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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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끔은 아무 이유도 없이 끌리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떠한 이유에서 나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았든 나는 그것을 "영혼의 울림" 즉,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두막이라는 책은 그렇게 나에게 찾아왔다. 첫 만남부터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나를 조용히 그리고 끈덕지게 기다려준 이 책에게서 나는 강한 의무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만남은 그렇게 간단했다. 오두막은 같은 자리에서 끊임없이 나를 목 놓아 부르며 기다렸고 그 부름에 내가 응답한 것이다. 책을 받았을 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오돌토돌하게 솟아있는 글자들을 가만히 손가락 끝으로 느끼며 크게 숨을 들이쉬던 그 순간을, 그리고 그 떨리던 마음을 나는 생생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허름할 지라도, 내가 상상도 못한 내용일지라도 오두막은 언제나 내가 찍은 사진 속의 모습처럼 밝게 빛날 것 만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넘긴 첫 장에서 나는 맥이란 사내와 눈보라를 맞게 된다.

 이 이야기를 온 마음을 다해 진실이라 말하고 있는 맥. 그래 이건 그의 이야기다. 초반의 내용은 다른 소설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이어졌다. 사랑하는 세 아이와 함께 캠핑을 떠난 맥, 황금 같은 여름의 시간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고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첫째와 둘째는 카누를 더 타보고 싶다며 강으로 떠났고 가장 사랑하는 막내 미시는 캠핑카에 앉아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과연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 순간이 미시가 가족과 함께한 마지막 시간이 될 거라는 것을. 강으로 갔던 두 아이들이 물에 빠지는 난리 통 속에 정신없이 아이들을 구해낸 맥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미시는 그 자리에 없었다. 전후 상황으로 볼 때 유괴된 것이 확실했다. 피 묻은 빨간 원피스까지 발견된 상황에서 미시가 살아있을 확률은 이미 0%에 가깝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 분명히 미시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상처입고 더러워진 모습이지만 그 큰 눈망울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아빠를 향해 달려올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맥의 마음이 나보다 못했을 리 없겠지. 그의 분노에 섞인 울부짖음이 내 귀에서 떠나질 않았고 검은 그림자에게 쫓기는 미시의 꿈이 마치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양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바로 여기까지가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었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재미의 차원을 떠나 진실로 우리가 알아야 할 그리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맥이 파파, 즉 하나님의 부름으로 미시의 피 묻은 옷이 발견되었던 오두막으로 간 순간부터 나는 이미 내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있었다.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으리라, 누가 어떤 말은 하더라도 내 주관을 잃지 않으리라, 그리고 설령 맥이 죽어 귀신이 된다 하더라도 울지 않으리라. 나의 이런 걱정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사라유라는 영은 상냥하게 다가왔다.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충격적인 모습으로. 인류를 창조한 하나님이 여성일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에선 하나님은 성이 정해져 있지 않은 완벽체라고 가르쳐주긴 했지만 그 가르침 속에 돌아오는 것은 여장을 한 남자 같은 조금은 거북한 모습의 하나님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나만의 고정관념 속에서 완벽한 남성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기억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성의 모습 그것도 흑인으로 나타나셨다. 이 부분에서 내 속에 남성이 우선이 되는 사회, 인종차별 등을 비롯한 얼마나 많은 잘못된 고정관념들이 자리 잡고 있었나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비로서야 나를 감싸고 있던 두꺼운 벽 중 하나를 깨고 나올 수 있었다. 예수님은 멋지지 않았고 성령은 너무나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나의 상상과는 정반대였다.

