운동 vs 인도 독립운동 에서는 조선과 인도가 식민지로 전락하는 모습과 비폭력주의적인 독립운동과 독립운동의 대명사인 유관순과 락슈미바이에 대해 들려준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의 사건VS사건편은 한국사와 세계사에서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건을 골라서 시기와 비슷하 점 그리고 차이점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토크 방식이라 그런지 한국과 세계를 넘나들어도 그 연관성을 상상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잇는 연대표도 각 주제마다 보여주고 있기때문에 이해하는 데 한층 도움이 된다.


역사를 알면 알 수록 정말 재미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왜 학창시절에는 몰랐을까?^^

한국사와 세계사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미있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인데 어쩜 그리도 역사의 흐름이 비슷할까?

문화도 다르고 가치관도 전혀 다른 것 같은데 역사의 큰 흐름을 놓고 보면 참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결국 같은 인간이기때문인걸까 싶기도 하고..


여튼, 역사토크로 만나본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은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결하여 익힐 수 있는 재미있는 역사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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