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39>마담 보바리-귀스타브 플로베르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1857)는 불륜에 빠진 한 여인의 파멸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주의 문학의 완성, 자연주의 소설의 시작, 현대 소설의 선구 등 이 소설이 누리는 화려한 평가와 명성에 비해 작품의 소재는 지극히 평범하다.
그런데 바로 이 보잘것없는 소재로부터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의 ‘마담 보바리’를 만들어 냈다는 데 플로베르의 천재성과 예술성이 있다.
주인공 에마 보바리는 소녀 시절 무분별하게 읽은 낭만적 경향의 소설로 인해 소설 속 허구의 세계를 현실로 간주한 나머지 자신의 삶도 소설처럼 모든 것이 아름답고 멋진 세계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은 끊임없이 그녀의 꿈을 배반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두 번의 불륜을 차례로 거치지만 그 어느 것도 그녀의 열망에 답해 주지 않았다.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 출구였던 불륜마저 진부해져 가면서 에마는 심각한 낭비벽에 빠져들고 결국 경제적 파산으로 음독자살한다. 플로베르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어떤 매개도 놓지 않는 여주인공을 통해 동시대의 정신적 질병, 낭만주의가 초래한 질병을 폭로하고자 했다. 그런데 에마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단순하지 않다.
환상을 현실로 살고자 하는 에마는 단지 어리석기만 할 뿐인가? 에마가 대변하는 ‘환상’의 세계와 상극을 이루며 ‘현실’을 대변하는 오메(Homais)의 세계는 더욱 괴기하고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작가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인물이 놓인 객관적 주관적 정황을 정확한 비율로 보여줄 뿐이다. 독자는 여주인공의 삶을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라는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담 보바리’는 19세기 전반기 프랑스 지방 사회의 모습을 사실주의적 필치로 그려 낸다. 이 소설은 여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소부르주아의 순응주의와 천박한 현실주의를 드러낸다. 특히 ‘마을의 볼테르’ 오메를 통해 맹신과 배타의 논리로 변한 과학과 진보 이데올로기를 풍자한다.

작가가 동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도 신랄해 사회의 어느 구석에도 희망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다. 소설에는 미래를 약속하는 어떤 인물도, 어떤 계급도 없다. 플로베르의 이러한 사회적 역사적 비관주의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독자는 환상이나 위로가 없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사회적 낙관론을 펼친 어떤 진보적 작가보다도 예리하고 심각하게 19세기 부르주아 사회의 문제와 공허함을 드러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심리를 분석하고 현실을 재현해 왔다. ‘마담 보바리’가 문학사에 가져온 새로움은 그것을 보여 주는 언어와 기법에 있다.
기다림과 환멸이 반복되던 주인공의 삶을 재현하는 소설의 구조, 도덕적이고 교화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시대의 어리석음과 문제점을 드러내는 방식, 특히 소설의 ‘시점’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독서의 즐거움은 배가될 것이다.
‘마담 보바리’가 ‘현대 소설의 수많은 가능성이 교차하는 지점’인 것은 바로 이 소설이 새로운 시대, ‘현대’의 패러다임을 표현해 낼 수 있는 형식을 최초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동렬 서울대 교수·불어불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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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40>홍루몽-조설근

최근 중국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면서 중국사회와 문화에 관한 담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담론의 상당 부분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단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일 뿐, 중국인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준의 안내는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중국인의 정신세계는 현재의 중국사회 모습을 기준으로 바라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가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됐다고 말하듯이 중국도 오랜 사유전통을 축적해 왔다. 따라서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중국인이 어떤 내면세계를 지녀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홍루몽’은 그 세계의 다양한 단면을 보여주는 소설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근대 이전에 출현한 중국의 소설작품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4대기서’(삼국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에 대한 평가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 작품에 관한 연구가 ‘홍학(紅學)’이라는 독립적이고도 전문적인 분야를 형성할 만큼 그 위상이 대단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천 명에 달하는 홍학가(紅學家)가 활동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특정 작품에 대한 연구가 독립적 연구 분야를 이룬 예는 서구문학에서도 셰익스피어에 관한 연구 정도다.
이 작품의 성격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가 제시됐는데, 바로 이런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 나타난 중국인의 숙명론은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것처럼 유가(儒家)사상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불교와 도교에 의해 지배된다. 주인공 소년 가보옥이 입에 옥을 문 채 태어났다는 얘기는 그의 삶이 숙명적 윤회와 허무를 표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성장기에 접어든 소년이 자신을 둘러싼 여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보여주는 섬세한 감성의 굴곡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아무리 윤리적인 사고와 행동이 강조되던 중국사회에서도 이런 감성이 발현되고 표현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관원으로 대표되는 가씨(賈氏) 가문의 영화와 몰락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이 지니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달은 언제까지나 보름달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진리가 여기에 함축돼 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만이 이 작품의 성격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요소가 모두 섞여서 커다란 그림을 그려내며, 독자에겐 총체적인 관찰과 사고를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이 글의 머리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전통시기의 중국인이 지녀 온 내면세계의 다양한 면모라고 하겠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내면세계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전개되는 중국사회의 매우 서구화되고 근대화된 듯한 모습 뒤에는 ‘홍루몽’과 같은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내면세계의 사고와 감성이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루몽’을 읽는 것은 한때 있었던 과거의 중국을 읽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중국을 깊이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이며,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중국과 중국인의 사고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서경호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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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41>국부론-애덤 스미스

과학적 경제학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발간한 1776년이라고 답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경제학 분야를 대표하는 한 권의 고전을 선택하라고 할 때도 스미스의 ‘국부론’을 선택하는 사람이 가장 많을 이이다.

