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북클럽 - 우리 아이 책과 평생 친구가 되는 법
패멀라 폴.마리아 루소 지음, 김선희 옮김 / 윌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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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난생처음 북클럽

지은이: 패멀라 폴, 마리아 루소

옮긴이: 김선희

부록: 한미화

펴낸 곳: 윌북




 느즈막이 낳은 예쁜 공주님과 아웅다웅 다투며 살아가는 나는 아이 엄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음은 앞서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는 서툰 초보 맘이라고나 할까. 아이의 감정을 읽고 원하는 걸 내어주고 본업에 집안일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늘 걱정하고 마음 쓰는 부분이 바로 아이의 책 읽기다. 잠자리 독서가 그렇게 좋다고 하는데 함께 침대에 앉아 동화책 한 번 읽어주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앞서 말했듯이 마음만 앞서는 초보 엄마인 나는 우리 아이가 책을 아끼고 좋아하게 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 이렇다 할 환경 조성이나 노력을 하지 못했다. 육아 지침서처럼 아이를 책으로 이끌어줄 유아 독서 지침서가 절실히 필요했다. (난 모든 걸 책으로 배우는 사람이므로!) 아니,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누가 훔쳐본 걸까? 거짓말처럼 마침맞게 만나게 된 윌북 출판사의 『난생처음 북클럽』. 가뭄 끝에 내린 단비처럼, 끝없이 쏟아지던 빗줄기 후에 비친 한 줄기 햇살처럼 너무도 반가운 책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세계 최고의 서평지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편집장인 패멀라 폴과 어린이 책 편집자로 활동 중인 전직 기자 마리아 루소의 노하우가 담긴 이 책은 0세부터 18세까지 각 시기에 읽으면 좋을 590권의 책을 소개한다. 여기서 돋보이는 윌북 출판사의 센스!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가 추천하는 국내 도서 50권이 오직 한국 독자들을 위한 한국판에만 추가 수록되었다. 외국 동화책도 좋지만, 국내 작가들의 아름답고 좋은 책도 만날 좋은 기회!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나이별로 아이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수록되어 있지만, 역시나 내게 가장 필요한 3, 4세의 독서 지도법에 가장 주목하며 재독을 거듭했다. 독서는 일종의 '삶의 준비'이며 책 읽기를 즐겁게 만드는 게 부모의 임무라는 저자의 말씀에 격하게 공감하며 공부하듯이 집중! 아이를 책 읽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환경을 조성하면, 그 길이 바로 아이가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길이라고 한다. 자녀를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면 부모부터 책을 읽어야 하고, 아이의 취향을 존중하며 언제든 읽을 수 있게 외출 시에도 책을 챙길 것. 집에 책이 많아야 읽을 가능성이 높고, 해마다 아이 생일에 특별한 책을 한 권씩 선물해서 하나뿐인 컬렉션을 만들어 주어도 좋다. 가르침을 억지로 주입하지 말고 도덕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책은 피하자. TV 속 캐릭터가 등장하는 책도 비추천.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흐름이 끊기더라도 대화에 응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자.









 문득 나는 언제부터 책을 좋아했을까 궁금하여 엄마께 여쭤보니, 걷기 전부터 동화책을 안고 살았다고 한다. 하도 책을 읽어달라고 졸라서 어른들이 숨어버릴 정도였다고. (그래, 별다른 재주도 없는데 책이라도 좋아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책을 좋아하는 기질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아이의 키 성장이든 두뇌 성장이든 부모가 어떤 환경을 조성해주는 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얼른 TV를 없애고 책장과 독서 테이블로 거실을 채우고 싶지만... 일단 하나씩 차근차근 노력해보자. 연령별 추천 도서에 책 제목과 간단한 줄거리가 실려 있으니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한 주에 한 권씩 주문할 생각이다. 그리고 자기 전에 동화책 읽어주기도 오늘 당장 도전!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줘야 할지 난감했던 나 같은 초보 엄마에게 이 책 『난생처음 북클럽』은 은인 같은 존재다. 앞으로 옆에 딱 끼고 자주 펴볼 생각.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되는 그날까지 잘 부탁합니다! 이 책 정말 좋아요, 우리 같이 책 읽는 아이로 잘 키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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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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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글쓴이: 시라이 도모유키

