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우리민족이 나가야 할 바를 일깨워주는 책
오국사기 3 - 해원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당의 이세적이 이끄는 부대는 고구려 성을 동시에 쳐들어 온다.

'성들이 크게 놀라 모두 문을 닫고 스스로 지켰다'라는 사서의 기록처럼 고구려는 당황한다. 즉 하늘이 무너질듯한 아득함에 고구려군이 떨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개소문의 4만 지원병을 받은 요동성이 당에 함락당하면서 1차전은 당의 승리로 돌아간다.

안시성을 두고 평양성으로 가기 어려워 전 군을 이끌고 성으로 향한다. 지략이 뛰어난 양만춘에 계속 패하자 토성을 쌓게 한다. 그러나 그마져 무너져내려 당은 패배의 맛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참혹한 당의 모습이 될줄을 몰랐다. 연개소문은 당나라 퇴각부대를 북경근처까지 쳐들어가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북경 근처 황량대의 전설 : 황량대는 당태종이 모래를 쌓아 양식이라 속이며 고구려인이 쳐들어오면 복병으로 요격한 곳이다.

이로써 동아시아를 평정하려던 당의 천하관이 무너지고 고구려만 높여준 꼴이 되었다. 그후 백제가 내분으로 멸망하고 고구려도 연개소문의 죽음과 함께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작가는 마무리하며 우리 민족에게 넓은 대륙과 해양으로 나가 이상을 펼칠것을 요청한다. 역사에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다시 한번 도전하라는 것이다. 선조들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구려의 기상을 중심으로 전개된 소설이 아닌가 한다.

만주벌을 달리던 호태왕와 연개소문. 남해를 주름잡던 장보고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우리의 자랑스런 조상들임을 일깨워주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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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김균/창조적 자유인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이윤기가 새로 고쳐 번역한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를 최근에 읽었다. 새 번역에서 조르바는 만년의 피카소가 그린, 거침없이 자유분방하면서도 질서가 살아있고, 유치하면서도 완전한 춘화들 같았다. 원작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카잔차키스의 조르바가 원래 이랬는지 아니면 번역자의 적극적 개입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새 번역이 만들어낸 조르바는 끔찍히도 생생했다. 역시 이윤기였다.

1980년판 번역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젊었다. 선악의 잣대로 잴 수 없고 또 이성과 감성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더할 수 없는 속물이자 초인인 조르바, 조르바라는 한 인간의 생명력이 내뿜는 거칠 것 없는 자유와 근원 없는 모순들, 그 영웅적 신화는 마냥 놀라웠다. 내 젊음과 어우러지며 고양된 조르바는 한동안 경이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십수 년의 거리를 두고 새 번역을 다시 읽을 때는 좀 달랐다. 소설 속의 화자(話者)인 ‘두목’은 숙명적으로 문자세계에 속하는 인간이다. 현실세계에 갇혀 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감히 떠나지도 못하는, 그렇고 그런 지식인인 그는 자신의 ‘결여’인 조르바의 존재를 사랑하고 희구한다.

그러면서 조르바에게 다가가려 하나 다가가지도 못하고 또 결코 다가갈 수도 없다. 자신의 문자가 세운 세계가 허상인 것을 번번히 확인하면서도 그는 그 세계의 문지방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그와 조르바 사이의 만날 수 없는 간극이 소설의 밑바닥에 어떤 막연한 슬픔으로 풍경처럼 깔려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무의식중에 이 둘 사이의 거리에 내 스스로를 끊임없이 대입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챘고, 또 문자세계의 한 조각 그것도 좁디좁은 경제학에 감금돼 있는 현재의 내가 불현듯 타자로 느껴졌다. 그래서 착잡해지기도 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두목의 눈부신 넋두리 앞에서는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그 세계는 존재한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환상적이고 유동적이고 꿈이 짜낸 빛의 천이다. 보랏빛 바람(사랑, 증오, 상상력, 행운, 하느님)에 둘러싸인 구름이다. 이 땅의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도 이제는 암호 이상의 예언을 들려줄 수 없다. 암호가 모호할수록 선지자는 위대한 것이다.”

