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김명섭 <대학의 역사>

◇전쟁터서 배움터로

지금 대학은 전쟁 중이다. 대학과 국가 간에 전쟁의 조짐이 심각하다. 그런가 하면 비교적 내부 갈등이 없는 대학들은 치열한 학생유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무엇이 대학의 전쟁을 낳았는가? 민주와 진보 또는 미래와 개방을 외치는 재단과 총장, 교수와 학생, 그리고 교육관료들의 머리 속에는 대학에 대한 서로 다른 그림들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다. 공동의 텍스트가 없는 것이다. 대학의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공감대를 만들어주고 미래지향적인 영감과 비전을 줄 수 있는 의미에서의 텍스트, 일종의 ‘대학학’ 개론서를 읽을 필요가 있다.

◇영감과 비전이 샘솟는 캠퍼스

‘대학의 역사’라는 이름을 가진 두 권의 책(이석우 지음·한길사·1998/크리스토프 샤를 외 지음·한길사·1999)은 어떤 형태로든 전쟁을 치르고 있는 대학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읽었으면 하는 책들이다.

전자는 한국인이 쓴 대학의 역사인 동시에 대학을 통해 본 세계사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서양의 대학에 의해 주도됐던 ‘서양의 동양 읽기’에 비견되는 ‘동양의 서양 읽기’에 참여하게 된다.

반면 후자는 서양의 대학에 대한 서양인들 자신의 간결하고 명료한 역사적 통찰의 기록이다. 깔끔한 전문 번역가의 손길이 읽는 맛을 더욱 감칠 나게 한다.

두 권의 책이 다루고 있는 대학은 모두 서양의 대학일 뿐 동양의 대학은 아니라는 점에서 과연 대학의 역사라는 제목이 적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하지만 이 두 권의 책들은 모두 서구화된 한국의 대학들이 그 긴 역사적 그림자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

◇청빈-求道 학문자세 회복 권유

이 책들은 오늘날의 대학이 겪고 있는 ‘전쟁’의 기원을 밝혀주고 있을 뿐 아니라, 학생조합과 교수조합이 어떤 노력을 통해 역량(faculty)의 폭을 넓혀왔는가를 보여준다.

또 국가와 교황은 대학을 놓고 어떤 경쟁을 벌였으며, 대학은 그 사이에서 어떻게 양자의 후원을 도출해낼 수 있었던가, 그리고 대학이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자리매김 했던가도 일깨워준다.

‘대학의 역사’는 방송과 인터넷을 이용한 원격교육이 확장되는 현실 속에서 대학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 책들을 읽는 중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해답 중의 하나는, ‘전사’가 돼버린 현재 대학의 구성원들 모두가 초창기 대학의 구성원들이 가졌던 청빈과 구도의 수도사 자세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것이다.

(한신대교수·국제관계학)


동아일보     200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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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이승환-깨달음 뒤의 깨달음

◇명상 속으로

깨달음 뒤의 깨달음

오래 전에 졸업한 제자 하나가 주례를 부탁하러 연구실로 찾아왔다. 모처럼 아끼던 제자를 만났기에 쓰던 논문을 제쳐놓고 녹차를 준비했다. 첫잔 찻물이 우러날 즈음 “삐리릭∼” 울려오는 휴대폰 소리. 그는 얼른 전화를 꺼내 통화를 시작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둘째 잔 찻물이 우러날 때쯤 다시 울려오는 휴대폰 소리.

우리가 마주했던 한 시간 여 동안 그가 받은 전화가 대여섯 통은 넘을 것이다. 정담을 나눌 만하면 순식간에 끼여들어 분위기를 망쳐버리는 침입자. 그러나 그는 이런 침입자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듯 시종일관 전화기를 켜놓은 상태로 대비하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주례서기를 거절하고 말았다.

▽쓸데없이 분주한 현대인

소중하게 몰두해야 할 순간을 하찮은 일들로 조각내 버리는 사람, 너무도 자기중심적이어서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결여된 사람을 좋은 배우자감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오랜만의 정겨운 만남을 하찮은 전화통화 때문에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모습은 분주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티베트의 영적 스승인 소걀 린포체는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많은 하찮은 일들이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하루 하루가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전화통화나 사소한 잡무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는 정작 중요한 문제와는 마주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소걀 린포체는 ‘깨달음 뒤의 깨달음’(민음사2001)이라는 명상록에서, 진정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망각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청량한 경각음을 들려준다.

“여러분의 마음을 안식처로 가져가십시오.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쉬게 하십시오.”

