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83>변신이야기-오비디우스

성서를 제외한다면 아마도 서양문학의 전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중세 후기에 이미 뚜렷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문예 부흥기에 이르면 오비디우스의 영향은 절정에 달한다.

‘변신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를 집대성해 후대인에게 전해준 결정적인 문헌이다. 그러므로 이 저술은 문학작품이면서 동시에 신화기록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실제로 후대에 알려진 그리스 신화는 많은 경우 이 작품을 원전으로 하며, 널리 읽히는 불핀치나 해밀턴이 서술한 그리스 신화도 모두 오비디우스를 풀어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작품을 탄탄한 구성과 주제적 통일성의 관점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 앞에서 절망할 것이다. 각 이야기가 모두 변신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뚜렷이 어떤 주제적 통일성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은 매우 느슨하게 구성되어 있다. 한 이야기에 이어 다음 이야기가 나와야 할 어떤 필연적인 이유를 찾기 어려우며, 오비디우스는 그때그때 편리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점이 그다지 흠이 되지 않는다.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의 원천은 경탄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도록 교묘하게 짜인 그리스 신화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전체적인 주제를 들자면, 이 작품에 수록된 것은 결국 사랑과 애욕(愛慾)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젊은 남녀 간의 사랑은 물론이요, 인간을 미치도록 사랑한 신의 이야기, 불멸의 신을 짝사랑하다가 끝내 이루지 못한 인간의 이야기, 동성애, 자기애, 아버지와 딸 간의 또는 오누이 간의 사랑 등 사회적으로 용인된 또는 금기시된 모든 형태의 사랑 이야기가 이 작품 전편에 걸쳐 펼쳐진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오비디우스는 인간 심리의 다양한 측면을 탐색한다. 오비디우스의 세계에서 꽃과 나무, 새, 돌, 메아리 등 자연계의 사물과 자연현상에는 모두 사랑, 증오, 질투, 분노, 복수심 등 어떤 사연이 간직되어 있다. 그 애틋한 사연의 결과 인간은 어찌할 수 없이 그런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애욕은 인간이 피할 수도 없고, 거역하거나 저항할 수도 없는 존재조건이라는 생각이 이 작품에 짙게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비디우스는 로마인들이 세운 제국 ‘Roma’의 철자를 거꾸로 하면 애욕의 신 ‘Amor’가 된다는 사실을 대단히 흥미롭게 여겼다. 제국을 이룩한 것이 궁극적으로는 무력에 의한 정복전이었을진대, 오비디우스는 폭력과 인간의 애욕이 동전의 양면이라고 느꼈음일까? 엄청난 제국을 이룬 로마는 문화적으로는 피정복국인 그리스의 압도적인 영향하에 있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마는 무엇인가? 그리스와 구별되는 로마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변신’의 주제는 이러한 로마의 정체성 문제에 간접적으로 물음을 제기하는 장치가 된다. 로마를 바라보는 오비디우스의 시선에는 그래서 약간의 지적 희롱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아마도 이 점이 아우구스투스의 눈 밖에 나서 흑해 연안의 작은 마을로 추방되는 이유이기도 하였으리라고 짐작되고 있다.


이성원 서울대 교수 영어영문학과

(동아일보 05.03.31 - 05.07. 29 기획연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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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84>과학혁명의 구조-토머스 쿤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이 20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과학혁명’ ‘패러다임’ ‘정상과학(正常科學)’ 등의 개념을 사용한 그의 과학관(科學觀)은 과학사와 과학철학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역사학과 철학은 물론 거의 대부분의 사회과학 분야와 심지어 문학, 예술 이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쿤의 유명한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는 바로 이 같은 그의 과학관을 담고 있다.

1962년에 출판된 이 책은 근본적으로 과학의 변화에 대해 다루고 있고, 특히 과학상의 변화 또는 발전이 ‘축적적’이지 않고 비연속적 또는 ‘혁명적’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쿤의 주장은 “과학혁명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이와 양립 불가능한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대체되는 비축적적인 변화의 에피소드를 가리킨다”는 그 자신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가 있다.