이 말에 혹한 나머지 이 구절을 다른 데서도 인용한 적이 있지만, 이 구절에서 나는 지식의 한계와 허망함을 읽는 동시에 역설적 안도감, 그것도 근원적 차원의 안도감을 함께 느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내 속의 경제학자에 대한 구차한 변명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두어도 한판의 바둑’이라는 말을 이 변명의 사족으로 덧붙인다.

김균(고려대교수·경제학)


동아일보  200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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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임지현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그 동안 우리 집 주차장을 쓰레기장으로 애용해주신 주신 주민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더 이상의 쓰레기장 개방을 중단하오니 이 점 널리 양해바랍니다.”

달포 전 학교에 갈 때의 일이었다. 서울 왕십리 전철역 앞 단층 벽돌집 담에 걸린 낡은 푯말로 나는 그 날 내내 기분이 유쾌했고, 그 아침은 아직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벽돌집 주인의 유머 감각이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내가 보아온 푯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접근금지’나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가위 그림과 함께 붉은 페인트로 칠해진 ‘소변금지’ 따위였다. 철조망이 쳐진 높은 담벼락이나 호젓한 골목길의 판자 담 위에 쓰여진 이 금지의 푯말들은 처음에는 작은 공포였고 나중에는 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조롱거리가 됐다.

◆ 화낼때도 좀 더 여유있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접근을 자제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급한 볼일을 자제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왕십리 사람들은 아마도 더 이상 그 벽돌집에 쓰레기 성원을 보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웃으면서 화내는 그 주인에 대해 예의를 차리지 않을 수 없었을테니….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열린책들)은 바로 그 벽돌집 주인의 유머 감각과 닿아있다. 이 세계적인 기호학자를 화나게 만드는 것들은 그의 일상 지천에 널려 있다.

마음에 안 드는 머리 모양을 한 아들의 친구 녀석들, 음식물 흘리기를 강요하는 비행기 기내식, 거스름 돈을 준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만국의 택시 운전사들, 인디언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백인 기병대에게 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서부 영화, 그리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과 같은 신문이나 주간지의 서평란 등등….

◆ '지식인싸움'을 논쟁으로 착각

이 세상의 그 모든 어리석음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낸다면 어리석음의 목록을 더 풍부하게 해 줄 뿐이다. 에코의 말대로 ‘어리석음에 대해 어리석지 않게 반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웃으면서 화를 내는 것이다. 세상의 어리석음에 대해 웃으면서 화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여유가 있다.

그것은 현명함이 어리석음에 대해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식만은 아니다. 인간사의 어디에나 끼어 있는 어리석음에 대해 현명함이 베푸는 예의이기도 하다. 예의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 해도, 원초적이고 폭력적인 차별보다는 바람직하지 않은가.

멱살잡이나 이전투구의 핏대 싸움을 논쟁이라 착각하는 이 땅의 나 같은 지식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임지현(한양대 교수·서양사)

동아일보  200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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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책]김성기 '구텐베르크 은하계'

흔히 고전은 무겁고 어렵다고 한다. 이는 물론 편견일 수 있지만 그간 독서 풍토에 비추어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실이다. 고전이라 불리는 책일수록 그것을 실제로 읽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고전을 읽는, 아니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인류 지성사의 정수를 체험하고 그에 힘입어 오늘과 내일을 위한 지적 비전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구텐베르크 은하계’(커뮤니케이션북스·2001년) 역시 고전에 속한다. 1962년에 출간되었으니, 이번 번역본과의 시차는 상당히 큰 셈이다. 우리 지식사회에서의 높은 인용 빈도나 인지도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미디어의 이해’와 더불어 맥루한의 커뮤니케이션 사상을 대표한다.

저자는 바로 이 책에서 ‘지구촌’이란 개념을 처음 창안했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예언자’로서 재평가되고 있다. 세계적인 전자잡지 ‘와이어드’가 그를 ‘수호천사’로 삼고 있지 않은가.

그에 따르면 세 가지 기술혁신이 인류 문명사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첫째는 알파벳 문자의 발명, 둘째는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 발명, 셋째는 1844년 마르코니에 의한 전신의 발명이다. 이 세 가지는 그 순서에 따라서, 인간의 문화공간이 최초의 청각공간에서 시각공간으로 바뀌고, 시각공간이 증폭 확장되다가, 다시 시각공간에서 청각공간으로 반전되는 기제가 된다.