▽욕망의 '감옥'에서 탈출하자

‘마음을 안식처로 가져간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나를 분주하게 만드는 온갖 잡무로부터 벗어나 평정한 상태에서 자신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일을 의미한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욕망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어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현대사회는 ‘시간’과 ‘욕망’의 함수관계 위에서 굴러간다. 끝없는 속도전과 시간의 분절화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효율성은 자본증식이라는 욕망을 위해 기여한다. 시간과 욕망의 굴레 속에서 배태된 노예적 타성(惰性)은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소중한 것들을 망각케 한다. 린포체는 이렇게 권유한다.

“잠시 앉아보십시오. 온갖 마음의 긴장을 풀고 명상 속에서 감동과 황홀함을 느껴보세요.… 명상이란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고려대교수·철학)

동아일보  200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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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임지현-자유로운 영혼,룩셈부르크

◇예술을 사랑한 혁명가

혁명가의 초상은 단색이다. 혁명에 헌신하는 강철같은 투사이거나 피에 굶주린 악마의 이미지로 그려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혁명가가 사물이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린다.

투사의 이미지를 고수하려는 측에게, 혁명가의 인간적 고뇌는 덮어버려야 할 약점이다. 회의(懷疑)는 행동의 제약일 뿐이다. 악마의 이미지를 고집하는 측에게도, 고뇌하는 악마는 당치 않다. 악마는 주저함이 없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편지들을 모은 ‘자유로운 영혼, 로자 룩셈부르크’(예담·2001)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고정된 혁명가의 이미지를 보기 좋게 깨부순다. 어려운 시대 힘든 상황 속에서 인간으로 남아 있고자 고뇌했던, 강하면서도 약하고 섬세한 한 영혼의 울림이 있을 뿐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길거리에서 개구리 합창대회를 열다 잠을 설친 이웃에게 혼이 나고, 자신의 감방에 날아드는 굴뚝새와 개똥지빠귀에게 줄 해바라기 씨앗을 넣어주도록 친지에게 부탁하는 소녀 같은 이 중년 여성에게서 피에 굶주린 ‘빨갱이’ 로자의 이미지를 찾는다면 헛수고다.

“혁명 전 프랑스 귀족문화의 진수와 쇠락의 미가 살짝 더해져 고도의 세련미로 형상화된 그림”을 완상(玩賞)하고 괴테, 쉴러, 아나톨 프랑스, 로망 롤랑, 모차르트, 베토벤, 티티아노, 렘브란트 등을 즐겼던 로자의 예술취향에는 현실 사회주의의 공식 미학인 ‘프롤레트쿨트’ 이론이 자리할 여지는 없다. 의식주의 일상생활에서도 로자의 개인적 취향은 아주 까다롭고 고급이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로자가 외곬의 사회주의 혁명투사라는 고정관념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편지에서 드러나는 그의 내면은 다소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역설적이지만, 내가 인간으로서의 로자 뿐만 아니라 혁명가로서의 로자를 신뢰하는 것은 바로 이 모순 때문이다. 실존을 껴안은 혁명가의 진솔한 초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장애인으로서 그리고 독일의 ‘조센징’인 폴란드인으로서 사중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인간으로 남기 위해 고투한 그의 삶은 척박한 단순논리로 인간과 사회를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삶에 대한 인간의 성숙한 태도에는 늘 여운이 있다. 혁명의 최전선에서 인간으로 남아 있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실하게 느끼는 자의 외로움에서 비롯되는….

혁명가는 사물이 아니다. 역사의 대상이 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인간이다.

임지현(한양대교수·서양사)


동아일보    200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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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서지문-한국의 풍속화

▨ 한국의 풍속화

풍속화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고 편안한 그림이어서 전문가의 안내 없이도 충분히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정병모 교수(동국대·미술사)의 ‘한국의 풍속화’(한길아트·2000년)를 읽어보면 그림이 탄생한 시대의 상황과 세계관, 기법의 묘 등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어 풍속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풍속화라는 용어의 해설에서 시작해 선사시대부터 한국의 종교적(주술적) 풍속화, 정치적 풍속화, 그리고 통속적인 풍속화의 용도와 기법 등을 분석하고 있다. 풍부한 도판이 곁들여진 해설은 학술적이면서도 재미있고 생생하다.

▽화폭속에 생생한 역사 담겨

종교적 풍속화라 함은 선사시대부터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와 고분벽화를 말하는데, 암각화에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풍어와 풍년을 기원하는 종교적 주술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고구려 신라 발해의 고분벽화 역시 전통 신앙적인 영생불사의 기원, 또는 불교적인 연화화생(蓮華化生)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시대의 감은탱화 역시 이런 종교적인 소망을 표현한다.

