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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 - 짜릿한 자유를 찾아 떠난 여성 저널리스트의 한 달에 한 도시 살기 프로젝트!
마이케 빈네무트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내가 선택한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걸까? 내 마음대로, 의무도 없고 반복되는 일상도 없고 타협할 필요도 없는 삶. 1년 동안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산다면(8쪽)?
프롤로그에서 이 문장을 보고 멈춤(pause) 상태가 됐다. 자주 하는 생각, '평생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다', '평생 하고 싶은 건 그게 무엇이든 다 하며 살고 싶다'. 그럼 여행을 마음껏 다니고, 배우고 싶은 것도 실컷 배우고, 일은 최소한만 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고, 좋아하는 공연을 실컷 봐야지. 하지만 그건 아직 나의 현실이 아니다. 머릿속으로 미리 꾸는 꿈일 뿐. 그런데 이 책의 작가 마이케 빈네무트는 1년 동안 정말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았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분명히 운이 좋기도 했지만 꿈을 꿈으로 끝내지 않고 현실로 만든 건 작가의 선택 때문에 가능했다.
독일 출신의 저널리스트 겸 작가인 마이케 빈네무트는 2010년 독일의 유명한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에서 최종 우승을 하면서 50만 유로의 상금을 받게 됐다. 그리고 그 돈으로 몇 개월 뒤 세계 여행에 나섰다. 방송 도중 상금을 받으면 무엇을 할 거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한 달에 한 도시씩, 일 년 동안 열두 나라의 열두 도시에서 살아보겠다고 대답했는데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세계 여행을 꿈꾸는 것과 실천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인데 마이케 빈네무트는 꿈을 꿈으로 남겨두지 않고 현실로 만들었다. 현실로 만들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물론 기회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어찌어찌해서 왔지만.
도시는 그냥 마음 가는대로 정했다. 전에 가봤던 곳(런던)도 있고, 처음 가보는 곳도 있다. 말이 쉽게 통하는 곳도 있고, 외계어처럼 낯선 언어와 맞서야 하는 곳(상하이)도 있다. 시작은 호주의 시드니, 마지막은 쿠바의 아바나다. 원칙은 하나. 매월 말일에 다음 도시를 향해 출발하고 매월 첫날 새로운 도시에서 시작한다. 다른 원칙은 없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다. 가서 뭘 할지, 누구를 만날지, 어디를 둘러볼지, 어디서 잘지도 정하지 않았다. 우연이 새로운 우연으로 이어질 때마다 흔쾌히 받아들였다.
처음엔 자유가 부담스러웠어. 너나 나나 자유가 뭔지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오늘 하루를 무엇으로 채울지 상사, 부모, 가족,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로지 혼자 결정하는 삶 그리고 아무런 계획 없이 생활한다는 것. 물론 불안하고 초조하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신날 거야. 아무것도 잡지 않고 자유로운 손으로 걸으려면 제대로 훈련을 해야 할 거야. 언제든 붙잡을 수 없는 익숙한 난간도, 양옆을 안전하고 튼튼하게 막아주는 울타리도 포기해야 할 테니까(40쪽).
가진 건 22kg짜리 가방이 전부였다. 183센티미터의 큰 키로 세상을 마구 누비면서 작가가 만난 건 다른 나라, 다른 도시,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다른 음식, 다른 사람, 다른 날씨뿐만이 아니었다. 열두 도시에서 새로운 열두 개의 자신을 만났다.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이케 빈네무트와 인도의 뭄바이와 쿠바의 아바나에서의 마이케 빈네무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어떤 도시에서 만난 마이케 빈네무트는 마음에 들었지만 어떤 도시에서 만난 마이케 빈네무트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세계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여행한 것(367쪽)이다.
작가는 책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계획해서 세계 여행을 하게 된 건 아니라고, 인생의 다른 중요한 일들처럼 어쩌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됐다(217쪽)고 말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가 늘 좋은 걸 기대하고 기적을 기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50만 유로의 상금을 받았을 때 저금을 하거나 투자를 해 돈을 굴리는 대신 기꺼이 세계 여행을 택하고, 여행지에서 기꺼이 새로운 경험에 뛰어들고,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신이 받은 행운을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줬으니까.
작가가 독일 사람이라 유머감각도 기대가 안 되고 책의 제목이 좀 너무 뻔해서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유쾌하지만 심각하지 않고, 핵심을 찌르지만 잘난 척하지 않고, 가볍지만 자꾸 멈춰서 곱씹게 되는 문장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책. 이런 책을 우연히 읽게 되다니 나도 운이 좋은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