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34>다산시선-정약용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당시 유교사상의 공허한 관념과 현실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추구했던 조선 후기 실학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저술은 500권이나 되는 방대한 것으로, 그 내용은 유교 경전을 해석한 ‘경학’과 국가 경영의 방법을 제시한 ‘경세학’을 두 축으로 문학 역사 지리 의례 음악 풍속 의학 등 다양한 영역을 포함한다.
1930년대에 신조선사에서 한문판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가 간행된 이후 그동안 많은 번역서와 선집 및 연구서가 나왔다.


먼저 번역서로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그의 시와 문집을 번역한 ‘국역 다산시문집’(9권)이 있고, 경학 저술로는 전주대학 호남학연구소에서 ‘대학’ ‘중용’ ‘논어’에 관한 주석이 번역되었다. 이지형의 ‘맹자’ ‘서경’에 관한 주석 번역도 믿을 만하다.
경세학의 저술로는 다산연구회의 ‘목민심서’ 번역이 가장 충실하고, 민족문화추진회의 ‘경세유표’ 번역과 박석무 정해렴의 ‘흠흠신서’ 번역이 있다.
정약용의 저술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좀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의 저술에서 가려 뽑아 번역한 선집을 읽는 게 도움이 된다.


그의 시를 선집한 것으로 송재소의 ‘다산시선’이 있다. 또 편지나 산문과 논설을 선집한 것으로 박석무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산문선’ ‘다산 논설선집’, 이익성의 ‘다산논총’이 있다.
그러나 정약용의 학문세계를 균형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적 체계에 맞는 ‘다산문선’의 새로운 편찬이 필요하다.

송재소의 ‘다산시선’은 정약용의 문학적 세계만이 아니라 그의 인간적 고뇌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고, 그의 실학 정신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좋은 선집으로 꼽을 수 있다. 정약용의 시에서는 서정적 감흥이나 자연적 정취도 다양하고 풍부하게 제시된다.
그러나 그의 실학 정신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목은 당시 우리 서민 생활의 풍속과 노동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른바 ‘조선시(朝鮮詩)’의 세계와, 당시 빈곤한 백성의 참혹한 생활 모습과 착취 속에 고통받는 비참한 현실을 처절하게 고발하는 ‘사회시(社會詩)’의 세계라 할 수 있다.
‘다산시선’은 정약용의 많은 시 가운데서 그의 인간과 사회의식과 시대정신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시를 잘 골라서 주석과 해설을 붙여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정약용 자신이 선언한 ‘조선시’는 농촌과 어촌의 서민 생활을 묘사하면서 특히 토속언어를 그대로 살려 우리의 정서와 현장을 생동감 있게 전달해 준다.
이러한 ‘조선시’는 바로 그가 우리의 역사 지리 언어 풍속에 관해 폭넓은 관심으로 조사하고 발굴함으로써 국학(國學)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민족의식을 각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갔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그의 ‘사회시’는 고통받는 백성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백성에게는 인간다운 삶의 권리가 있고, 관리에게는 백성의 삶을 지켜 주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절실하게 확인시켜 준다.


그것은 ‘목민심서’를 비롯한 그의 경세학 저술에서 백성에 대한 사랑과 공직에 대한 봉사의무를 강조하고, 합리적이며 평등한 사회적 이상을 추구하는 사회 개혁의 이론과 통하는 사회사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금장태 서울대 교수·종교학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35>마의 산-토마스 만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는 황금을 얻고자 증류기 비슷한 밀폐 공간에다 각종 금속을 섞어 넣은 다음 높은 온도의 열을 가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이런 ‘연금술적’ 발상이 뜻밖에도 20세기 독일 소설문학에서 언뜻 엿보이는데 토마스 만의 대표작 ‘마의 산’(1924)이 그러하다.
‘마의 산’이라니, 대체 무슨 산인가? 스위스 고산지대의 소읍 다보스에 있는 고급 호텔식 폐결핵요양소 ‘베르크호프’이다.
이제 막 조선기사 시험에 합격하여 곧 함부르크의 조선소에 취직할 23세의 청년 한스 카스토로프가 여기에 도착한다. 환자로 입원하러 가는 길이 아니라 이미 입원해 있는 사촌형을 문병하기 위해 3주 예정으로 이곳에 온 것이다.
입원해 있던 이탈리아 출신의 인문주의자 세템브리니는 카스토르프에게 ‘죽음’의 세계에 흘러 들어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당장 ‘저 아래’의 시민 세계로 복귀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러시아 여인 쇼샤 부인에게 마음이 끌린 청년은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그만 병에 걸리고 만다.