옮긴이: 구수영

펴낸 곳: 내 친구의 서재




"다섯 명 모두가 사망하는 순간

비로소 사건이 시작된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다 죽는데 비로소 사건이 시작된다니? 아름답지만 입가의 핏자국 때문에 섬뜩한 여인과 짙은 핏빛으로 새긴 제목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제목과는 상반되는 소개 글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장을 펼쳐 들었다. 초반부터 강한 흡인력을 선보이며 독자를 사로잡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이거 자칫하다간 푹 빠져서 트릭이고 추리고 다 놓치고 그냥 바보처럼 고개만 끄덕이다가 소설이 끝날 판. 아무리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해도 현실감이란 1도 없는 이야기에 휘둘려 이리저리 끌려다니게 되는데... 대체 넌 정체가 뭐냐!\





엽기 요리를 안주 삼아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우시오는 반년 전에 <분무도의 참극>이란 작품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한량이다. 실은 그 작품엔 사연이 있다. 변태적인 성욕으로 괴이한 행위를 저지르며 30명 넘는 혼외자식을 둔 아버지가 남긴 유품 속에서 찾아낸 원고가 바로 <분무도의 참극>. 즉, 우시오는 글이라곤 써본 적 없는 엉터리 사기꾼이다. 소설에 실린 특이사항 때문에 모기라는 편집자와 함께 한 대학교수를 만나고 돌아온 우시오에게 팬이라는 여대생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추리작가인 친구 에노모토에게 자랑하지만, 팬인 척하며 추리작가에게 접근해 육체관계를 가지려는 의문의 여자가 있다며 주의하라는 쓴소리를 듣는다. 여대생 하루카와 즐거운 식사를 마친 우시오는 그녀의 제안으로 관계를 맺게 되었지만, 아뿔싸. 이거 뭔가 일이 잘못된 듯하다. 홧김에 밀친 하루카가 거울에 부딪히며 큰 파편이 목에 박히고 말았는데... 피가 아닌 노란 고름 같은 액체가 흐르고 하루카는 전혀 아프지 않은 듯 다시 우시오에게 매달린다. 그길로 도망친 우시오는 얼마 후 하루카가 차에 치여 죽었으며, 그녀를 죽게 한 원인 제공자가 그녀와 연인이었던 에노모토의 소행이라는 뉴스를 접한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9년 후, 우시오 앞으로 수상한 초대장이 도착한다. 8월 16일 사나다 섬에서 감사 파티를 열 테니 와달라는 의문의 인물. 우시오, 사키, 우동, 아바라, 마사카네. 이렇게 추리작가 5명이 그 섬으로 향하지만, 도착한 섬은 텅 비어 있고 의문투성이다. 밤이 되자 우시오 앞에 <분무도의 참극>에서 등장했던 분무족의 자비 인형 탈을 쓴 괴한이 나타나 그의 목숨을 앗아간다. 하지만 다시 깨어난 우시오. 분명 죽은 상태인 듯한데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그는 나머지 추리작가 역시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한데, 분명 죽었던 다른 추리작가들도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한다. 이들은 좀비? 아니, 좀비와는 다르다. 죽었지만 죽지 않았고, 살았지만 살지 않은 그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무서운 살인을 벌인 범인은 누구?







