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박명진 '신의 역사'

◇ 근본주의의 파괴성

뉴욕 사태로 새로이 부각되기 시작한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그의 논지를 비판한 뮐러의 ‘문명의 공존’을 동시에 읽다가 잡게된 책이 환속한 수녀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역사’(‘A History of God’·동연·1999)이다.

헌팅턴의 주장은 의문투성이였다. 게다가 그의 책 뒷부분에서, 서구 문명을 수호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이 정치, 군사, 외교 등 다양한 차원에서 어떻게 공조 해나가야 하는가 하는 구체적 정책 대안을 내놓은 대목에 이르면서 관심은 뮐러 쪽으로 갔다. 결국 냉전이 종식된 이후 미국이 계속 패권을 장악해 나가기 위한 전략을 학술적으로 포장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뮐러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보인 것이다.

모든 종교의 어두운 단면

그러나 뮐러의 경우도 헌팅턴의 약점에 대한 비판은 조목 조목 훌륭했지만 그의 문명 공존 이론이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못되었다. 헌팅턴이나 이번 사건이나 종교적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신의 역사’는 주로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로 이어지는 셈족계열의 유일신교를 대상으로해서 신의 개념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가를 정리한 역사서이다. 상당히 방대한 자료와 철학 신학 이론들을 살피고 있어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나 역시 완독하지는 못한 상태에서 이 글을 쓴다.

그러면서도 여기에 소개 하는 것은 신의 개념이나 믿음이 사회 발전 단계에서 어떻게 인간의 필요에 따라 달라져 왔는가를 보여주면서 세 유일신 종교의 종교적 근본주의 성격이 결국은 어떻게 같은 것인지,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재앙적인 범죄에 이념적 근거로 남용되어 왔는지를 밝혀 주는 대목이 특히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배타적 신앙은 비극 초래

1970년대부터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세계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근본주의들은 문자적 성서 이해와 배타적 신앙관을 무기로 한 정치적 형태의 신앙운동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보다는 그들이 ‘신의 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을 단죄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반정부 운동과 이슬람 반대자들의 처형에, 유대 근본주의자들은 아랍인들을 폭력적으로 추방하고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 국가로 건설하는데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헌팅턴은 이번 뉴욕사태 자체는 문명의 충돌로 볼 수는 없으나 사태 수습의 여하에 따라서는 문명의 충돌로 갈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은 반미 의식으로부터 시작된 테러가 반기독교적 움직임으로 발전되어 종래는 그것이 기독교 근본주의를 부추기는 시나리오로 가는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헌팅턴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은 결국 두 종교 문명권의 근본주의가 대세를 잡기 전에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책은 이슬람의 근본주의만을 알아온 우리에게 기독교의 근본주의가 십자군 전쟁 이후 얼마나 파괴적인 역할을 해 왔으며 경계해야 할 대상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점에 있어서도 흥미롭다.

박명진(서울대 교수·언론학)


ⓒ 동아일보   2001.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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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김윤식 '당신들의 천국'

◇ '모두'를 위한 천국

우리의 대학 신입생들은 우리 나라의 어떤 소설에 흥미를 가졌을까. 이 물음을 향해 나는 30여년 동안 그들과 함께 걸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신입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대할 때 느꼈던 그 가슴설렘을 지금도 나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동안의 강의 내용의 시대적 흐름이랄까 세대적 관심사랄까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어느 수준에서 분석될 수가 있다.

이 강의에는 꼭 과제가 주어졌다. 장편소설 10편을 약간의 서지적 해설과 더불어 제시하고 그 중 한 편을 택해 각자의 독후감을 적은 리포트를 제출받는다. 가장 빈도수가 높은 3∼4편을 뽑아 발표를 시킨 다음 토론케 하는 방식이어서 나는 다만 사회자의 처지에 머물곤 했다.

◇ 시대에 따라 쟁점도 바뀐다

70년대 학번의 제일 큰 관심사는 이광수의 ‘무정’(1917년작)이었고, 80년대 학번은 염상섭의 ‘삼대’(1931년작)였고, 90년대 학번의 그것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5년작·열림원·2000)이었다.

‘무정’의 쟁점은 작가의 친일문제였고, ‘삼대’의 그것은 중산층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였다. 토론이 두 편으로 갈라지면서 격렬해지기 일쑤여서 사회자의 중립적 처지가 두 편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곤 했다.