함부르크의 시민이 ‘죽음’의 공간(마의 산)의 구성원이 된 것이며 토마스 만의 ‘죽음’의 연금술이 시작된 것이다.

하루에 다섯 끼씩 중후한 식사를 하면서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취생몽사 상태에 빠져 7년 세월을 허송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야 하산하여 곧 참전한다. 포탄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보리수’ 노래를 부르며 진흙탕 속을 행군하는 주인공의 장래 전망은 매우 어두울 수밖에 없다.

1차 대전 이전의 답답한 분위기를 감안하면 시대소설이지만 베르크호프라는 ‘폐쇄 공간’이 ‘죽음’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시간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축약판이라 할 수 있는 ‘눈(雪)의 장’에서 스키를 타고 설원을 헤매다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진 주인공은 몽환 상태에서 ‘인간은 선과 사랑을 위해서 자기 사고(思考)의 지배권을 죽음에다 내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깥 세계와 차단된 ‘죽음’의 공간에서 역설적이게도 ‘삶’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의미에서 이 소설은 독일 교양소설의 변종의 하나인 ‘성년식(成年式) 소설’로도 읽힌다. 그가 7년 동안의 취생몽사 끝에 마침내 얻게 된 깨달음이 전사 직전에 처한 그의 상황에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은 그의 ‘마의 산에서의 체험’을 추체험(追體驗)해 가면서 정신적 고양(高揚)을 얻게 된다.

토마스 만이 자신의 독자에게 이 책을 두 번 읽기를 권한 까닭도 이 간접 체험의 보편적 진실성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을 찬찬히 읽는 독자는 서구 정신사를, 그 감성적 구체성 속에서, 축약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주인공은 그의 두 스승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격렬한 논쟁을 거의 중립적인 태도로 경청하지만 독자는 그들의 온갖 논거를 두루 거침으로써 자신이 한 단계 더 높은 교양인으로 거듭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20세기의 ‘연금술사’ 토마스 만을 만난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안삼환 서울대 교수·독어독문학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36>페더랄리스트 페이퍼-알렉산더 해밀턴 外

1776년 탄생한 미국은 로마 공화정 이후 인류사에 나타난 최초의 공화국이다. 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로마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사망한 것이 기원후 14년이니까 거의 1800년 만에 거대 공화국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기본권이나 민주주의는 미국 독립 당시만 해도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이념이었다. 당시로서는 검증되지 않은 이념을 국가구조에 구체화시키면서 미국인들이 느낀 의심과 우려는 매우 컸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미국 헌법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초석이 된 점보다도 그 내용이 현재까지 거의 원형 그대로라는 것이다. 미국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가 중에 하나라면 미국 헌법은 이를 가능케 한 초석이다.

‘페더랄리스트 페이퍼’는 이런 헌법을 만들 때 제기될 수 있는 모든 쟁점에 관한 독창적이고 숙고된 생각을 담은 책이다.
독립전쟁 후에 소집된 연방헌법제정회의에 참석했던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존 제이 등 3인의 연방주의자는 1787년 10월∼1788년 8월 뉴욕 주 시민에게 새 헌법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총 85편의 글을 뉴욕 시의 신문에 기고했다.