 내가 가장 먼저 배운 말은 바로 157 페이지에 나온 "관계 속의 하나님"이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는 삼위일체를 자주 들은 적은 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이들이 하나일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의 명령에 따라야하며 성령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일종의 일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과 성령은 모두 신, 즉 하나님 그 자체였다. 그들은 모두 동등하며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이다. 두 번째로 배운 것은 어린 시절 내가 알았던 "복수의 하나님"이란 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거였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다녔던 교회에선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믿다가 믿지 않는 것이 더 나쁜 거라고. 죽고 나면 다 지옥에 가게 될 거라고, 우리는 불쌍한 그 중생들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여러 모습 중엔 자신을 믿지 않는 이들을 벌하는 복수의 모습이 있다"고 그리 배웠었다. 하지만 책 속에서 만난 하나님은 결코 복수 따윈 원하지 않으셨다. 자신으로 하여금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인간을 만드신 그 분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셨다. 죄를 짓는 인간으로 인해 슬퍼하고 계시긴 했지만 절대로 대홍수나 언어를 섞이게 했던 바벨탑의 이야기처럼 인간을 벌하실 생각이 없었다. 단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믿고 스스로 깨우치도록 시간을 주고 계셨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눈에 흐르는 눈물과 가슴이 저릿한 그 느낌이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세 번째로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과거는 잠시 들를 뿐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현실에 해만 끼치게 되므로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가르치고 계셨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 순간, 하나님께 조심스럽게 손 내밀고 있는 이 순간을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또 무엇을 배웠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 한마디 "사랑"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지구를 주셨고 그 속에서 우리는 죄를 짓고 지구를 해하며 살아가지만 그런 인간들을 하나님은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셨다. 그건 차마 인간의 얕은 마음으로는 가질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들이 절로 솟아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솔직히 교회에 발을 끊은 지 오래인 내가 읽기에 이 책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지식이 없었다. 가장 잘 쓴 글은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이라는데 이 책은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혀 지식이 없는 내가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 그리고 어떤 과학과 신앙으로도 풀 수 없었던 의문들의 답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가히 기적이라 불러도 될 만한 일이었다. 그렇다. 나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하나님은 누구인지?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제 나는 알 수 있다.

 길고 길었던 하나님과의 만남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나는 잠시 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목이 타들어가 마시는 물 한 모금, 따뜻하게 내 몸을 감싸주는 담요,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오는 세상 모든 것들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가만히 손가락을 움직여보고 그 손으로 여전히 뛰고 있는 내 심장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여기 이 자리에 살아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죽기보다 하기 싫은 내 성격상, 정말이지 거짓말은 못하겠다. 하나님. 저는 이 책을 통해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온 몸이 저리도록 감동을 받았지만 다시 교회에 나가겠다는 약속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건 정말 싫거든요. 그래도 이것만은 정말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리고 내 삶이 온전히 당신의 손에서 사랑받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수줍지만 이제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고집불통인 내가 이런 말들을 늘어놓게 될 줄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 하나님은 아셨을 거다. 뜻하지 않은 끌림은 언제나 이유가 있듯 이번 만남도 절대적인 이유가 있었다. 고작 이런 책 한 권으로 내가 온 마음이 다 젖도록 울게 될 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맥은 혹시 하나님이 보내신 전달자, 혹 천사가 아닐까라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해보면서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을 만큼 아팠던 머리와 마음, 책을 읽는 내내 수첩에 내용을 끼적이던 손, 그리고 이제는 제법 고른 숨을 내쉬고 있는 나의 몸을 좀 쉬게 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이토록 쉽고 아름답게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그분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줄 책은 다시는 없을 것 같다. 아직 27년 밖에 살지 못한 내 인생을 걸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 믿음과 확신이 든다. 다시 한 번 조용히 속삭이며 이제는 정말 쉬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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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on the Pink
이명랑 지음 / 세계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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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다고 놀리지 마라요~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그래, 이 노래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승철의 '소녀시대'야. 최근엔 소녀시대라는 그룹이 리메이크하기도 했지. 근데 이 노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적 있니? 요즘 어린아이들이 과연 가사 속 주인공처럼 저렇게 순수하고 순진할까? 내 대답은 절대 아니올시다야.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건 겪어보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지. 고딩보다는 중딩이 무섭고 중딩보다 초딩이 더 무개념인 이 세상 속에서 어쩌면 그들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애초부터 힘든 일인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가 그 나이일 때를 생각해봐. 우리 그땐 어른들이 너무도 우리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며 투정을 늘어놓고 나는 이미 다 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니?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면 너는 너무나 아까운 추억을 놓아버린 걸 거야. 난 우연히 우리 시절에도 있었던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던 아이들을 만났어. 바로 [날라리 on the Pink]라는 책을 통한 만남이었지.