과학의 변화가 이처럼 혁명적이라면 그러한 ‘과학혁명’ 사이에는 비혁명적이고 안정된 기간이 있어야 하고, 이것이 쿤이 말하는 ‘정상과학’의 기간이다. ‘패러다임’이란 바로 이러한 정상과학을 특징지어 주는 개념으로서, 정상과학의 시기에 과학자 사회 전체에 공유된 이론, 법칙, 지식, 방법과 가치관, 취향, 습관, 규범을 통틀어 폭넓게 지칭한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이 같은 정상과학과 패러다임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해 정상과학이 ‘위기’를 맞아 무너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인 과학혁명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과학혁명의 결과로 새로운 정상과학이 생기게 되는 과정에 대해 쿤 특유의 명쾌하고 설득력 있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 논의의 과정에서 그는 서양 과학 역사상의 수많은 생생한 예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굉장한 주목을 받았고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영향이 컸던 것은 과학철학 분야였다. 물론 많은 과학철학자의 반응이 비판적이었지만, 설득력 있는 쿤의 견해는 이미 그들이 느끼기 시작하고 있던 전통적인 정적(靜的), 분석적 과학철학의 문제점을 명확히 노정시켜 주었던 것이다. 특히 쿤의 견해는 과학철학의 여러 논쟁에 한 구심점을 제공했고, 많은 사람이 쿤을 이해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과학철학의 입장을 다져 갔다.

다른 분야에서는 이 책이 준 감명이 조용하기는 했지만 훨씬 더 호의적으로 나타났다. 많은 과학사학자는 쿤이 자신들의 공통된 인식을 체계화하고 이론화해 준 것으로 생각했고, 당시 태동하기 시작하던 과학사회학에는 쿤의 이론이 강한 추진력을 제공했다. 그리고 과학 이외 분야의 이론이나 역사에 종사하는 사람도 자신의 분야에서의 지식, 이론, 양식, 사고 등의 변화가 과학지식의 변화에 대한 쿤의 모형과 잘 들어맞음을 느끼게 되었고, 이에 따라 쿤의 이론을 학문,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의 변화를 설명하는 모델로 원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같은 시도는 급격히 퍼져 나가서 결국 이 책이 수많은 분야의 사람에게 필독의 책이 되고 20세기 후반의 고전(古典) 중 하나가 되게 했다.


김영식 서울대 교수·동양사학과
(동아일보 05.03.31 - 05.07. 29 기획연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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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85>사기-사마천

조선시대의 선비 김득신(金得臣)은 ‘사기’ 열전이 너무 좋아 일생 동안 무려 1억2만80번을 암송했다고 한다. 물론 극단적인 과장이다. 그러나 전통시대의 동아시아에서 가장 애독된 역사서가 ‘사기’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그 인기는 현재에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사기’는 사마천이 중국 문명 초기 단계에서 자기가 생존한 기원전 1세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약 2000년 전 저술된 중국 고대 역사책이 왜 이토록 사람을 매료시키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장 흥미 있는 주제를 박학다식한 천재가 예리한 통찰력으로 통관하고 생명을 건 사명의식을 갖고 집필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문명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확립하는 과정이었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물질적 정신적 기반과 제도를 창조 발전시켰다. 황제 지배체제는 동아시아 고대 문명을 가장 효과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도록 개발된 체제인데, 사마천의 시대는 그 체제가 대체로 완성된 시기다. 제국은 문명의 결정체였고, 그 발전의 주체였다. 사마천은 바로 이 문명과 제국을 ‘역사’로 만든 것이다.