정치적인 풍속화는 구중(九重) 궁궐 속에 백성의 생활을 접하지 못하는 왕자와 왕손들에게 백성의 어려운 생활상을 그림으로 보여주어 통치자로서의 각오와 의무감을 심어줄 목적으로 왕이 그리게 한 경직도 (耕織圖)와 일반 백성의 윤리와 풍습을 바로잡기 위해서 백성에게 판화로 보급한 삼강행실도 등의 그림이 해당된다.

저자는 이 그림들의 표현기법, 공간개념, 채색, 장면 조합방식의 변화와 중국과 일본의 회화와의 영향관계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일상생활을 반영하는 근대적 풍속화를 설명한다. 윤두서, 조영석, 정선, 강세황 등 사대부 출신 화가들의 풍속화는 다분히 목가적인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은 산수 인물도가 많았다.

▽작품과 관련된 일화 재미 솔솔

이에 비해 중인 출신의 화원(畵員)이었던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의 풍속화는 세정(世情)의 실태와 불평등한 신분계층에 대한 비판을 많이 담고 있고 에로틱한 소재를 과감히 사용해 긴장감과 현실감이 더하다.

이 책은 우리 문화 속의 속(俗)과 아(雅)의 대립에 대한 고찰도 담고 있고, 화가들의 생애와 개성 등 흥미진진한 내용도 풍부하게 싣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하고 정다운 여러 풍속화―조영석의 ‘선유도’ ‘이 잡는 노승’, 김홍도의 ‘벼 타작’ ‘빨래터’ ‘서당’ ‘씨름’, 신윤복의 ‘단오놀이’ ‘밀회’ ‘달빛여인’ ‘뱃놀이’ ‘칼춤’, 그리고 김득신의 ‘대장간’ ‘파적도’ ‘양반과 상인’ 등―를 비롯한 150개의 컬러도판이 들어 있다. 이 책의 여러 작품과 관련된 일화들과 그림과 관련된 시(詩)들은 문학적 즐거움도 아울러 선사한다.

<고려대 교수·영문학>

동아일보   200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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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김성기-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하찮은 것들의 아우성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의 명소다. 해질 무렵 돌담을 거닐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장면이 쉽게 눈에 띈다. 한국일보사 건너편에도 돌담이 있다. 미국 대사관 숙소를 가리고 있는 그 높고 견고한 담벼락 말이다. 그 곳을 지날 때면 괜히 발걸음이 빨라진다. 사랑의 밀어는 커녕 주고받던 잡담마저 일순간 멈추게 될 정도이다. 담의 위압적인 모양새가 사람을 영 주눅들게 하는 것이다.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강홍구 지음·황금가지·2001)을 펼치면 그렇게 스쳐 지나쳤던 장면들이 다시 눈앞에 떠오른다. 일상 풍경을 담은 사진첩이라고 할까. 저자 강홍구는 그것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읽어낸다.

▽통속적인 사물의 깊은뜻 찾아내

자동차 윈도 브러시에 끼어 있는 술집 광고, 환상을 제조 판매하는 스티커 사진기, 은폐나 변신을 위한 패션 가발, 과잉과 사치를 내보이는 뷔페 식당의 음식 장식물, 우리 시대의 거대한 벽화라 불리는 고층 아파트, 도시 경관의 필수품목인 가로수와 가로등, 그리고 플래카드 등. 저자의 표현대로 시시하고 낯익은 것들이다.

그 따위에 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며 분석하는가? 저자는 우리 삶 주변에서 늘 대하는 것을 다시 촘촘히 훑어보려고 한다.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는 배후를 들추어내려는 심사렷다.

그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자본과 권력이 횡포를 부리고 우리네 달뜬 허영심과 조잡한 이미지와 가면이 진짜와 진실을 몰아내며 주인 행세를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봉투를 보듯이 슬쩍 비켜가고 싶지만 그게 우리의 참 모습이란다.

▽제대로된 시각문화 열망 담겨

저자는 자신을 이른바 ‘B급 미술가’라고 자처한다. 기존의 미술세계에 별 매력이나 의욕을 느끼지 못한 탓이리라. 해서, 미술이 아닌 듯하면서도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각문화 속에서 미술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런데 그 그림도 아름다움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그 실망은, 그러나 시시한 것을 진짜 ‘아름다운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열망을 부추기며 결국 아름다움이란 제대로 잘 사는 일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올해가 ‘한국 방문의 해’라고 한다. 외국 관광객을 많이 유치해 관광선진국이 되자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재의 관광은 우리의 전략 산업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런저런 관광 특구만 제정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바깥 세계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애초 관광 자원이 빈약한 마당에 별 뾰족한 수는 없다. 시시한 것들부터 아름다워야 한다. 이게 바로 관광문화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지름길이 아닐는지.

김성기(문화비평가)


동아일보  200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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