소록도 병원장으로 현역 조백헌 대령이 부임해서 벌이는 천국만들기의 의욕과 그 실패과정을 그린 ‘당신들의 천국’의 경우는 이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어떻게 하면 ‘나’의 천국도 ‘당신들’의 천국도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만들 수 있겠느냐에로 토론의 방향이 일제히 향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들의 눈망울이 하도 진지하기에 나는 그들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1871년작) 속에 나오는 저 유명한 ‘스따브로긴의 고백’장을 읽어보라고 섣불리 권할 수 없었다. 이른바 천국 건설이란 인류가 발명해낸 가장 황당무계한 망상이라는 것, 그럼에도 모든 민족은 이것 없이는 살기는커녕 죽을 수조차 없다는 것을 도스토예프스키가 역설적으로 설파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하는 소설의 의미

그 대신 나는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앞과 뒤에 각각 놓인 다음 두 가지 텍스트를 유의해보라고 당부해 마지않았다. 앞에 놓인 것이 이규태 씨의 논픽션 ‘소록도의 반란’(1966·사상계 발표)이며 뒤에 놓인 것이 인간 조창원 대령(훗날 ‘허허 나이롱 의사, 외길도 제길인걸요’의 저자)이다. 작가 이청준 씨는 전자에 촉발되어 붓을 들었고 후자(인간도 꼭 같이 텍스트이다)의 도움으로 소설을 완성시켰다.

요즘 나는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해본다. 소설이란 과연 무엇인가라고. 가장 정밀한 논픽션과 가장 현실적인 인간 모델 사이에 소설이 놓여 있지 않겠는가. 이 세 가지 차원을 동시에 음미할 때 비로소 소설은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 아닐까.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 동아일보   200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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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리콴유의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

싱가포르를 180년간이나 식민통치했던 영국은 싱가포르에게 살길을 열어주지 않은 채 철수했고, 말레이시아는 연방 중 하나로 살아남기를 열망하는 싱가포르를 냉혹하게 추방했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억지 독립을 했지만 내우외환이 겹쳐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젊은 지도자 리콴유(李光耀)는 ‘생존의 길은 일류국가를 만들어내는 방도 이외는 없다’는 신념으로, 부패를 몰아내고 질서를 확립한 터전위에 막강한 지도력으로 국민적 총 역량을 발휘케 하여 20여년 만에 일류국가의 꿈을 실현했다.

리콴유의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문학사상사·2001년)은 그 시련을 넘어 영광에 이르는 역정(歷程)을 상세하게 기록한 역저로 평가되고 있다. 흔히 ‘일류국가 만들기’를 위한 세계 유일의 교과서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이 책은 부드럽고 박진감 넘치는 표현으로 방대한 분량의 기록인데도, 소설처럼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자신과 만나 상호 관심사를 논의했던 역대 한국의 대통령과의 비화도 공개하고 있어 자못 관심을 갖게 한다. 특히 어떤 경우든 끝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는 극한투쟁의 관습화 경향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토착화되지 못했다는 저자의 지적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충고라고 생각된다. 리콴유가 40년간이나 국정의 최고 지도자 자리를 독점하고 있지만, 국민적 비판이나 저항없이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인격과 예지와 능력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답을 이 책 속에서 얻을 수 있었다.

또 리콴유가 30년 이상 국제 정치 무대에서 굵직굵직한 이슈 해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예를 들면 리콴유는 미국과 중국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때 닉슨의 자문역을 하며 깊이 관여했고, 중국의 실용주의 노선 전환 때는 덩샤오핑(鄧少平)의 개인교수 노릇을 했다. 또한 미국과 이라크간의 걸프전쟁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아랍세계에 대한 포괄적 정책수립에 관한 자문을 하기도 했다. 1980년 새해 벽두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당시에는 본으로 날아가 영국과 독일의 총리와 전 현직 미국 국무장관을 한 자리에 회동케 해 소련을 아프카니스탄에서 격퇴시켜야하며 그를 위한 아프카니스탄 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결의를 가다듬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의 활동으로 미루어 어쩌면 지금쯤 뉴욕 테러사태로 빚어진 난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처럼 몰래 리콴유를 불러 훈수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박춘호(부경대 석좌교수·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 동아일보   200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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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신경숙/은둔 들여다 보기

요즘, 나는 화집 들여다보는 재미에 들려있다. 며칠 그러다보니 내 책상엔 화집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에곤 실레나, 에드워드 호퍼, 클림트, 브랑크시의 마이아스트라 등등을 들여다보다가 20세기 미술의 모험을 뒤적이기도 하고 그랬다. 해가 저물 때 화집을 들여다보고 있느면 사방이 적막한게 괜찮았다.

그러는 동안 병원에 며칠 다닐 일이 있었는데 담당의사의 진료시간에 맞춰 오전이나 오후 한차례 집을 나설 때마다 가방 속에 넣어갔던 책이 ‘예술가로 산다는 것’(마음산책·2001)이었다. 미술평론가인 박영택이 산 속에 혹은 폐교에 숨어들어 세상과는 단절된 채 오로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찾아가 그들의 세계와 그들의 삶을 기록해놓은 책이다.