정말 특이한 소설이었다. 줄거리에 스포를 담지 않도록 상당히 신경 쓰며 적었던 소설. 어쩌다 삐끗하여 중요한 사실을 발설하면 읽는 재미가 급감할 수 있으니 조심스러웠다. 여느 소설들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나 이 책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비밀 엄수가 관건! 소개 글에서 예고한 대로 '다섯 명이 사망하는 순간 비로소 사건이 시작된다'. 외딴섬에 지어진 천성관에 고립된 추리작가들. 타고 온 배에 연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클로즈드 서클이 된 사건 현장에서 그들은 마치 독 안에 든 쥐처럼 차례로 목숨을 잃고 다시 차례로 깨어나 추리를 펼친다. 누가 그들을 어떻게, 왜 죽였는지는 진실이 밝혀지는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는데, 각자 다양한 의견을 펼치며 자신들이 사망 경위를 추리하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워 진실에 대한 갈증이 갈수록 깊어진다. 9년 전 사건과 모두 관계가 있는 그들. 가해자면서 또한 피해자인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불사신을 방불케 하는 그들의 상태가 또 하나의 묘미다. 진실을 알아냈다고 자신하는 순간까지도 절대 방심하지 말 것!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수면 위로 떠 오르는 새로운 진실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래서 말은 끝까지 듣고, 추리 소설도 끝까지 읽어야 한다! 비위가 약한 분들께는 살짝 위험할 수도 있는 소설이지만, 미스터리 스릴러 마니아라면 거부감 없이 재밌게 읽을 소설. 속도감 넘치는 전개로 반나절이면 독파할 수 있는 책이니, 주말에 외출하지 말고 이 책과 함께 뒹굴뒹굴하시길! 집 밖은 위험합니다. 이 사람들도 집에나 있을 것이지 나갔다가 당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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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탐정 마환 - 평생도의 비밀
양시명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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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령을 보는 바리스타 탐정이라니! 신선한 충격! 노비가 그렸다는 평생도를 흥미진진하게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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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은 가을도 봄
이순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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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춘천은 가을도 봄

글쓴이: 이순원

펴낸 곳: 자음과모음

 

 

 

 

 

 낭만의 도시, 춘천. 대학생 시절 누구나 한 번쯤 MT로 가봤을 그곳. 문득 춘천 102 보충대에 입소했던 남동생을 배웅하러 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까까머리 남동생은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고, 엄마는 그런 동생을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고속도로에서 눈물을 한 바가지 쏟으셨다. 춘천 하면 또 기억나는 게... 역시 막국수와 닭갈비. 그리고 이번에 읽은 책 덕분에 춘천을 기억할 소중한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춘천은 가을도 봄』. 1970년대 후반, 춘천에서 청춘을 보낸 한 소설가의 회고록. 경험해보지 못한 시절이지만, 글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당시의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도취하여 마치 그 시절을 살아낸 기분이었다.

 

 

 

 

 

 

주인공 김진호는 법학도를 꿈꾸는 서울 명문 사립 법대생이었다. 재학생 문예작품 공모전에 당선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열심히 써낸 소설로 큰 상금을 받은 그는 서울 하숙집 정파서당에 술값을 거하게 내놓는다. 하지만 더 뜻깊은 일을 하고 싶었던 선배는 십시일반 돈을 모아 동아일보에 사태를 비판하는 광고를 내고자 했고 이때부터 진호의 인생은 안전 궤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4개월 후, 당시 정권을 비판하는 선동 선언문을 배포하고 선배 4명은 구속됐지만, 진호는 고향 명진에서 유지로 통하는 아버지의 뒷돈 공작으로 홀로 풀려난다. 그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진호는 2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춘천의 한 대학에 입학하고 거기서 그의 인생 2막이 시작된다. 조용히 한 학기를 보낸 진호는 2학기에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게 되고, 이듬해 신입생 취재차 혼혈아 채주희를 만나게 된다. 주희의 어머니는 주한미군을 상대하는 직업여성. 혼혈에 대한 편견이 끔찍했던 그 시절의 단상을 주희를 통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진호와 주희는 사랑에 빠지지만, 이는 이별이 예정된 슬픈 만남이었다. 한편, 친일파로 부를 축적했던 할아버지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맞아 죽고 훗날 배다른 막내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아버지가 살아남아 가족의 재산을 되찾게 된 집안 내력과 서울대에 입학했던 여동생 정혜가 가정교사로 일하며 고시 뒷바라지를 했던 애인에게 배신당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노동 운동가와 결혼한 이야기까지... 그 시절 사회에 짙게 깔려있던 여러 풍조와 사뭇 달랐던 분위기가 마치 손에 잡힐 듯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너는 여기 내려와 허송세월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렇게 덧없이 보낸 시간이 아니다.

청춘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꽃으로 비유되기도 하지만, 본인들에게는 춥고 습한 계절이지.

