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신완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필자는 ‘한국인은 어디서 온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아직도 매혹적인 주제로 생각하고 있다.

98년 사계절 출판사에서 번역돼 나온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는 이같은 나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책이다. 이 책은 1939년 르네 그루쎄가 쓴 ‘초원의 제국(L’Empire des stepps)’을 국내 출판사가 제목을 바꿔 내놓은 것이다.

이 책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초원을 배경으로 명멸했던 유목 제국들의 역사를 총괄하는 최초의 저작이다. 이에 비견할 만한 책으로는 룩 콴텐이 쓴 ‘유목민족 제국사’가 있으나 르네 그루쎄 책보다 40년이나 뒤에 집필된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룩 콴텐 책이 1984년에 먼저 번역 출간됐다.

유목 민족은 중국의 역사서에 기원전 8세기 스키타이와 흉노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유목 민족이 세운 제국은 18세기 몽골의 마지막 제국, 준가르 한국(汗國)이 멸망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유목 민족이 세운 나라로는 훈 돌궐 몽골 티무르 등이 있다. 두 권의 책을 꼼꼼이 읽어 본 독자라면 유목 민족의 흥망에는 일정한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유목 민족이 세운 제국들에게는 극소수의 지배집단과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탁월한 지도력은 초원을 떠돌던 잡다한 무리들을 일거에 강력한 전사집단으로 탈바꿈시키곤 했다. 그렇다면 이 소수의 엘리트들이 지닌 장점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그들은 대륙을 관통하는 초원이란 인프라를 지니고 있었고, 유통수단인 말을 소유하여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군사력과 물자를 이동시킬 수 있었다.

필자는 유목민족의 한 갈래로 한반도에 정착한 한국인들이 어디서온 누구인가에 대해 흥미를 갖고 이 책을 몇번이고 읽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유목 제국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강하게 연상시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카리스마를 요구하는 지도력, 초원 고속도로라는 인프라, 말로 상징되는 기동력, 신속한 정보 유통 속도 등. 이는 유목 제국을 온라인으로 대체하기만 한다면 20세기말 시작된 인터넷 혁명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그래서 필자는 한국인의 핏속에 남아 있을 유목 집단의 유전자가 지식정보 폭발의 새로운 세기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21세기 이 최첨단의 시대에도 여전히 역사는 미래를 비춰 주는 거울이다. (SBS 제작위원)


ⓒ 동아일보    200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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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책]엄정식 '솔페리노의 꿈'

꿈을 혼자 꾸면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스위스의 청년 실업가인 앙리 뒤낭이 1859년 이탈이아의 솔페리노 전투를 목격하고 품었던 인류애의 꿈이 오늘날 구체적인 현실이 되어 그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그는 4만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15시간 이상 계속된 이 전투를 목격하며 그 어떠한 명분으로라도 인간이 이러한 형태로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확신했다. 인종과 종교, 국가와 이념, 적과 동지를 초월해 진정한 의미의 휴머니즘을 실현하려는 이른바 ‘적십자 정신’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솔페리노의 꿈이 항상 무지개 빛을 발산하며 순조롭게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적십자인들은 지속적인 분쟁과 불화의 중심으로 달려가야 했으며 증오와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 끊임없이 휩쓸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특히 최근에 와서 세계화의 물결이 더욱 거세지고 다원주의의 도전이 한층 가열되는 현상을 나타내자 국가 권력은 약화되고 종교의 역할도 미약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개인의 원자화와 집단 이기주의, 광신적 열광주의가 혼재되어 인류는 또하나의 엄청난 재앙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적십자정신의 구현을 갈망하고 세계 적십자인들의 역할에 더 큰 기대를 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더구나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며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실마리를 좀처럼 풀어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 기대와 열망은 더욱 절박해질 수 밖에 없다.

대한적십자사의 서영훈 총재가 지적했듯이 ‘솔페리노의 꿈’(하늘재·2001)의 저자인 김혜남 한서대 교수는 ‘참으로 뛰어난 적십자의 일꾼’이었으며 특히 ‘한국 청소년 적십자운동에 큰 업적을 남긴 공로자’이다.

‘솔페리노의 꿈’은 국제인도법을 강의하고 있는 김 교수가 32년간 적십자에서 일하며 체험했던 숱한 추억을 모아 펴낸 책이다.

