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는 한껏 멋있는 체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통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연출한 로베르트 로드리게스 감독이 혁명, 탐욕, 그리고 복수를 소재로 만든 액션영화로 ‘데스페라도’(1995)의 속편 격이다.

부패한 CIA요원 샌즈(조니 뎁)는 아내를 잃은 아픈 기억을 갖고 조용히 살아가던 엘 마리아치(안토니오 반데라스)를 끌어들인다. 샌즈는 멕시코의 마약왕 바리요(윌리엄 데포)의 쿠데타를 막기 위해 그의 오른팔인 마르퀘즈 장군을 제거해 줄 것을 요청한다. 마르퀘즈는 마리아치의 아내를 죽인 원수. 마리아치는 마르퀘즈를 찾아 나선다.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B급 영화’의 이미지를 기묘하게 풍기는 세 명의 등장인물이다.

▽엘 마리아치(안토니오 반데라스)=주인공 마리아치를 최대한 멋있게 보여주는 데 이 영화의 초점이 있다. 마리아치는 수십 개의 총구가 겨누어진 순간에도 모래바람에 단발머리를 날리며 우울한 멜로디를 연주한다. 악당을 무참히 처치한 뒤 두 눈을 감고 성호를 긋는가 하면,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휙’하고 휘파람을 불어 악당들에게 자기 존재를 알린다.

이런 표정과 연기는 반데라스의 장기지만, 반대로 그를 가두는 감옥이기도 하다. 그는 좀 더 창조적이어야 했다. 출연 장면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일까’하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자연히 이야기 구조는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샌즈(조니 뎁)=부패한 CIA 요원의 이미지는 뻔하다. 그러나 조니 뎁은 장난기와 냉소, 낭만이 합쳐진 표정으로 참신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샌즈는 단 한 번도 슬픈 표정을 짓지 않지만 존재 자체가 슬퍼 보인다. 조니 뎁의 힘이다. 그의 재능을 얄팍한 시나리오가 따라오지 못한 감이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샌즈가 벌이는 ‘1인 퍼포먼스’. 그가 입은 티셔츠에는 ‘CIA’란 글자가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다. 정체를 보란 듯이 내보이는 장난기다. 악당 바리요에 대한 공격 작전을 멕시코 특수요원 아헤드레즈와 상의하는 장면에서는 ‘난 바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었다. 아헤드레즈 요원이 악당 바리요의 딸임을 전혀 모르는 자신을 비웃는 셈이다.

▽빌리 챔버스(미키 루크)=두목 바리요의 측근인 빌리는 애완견 치와와와 한치도 떨어지지 못하는 악당이다. 전직 CIA 요원의 간단한 협박과 사기에 나약하게 넘어가는 인물. 그가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해야 “내 전공은 이런 게 아닌데”하면서 끈으로 남의 목을 조르는 것 정도다. ‘엔젤 하트’ ‘나인 하프 위크’ 등에서 악마적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미키 루크가 개성 없는 조연으로 전락해 버려 슬프다. 24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 동아일보         200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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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2006-10-18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바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었다.
티셔츠에는 ‘CIA’란 글자가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다.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장한나 '안나카레리나'

▨안나 카레리나

저는 가능한한 소설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아직 어려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소설이 주는 감동은 연주에도 좋은 영감을 줍니다. 절 가르쳐주셨던 로스트로포비치 선생님으로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를 선물받은 적이 있었지요. 제가 열두살 때의 일이었어요. 로스트로포비치 선생님은 이 책을 제게 주면서 “좋은 소설을 읽으면 마음이 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꼬마여서 뜻을 몰랐지만 지금은 알 듯 합니다.

얼마전 한국 공연을 앞두고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를 다시 읽었습니다. 세상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입니다. 13세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인데 이번에 세 번째가 읽었습니다. 다시 봐도 새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같은 악보도 연주할 때마다 다른 곡이 되는 것처럼요.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안나의 심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설명하는 부분었습니다. 정숙한 부인인 안나가 청년장교 브론스키를 만나서 고민하다가 사랑하게 되고, 금지된 사랑 때문에 비극을 맞게 됩니다. 이 소설에는 그 감정의 변화가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마치 톨스토이가 저를 안나의 머리 속으로 밀어넣어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순수한 사랑이 자신을 죽이는 독약이 돼버린 결말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소설 ‘제인 에어’도 좋아하지만 ‘안나 카레리나’를 훨씬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인 에어’에는 제인만 있지만 ‘안나 카레리나’에는 안나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브론스키를 사랑했던 왕녀 키키, 안나의 남편인 카레닌 등 여러 인물들이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만나고 헤어집니다. 사람은 독립적인 인격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딪치며 살아간다는 점을 제게 깨닫게 해줍니다.