사마천은 어떤 위대한 문명도 역사가에 의해 ‘역사’로 서술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이 문명의 ‘역사화’를 자신의 운명적인 사명으로 자각했다. 그가 ‘사기’의 저술을 공자가 지었다는 ‘춘추’의 계승이라며, 커다란 치욕과 시련(궁형)의 순간에도 ‘사기’의 완성을 위해 생을 포기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사마천은 가능한 한 모든 자료를 수집 정리 분석했고, 자신이 통찰한 문명의 본질과 그 변화 발전의 과정을 가장 적합한 체제와 문장으로 서술했다. 그는 궁정의 도서관에 보존된 전적과 문서를 거의 빠짐없이 섭렵하고 역사의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청취했다. 그 결과 그는 인간의 역사를 우주 질서와 인간의 능동적인 의지가 맞부딪친 결과로 파악했고, 그것에 시간과 공간의 좌표와 함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기전체(紀傳體)란 독특한 체재를 창안했다. ‘사기’가 모든 역사를 포괄한 종합사 통사 세계사가 된 것도, 전체 권수와 각 부분의 권수가 모두 우주 성수에 맞춰진 것도, 특정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가치 평가가 서술된 위치로써 표현된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특히 사마천은 ‘열전’에 압도적인 비중을 할애해 인간 주체의 역사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고대 문명과 삶을 구성하는 요소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인물이 수록됐다. 심지어 거리의 깡패까지 포함된 다양한 인간은 현명함과 어리석음, 선과 악, 도덕과 이욕, 이상과 현실의 사이를 오가며 좌절과 성공을 거듭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뭐, 그러면 어때요’하며 사는 몰가치한 사람은 없고 모두 나름대로 문명적 가치에 동참하려는 비장한 의지와 자각이 충만하다. 바로 이 점이 ‘사기’의 백미인데, 냉철한 사마천이 간간이 감정을 폭발하는 장면은 그 묘미를 더해 준다. 시정잡배에서도 확인되는 자각과 의지의 역사화, 이것은 바로 사마천이 자각한 사명과 의지였다.

고금의 변화를 창조한 주체와 저자가 맞부딪치면서 그 변화의 원리와 문명적 가치가 제시된 ‘사기’. 현대의 독자에게, 특히 열전을 중심으로, 일독을 권하는 것은 바로 이 매력 때문이다.


이성규 서울대 교수·동양사학과

(동아일보 05.03.31 - 05.07. 29 기획연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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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86>법의 정신-바롱 몽테스키외

1689년 1월 18일 태어난 바롱 몽테스키외가 1748년에 출간한 ‘법의 정신’은 약 20년에 걸친 필생의 대작이었고, 당대에 이미 22판을 찍을 정도로 큰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

‘법의 정신’이란 제목만 보더라도 단순히 법전 속의 법이 아닌, 환경과 인간 사이, 인간과 인간사이의 다양한 상호작용 속에서 생장한 풍부하고 생명력 넘치는 법의 모습이 떠오른다. 좋은 책이란 이처럼 제목 자체에서부터 이미 독자의 상상력을 계발하는 힘을 내뿜는 것일까?

몽테스키외가 방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서 추출한 법의 보편적 정신은 무엇일까?
그는 자유의 보호와 증진, 평등의 보장, 그리고 개인적 사회적 안녕의 달성이라고 말한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 ‘법의 정신’에서 특히 중요한 제2부에서는 ‘자유의 보호와 신장이라는 법의 정신이 어떻게 하면 가장 잘 달성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고찰한다.

‘타인의 자의적인 지배로부터 독립된 상태로서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체계를 구상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서양 정치철학의 과제였다. 이와 같은 공화주의적(共和主義的)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법의 정신’인데, 그 실현되는 구체적 내용은 한 정치적 공동체가 민주정(民主政), 귀족정(貴族政), 군주정(君主政)이냐에 따라서 다르게 될 것이라고 몽테스키외는 말한다.
어떠한 통치구조에서이건 ‘법의 정신’의 핵심적인 표현은 ‘법의 지배’와 ‘삼권분립(三權分立)’에 있음을 확인한 몽테스키외는 21세기 한국사회가 배울 만한 교훈 두 가지를 역설한다.

우선 몽테스키외는 민주주의 정체에서는 ‘시민적 덕성(德性)’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더 주목하여야 할 점은 민주정의 부패와 관련한 몽테스키외의 경고이다.