여기에는 적십자 정신이 무엇인지가 체험적으로 부각되어 있고 대한적십자 창립 이후 반세기 동안의 행적과 공과가 무엇인지 잘 그려져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분단된 조국의 나머지 반쪽을 인내와 연민을 갖고 상대해야 했던 기록이 자상하게 담겨져 있다.

이 책은 뒤낭이 지녔던 솔페리노의 꿈이 김 교수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또 얼마만큼이나 이 땅에서 이루어져 왔는지를 기록한 구체적인 문서이며 동시에 미쳐 못다부른 노래를 위한 서사시이기도 하다.

그는 나이팅게일처럼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보살피기 위해 어디든지 갔으며 때로는 잔 다르크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적지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적십자는 휴머니즘”이라고.

김 교수의 영광과 고뇌는 적십자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것이다. 이제 그의 횃불은 누군가에 의해서서 전수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가 도달한 지점에서 우리는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엄정식(서강대 철학과 교수)


ⓒ 동아일보   200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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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정운찬 '금융은 신음한다'

지난 여름 나는 한번도 듣도 보도 못한 유경찬씨라는 분으로부터 손수 쓴 책을 선물받았다. 그 동안 내 글에서 교훈을 얻었다는 증정사와 함께 말이다. 자주 듣지 못하는 칭찬에 약해서 일까? 나는 책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 버렸다. 그리고 재독, 삼독했다. 그만큼 유씨의 저서 ‘금융은 신음한다’(부·키,2001년)는 중요한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한국 경제는 지난 40여년간 고도성장을 구가해왔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기업의 수익률이 매우 낮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천문학적이다. 속은 약체이면서도 겉은 번지르르한 한국경제의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금융은 신음한다’는 이 수수께끼를 상당부분 풀어준다.

재벌과 금융은 냉철한 계산없이 끝없는 성장욕구를 발현하면서 과잉중복투자를 일삼았고 사업이 잘되면 과실은 자기가 챙기고, 안되면 손실을 사회보고 부담하라는 도덕적 타락 속에서 살아왔다. 한편 시스템을 관리, 감시할 책임이 있는 관리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채 구조조정의 캐치프레이즈 속에서도 게걸스럽게 확장만을 꾀하는 기업이나 은행을 수수방관해 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근본적 원인이었다.

유씨는 재벌, 금융, 정부가 어떻게 한국경제를 오늘날처럼 어렵게 만들었는가를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진단에 그치지 않고 처방도 내놓았다. 제5장 ‘금융산업발전의 초석’에서 ‘정책은 교통경찰이다’ ‘보수(補修), 보수(保守) 그리고 또 보수(risk management)’ ‘쉬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인사관리는 탄력적’ ‘상업주의 정신을 찾아서’ 등을 통해 한국금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경제학자들은 현실을 잘 모르고 탁상공론만을 일삼는다는 말을 듣곤 한다. 반대로 시장참여자들은 경제학자들로부터 논리적 일관성도 없이 목전의 이익만을 위해 목청을 높인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그래서 이들간에는 의미있는 대화가 성립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책은 한불종금에서 일했던 유씨의 풍부한 현장경험과 탄탄한 논리를 모두 구비하고 있어 이런 갈등을 푸는 데 적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갈브레이드의 ‘금융환상의 약사(略史)’에 비견될 만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학기 서울대에서 ‘화폐금융론연습’의 교재로 쓰고 있다. 굳이 옥의 티를 지적하라면 외국자본의 역할에 대해 실제보다 후한 점수를 준 것 정도라고나 할까. 그리고 엄격한 교정을 피해 나간 오자 몇 개가 눈에 거슬린다. 많은 사람이 읽고 금융에 관한 논의의 장을 넓혔으면 좋겠다.

정운찬(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 동아일보   200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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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이재웅 '합리적인 미치광이'

벌써 2001년이 저물어간다. 요 몇 년간 인터넷을 비롯한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의 변화는 나처럼 변화의 핵심에 있는 사람조차 정신을 차리기 힘들 만큼 급격했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의 주도권을 가지려고 서로 무한경쟁을 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경쟁의 폐해가 가져온 시장경제 체제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타개할 대안을 찾아야 할 시기다.