제가 두 번째로 이 소설을 읽은 때는 1996년 1월 슈만 첼로협주곡 연주를 준비를 할 때였습니다. 곡 해석을 하면서 안나의 심리 상태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진 2악장을 연주할 때 저는 만날 수 없는 아들에 대한 안나의 모정을 떠올렸습니다.

‘안나 카레리나’는 톨스토이가 자식을 둔 여인이 기차에 치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충격을 알리기 위해 썼다고 합니다. 저는 ‘안나 카레리나’를 통해 톨스토이를 알게 됐고 ‘톨스토이 예술론’에 깊이 빠져들게 됐습니다.

‘톨스토이 예술론’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예술이란 예술가가 경험으로 느낀 것을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한 것이다”라구요. 저는 쇼스타코비치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23일 독일에 도착했습니다. 독일 연주회에서는 제가 쇼스타코비치 음악을 통해 느낀 감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습니다.

장한나(첼리스트)


동아일보  200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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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김호기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

한 개인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 가운데 가장 커다란 것이은 무엇일까. 직업의 선택이나 죽음의 공포일까. 이런 것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다름 아닌 이성과의 사랑일 것이다. 숱한 유행가와 드라마 주제이기도 한 사랑은 여전히 우리 인간에게 놀라운 공존의 감정과 견디기 힘든 상실감을 동시에 안겨주기 때문이다.

사랑이 이토록 중요한 인생사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사랑은 자아와 사회의 관계를 탐구하는 사회학에서 의미 있는 주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학자들이 태만했다기보다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코드화되어 있는 사랑을 다루기에는 건조한 사회이론이 역부족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새 학기 강의를 위해 다시 읽어 본 앤소니 기든스의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새물결·1996년)은 바로 이런 사회학의 한계에 도전하는 야심만만한 책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번역본의 부제인 ‘친밀성의 구조변동’인데,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원제목과 부제가 바뀌어졌다.

이 책에서 기든스가 겨냥하는 것은 오늘날 극도로 혼란스러운 사랑의 규범적 기반을 새롭게 모색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랑을 이렇게 커다란 혼돈 속에 빠지게 했을까. 이에 답변하기 위해 기든스는 ‘친밀성’, 즉 사랑과 섹슈얼리티의 장구한 역사적 변화를 추적한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18세기 로맨스의 ‘낭만적 사랑’과 근대 과학 발전에 따른 재생산(출산)과 사랑의 분리다. 전자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현대적 사랑의 원형을 이루었다면, 후자는 섹슈얼리티를 사랑의 핵심 요소로 부각시킴으로써 사랑의 아노미를 낳아 왔다. 오늘날 누구나 한 두 번 사랑으로 불안의 감정과 정서적 고통을 겪는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사랑의 혼란은 ‘후기 현대’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딜레마의 하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혼란스러운 사랑에 대한 기든스의 대안은 ‘합류적 사랑’이다. 합류적 사랑이란 두 사람의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공존의 감정을 교환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함께 형성해 가는 사랑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 차이 속에 동일성을 만들어 가고, 동일성 속에 차이를 승인하는 것이 사랑의 새로운 규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의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는 이 원칙은 애정과 자발적 희생으로 포장돼 있으나 실은 가부장제와 미시적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 우리 시대 일그러진 사랑과 일상생활을 민주화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문득 떠오른 것은 김수영이 쓴 ‘사랑’이란 시다. 김수영은 진정한 사랑이란 ‘불안한,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을 사랑하는 것이라 노래한다. 상대방의 불완전성을 깊이 이해하고 평등한 공존의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기든스의 메시지이자 ‘감정의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원제 ‘The Transformation of Intimacy : Sexuality, Love and Eroticism in Modern Societies’(1992년)

김호기(연세대교수·사회학)

동아일보  200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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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종교는 움직이는것 '예수는 없다'

얼마 전 영국의 BBC 방송국에서는 예루살렘 부근에서 발굴된 1세기 팔레스타인 사람의 두개골을 바탕으로 역사적 예수에 가까운 얼굴 모습을 재현해 낸 적이 있다. 뭉툭한 코에 까만 곱슬머리, 짙은 갈색의 피부를 한 전형적인 중동의 양치기 모습이었다. 그런 예수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리의 뇌리에는 예수라고 하면 무조건 파란 눈에 금발머리를 한 백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란 눈에 금발머리를 가진 그런 예수는 없다.

