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활의 이해다 PEACE by PEACE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홍규 옮김 / 들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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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작품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이라면 읽어봤을 만큼. 문학에 있어서 톨스토이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를 '인류의 교사'라 부를만큼 실제로 가난한 농노들의 자제를 위해 학교를 세우기도 하고, 러시아 문학의 주류와 문명 중심 사상을 끊임없이 비판하기도 하였다. 하여 톨스토이의 사상과 작품은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현재까지도 주고 있다.


지금까지 문학 작품으로만 보아왔던 톨스토이의 세계를 이번에는 전혀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

지극히 기독교적인 느낌이 난다.

톨스토이가 기독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문학 작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라고 말하였지만, 다르다기보단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바탕을 이루는 사상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나는 '악에 대한 무저항'이라는 문제의 역사에 대해 내가 얻은 정보를 말하겠다. 이어 종교계, 즉 기독교를 믿는다고 공헌하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견해, 그리고 보통사람들, 즉 기독교를 믿는다고 공언하지 않는 사람들이 갖는 견해에 대해 말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의 역사적 사건들에 비추어 이 보든 것에 의하여 내가 이르게 된 결론을 말하겠다. p 29


톨스토이가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쓰게 된 이유를 밝힌다.

1884년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였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많은 기독교 교회의 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의 결여'라고 지적하고 바로 이 부분에서 교회 교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왜곡하였다고 하였고, 이에 대한 많은 비판들에 대해 새로운 결과와 결론을 드러내고자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의 부제는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생활의 이해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삶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1장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의 사상사에서는 퀘이커파, 게리슨등의 무정한 사상사에 대해 들려주고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서 말한다.

제 2장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에 관한 비판으로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종교적 비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러시아 정교회의 기독교 복음에 대한 해석에 대한 반론을 볼 수 있다.

제 3장 '기독교의 기독교 오해'에서는 대다수가 오해한 기독교 교리와 그리스도의 최초의 가르침, 이단, 러시아 교회가 하는 일, 교회의 최면술과 기만술에 대해 말한다. 3장에서의 소제목들만 보더라도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기독교들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복음의 진정한 의미는 이처럼 믿는 사람에게는 교회에 의해,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학문에 의해 숨겨져 있다. p 99


제 4장 학자들의 기독교 오해에서는 종교란 무엇인지, 기독교적 인생관에 대한 학자들의 오해와 기독교의 무저항 교리에 대한 오해등에 대해 말한다.

학자들의 오해 두 가지.

첫째 오해, '실천 불가능성'. 이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실천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의무적인 것이 아니고 반드시 우리 사회 안에서 실천 가능한 한계에 맞게 변형되고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 오해 ' 신에 대한 봉사를 인류에 대한 봉사로 대체'. 이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모호하고 신비스러우며 막연한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그들은 신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의무를 배제하려 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과 인류를 위한 사랑의 교리가 훨씬 더 명료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제 5장 '생활과 양심의 모순'에서는 빈부갈등의 경제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등에 대해 말한다.

제 6장과 제 7장에서는 전쟁과 병역의무를 비판한다.

제 8장에서는 무버항 수용의 필연성을, 제 9장에서는 기독교적 인생관의 수용이 유일한 해방임을 . 제 10장에서는 국가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제 11장에서는 기독교적 인생관이 폭력을 끝낼 수 있음을 말하고, 제 12장에서는 앞의 여러 장을 요약하고 요지를 반복하여 주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로 이 책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


참된 의미의 기독교는 국가를 파괴한다. 기독교의 시초부터 그렇게 인식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국가라는 것을 굳이 인정할 필요가 없었던 기독교인들이 언제나 깨달은 내용이었다. 다만 여러 국가의 수뇌들이 명목상의 형식적인 기독교를 택하면서부터 기독교가 국가와 공존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이론을 교활하게 고안하기 시작했을 따름이다. p 336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데 기독교가 이용되었다. 아니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든 힌두교든 종교들이 권력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용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권력을 사용하여야 하고, 권력을 유지하여야 하고,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기독교를 이용하여 잘못된 기독교 교리와 예수님의 가르침이 왜곡되어 국민들에게 인식시켰다는 것이다.


당신이 어느 순간에라도 그분의 뜻에 따라 돌아가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영원 뒤에 무의식으로 숨어 있는 그분의 뜻에 따라 불려나온 피조물로서, 존재로서의 영원한 당신의 진정한 지위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의 의무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의 토지에 대한 지주로서의 의무, 당신의 사업에 대한 상인으로서의 의무, 황제, 장관, 또는 관리의 국가에 대해 가상의 의무로서가 아니라, 당신의 진정한 의무, 이 세상에 부름받고 이성과 사상을 부여받은 존재로서의 진정한 지위에 따르는 의무를 생각해보라. p 491


톨스토이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에서 권력을 거부한다. 전쟁을 거부한다. 국가를 거부한다.

이 모든 것이 신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이유로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정작 톨스토이의 나라인 러시아에서는 출판되지 못했었다고 한다.

'비폭력 무저항'을 말하고 있는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간디에게 영향을 끼쳤고 하여 '비폭력 민족해방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는 기독교에 관한 책이지만 더 넓게는 세계의 인류를 위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갔다는 논리가 아닌, 기독교 교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닌..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복음의 진리를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권력자들의 이익에 맞게 왜곡되어졌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행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진리와 얼마나 모순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100년 전에 쓰여진 톨스토이의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이지만 지극히 현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깨닫게 해주고, 기독교인들의 실상과 권력과 기독교, 국가와 기독교에 대한 관계와 모순등에 대해서도 알게 해준다.


간디에게 영향을 준 것처럼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가 많은 이들에게 좋은 깨달음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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