오로지 그림으로밖에 자신을 내세울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삶은 간절하고 때로는 처절하다. 세상이 그들을 피해 가는 것인지 그들이 세상을 피해가는 것인지, 낯설고 빈곤함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오로지 그림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는 그들의 뜨거운 열정을 나는 간호원의 호출을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 읽었다.

비록 독서로일 뿐이지만 이름 없는 화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일은 타자의 낯선 삶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도 들었다. 그들은 경주 산 속의 사찰 소유지로 되어있는 옛 서당자리를 작업실로 쓰고 있거나, 그만한 거처도 없이 전시 비용을 벌기 위해 뱃일을 나가거나,아니면 시골의 초등학교 교실 한 칸에 들어앉아 있으므로 여간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 어떤 이는 혹, 세상의 인간들과 교신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기미조차 보인다.

어느 순간 나 자신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들의 삶이 정녕 낯설기만 한 것이냐? 그들의 몰두, 그들의 불안, 그들의 남루는 서로 어우러져 종소리를 만들었다. 우리가 때때로 간절히 귀기울여 듣고 싶은 그 종소리 말이다. 종은 보이지 않지만 그 소리는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울려 퍼지기 마련이다. 그들은 은둔함으로서 아름다운 종이 되었다. 시간의 부식을 견디고 살아남아 머나먼 타자의 내면 속에 그 종소리는 울려 퍼질 것이다.

오로지 그림으로만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그들은 강변하지 않는데도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이루고 허물고 다시 구축하며 절대고독에 놓이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거슬러내려 오는 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예술가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내게 그들의 세계를 탐색하는 일은 고통이며 성찰이며 숙연함이었다. 간호원이 내 이름을 부르는 줄도 모른 채 김근태나 김명숙의 세계 속으로 쑥 빠져들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신경숙<소설가>


ⓒ 동아일보   200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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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한젬마 '철학의 세계'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지 않던가. 생각하기에 존재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저 먹고 자고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하루살이 인생이 아니라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거듭 돌이키면서 살아야하는 삶 아닌가.

예중, 예고와 미술대학을 거쳐 대학원까지 무난하게 미술가의 정도를 걷던 내가 세상을 홀로 짊어지어야 하는 벌을 받은 양 ‘생각하는 짐승’이 됐던 1994년을 잊을 수 없다.

“젬마야 넌 왜 미술 작업을 하니? 궁극적으로 네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뭔데?” 라는 질문과의 충돌.

아니. 내가 그럼 생각없이 살았다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받다니…. 매우 불쾌하고 용납하기 힘들었지만 이내 무지의 문이 열리며 비집고 들어오는 새로운 인식의 빛을 막을 수는 없었다. 거부하기에 너무나 강렬했고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고통스러운 무게였다.

“그래, 내가 왜 그림을 그리지? 그림만이 내 인생의 전부인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상과 삶의 목적에 대한 갈증을 더해가며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종착한 곳이 바로 철학이었다. 대형서점의 철학코너에서 이것저것을 비교하고도 내가 선택한 책이 바로 ‘철학의 세계’(강성률 지음·한울·1994).

이 책은 철학을 크게 서양과 동양으로 구분하고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흘러간다. 서양철학은 고대철학, 기독교를 중심으로한 중세철학, 합리주의 경험주의 계몽주의 칸트 독일관념론을 총괄하는 근세 철학, 마르크스 쇼펜하우어 프로이트 니체 등의 거장의 철학세계를 간파하는 현대철학을 포함했다. 동양철학은 중국과 인도의 지역적 구분으로 읽어내어 그야말로 철학의 세계를 총망라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얻은 큰 수확을 꼽는다면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접하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젬마’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천주교라는 굴레에서 가지고 있었던 내가 타종교에 대한 편견을 벗고 진정한 종교의 의미에 접근하는 기회를 주었다. 비록 각 철학자나 학파들에 대해 깊이 있는 접근에는 못미치지만 인생을 알고자 하는 목마른 문외한에게 단숨에 여러 사유를 맛보게 해주는 철학뷔페 상차림과 같은 책,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닌 인생과 예술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마련해준 책이다.

오랜만에 색바랜 추억의 책장을 다시 넘겨본다. 드로잉북을 방불케할 정도로 곳곳에 줄친 문장을 쓰다듬고 구석구석 남긴 독백의 흔적을 더듬으며 당시 간절하고 의욕적이었던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해본다.

한젬마(화가)


ⓒ 동아일보   200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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