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16>허클베리 핀의 모험-마크 트웨인

자주적이고 자족적으로 살아가는 미국인의 원형을 그려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통해서 19세기 미국인들은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또 이 소설은 미국문학의 전통을 만드는 데 중요한 밑바탕을 제공했다.
이 작품은 독자들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발시키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미국인 스스로의 정체성을 사유해 보게 하기 때문에 미국문학 전통을 논의할 때도 빼놓을 수 없다.
강을 따라 또는 숲 속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헉(허클베리)의 삶은 문명사회가 부여하는 구속의 틀에서 벗어나 참다운 자유를 향유하고자 하는 현재의 미국인들이 시도해보고 싶은 꿈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런 미국인들의 바람을 충족시켜줄 뿐 아니라 인종, 종교문제 등 당대의 사회문제를 천진난만한 어린 소년의 눈을 통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제목처럼 소년 헉이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며 겪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과부 더글러스가 강요하는 경직된 ‘문명화교육’에 불만을 품은 헉은 자신처럼 문화적 적응에서 도태된 아버지 팹과 외딴 오두막에서 자연과 더불어 원초적인 삶을 산다.
비록 숨 막히는 문명교육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폭력 역시 견디기가 힘들었던 헉은 근처 잭슨 섬으로 도망치게 된다. 그곳에서 헉은 노처녀 잡슨 에게서 도망친 흑인노예 짐을 만나게 된다. 이후 헉과 짐이 강을 따라 내려가며 벌이는 모험과 그 속에서 형성되는 돈독한 우정은 당시로서는 꿈도 꾸기 힘들었던 ‘흑과 백의 조화로운 공존’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헉은 짐과의 생활을 통해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를 만끽하면서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되고, 심지어 짐에게서 그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부성애까지 느끼게 된다.
소설 중간엔 어린아이의 순진한 눈으로 당대사회의 왜곡된 모습을 비판한다.
뗏목이 부서져 헉은 그랜저포드 집안에 피신하게 되는데 이 가문은 근처 셰퍼드슨가(家)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총기를 난사하는 등 험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두 집안의 싸움을 통해 작가는 우매한 인간들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계속된 모험 중에 만난 사기꾼, 자칭 왕과 공작을 통해 인간이 돈 때문에 얼마나 비열할 수 있는지도 그리고 있다.
소설 후반부에는 지금까지 온전히 형성된 헉의 정신적 성장과 짐과의 흑백갈등을 넘어선 형제애가 갑자기 사라진다. 이들에게서 이전의 당당한 모험가의 모습은 간데없고 어린아이 톰의 황당한 지시에 복종하는 것이다. 인종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도 사그라지면서 작가가 현실의 복잡한 문제에서 도피하는 것처럼 해석돼 ‘도피부’라고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톰이 상징하는 백인에 의해 흑인과 약자는 종국에는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당시 미국사회의 현실을 고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더불어 흑백문제에 관해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진 극소수의 백인이 톰이 상징하는 그 사회의 주류를 지배하는 문명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다는, ‘시대의 배타성’을 풍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조철원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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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17>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이라는 작은 책자의 저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 충격적 주장을 제기한다. 필요한 경우 정치가들은 도덕적 구속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때로는 위선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 때문에 그의 이름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적인 정치책략가의 대명사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평가가 나온 데에는 마키아벨리 자신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만 매달린다면 마키아벨리의 역사적 공헌을 정당하게 볼 수 없으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 책에서 마키아벨리가 정치가들이 필요에 따라 일체의 도덕적 구속에서 해방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강조한 이면에는 당시 유럽의 지배적인 정치사회철학이던 기독교와 인문주의적 공화제 사상과 같은 ‘지적 전통’을 전복하겠다는 그의 야심 찬 지적 작업이 깔려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당시의 지적 전통 위에 수립된 정치이론은 실제로 존재하는 정치라기보다는 ‘있어야 할’ 이상적 정치공동체의 문제만을 다뤄 항상 사태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보기에 정치학의 핵심은 ‘권력의 조직체를 어떻게 획득하고 유지할 것인가’였던 것이다.
당시까지 모든 정치이론의 중심이었던 ‘바람직한 정치 공동체의 구성과 조직의 문제’는 그에 의해 ‘효과적인 권력 조직의 획득과 유지의 방안에 관한 문제’로 바뀌게 된다. 이 권력 조직을 그는 ‘스타토(stato·국가)’로 정의하였는데 이는 그의 정치학의 핵심 개념이다.
이렇게 해서 권력 조직으로서의 국가의 문제가 마키아벨리에 의해 사상 처음으로 정치학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정치이론에서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불릴 만한 큰 사건이다.
특히 프랑스와 스페인이 대결을 통해 전혀 새로운 유형의 정치 조직으로서의 근대적 영토국가가 출현했던 당시에 이 같은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시 도시국가 피렌체의 관리이던 마키아벨리는 군사 외교 업무를 접하게 된다. 이때 그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군사 대결장으로서 유린되던 이탈리아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 조직을 통해 이들과 같은 영토국가의 조직을 확보하고 또 뛰어난 군사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따라서 그에게는 공동체 안전을 위한 결정적 수단인 힘, 즉 권력과 능력의 문제는 정치학의 중심 문제였다. 그가 ‘비르투(virt`u)’라고 표현한 이 힘이 하나의 그릇에 담겼을 때, 또 하나의 조직체가 되었을 때 국가가 된다고 정의했다.
마키아벨리의 공헌은 당대에 출현하기 시작한 근대적 정치질서의 역사적 의의를 그 누구보다도 빨리 국가라는 개념을 통해 포착한 데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근대 정치이론의 비조로 평가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맥 속에서 ‘군주론’을 이해할 때 그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평가될 수 있다. 기존의 도덕률에 대한 거부는 충격적이었겠지만 자신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사(修辭)적 필요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박상섭 서울대 교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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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18>논어-공자