기고문은 헌법의 의미와 필요성, 연방정부가 어떻게 운영될 수 있는지에 관해 역설한 것이었는데, 이 책은 이 기고문의 모음집이다.
이 책이 실제로 미국 헌법 채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당시 분열로 치닫던 여론을 통합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미국독립선언문, 미국헌법과 더불어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신성한 글로 여겨지고 있다.
이 책은 강한 연방정부의 구성과 그 속에서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소수자의 보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기고자들은 미국의 독립전쟁을 체험하면서 주(州) 사이의 파당적인 경쟁과 대륙회의의 약체성, 전쟁을 효과 있게 뒷받침해줄 국민적 일체감의 결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오로지 강력한 중앙정부의 수립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이 강력한 중앙정부의 구성을 주장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다수 대중의 횡포로부터 소수를 보호하는 문제였다.
그들은 대중의 다양한 이익 간의 충돌을 조정하고, 다수의 횡포에 의한 소수이익의 침해를 방지하는 데는 대의제와 연방제, 권력분립제가 가장 합당한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또 이러한 제도 속에서 소수에 의해 초래되는 문제는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이 책은 미국인들이 뽑은 가장 위대한 법서이며 오히려 출간 당시보다 현재 더욱 큰 비중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 대법원은 다수의 판결문에서 이 책을 인용하며 심지어는 한 사건에서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모두 이 책을 그 전거로 인용하기도 한다. 이 책 속에 나타난 비전, 즉 큰 국가를 구성해 파당을 없애고 보다 큰 의미의 국익을 도모할 수 있다는 사상은 세월이 갈수록 미국사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미국의 정치사상과 제도, 특히 대의민주주의를 파악하고 미국사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이겠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헌법이 가지는 의미와 헌법재판소의 자리매김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필독서라 하겠다.


조홍식 서울대 교수·법학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37>종의 기원-찰스 다윈

1999년 미국에서는 학자 및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1000명을 묶은 ‘1000년, 1000인’이란 책이 출간됐다.
다윈은 갈릴레이, 뉴턴과 함께 10위 안에 선정되었다. 다윈의 진화론, 즉 자연선택론은 그간 많은 논쟁을 거쳐 이제 생물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분야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치는 확고한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또 알게 모르게 현대인의 사고체계에 기본 틀을 제공하고 있다. 다윈의 이론이 학문은 물론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라 평가되어 과학사학자들은 이를 ‘다윈혁명’이라 일컫는다.
다윈의 자연선택론이 등장하기 전 2000년 동안 서양의 자연과학을 지배해 온 사상적 토대는 플라톤의 본질주의였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 세상은 영원불변의 완벽한 전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전형으로부터의 변이는 진리의 불완전한 투영에 불과하다.
이 같은 절대주의 관념은 훗날 기독교 신학에 의해 더욱 굳건히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된다.

‘종의 기원’의 출간은 이 같은 서양의 사상체계를 근본부터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었다. 다윈은 변이가 바로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진화론만큼 오해를 많이 받은 이론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윈의 이론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지금까지 줄곧 오해와 오용의 역사를 거듭해 왔다. 근본적으로 결코 과학일 수 없는 창조과학의 어처구니없는 공격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대부분의 인문사회학자와 심지어 상당수의 생물학자마저 상당히 그릇된 이해를 하고 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것이 1859년이니 이제 거의 한 세기 반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 자체가 나름대로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쳤다.

자연선택론은 1930, 40년대에 이른바 ‘진화적 종합’을 겪고 1960, 70년대에는 또다시 유전자의 관점으로 재무장하여 지금은 상당히 ‘진화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1세기 생물학은 지금 엄청난 변혁기를 맞고 있다. 분자생물학 만능시대를 벗어나 바야흐로 통합생물학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환원주의 일변도로 치닫던 생물학이 드디어 또 다른 종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가능하면 모든 걸 단순한 시스템으로 만들어 분석하는 물리화학과 달리 기본적으로 위계구조의 복잡계를 다루는 생물학은 그 접근 방법이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2009년이면 다윈이 탄생한 지 200년, 그리고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년이 된다.

