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논의 범위 넓히면 참신한 답안 쓸수 있다

1000장이 넘는 논술 답안지를 채점한 모 사립대 교수는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쓴 답안이어서 내용이 천편일률적이었다”면서 “참신한 답안을 보면 다소 문장이 서툴러도 높은 점수를 주게 되더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대학이 “독창적인 답안이 높은 점수를 얻는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주장해야 독창적인 답안이 되는지를 설명하는 논술 참고서는 거의 없다. 수험생은 ‘남들이 안하는 주장을 하는 것’을 독창적인 답안으로 오해해 엉뚱한 주장을 펴기도 한다.

논리적인 근거가 없는 엉뚱한 답안은 높은 점수를 얻기 힘들다. 독창적인 사고란 기이하거나 극단적인 것은 아니다. 독창성은 기본이 충실할 때 획득된다.

논리적으로 허술한 주장이 난무할 때 홀로 치밀한 논리를 펴면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얻는 것이다.

옛날 한국인의 특성을 나타낸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에서 우리는 세가지 특성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사촌’이라는 말에서 친척을 경쟁대상으로 삼고 있는 폐쇄적 사회성, ‘땅 사면’이라는 말에서는 토지를 경쟁문화물로 삼고 있는 농경문화성, ‘배가 아프다’에서는 비행동성 내향성을 각기 찾아볼 수 있다.(이어령의 ‘신한국인’에서)

이 글이 독창적인 것은 글쓴이의 뛰어난 분석력과 통찰력 덕분이다. 즉 분석력이 뛰어나면 독창적이다.

독창성 획득의 또 다른 요건은 고정관념을 뒤집는 것이다.

백인 교사들이 인디언들에게 현대식 교육을 시키며 말했다.
“시험을 볼 때 남에게 묻거나 남의 답안지를 보는 것은 비도덕적이다.”
그에 대한 인디언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의논해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옳다고 배웠다. 시험이야말로 어려운 일의 대표적인 경우다. 함께 의논해서 최선의 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금지하는 교사의 명령은 부도덕이다.”(윤구병의 ‘똑같은 것보다 다른 것이 더 좋아’에서 요약)
인디언들의 주장처럼 발상의 전환을 통한 주장은 독창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수험생들에게 분석력을 키우라거나 발상 전환 훈련을 하라고 권하기는 어렵다. 수험생이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독창성 획득법 중 하나는 ‘논의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예컨대 ‘교복 착용의 찬반’을 묻는 문제가 있다고 하자. 찬성 논거로는 흔히 △동질성 확보 △사치풍조 방지 등을, 반대 논거로는 △개성 신장을 든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참신한 답안 가운데 이렇게 시작하는 답안이 있었다.

“세계 군복(軍服)콘테스트가 있다고 한다.”

이 답안은 ‘교복’에 대한 논의를 하기 전에 교복을 포함하는 더 큰 범주―제복(制服)―에 대해 논함으로써 독창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걸음 더 나아가 ‘옷’에 대한 논의(옷이 사고(思考)에 미치는 영향 등)로 시작해 ‘옷→제복→교복’ 순으로 전개한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동강댐 건설’에 대한 찬반을 물으면 반대 논거로 △자연보호가, 찬성 논거로 △홍수 방지 △용수 공급 △전력 생산 등이 흔히 거론된다. 독창적인 주장을 하고 싶어도 더 이상 들 수 있는 논거가 없다. 이 경우 ‘자연’ ‘환경’ 등 더 큰 범주에서 출발해 동강댐에 대한 논의로 연결하면 좋다.

‘체벌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는 ‘올바른 법 제정과 집행’으로 논의를 시작하면 어떨까? 마찬가지로 ‘영어공용화’문제는 ‘언어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부터 논의하면 좋을 것이다. 


정선학(중앙교육진흥연구소 평가연구실 논술팀장)   시사디지탈스토리 9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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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독서로 논술잡기-논리내공

논술 준비의 정석은 많이 읽고 써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읽고 정교하게 써 보는 연습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독서량이 많은 학생들도 제시문을 오해해서 엉뚱한 주장을 펴거나 논점에서 벗어난 장광설을 펼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논리내공’은 권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논리 품세’를 익히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겠다. 태권도를 가르칠 때 사범은 각 동작을 순서대로 잘게 쪼개 놓고 하나하나 자세를 잡아 나간다. ‘논리 내공’도 논리적 사고의 과정을 섬세하게 나누어 놓고 단계별로 문제를 교정해 나가는 식이다.

논리의 핵심 고리는 ‘개념’을 정교하게 다루는 데 있다. 심층 면접에 나올 만한 문제로 예를 들어 보자.