그는 “민주정체는 구성원이 평등의 정신을 상실할 때문만이 아니라, 극도의 평등정신을 가짐으로써 통치자로서 선출된 자와 평등해지려고 할 때에도 부패한다”고 경고했다.
그때 시민들은 자신이 위임한 권력마저 인정할 수 없으므로 원로원(의회)을 대신하여 심의하고, 집정관(대통령)을 대신하여 집행하고, 재판관을 파면하고 모든 것을 자신들이 직접 하려고 하게 되면서 국가와 법의 민주적 권위가 약화되고, 급기야 독재정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즉, 법의 정신이 ‘공화주의적 자유와 평화’의 보장에 있기는 하지만, 민주적 권위가 사라지게 되면 ‘나쁜 의미의 안정성’을 위하여 구성원은 자유를 희생하면서라도 독재정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히 ‘민주정의 역설(逆說)’이라 할 만하다. 이런 경우를 몽테스키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찾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제3부는 “각 나라의 실정법이 비슷한 법의 정신을 지향하면서도 왜 구체적인 법규정은 달리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은 ‘걸리버여행기’와 비교하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읽고 감동받은 적이 있는 독자라면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종류의 지적(知的)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김도균 서울대 교수 법학과
(동아일보 05.03.31 - 05.07. 29 기획연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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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87>주역-작자 미상

주역(周易)은 시(詩), 서(書)와 더불어 유교의 삼대 경전 중의 하나로 음양의 두 효(爻)가 여섯 번 겹쳐 만들어진 64개의 괘(卦)와 경문, 경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십익(十翼)으로 이루어진 점서(占書)이다. 음양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기호의 모임인 64괘도 그렇고 예언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한 경문도 호기심과 신비감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주역의 근원은 유래가 불분명한 점괘들이지만 주역이 불후의 고전 중의 하나가 된 것은 일반적인 역술서와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들 수 있는 특징은 신탁과 같은 초월적 방법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역의 신비는 마치 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듯한 부호들의 형상과 수학적 배합에서 나온다.

태극기의 네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가 하늘과 땅, 물과 불을 상징하고 있는 주역의 중요 4괘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8괘의 하나하나가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를 상징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합쳐짐으로 이루어지는 64괘의 형상과 변화는 세계의 모습과 변화를 보여준다 하겠다. 부호의 형상과 질서를 잘 해석하기만 하면 우주와 만물의 변화를 알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걸 보면 주역이 보여주는 세계는 꽤 매력적인 모양이다.

사실 고대에는 점(占)이라는 게 오늘날 생각하듯이 과학과 대치되는 행위가 아니었다. 자연과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부족했던 그때 나름대로의 세계관과 경험을 깔고 최대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이루는 한 방법이었다.

사실 점 혹은 예언이라는 행위는 그 자체로 역설적인데 주역은 이 역설을 절묘하게 피해 간다.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숙명론 내지 결정론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지만 점에는 숙명론을 부정하는 요소 또한 동시에 존재한다. 점을 쳐서 알게 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점을 쳐서 알게 된들 아무 소용없을 것이고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점의 결과를 검증할 수 없을 것이니 이래저래 난감한 일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점치는 행위 자체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라는 신탁을 받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애를 썼지만 결국 그 신탁은 실현된다.

만약 신탁이라는 예언 행위가 없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만약 그때 주역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상이다.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몸을 깨끗하게 해야 흉함에서 벗어나리라.’ 이런 괘가 나왔을지 모르겠다.

주역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미래는 정해진 게 아니라 점을 치는 나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괘나 나쁜 괘나 답은 한가지다.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라.’ 지극히 상식적이나 진리가 아닌지. 여기서 주역은 역술서가 아닌 도덕과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철학책이 된다. 심심할 때 설명대로 괘를 한번 뽑아보면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허남진 서울대 교수·철학과
 
(동아일보 05.03.31 - 05.07. 29 기획연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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