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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장동선 지음, 염정용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3월
평점 :
처음 책을 받고 화사한 색감에 눈이 즐거웠다. 뇌에 관한 책이 색감이 이렇게 고울 수 있다니. 분홍색과 하늘색의 색감만 봐서는 감성 말랑말랑한 에세이나 연애 책일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사람은 뇌 과학자다.
지은이는 한국 사람이다. 어머니는 북한 사람, 아버지는 남한 사람이다. 하지만 지은이가 태어난 곳은 독일 하이델베르크다. 태어나기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한국과 독일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외모 때문에 독일 사람에게 어디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았고, 한국에서는 외모가 아니라 행동 때문에(별명이 '자유인'이었다고 한다. 교칙을 신경 안 쓰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기 때문이다. 수업도 자주 빠졌고, 심지어 종일 수업에 나타나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튀었다고 한다.
이 책은 독일에서 먼저 발표가 됐다. 독일 전체 서점 판매량을 합산하는 슈피겔과 아마존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은이가 한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역자가 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문장이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난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데 어순이 우리말 어순과 달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것 때문에 내용이 바로 쉽게 이해가 안 되는 면이 있다. 문장을 살짝 꼰 것처럼 느껴진다. 지은이가 처음부터 우리말로 쓴 책이거나 번역을 좀 더 우리말 어순에 자연스럽게 바꿨더라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이 왜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인지는 지은이의 한국어판 서문을 보고 알았다. 우리의 뇌는 '사회적인 뇌(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기에 최적화된 뇌라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뇌가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뜻, 8쪽)'로 진화했기 때문에 실제 우리 뇌는 다른 사람들의 뇌를 복사해서 우리의 뇌 속에 넣고 늘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7쪽).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나의) 뇌 안에 또 다른 (사람의) 뇌가 있는 것이다.
책은 크게 9개의 장으로 돼 있다. 목차를 쭉 보고 관심이 가는 9장을 먼저 읽었다. '의지와 무관한 플라세보와 '나'보다 높은 '우리', 우리는 어떻게 자신과 남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장이다. 중간에 이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각 장의 내용이 독립적인 편이라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읽는 데 지장은 없다.
"난 어차피 그런 사람이야!"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때는 당당하게, 또 어떤 때는 반항적으로. 우리가 일정한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고 나면 우리는 마치 돌이킬 수 없는 '나'라는 존재가 생긴다고 가정합니다(중략). 우리는 마치 '나'라는 존재가 예전부터 늘 있어 왔고, 앞으로도 늘 그대로 존재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나'가 어디에 있나요? 알고 보면 우리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나'라는 존재는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지금 당신을 이루고 있는 '나'라는 자아는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합니다(309쪽).
지은이는 뇌의 유연성(뇌는 늘 예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지각하는데 매 순간 새로운 경험을 모으기 때문에 '나'는 매 순간 새로울 수밖에 없다)을 설명하며 이 말을 했지만 난 다른 프레임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지은이와 다른 프레임으로 이해해도 이 말에 동의한다. 1장에서 8장까지는 뇌 과학자가 알려주는 뇌에 관한 지식을 머리로 이해했다면, 9장은 경험으로 안 것이라 제일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