 갓 고등학교에 올라온 아이들이 세상을 알아가는 이야기, 조금은 비뚤어지고 그릇된 방향이지만 나름대로의 소신과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들의 속사정을 들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상업 고등학교의 학생이 어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문제아가 되기까지 그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더라고. 한 1년 정도? 근데 생각해보니 애초부터 그 아이들을 문제아의 틀에 가둔 건 다름 아닌 우리들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기는 거야. 15,16의 나이에 입시를 치르게 하고 인문계와 실업계라는 두 갈래 길을 선택하라니. 조금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가고 싶은 학교를 못 간다니 조금 황당하잖아. 무슨 대학도 아니고 고등학교부터 말이야. 그런 사회적 틀 속에서 한 번 분류된 아이들이 탈선의 길로 쉽사리 빠지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이들은 처음엔 자기 학교 옆의 여대에서 담배를 빨거나 몰려다니며 소주나 홀짝이는 정도의 탈선을 일삼았어. 그 정도는 솔직히 그리 심각하다고 보이지가 않았지. 너도 나도 학교 다닐 때 다 한 번쯤 해본 일이잖아. 그치? 하지만 아이들의 수위가 점점 심해지는 거야. 다 같이 가출을 해서 거리로 나가고 남자아이들의 방에 얹혀 지내며 몸을 주고 마음엔 상처를 입고 결국은 학교로 다시 끌려와 문제가 시작되었던 그 곳에 다시 앉아 있더라고.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이야기 속 아이들이 골이 비었다느니 미친x라느니 욕하는 사람들 분명 있었을 텐데. 나는 정말이지 마음이 아프더라고. 누구는 이 소설을 읽고 유쾌하고 재미나 다더라. 근데 나는 있지. 이 소설 재미있지가 않았어. 나는 나름 심각했다는 말이지.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와 그들도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아는 (단지 좀 지나친 방황을 했을 뿐) 한 사람의 인격체라는 걸 우리가 좀 알아주었으면 했어.

 싸움의 기술을 알려주는 동아리에서 교복을 입고 기술을 익히며 학교 선생님이 자신들을 보러 와주길 바랬던 그 아이들처럼 어쩌면 지금도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거리에서 우리가 마음을 열고 다가와 주길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서슬 시퍼런 눈과 걸레를 문 듯 걸게 내뱉는 말을 자신의 방어구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아이들을 돌아왔지만 마음의 상처와 처녀성을 잃었다는 무거운 생각은 쉽사리 사리질 것 같지가 않았어. 그런데도 심각하기보다는 가볍고 유쾌해 보이는 그 아이들이 나는 정말이지 신기해서 100% 이해하기는 힘들더라.

 친구야, 우리가 보냈던 질풍노도의 역동적이었던 어린 시절은 기억하니? 같은 또래의 친구들에게 위협하듯 말을 내뱉고 삥을 뜯지는 않았어도 선생을 욕해보거나 한 번쯤 가출을 꿈꾼 적은 있었잖아. (뭐 가출까지 해보았다면 나보다 한 수 위겠지만.^^) 이 이야기는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야. 부디 꼼꼼하게 읽고 우리의 그 시절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더불어 요즘같이 심각한 청소년 문제의 사회에 대한 적절한 비판도 잊지 말고 말이야. 겪어봤기에 더욱 이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십대시절, 방황하며 거리로 나갔던 우리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 아이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너무나 궁금해지는 밤이다. 그 아이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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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몸, 마음, 영혼을 위한 안내서
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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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술 취한 코끼리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적어도 내 주위엔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럼 질문에 앞서 약간의 설명을 곁들여 보자. 당신은 스스로를 이길 수 없어 울며 소리치고 자신에게 상처 준 적이 있는가? 자꾸만 커져가는 욕심에 정작 손에 쥐고 있는 행복은 보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히지는 않았는가? 다스려지지 않는 인간의 마음은 술 취한 코끼리만큼이나 위험하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당신은 술 취한 코끼리를 본 적이 있는가? 내 대답은 "네,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일 것이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는 내내 잔잔하다. 물결하나 일지 않는 잔잔한 호수처럼 조용히,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옷이 흠뻑 젖도록 가슴 속 깊이 밀려온다. 짧은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모여 커다란 깨달음을 주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술을 좋아하고 화를 잘 내며 포기라는 단어를 인정할 수가 없어 아집을 부리던 나의 모습들이 부끄러운 영상으로 다가오며 자꾸만 고개가 숙여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살아가며 추구해야 할 진정한 삶의 진리는 무엇인가? 도대체 어찌하면 최선을 다 해 잘 살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등의 끊임없는 질문의 끝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해답과의 조우로 사그라진다. 이토록 잔잔하게 그리고도 명확하게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책이 또 있을까?