그렇지만 방황도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아.' - p11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부모님 세대인 1970년, 그때 그 시절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어 특별한 시간이었다. 이 책에 담긴 그 시대의 이야기를 부모님께 전하면 '나 때는 말이야~'라며 카페라테 향이 그윽하게 묻어나는 추억 보따리를 함께 풀지 않을지! 설사 후회가 남고 돌이키고 싶지 않은 일일지라도, 얼룩이라 표현한 그 순간의 기억마저도 아련한 추억이 된 지금. 그 시절 청춘들은 우리 부모님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그때와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 달라 마치 다른 나라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지만, 그럼에도 '청춘'이란 두 글자엔 시대를 초월하여 일맥상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를 찾는다면, 이 힘겨운 나날에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을 만난 듯 심심한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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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두 번
김멜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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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적어도 두 번

글쓴이: 김멜라

펴낸 곳: 자음과모음

 

 

 

 실력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이번에도 묵직한 소설집을 출간했다. 조금은 낯선 그녀의 이름은 김멜라. 김은영이 본명이라는 김멜라 작가는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꾸준히 글을 써온 작가인 만큼 이 책 『적어도 두 번』에 실린 일곱 개의 단편이 주는 여운과 깊이감이 상당하다. IS, 인터섹스의 몸으로 남자이면서 여자인 채 살아가는 13살 소녀의 이야기 <호르몬은 춰줘요>, 자위라는 단어가 불편할 경우를 대비해 '지위'라고 표하며 이 행동은 자기 자신과의 악수라는... 뭔가 철학적인 느낌까지 풍겼던 특이한 단편 <적어도 두 번>, 논문 심사에서 번번이 탈락하며 방황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만난 '레즈비언 사주팔자'의 레사와 또 다른 인생의 길로 들어서게 된 <물질계>, 비행기 사고로 친한 친구 미아가 실종되자 괴로워하는 혜연과 그런 혜연을 안타까워하는 한편, 깊은 공허함을 느끼는 남편 강투가 등장하는 <모여 있는 녹색 점>, 유흥 업소를 운영하는 옆집 아주머니의 통화를 엿들으며 언제 합격할지 모를 시험에 매달리는 공시생 이야기 <에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망 보험금 문제로 오랜만에 만난 형제가 등장하는 <스프링클러>, 경찰이 된 중경과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사촌 동생 홍이 그리고 그들이 회상하는 가족사 <홍이>. 작품마다 꽉 들어찬 묵직한 공기가 읽는 내내 존재감을 과시하며 나를 잠식했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면, 그게 모여 사주팔자가 된다고.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고, 봄에는 꽃이 피고 겨울에는 눈이 오고, 눈이 내려 땅에 이불을 덮어주듯 사람은 조용히 1년을 되돌아보며 음기를 모으고, 봄이 오면 그 음기를 양기로 쓰는 거라고. 그렇게 음과 양, 빛과 어둠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운이 좋고 싶으면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어디 가서 신발 벗으면 뒤축을 가지런히 모아 놓고, 귀찮아도 양치질하고 자고. 무엇보다 남이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것은 내가 남에게 해주고.' 《 단편 '물질계' p125 중에서...》 

 

 

 

 사주팔자나 명리학은 자기에게 적용하는 성찰이자 수양이지, 남에게 악담을 퍼붓는 게 아니라는 '레사'의 명쾌한 답변이 좋아 적어본 문장. 속이 다 후련했다. 김멜라 작가의 소설에는 고민과 상처를 지닌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남다른 생식기 구조로 인해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소녀, 그저 측은한 마음에 맹인 여고생 이테의 콩알을 기분 좋게 해주려다 경찰서에 가게 된 유파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바다에 좌초된 선박처럼 비틀거렸던 물리학도, 삶 깊숙이 자리 잡은 친한 친구에게 휘둘리며 도무지 마음을 잡지 못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 줄줄이 시험에 낙방하면서도 포기하는 게 두려워 책상에 앉는 공시생, 눈물겹게 어머니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진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형제, 죽은 지 7개월 만에 발견된 고독사한 할머니, 흉악 범죄자가 된 사촌 동생을 면회하는 경찰 등등. 이들의 인생에 방점을 찍는 건, 어떤 특이함이나 자극성이 아닌 누구나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친숙한 고통일 거다. 이 책에서 마주친 인생이 설혹 우리가 처음 마주한 이야기라도, 마치 예전부터 알았던 듯 그리고 알지만 덮어버렸던 듯 매서운 추위처럼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 지독한 현실감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투영하며 잊고 있던 또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단단하고 묵직했던 일곱 편의 단편. 김멜라 작가와 처음 한 이 악수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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