이러한 줄거리를 이해하는 핵심 관건은 다음 진술이다. “표음문자인 알파벳과 인쇄술은 인간을 귀라는 마법의 세계에서 중립적인 시각의 세계로 옮겨놓았다”는 것. 알파벳 이전에 사람의 오관은 평형을 이루어 동시적으로 작동했고, 특히 귀는 360도 모든 방향에서 오는 소리에 열려 있었다. 그런데 인쇄술은 눈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모든 인식 질서를 시각적 양태에 맡겼으며 그로 말미암아 “두뇌와 심장, 예술과 과학, 시와 음악, 사고와 행동은 조각 났다”는 것. 인쇄문화의 인간은 ‘조각 난 인간’이라는 전언이다.

이 책은 500쪽 분량의 책이다. 이른바 ‘안 읽히는’ 고전인 탓도 있지만 정말 읽기 힘들었다. 그보다 실제 문제는 번역에 있다. 번역도 하나의 미디어라고 할 때, 과연 이 책은 맥루한의 사상을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가. 나는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교수신문’ 6월 11일자에서 한 언론학자는 “어려운 원문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이 매끄러운 점은 이 번역본이 자랑할 만한 미덕”이라고 평했다. 같은 책을 읽고 이렇게 다른 시각이 있다니! 참, 보는 눈은 다양한가 보다.

김성기(문화비평가)

동아일보  2001.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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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한수산 '백과사전에도 없는 바티칸 이야기'

‘백과사전에도 없는, 바티칸 이야기’

“거룩하신 교황님.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요, 제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황새가 저를 물어다 놓은 거라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도 또 황새가 물어다 놓았대요. 교황님. 다음 번에는 하느님과 잘 의논하셔서 우리 엄마가 꼭 정상분만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미국 보스톤에 사는 9세 소녀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보낸 전보였다.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라는 뜻의 라틴어 바테스(vates)에서 유래되었다는 바티칸(Vaticano). 로마의 테베레 강 서쪽 언덕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언덕에 자리잡은 점장이들이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점을 치라고 “바테스”라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로마제국 흥망사' 등 금서 400권

이 바티칸에 4000여권의 금서 목록이 있다. 그런데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나 에드워드 기본의 ‘로마 제국 흥망사’가 이 목록에 올라 있다. 더군다나 ‘1844년 스위스 연감’도 금서라는데는 웃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이 책들을 금서에 오르게 했을까.

이곳의 제일 어른이신 교황이 사는 숙소에는 대리석의 목욕탕과 TV 몇 대가 있고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방이 있다고 한다. 무슨 영화를 보시려고 그런 방까지 만드셨을까.

바티칸에서 발행하는 동전의 한 면에는 교황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다른 면에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좋다” 또는 “이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라고 새겨져 있다고 한다. 돈을 발행하면서 거기에 이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돈에다가 그렇게 가혹한 말을 써넣다니. 악의 근원을 지갑에 넣고 다녀야 하는 바티칸 시민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100여년간 화재 1건도 없다니…

그런 바티칸 시에도 20여명의 소방대원이 있고 지프 모양의 빨간색 소방차가 언제나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 세기가 넘도록 바티칸에서 화재가 난 일은 없었다니, 이 소방대원 만큼 행복한 직업도 없으리라. 누가 그런 말을 했더라. 강의가 없는 교수, 전쟁이 없는 군인만큼 행복한 직업은 없다고.

바티칸 시에서 기르는 모든 개는 등록을 하여야 하며, 언제나 끈으로 묶어 놓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등록된 개는 모두 5마리라고 한다. 내가 아는 어느 집에서는 개 3마리를 기르면서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던가. 이 여름에 바티칸의 개도 행복하리라.

바티칸에 얽힌 이런 이야기들은 내가 요즘 읽은 책 ‘백과사전에도 없는, 바티칸 이야기’가 떨어뜨려 준 즐거운 추억의 아주 작고 작은 비늘들이다.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그리고 이렇게 쓸모 있게 써낼 수도 있다니. 거실 탁자에 이 책은 놓아두고, 이따금 몇 페이지씩 넘겨 읽으며 나는 요즘도 더위를 잊는다.

한수산(소설가·세종대 교수)

 동아일보   2001.  0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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