“배우고 그것을 틈틈이 익히면 즐겁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
이렇게 시작하는 ‘논어’가 공자의 말씀을 모아 놓은 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공자가 성인이고 논어가 불멸의 고전이라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 또한 거의 없었다. 20년 전에는 확실히 그랬다.
하지만 요즘도 그런지 필자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어떤 때는 학생들에게 ‘논어’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단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고리타분’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거름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질 때 참된 농군이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듯이 논어가 지닌 그 고리타분한 냄새에서 옛 선인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때에야 우리 속에 스며있는 전통의 향기를 논할 자격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겠다.
논어는 2000년 이상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 고전 중의 고전이었다. 동아시아의 모든 지식인은, 심지어 불교 승려들까지도, 논어를 반드시 읽어야 했다. 특히 유학자들은 논어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공자 말씀을 재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 갔다.
논어는 조선의 유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의 재해석 과정을 통해 그 시대의 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논어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논어는 그 자체로도 읽고 음미해 볼 만한 책이지만 우리의 전통사상과 문화가 논어의 해석이라는 모습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도 논어를 꼭 읽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런 역사적 이유 외에 논어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논어는 소위 ‘수레 축 시대’라고 불리는 2500여 년 전의 책이다. 다른 고전도 마찬가지지만 논어에는 문명이 열리면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논어는 간결한 대화의 형식으로 되어 있고 그 내용도 너무 평범하다 싶을 정도로 쉽다. 그렇지만 찬찬히 읽다 보면 공자의 짧고 함축적인 대답은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로 해답을 주는 게 아니라 읽고 나서 한참 있다가 다시 생각해 보면 ‘아 그런 뜻이었구나’하고 감탄하게 하는 책, 이런 책이 정말 고전이라 할 만한데 논어가 그중의 하나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논어를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소위 성인 혹은 현인이라고 칭해지는 공자와 제자들이 보여주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을 가감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양념 같은 부분 때문에 공자를 성인으로 모신 후대의 유학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논어에 실린 공자 말씀들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더불어 성인도 약점이 있음을 알게 되니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다.
논어는 대화록이므로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읽어도 좋은 책이다. 한문 실력도 늘릴 겸 원문과 대조해서 읽으면 더 좋겠다. 한문으로는 못 읽더라도 주석을 참조하면서 꼼꼼히 읽으면 우리 조상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주희(주자·朱子)의 사상도 아울러 알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될 것이다. 자꾸 읽다가 보면 공자가 나와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니며 이래서 ‘공자 말씀’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허남진 서울대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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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19>셰익스피어 4대비극