‘21세기에도 진보는 필연적인가?’라는 논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우선 ‘진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인지, 윤리의식의 향상인지 등등으로 개념을 명료하게 잡아놓지 않으면 이후의 논쟁은 초점을 잃을 것이다.

‘진보’의 문제가 언제,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제시되었는지를 규명하는 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과학만능주의가 팽배했던 19세기와 문명의 그늘을 반성하는 목소리가 높은 현대의 관점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질문을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진보에 대한 의구심이 없었다면 애초에 이런 물음은 제시되지도 않았을 터이다. 표면 뒤에 숨어 있는 심리 상태까지도 정확하게 읽어내야 정곡을 찌르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

‘논리내공’은 이런 식의 개념 세련화 과정을 통해 논점을 명확하게 하는 훈련을 시킨다. 나아가 ‘실전 겨루기’를 보여주듯, 몇 개 논제에 대해 논리 분석 과정을 보여주고 상세한 해설을 덧붙인다.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지막 장의 연습문제까지 소화한 독자라면 어느덧 한 단계 높아진 자신의 ‘논리내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학술서 번역에 가까울 만큼 원문에 충실한 문장들은, 오히려 우리말 맥락으로는 부드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게다가 각 장의 내용도 교과서를 공부할 때처럼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렵다. 하지만 세상에 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어디 있겠는가. 내공은 그냥 쌓이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방학이다. 보람 있게 보내고 싶다면 ‘논리내공’을 화두 삼아 정신 수련에 몰두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자료입니다.

시사디지털스토리 0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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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독서로 논술잡기-아버지 난 누구예요

“모범 답안을 외운 듯한 천편일률적인 글이 많았다.”

매년 논술 채점 교수들의 총평에서 빠지지 않는 문구다. 논술 준비생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개성 있게 쓰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답안은 진부한 논거와 뻔한 결론으로 이루어진 글이 되기 십상이다. 왜 그럴까?

“세대간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논제를 예로 들어 보자. 추상적으로 주제에 접근한다면 결론은 “서로를 존중하고 대화로 문제를 푼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래서는 ‘천편일률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특색 있게 쓰려면 체험에 기초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논제를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미숙한 학생들이 이러한 논술의 황금률을 따르기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아버지, 난 누구예요’를 권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은 평범한 대학생들이 쓴 자신과 주변에 대한 ‘역사적 서술’이다. 흔히 역사서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용어로 가득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평범한 일상의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논의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책의 한 꼭지인 ‘교사 홍태남의 교통수단 변천사’를 보자. 1970년대 초반, 자전거로 시작한 아버지의 탈 것은 80년대 80cc 오토바이를 거쳐 90년대 초에는 1500cc 자가용으로, 몇 년 뒤에는 가족용 밴(van)으로 바뀌어 간다. 필자는 이런 사실을 기초로 탈 것에 얽힌 가족사를 담담하게 펼쳐 보인다. 유신헌법의 필요성을 주민들에게 알리라는 공문을 받은 아버지가 자전거로 산길을 돌며 강연을 하고 끝나면 촌로들과 평상에 앉아 수박을 먹던 모습, 어머니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장터로 향하는 장면, 자동차 보급이 보편화 되자 대형할인점이 생겨 동네 시장에는 발길을 멀리하게 된 사연이 나온다.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들이지만 ‘교통과 도시발전’ ‘유신독재와 민중’ 등의 추상적인 용어를 쓸 때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글이 읽힌다. 역사적 문제의식과 일상이 자연스레 하나로 합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회사원 아버지의 내 집 마련, 자신이 겪은 삼풍백화점 붕괴, 심지어 자신의 연애 변천사까지 다양한 주제의 ‘역사 기록’들이 저마다의 관점으로 펼쳐져 있다. 이론은 현실에 적용 가능할 때 유용하다. 거꾸로, 현실에 기초하지 않은 이론은 위험하다. 그래서 공부하는 이들은 이 둘을 조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논술고사에서 체험에 기초한 문제 분석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버지, 난 누구예요’를 읽으면서 학생들은 이론과 현실의 조화에 대한 감(感)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 원고 자료입니다.

시사디지탈스토리 0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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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독서로 논술잡기-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대입 논술에서는 시사(時事)적인 주제들도 종종 출제된다. 대개 수험생들은 관련 기사를 추려내고 정리하는 식으로 이에 대비하곤 한다. 하지만 출제자들이 원하는 답은 ‘이슈 브리핑’이 아니다. 평가의 초점은, 문제의 핵심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기까지의 과정에 있다. 지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사건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슈의 역사적 맥락을 짚을 수 있다면 문제의 본질에 더욱 깊숙이 다가갈 수 있겠다.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는 행정수도 이전, 청계천 복원 등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박정희 정권 시절 오랜 기간 서울시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등을 지냈다.