이와 같이 스미스의 ‘국부론’이 가장 대표적인 경제학 저작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적인 모습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저작이라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우선 스미스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서 가격을 통해 재화가 자유롭게 거래되면서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자원이 적절히 배분되는 방식을 잘 설명해 놓고 있다. 이러한 시장 과정은 스미스가 신학적인 비유를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국부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손’ 또는 시장 방식을 기억하게 된다.

그렇지만 ‘국부론’의 내용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소개되는 가격이론 이상으로 풍부하다. 사실 ‘국부론’은 가격이론이 아니라 생산 과정의 분업이론에서 시작하고 있다. 분업을 통해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사실, 이러한 생산성 향상의 이익을 통해 국부가 증진한다는 사실, 그리고 분업을 활발하게 하려면 시장의 크기가 커져야 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체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선구적인 관찰은 단지 가격기구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인류사회의 조직원리를 진화적으로 설명하는 데 유용하며, 경제학 분야를 넘어선 적용력을 갖는다. 이러한 점에서 사상가로서 스미스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사실 스미스가 연구를 시작하던 1750년대는 시장경제 체제가 확립된 환경이 아니라 중상주의 시대로서 자유로운 영업 활동을 막는 규제가 많은 시대였다. 스미스는 이러한 규제를 철폐해야만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므로, ‘국부론’의 시대적 의미는 중상주의 비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단지 스미스가 가격기구만을 분석했다면 시장경제가 확립된 이후에 ‘국부론’의 현대적 기여가 과연 더 있을까 하는 점은 의문시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국부론’의 분업이론과 가격이론, 나아가 스미스가 윤리학, 법학, 신학 분야에서 남긴 다른 저작을 통합적으로 이해한다면, 스미스의 기여는 현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부론’의 저자인 스미스는 1723년 스코틀랜드의 세관원의 아들로 태어나 글래스고대를 다니다가 주위의 권유로 옥스퍼드대로 갔으며 졸업 후 다시 글래스고대로 돌아가서 도덕철학 교수가 되었다. 그러다가 한 귀족의 개인교수를 통해 소득을 올린 후에는 집필 활동에만 전념하여 완성한 책이 바로 ‘국부론’이다.

이 책 1판이 1000부 발간된 이래 1790년 스미스가 사망할 때까지 5판이 발간된 바 있으며, 당시 서양 선진국에서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권의 번역본이 있는데 1992년 서울대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판본이 현대적 국어로 쓰인 좋은 번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홍기현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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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42>고백록-아우구스티누스

4월 인류의 시선은 바티칸이라는 지구상의 가장 작은 나라와 그곳에서 한 노인이 운명하여 장례를 치르는 광경, 또 265대 교황이 뽑혀 취임하는 장면에 쏠렸다.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의 문장(紋章) 아래편에 조가비 한 개를 그려 넣었다.

이 조가비는 그가 각별히 경애하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유래한다. 사도 바울로 다음가는 사상가인 그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하루는 그가 바닷가를 거니는데 어린아이 한 명이 모래밭에 구멍을 파고는 조가비로 바닷물을 퍼다 붓고 있었다. 그가 뭐하느냐고 묻자 아이는 바닷물을 퍼서 구멍에 채울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그 조그만 조가비로 무슨 수로 바닷물을 다 채우느냐”고 면박하자 아이는 “당신의 그 작은 머리에 무슨 수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다 집어넣으려고 하세요?”라고 당돌히 대꾸하고는 사라졌다는 것. 새 교황도 이 지성적 겸허함을 배우고 싶어하는 듯하다.

서구 문화의 두 기둥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두 문화가 합류하는 지점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고중세를 통틀어 가장 많은 저작을 낸 그는 ‘고백록’을 자기 대표작으로 간주했다.

이 책이 불후의 명작인 이유는 진리에 대한 그의 열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아퀴나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을 형광등의 밝고도 차가운 빛을 내는 지성이라고 한다면 그의 책에서는 시뻘건 불꽃으로 넘실거리면서 삶을 송두리째 삼키는 ‘마음의 논리’를 접할 수 있다.

그는 책을 통해 인간 천성이 “진리를 찾아내려는 사랑에 사로잡혀 있다”고 단정하고 그 진리를 ‘님’이라 불렀다. 그리고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에 님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편하지 않소이다”고 실토한다. 당시 유행하던 온갖 철학과 종교를 방랑한 끝에 나사렛 사람이 “아버지”라고 부르던 인격신에게서 그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는 “이제 당신만을 사랑하니 저는 당신만을 섬길 각오가 되어 있소이다”라고 선언한 뒤 44년간 성직자, 영성가, 사상가 및 한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남김없이 이 언약을 실천한다.