 바쁜 일상 속에서 스스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기회를 준 시간이었다. 보통 영혼의 울림을 위한 책은 재미없게 마련인데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는 정말이지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었다. 간간히 나오는 작은 종이에 그려진 삽화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고 그 글 역시 그림 못지않게 아름답고도 의미가 깊어 잠시 읽기를 멈추고 입 속에서 토르르 토르르 혀를 굴리며 속삭여보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내 자신도 그 속에 속할 터,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면 세상살이가 쉽지도 즐겁지도 않을 것이다.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겪게 되겠지만 그 중 상당수는 스스로의 화가 불러들인 일일 것이다. 그럴 때면 화를 내고 발을 동동 구르기보다는 이 책을 다시 꺼내 가만히 새벽이슬을 맞으며 나를 다스려봐야겠다. 잘 해낼지 자신은 없지만 지금의 기분으로는 못할 것이 없을 것 같기에 자신감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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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스 3
오진원 지음 / 풀그림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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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파스1권에 이어 3권도 읽게 되었다. 작가가 울진출신이라서 더욱 반가웠던 만남.(엄마의 고향이 울진이신 관계로 왠지 반가웠다.^^;) 예쁜 그림과 읽기 쉬운 글,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깊은 의미와 감동. 그녀의 작품은 언제나 기분 좋은 떨림을 남겨준다. 자 그럼 이제 파파스 3권의 이야기를 해보자.

 일에 바빠 언제나 짜증만 부리는 뚱뚱한 아빠, 자식들을 돌보기보다는 성형과 몸매에 온 정신을 쏟는 엄마, 낮잠만 주무시는 할아버지, 입에 욕을 달고 살며 오토바이를 사주지 않으면 가출 하겠다는 형 톰, 공부는 안하고 연애에만 관심이 있는 누나 니나, 그리고 착하디착한 우리의 주인공 제롬. 제롬은 언제나 혼자였다. 가족들과 같이 있어도 그들은 무미건조한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고 입을 열면 싸움뿐이었다. 파파스의 도움으로 몸이 바뀌게 된 그들은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며 가족의 사랑을 되찾아 간다.

 재미있는 주제였다.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소재는 항상 끈끈하며 질리지 않는 것이어서 읽는 동안 뻔히 결말을 알면서도 즐겁고 재미있었다. 학창 시절 공부하기도 싫고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세상을 탓하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너무도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그땐 상당히 절실히 원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역시 자신의 모습 그대로가 가장 좋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와 사랑 그리고 관심이다. 이것만 있다면 가족을 비롯한 어느 대인관계에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 같다.

 몸이 바뀐 채 각자의 생활을 경험해 본 제롬 가족은 서로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몸소 경험해보고 좀 더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사랑해 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 1권 보다 감동스럽지는 않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던 3권도 괜찮은 것 같다. 작가는 편안한 글쓰기의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군더더기 없는 탄탄한 필체로 예쁜 동화를 쓰고 그 안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잘 넣어두는 재주. 정말이지 부럽다. 파파스의 시리즈는 계속 된다고 하는데 다음 작품이 나오면 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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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라,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권태현 지음, 조연상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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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못 이루는 밤, 나는 홀로 남겨진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를 듣곤 했었다. 지금은 유재석씨의 여자 친구로 너무나 잘 알려진 나경은 아나운서의 목소리. 솔직히 그때는 방송을 들으면서도 진행자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었다. 단지 잔잔하면서도 담담한 그녀의 목소리가 좋고 밤은 깊었기에 그렇게 하루하루가 새벽은 흘러갔다. [공감하라,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이라는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아~! 그때 그 이야기들이구나."라는 생각에 반갑고도 즐거웠다.

 글을 읽으며 생각보단 딱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로 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더니 이내 예전에 라디오를 들을 때처럼 편안하게 생각되었다. 좌절하고 쓰러져있는 20대들을 위한 감성 에세이, 마치 옆집 형이 술 한 잔 기울이며 인생사를 이야기해주듯 가까운 이모나 언니가 토닥거리며 기운을 북돋워주듯 그렇게 작가는 펜으로 쓴 한 장의 글로써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주제는 어렵지 않다.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친구, 시간, 책임, 첫사랑 등의 주제로 써내려간 글. 모두가 생소하지 않은 생각의 연장이기에 이해의 어려움도 혹은 강한 부정도 필요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었다. 허나 꼭 조용한 장소에서 읽기를 추천한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장소에서 읽으니 그 느낌이 살지가 않더라.

 자신을 타이르는 마음으로 혹은 용기를 줄 요량으로 진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읽었던 책이다. 주로 어두운 새벽에 읽으며 찬찬히 공감해갔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독서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던 예쁜 그림들도 참 좋았다. 지금도 내 손에 있는 책을 넘겨보며 슬며시 미소지어본다. 공감하자~! 세상이 다 내 것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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