굵직한 도시계획에는 나름의 시대 논리가 있는 법이다. 청계천 복원을 예로 들어보자. 조선시대의 ‘개천(開川)’이란 하수를 내보내던 인공 하천을 일컫는 말이었다. 여러 차례의 준설 기록이 보여주듯, 청계천도 한때는 ‘한양의 하수도’에 불과했다. 60년대 군사정권은 청계천 복개 공사를 통해 “일 잘 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서울에 얽힌 방대한 사연이 소개돼 있다. 4대문 안의 수많은 지하보도가 실은 방공호로 쓰기 위해 건설되었다는 것, 아스팔트로 흉물스럽던 과거의 여의도 광장은 전시에 비행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등등. 이를 통해 독자는 그 시대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혜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황 논리보다 미래를 보는 식견이 더 중요한 사안들이 훨씬 많다. 70년대 초 서울시는 도로 주차장 공원녹지라는 ‘3대 공간 확보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당시 서울시장의 최대 역점 사안은 도로와 주차장 건설. 그러나 저자는 도심의 주차장이 늘고 도로가 넓어질수록 교통 혼잡은 더 심해질 뿐이라고 역설했다. 오히려 차로 도시중심부에 들어가는 것을 더 어렵게 하고 대중교통을 확대해야만 교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금의 서울시 교통정책은 이 같은 소신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우리 역사 바로잡기 등 ‘시사 논제 거리’가 유난히 많은 요즘이다. 하지만 지금의 수많은 난제들은 이미 과거에도 있었다. 신행정수도 계획은 이미 70년대에 무산됐지만 그 결과 계룡대, 청주국제공항 같은 파생물을 낳았다. 지금의 논쟁거리들은 우리 사회에 또 어떤 흔적을 남길까? 이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원고입니다.

시사 디지탈스토리 0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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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독서로 논술잡기-청소년을 위한 교양

“쉽고 재미있게 핵심 내용을 풀어썼으며 논술에도 도움이 된다.” 청소년 책을 선전할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다. 그러나 이 말은 알고 속는 거짓말에 가깝다. 논술이란 높은 수준의 독해력과 논증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논술을 대비한답시고 ‘쉽고 재미있는 책’만 읽은 학생들은 논제의 까다로운 제시문을 보면 당황하기 일쑤다.

거꾸로 어려운 고전 읽기 위주로 논술 공부를 시키는 입시학원들도 꽤 많다. 하지만 가뜩이나 학업 부담이 많은 학생들이 충분히 시간을 두고 곱씹어야 하는 고전을 제대로 읽을 리 없다.

이런 현실에서 이 책은 수험생들이 반길 만한 책이다. 책의 원제는 ‘네가 알아야 할 것들(Das musst du wissen)’. 제목 그대로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가볍고 흥미롭게’라는 당의(糖衣)를 씌우지 않고도 소화하기 좋게 담아냈다. 청소년 독자의 특성을 섬세하게 배려한 결과다.

먼저 각 꼭지의 길이가 한 장을 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학생들의 ‘독서 지구력’을 배려한 결과다. 책은 ‘헬레니즘’ ‘열과 핵에너지’ 등 만만치 않은 항목들을 다루고 있지만, 분량이 짧기 때문에 학생들은 대부분 내용을 끝까지 읽어 낼 수 있다.

궁금증을 풀어주는 동시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편집 구성도 눈여겨 볼 만하다. 예컨대, 밀도에 대한 수업을 듣다가 아르키메데스의 실험이 궁금해졌다고 하자. 이 경우 이 책은 작은 백과사전 역할을 한다. 책 뒤의 상세한 색인을 보면 해당 내용을 담은 꼭지를 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욕조의 물은 꼭 몸 부피만큼 넘친다는 사실에 착안해 아르키메데스가 왕관에 섞인 금 함량을 밝혀냈다는 사실을 읽고 나면 아이들은 페이지 한구석에서 궁금증을 일으키는 또 다른 질문을 발견하게 된다. “잠수함은 어떻게 뜨고 가라앉을까?” 새로 얻은 지식이 다른 깨달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도다.

이 책에는 번역서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면도 있다. ‘독일의 수상들’ ‘하인리히 만’ 등 독일인들의 관심사를 독일의 논리로 서술하고 있는 부분들이 그렇다. 하지만 영어권 번역서들이 대세를 장악한 우리 청소년 출판 시장에서 이 점은 오히려 ‘단점 같은 장점’이다. 노동시장 정책의 목표를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정규직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보는 이 책의 해설은 자유주의가 우세한 영미권 시각에서라면 좀처럼 나오기 힘든 것이다. 독자들은 독일 청소년들을 위해 쓰인 이 교양서를 통해 ‘유럽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를 덤으로 얻을 수 있겠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원고입니다.
시사 디지탈스토리 0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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