‘합리적인 미치광이’(중앙M&B·2001)의 저자 아탈리는 그 대안으로 ‘형제애(fraternite)’를 제시한다. 형제애를 바탕으로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윈윈 게임’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그는 “경쟁이 지배하는 경제에서는 남이 좋지 않아야 나에게 이익이 되지만 다가올 사회에서는 남이 잘 되도록 돕는 데에서 이익을 얻게 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는 혼자서 모든 정보와 경제적 자원을 독점해야만 이익이 극대화되었으나 앞으로 다가올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각자가 타인의 성공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결집시키면서 더욱 풍요로운 가치를 지니는 것은 포털사이트의 카페나 메일서비스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탈리의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하는 서비스와 수 천만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메일을 교환하는 서비스, 어디가 더 풍요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탈리는 “형제애란 이처럼 남이 행복해지도록 돕는 데에서 자기의 행복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주장하는 유토피아란 이처럼 합리적인 주체들이 열정과 광기를 가지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합리적인 미치광이”들이 주도하는 곳이다.

아탈리는 스스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가 유토피아를 동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말한대로 많은 사람들이 기술과 상관없이 각각의 다양성과 이타주의를 추구하면서 자신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이상사회는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나 역시 아탈리처럼 기술문명의 발전이 곧 이상향을 실현시킬 것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본성이 잘 발현되고 각각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자신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이상향이 건설되었으면 좋겠다. 네트워크 사회가 유토피아를 향한 좋은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하지만 때로는 아탈리의 형제애론이 희망사항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기도 한다. 합리적인 사람들도 많고 미치광이도 많지만 “합리적인 미치광이”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현 시대를 좀 더 잘 이해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미래에 대한 차가운 고민을 시작하는 단초를 제공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재웅(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 동아일보   200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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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의 마지막 성화주자 캐시 프리먼을 기억하는가. 호주 원주민(애버리지니) 출신 육상 선수인 프리먼은 4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호주 국기와 함께 원주민기를 들고 트랙을 돌았다. 유럽인의 호주 이주 이래 200여년 동안 질병과 학살, 가난과 불이익 속에 고통 받았던 원주민들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올림픽의 스타 프리먼은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호주가 취한 격리정책 때문에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도대체 호주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 영화 속에 그 해답이 들어 있다.

●집으로…엄마 찾아 대장정

호주에선 1910년부터 70년대까지 ‘동화정책’이라는 명목으로 10만명에 이르는 혼혈 애버리지니 아이들을 가족과 떼어놓았다.

백인의 피가 섞인 아이들을 ‘문명화’한다며 그들을 수용시설에 모아놓고 영어와 기독교 신앙을 강제로 주입시켰던 것. 원주민 문화와 언어를 빼앗긴 그들은 하녀 등 백인 사회의 하층민으로 살아가야 했다.

이 영화는 수용시설을 탈출한 아이들의 실화를 토대로 호주 원주민 역사의 한 단면을 서사적으로 그려낸다. 서부의 외진 마을에 살던 몰리, 데이지, 그레이스 등 세 소녀가 강제로 엄마로부터 격리되는 첫 장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라고 했던가. 눈앞에서 아이를 뺏긴 한 원주민 엄마는 자기 머리를 돌멩이로 찧으며 울부짖는다.

동물처럼 우리에 갇혀 여행한 끝에 수용시설에 도착한 아이들. 그들은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울 뿐이다. 엄마 찾아 길을 떠난 그들은 2400km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이 희망이다

지도도, 나침반도, 식량도 없이 떠난 세 명의 아이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한 것은 가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그리고 ‘토끼 울타리’였다.

‘토끼 울타리’는 폭발적으로 번식한 토끼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세운 것. 메마른 황무지와 사막을 거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울타리. 가도 가도 끝없는 광활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그 울타리를 따라 아이들이 타박타박 걷는다. 막대기처럼 가는 다리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는다.

영화에선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원주민 소녀들이 억압에 굴하지 않는, 지혜롭고 용감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가식 없이 그려냈다.

● 귀향 그 이후

귀향했다고 모든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장면의 해설을 통해 어른이 된 몰리는 아이 둘을 낳고 수용소로 끌려가고 또 자신의 아이들을 빼앗겼음을 알게 된다. 이 모든 사연이 실제 이야기란 점에서 여운은 더 길다.

마치 우수한 종자를 가려내 사육하듯, ‘혼혈 피의 희석’을 내세우며 아이들의 피부색을 검사하고 하인으로 길들이는 백인들. 이 영화는 백인들의 비인간적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적대감이나 분노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광활한 대지를 담은 화면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험난한 여정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백인들에게 유린당한 원주민들의 삶은, 그래서 더욱 강한 진실의 힘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17일 개봉. 전체 관람 가.

고미석기자

ⓒ 동아일보    200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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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2006-10-18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찾아 삼만리 처럼 아프고 슬픈 이야기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