여생을 두고 끊임없이 되뇌던 그의 후회,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라던 그의 유언에서 진리에 대한 열정을 독자는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적으로 유일신 사상에 이르기도 힘겨운 인류에게 유일신 하느님이 삼위일체로 존재한다는 놀라운 가르침을 새로 내렸다. 그리스도인들은 스무 세기를 궁리했지만 아직도 그 교리가 무슨 뜻인지 속 시원히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 문명이 시들어 가던 구역질나는 냄새를 맡았다. 그 제국의 붕괴와 몰락은 서구 문명의 몰락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위기감을 대변해 주고 있기도 하다.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혼자 남은 초강대국이 그 군사 횡포로 세계 평화를 파괴하지나 않을까,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두 세계에서 파생한 광신적 근본주의가 인류의 폭력적 종말을 부채질하지 않을까 안타까워하는 지성인들에게 ‘고백록’은 그의 ‘신국론’과 더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벗이다.


성염 주교황청 대사·前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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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43>위대한 유산-찰스 디킨스

대중성도 있고 예술성도 뛰어나다는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1861년)은 핍이라는 어린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그린다. 국내에는 ‘위대한 유산’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제의 뜻은 ‘유산’ 자체가 아니라 ‘유산에 대한 큰 기대’이며, 동시에 당시 사회에 만연한 물질적 기대감을 가리킨다. 따라서 훌륭한 유산이라고 이해되기 쉬운 ‘위대한 유산’보다는 ‘막대한 유산’이 더 옳은 표현이라고 하겠다.

사회적 상승욕은 숱한 근대 서구 문학작품의 주제였는 바 이 작품 또한 ‘신사(紳士)되기’라는 차원에서 같은 주제를 다룬 성장소설이라 할 만하다. 디킨스 당대의 이상적 인간상인 신사는 구시대의 귀족적인 이상과 부르주아적 이상이 결합된 사람으로, 일정한 재산과 교양에다 ‘신사다운’ 덕목을 두루 갖춰야 했다. 이는 서유럽에서도 가장 먼저 시민혁명을 일으켰지만 귀족계급과 근대 시민계급의 부단한 타협을 통해 진행된 영국 근대사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신사는 일정한 재산과 사회적 신분에 따라 정해지는 지배집단으로서 계급사회 특유의 배타성과 가부장적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주인공인 핍은 대장장이인 자형(자兄) 조 가저리의 도제로 몇 년을 보내다 런던으로 가서 신사 수업을 받게 된다. 이런 행운은 그가 어린 시절 우연히 도와주었던 탈옥수 매그위치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유형지(流刑地) 호주에서 크게 성공해 번 돈을 그에게 몰래 보내 주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핍은 자신의 후원자는 그가 짝사랑하는 에스텔라를 양녀로 기르는 미스 해비셤일 거라고 근거 없이 추정하며 자기기만의 길로 빠진다.

핍의 신사 수업은 진정으로 덕목과 실력을 갖추는 과정과 무관하다. 오히려 신사의 속물적 세계에 동화되어 가던 핍 앞에 어느 날 매그위치가 갑자기 나타난다. 핍은 그동안 자신을 후원해 준 사람이 매그위치라는 것을 알게 돼 큰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은인을 저버리지 않는 인간다움을 발휘한다. 회한 속에 큰 병에 걸려 누운 핍을 조가 멀리 찾아와 극진히 간호하고 심지어 빚까지 갚아 준다. 자신의 속물성을 뼈저리게 깨달은 핍은 외국에서 사업가로서 노력하여 성공하게 된다. 또 자신이 짝사랑하던 에스텔라가 첫 결혼에 실패한 뒤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고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룬다. 핍은 런던 사교계의 화려함 뒤에 숨은 차별과 착취의 현실을 통해 단련됨으로써 조의 세계가 가진 현실적인 무력함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세계의 인간다움을 간직한 원숙한 인물로 남는 것이다.

어린 핍을 그리는 초반부를 제외하면 작품은 전체적으로 당대 사회의 낙관적 분위기와 판이한 환멸의 정조가 지배하며, 신사의 이상이 어떻게 탐욕이나 범죄와 직결되는지를 가차없이 해부한다. 물론 결말의 주인공이 오늘의 눈으로 볼 때 흡족하느냐는 점은 논란거리이다. 작가가 당대의 신사 개념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은 틀림없으나, 신사 이외의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는 없다. 이런 탐색에 대한 주문은 디킨스에게는 너무 무리한 것이지만, 21세기의 한국 독자라면 거기까지 나아가는 성찰을 통해 고전을 읽는 의의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 몇 가지 역본이 있으나 고전에 참맛을 제대로 옮긴 것은 없어 아쉬운 상황이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 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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