배타성 반성하는 추세

그런데 그림으로 그려진 예수만 그런가? 사상이나 이론에 그려진 예수의 상은 어떤가?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종교는 ‘예수 자신의 가르침’인가 아니면 ‘예수에 관한 서구 신학자들의 가르침’인가? 우리가 지금 따르고자 하는 것은 ‘예수의 말씀’인가 ‘예수를 대리한 교회의 말씀’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현재 서구의 신학자들도 종래까지의 관점이 너무도 배타적이고 정복주의적 시각에 입각해서 형성된 것임을 반성하고 예수가 가르친 원래의 메시지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더욱이 동양인의 입장에서는 예수를 파란 눈에 금발머리를 한 백인의 모습과 동일시하던 그 순진성에 의문을 던져보는 일은 하등의 죄 될 것이 없다.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과 오강남 교수는 ‘예수는 없다’(현암사, 2001)에서, 종교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상식과 독선을 꼬집는다. 종교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항상 주위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것인데, 어느 하나의 관점만을 고집하며 순수와 정통을 고집한다면 이는 독선이라는 것이다.

근본주의-정통파 비판

어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입장에 의해 만들어진 교리에 입각해서, 자신이 신봉하는 관점만을 진리라고 여기고 여기에 맞지 않는 관점은 이단이라고 배척해 버리는 태도는 영적 오만과 신학적 무지라는 것이다. 자기들만 진짜 순수한 진리를 신봉한다고 하는 정통파일수록 이런 오만과 독선은 더 심하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오만과 독선을 가진 사람이 너무도 많다. 자기가 채택한 믿음만을 진리라고 옹고집하는 근본주의자들은 비단 종교의 영역에서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눈에 띈다. 아직도 가정의 중심은 남성이어야 한다고 믿는 남성 근본주의자, 아직도 냉전시대의 논리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이념 근본주의자, 세상은 오직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시장 근본주의자 등 수많은 근본주의자가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열린 사회가 되려면 이러한 근본주의적 독선부터 청산돼야 할 것이다.

이승환(고려대 교수·철학)



동아일보  200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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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이해인 /‘날마다 한 생각’

◆ 늘 새로운 간디 어록

주문한 몇 권의 책을 찾으러 내가 동네 책방에 가던 날. 전 세계가 경악할 충격적인 뉴스를 듣고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 시키려는데 자그만 책 하나가 눈에 띄길래 얼른 사왔다.

20년 전 법정 스님이 소개로 한 번 읽긴 했으나 개정판으로 새로 나온 간디의 ‘날마다 한 생각’(함석헌 옮김·호미출판사·2001년)이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로부터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칭호를 받은 그답게 온 생애를 큰 사랑과 진리의 삶에 헌신했던 간디의 면모를 잘 볼 수 있게 해 준다.

“죄에 크고 작음이 어디 있는가? 죄는 죄이지 달리 생각하는 것은 자기 속임이다.”

◆ 음미할수록 깨달음 새록새록

“폭력은 결단코 버려야 한다. 폭력이 성취하는 듯 보이는 선은 오직 외적인 선일 뿐이요,폭력이 가져 오는 해로움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단숨에 읽기 보다 두고 두고 음미해야 할 이 어록들은 간디가 1944년 11월20일부터 1946년 10월10일까지 2년간 그의 제자 아난드 힝고라니에게 매일 한 개씩 보낸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 한다.

이미 반세기가 지났으나 이 어록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족의 지도자로서 때로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비폭력의 저항으로 일관했던 간디, 철저한 무소유의 삶과 따뜻한 인류애에 불타던 그의 외침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깊이 귀기울여야 할 화두가 아닐까?

◆ "반복-미움의 칼 내려 놓으라"

무례하고 극단적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습관적인 언어 폭력, 가장 사랑해야할 사람들끼리 사소한 일로 반목하게 만드는 미움의 칼을 어서 내려 놓으라고 그는 오늘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악을 몰아 내고 선을 키우는 노력을 날마다 새롭게 거듭하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큰 일을 생각하지 않고 선한 일을 생각 해야 한다. 우리의 적은 우리 자신, 즉 우리의 욕망이다.”

688개로 정제된 간디의 보석조각 같은 글을 묵상하면서 진정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싶은 가을이다. 단순하지만 힘 있는 간디의 어록들은 폭력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우리 각자가 평화의 일꾼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들을 제시해 준다.

“이기주의 속에 모든 문제가 있다. 이기주의는 항상 우리를 걱정하게 만든다. 고난 받고 있는 인류를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생각하지 않으리라. 사실, 그렇게 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이어서 다음 구절을 읽다가 나는 오래 눈길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이 세상의 일에 아무 관심도 없이 오로지 피안의 세계에 잠겨 악기나 연주하면서 지내는 종교는 종교라는 이름을 가질만한 가치가 없다.”(수녀·시인)


ⓒ 동아일보  200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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