미국 하버드대의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여 드디어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사회과학과 예술을 한데 아우르는 ‘지식의 통섭(統攝)’이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다윈의 이론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공부할 때가 온 것이다.


‘종의 기원’을 읽으며 다윈의 또 다른 명저 ‘인간의 유래’(1871년)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그래야 다윈의 이론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38>정부론(통치론)-존 로크

청교도혁명과 왕정복고 및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절대왕정이 의회정으로 대체된 영국의 시민혁명기에 활동한 존 로크가 명예혁명이 있은 지 2년 후인 1690년에 출판한 이 책은 명예혁명을 옹호한 가장 중요한 저술이다.
사실 책 내용의 대부분이 명예혁명 이전에 쓰인 것이긴 하지만 근대자유주의 정치이론을 정초한 최초의 본격적인 저술로서 평가받는다.
이 책은 두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버트 필머경과 그 일파의 잘못된 원리와 논거를 밝히고 논박한다’는 제하의 첫 번째 논문은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나지 않았다’는 명제에 입각하여 절대왕정을 옹호한 필머와 그 일파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논박하는 내용이다.

두 번째 논문인 ‘시민정부의 참된 기원과 범위 및 목적에 관한 소론’에서 로크는 자신의 정치권력론을 체계적으로 개진한다.
국내에서 두 논문이 모두 번역된 책은 찾기 힘들고 ‘통치론’이란 제목으로 두 번째 논문이 번역되어 있다.
로크에 의하면 통치권력은 어디까지나 자연상태로부터 ‘모든 개인의 동의에 의거하여’ 성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자연상태에서 누구나 자신의 소유물과 신체를 처리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누구나 똑같은 권리를 누리는 평등한 존재이다.
그러나 자연상태는 ‘방종의 상태’가 아니다. 자연법은 ‘모두 평등하고 자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누구도 타인의 생명, 건강, 자유 및 재산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한다.

이성적 존재로서 사람은 자연법에 따라 생활한다. 때문에 자연상태는 애초에 평화적이고 목가적인 상태였다. 그러나 화폐의 발생과 더불어 사태는 달라진다. 즉, 화폐는 썩지 않고 얼마든지 축적할 수 있다. 게다가 사람들 간에 근면의 정도 등에 차이가 있다. 이로 인해 사람들 간에 소유물의 차이가 생기게 되고, 다른 사람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사태 역시 발생하게 된다.
이런 사태를 종식시키고 사람들이 ‘생명’ ‘자유’ ‘자산’이라는 자연권을 보다 안전하게 향유하기 위하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처분권을 정부에 위임할 것을 결의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연상태 대신 정치사회에서 살기에 이른다.

그런데 ‘정치사회 결성의 목적이 재산 보호에 있다’는 그의 주장은 정치적 자유주의이론의 핵심적인 요소에 속한다. 이와 더불어 그가 제시한 제한정부론, 권력분립론,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우위론, 법치국가론 역시 정치적 자유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들에 속한다.
한편 그는 인민의 동의가 권력행사의 기초이고, 인민이 저항권을 지님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런 점들은 그의 정치이론이 지닌 민주적 요소에 속한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정치사회를 결성하는 주체를 실질적으로는 유산자층으로 제한하고 있고, ‘치자와 피치자의 일치’를 적극 사고한 장 자크 루소와는 달리 권력의 ‘양도’를 정치사회 결성의 전제로 삼고 있는 것과 같은 한계점을 가진다.


그런 한계점에도 구하고 로크의 이론은 미합중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이후 ‘자유주의의 민주화’를 추구한 ‘진보적 자유주의’의 출발이론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