셰익스피어는 시대, 문화, 지리적으로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의 어휘와 구절들은 일상생활에서 그리 낯설지 않게 인용된다.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연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 “세상에 좋거나 나쁜 것은 꼭 없어. 모든 게 생각 나름이야”, “이 세상은 무대요, 우리는 한낱 배우에 불과해” 등등.
셰익스피어의 인물과 작품들은 우리 자신과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혀주고 삶의 깊이를 더해 준다. 이들은 극작품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감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작가의 문학작품, 음악, 오페라, 그림, 영화 등 모든 예술 영역에서 지금도 살아 움직인다.
셰익스피어에겐 40편에 이르는 작품이 있지만 우선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지름길로 ‘햄릿’, ‘맥베스’, ‘좋으실 대로’, ‘폭풍’ 등 네 작품을 추천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4개의 이야기가 한 권에 담겨 있는 번역서는 없다. 원문에 충실한 번역과 해설이 담긴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서 비극의 대표 격인 ‘햄릿’과 ‘맥베스’를 먼저 접해보자.
그러면 셰익스피어에 어떻게 접근해야 좀더 잘 감상할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심리학자나 사상가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세계는 마음을 열고 즐길 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햄릿’은 복수비극 또는 사색과 우유부단의 비극이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작품을 너무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작품 ‘햄릿’에는 살인과 간통을 범한 클로디어스가 있으며, 왕의 명령을 따르다 애매한 죽음을 맞이하는 햄릿의 친구인 로젠크란츠와 길던스턴이 있다. 생각에 잠기게 하는 여러 독백이 있는가 하면, 잔인한 복수 행위가 있고, 무덤 파는 광대의 인생철학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복수의 과정에서 온갖 우여곡절과 번민을 거듭한 뒤 햄릿은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도 신의 섭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며 인간의 운명은 한치 앞도 알 수 없으니 우리는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맥베스’는 왕을 시해하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 맥베스가 가증스러운 살인마로 타락해 가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참담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이 극은 모든 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며 자신에게 부여된 역만을 수행하는 ‘한낱 배우’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유가 되면 그의 희극 중 대표 격인 ‘좋으실 대로’와 ‘폭풍’도 접해보자. ‘좋으실 대로’는 권력욕과 질투 등으로 얼룩진 궁정에서 벗어나 관용과 용서, 자비가 가능한 자연 속으로 젊은이들이 도피해 낭만적 사랑을 이루는 목가적 환경 속에서의 연애희극이다.
반면 ‘폭풍’은 폭풍으로 인해 난파가 발생하자 원수지간인 형제의 아들과 딸이 사랑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하여 서로 모든 과거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로망스이다.
비극이 권력욕과 연관되어 살인과 암투, 복수가 난무하는 어두운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희극은 우리가 동경하는 이상향을 무대로 사랑과 용서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이루고 싶어 하는 꿈을 보여준다.

변창구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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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20>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한편으로는 몰개성과 획일성의 풍조 또한 확산되고 있다. 통설과 대세에 동조하는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한 징후이기도 하다.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갈망하면서 동시에 자유를 부담으로 여기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자. ‘자유론’의 목적은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그 한계를 살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개인의 자유는 정치권력을 제한함으로써 획득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고 정치권력의 행사가 제도화된 상황에서는 사회적 다수가 행사하는 권력이 개인의 자유에 더 큰 위협이다.

개인의 자율성과 개성을 살리기 위해선 이제 ‘국가권력’이 아닌 ‘사회’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다수의 횡포’는 공권력을 통해 행사되기도 하며 관습이나 여론의 압력이라는 형태로 개인의 영역에 침투하기도 한다. 다수의 횡포는 어떤 형태의 정치적 탄압보다 훨씬 더 가공할 만한 힘을 발휘한다. 밀은 “이는 다수의 횡포가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마침내 개인의 영혼까지 통제하면서 도저히 빠져 나갈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행복의 조건인 개별성과 자아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상의 자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이 요구된다. 토론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진리는 독단에 지나지 않는다. ‘오류 가능성’과 ‘부분적 진리’를 인정할 때 사회 진보가 가능하다. 이 책은 “전체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이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그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밀은 또 “무엇이 유럽 민족들로 하여금 정체되지 않고 계속해서 진보할 수 있게 만들었는가? 유럽을 유럽답게 만든 요인, 그것은 바로 성격과 문화의 놀라운 다양성이다”고 말한다. ‘자유와 다양성’은 지적 진보의 조건이다. 사회 내 다수의 의견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면 정체 또는 쇠퇴의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자유론’은 이러한 시대 상황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한다. 대중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위험은 자유의 과잉이 아니라 순응적 태도의 확산이다.

그러나 자유를 최대한 향유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질서와 안정이 요구된다. 밀은 “질서란 진보와 함께 이루어져야 할 추가적인 목표가 아니라 진보 그 자체를 위한 수단이며 그 일부분이다”고 정의했다. 즉, 사상의 자유가 신장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그 합의는 건전한 교육과 공론에 의해 유지된다. 밀의 ‘자유론’은 진보적 역사관과 경험적 인간관을 기초로 한다. 그의 전체 저작의 맥락에서 볼 때 ‘자유론’은 원칙적 자유주의의 천명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상황과 조건에 국한된 교훈으로서의 성격을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론’은 분명 자유주의의 고전이며 자유에 관한 현재의 논의에서도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유홍림 서울대 교수·정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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