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두 번
김멜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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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적어도 두 번

글쓴이: 김멜라

펴낸 곳: 자음과모음

 

 

 

 실력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이번에도 묵직한 소설집을 출간했다. 조금은 낯선 그녀의 이름은 김멜라. 김은영이 본명이라는 김멜라 작가는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꾸준히 글을 써온 작가인 만큼 이 책 『적어도 두 번』에 실린 일곱 개의 단편이 주는 여운과 깊이감이 상당하다. IS, 인터섹스의 몸으로 남자이면서 여자인 채 살아가는 13살 소녀의 이야기 <호르몬은 춰줘요>, 자위라는 단어가 불편할 경우를 대비해 '지위'라고 표하며 이 행동은 자기 자신과의 악수라는... 뭔가 철학적인 느낌까지 풍겼던 특이한 단편 <적어도 두 번>, 논문 심사에서 번번이 탈락하며 방황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만난 '레즈비언 사주팔자'의 레사와 또 다른 인생의 길로 들어서게 된 <물질계>, 비행기 사고로 친한 친구 미아가 실종되자 괴로워하는 혜연과 그런 혜연을 안타까워하는 한편, 깊은 공허함을 느끼는 남편 강투가 등장하는 <모여 있는 녹색 점>, 유흥 업소를 운영하는 옆집 아주머니의 통화를 엿들으며 언제 합격할지 모를 시험에 매달리는 공시생 이야기 <에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망 보험금 문제로 오랜만에 만난 형제가 등장하는 <스프링클러>, 경찰이 된 중경과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사촌 동생 홍이 그리고 그들이 회상하는 가족사 <홍이>. 작품마다 꽉 들어찬 묵직한 공기가 읽는 내내 존재감을 과시하며 나를 잠식했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면, 그게 모여 사주팔자가 된다고.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고, 봄에는 꽃이 피고 겨울에는 눈이 오고, 눈이 내려 땅에 이불을 덮어주듯 사람은 조용히 1년을 되돌아보며 음기를 모으고, 봄이 오면 그 음기를 양기로 쓰는 거라고. 그렇게 음과 양, 빛과 어둠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운이 좋고 싶으면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어디 가서 신발 벗으면 뒤축을 가지런히 모아 놓고, 귀찮아도 양치질하고 자고. 무엇보다 남이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것은 내가 남에게 해주고.' 《 단편 '물질계' p125 중에서...》 

 

 

 

 사주팔자나 명리학은 자기에게 적용하는 성찰이자 수양이지, 남에게 악담을 퍼붓는 게 아니라는 '레사'의 명쾌한 답변이 좋아 적어본 문장. 속이 다 후련했다. 김멜라 작가의 소설에는 고민과 상처를 지닌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남다른 생식기 구조로 인해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소녀, 그저 측은한 마음에 맹인 여고생 이테의 콩알을 기분 좋게 해주려다 경찰서에 가게 된 유파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바다에 좌초된 선박처럼 비틀거렸던 물리학도, 삶 깊숙이 자리 잡은 친한 친구에게 휘둘리며 도무지 마음을 잡지 못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 줄줄이 시험에 낙방하면서도 포기하는 게 두려워 책상에 앉는 공시생, 눈물겹게 어머니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진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형제, 죽은 지 7개월 만에 발견된 고독사한 할머니, 흉악 범죄자가 된 사촌 동생을 면회하는 경찰 등등. 이들의 인생에 방점을 찍는 건, 어떤 특이함이나 자극성이 아닌 누구나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친숙한 고통일 거다. 이 책에서 마주친 인생이 설혹 우리가 처음 마주한 이야기라도, 마치 예전부터 알았던 듯 그리고 알지만 덮어버렸던 듯 매서운 추위처럼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 지독한 현실감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투영하며 잊고 있던 또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단단하고 묵직했던 일곱 편의 단편. 김멜라 작가와 처음 한 이 악수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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