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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은 아무 이유도 없이 끌리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떠한 이유에서 나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았든 나는 그것을 "영혼의 울림" 즉,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두막이라는 책은 그렇게 나에게 찾아왔다. 첫 만남부터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나를 조용히 그리고 끈덕지게 기다려준 이 책에게서 나는 강한 의무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만남은 그렇게 간단했다. 오두막은 같은 자리에서 끊임없이 나를 목 놓아 부르며 기다렸고 그 부름에 내가 응답한 것이다. 책을 받았을 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오돌토돌하게 솟아있는 글자들을 가만히 손가락 끝으로 느끼며 크게 숨을 들이쉬던 그 순간을, 그리고 그 떨리던 마음을 나는 생생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허름할 지라도, 내가 상상도 못한 내용일지라도 오두막은 언제나 내가 찍은 사진 속의 모습처럼 밝게 빛날 것 만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넘긴 첫 장에서 나는 맥이란 사내와 눈보라를 맞게 된다.
이 이야기를 온 마음을 다해 진실이라 말하고 있는 맥. 그래 이건 그의 이야기다. 초반의 내용은 다른 소설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이어졌다. 사랑하는 세 아이와 함께 캠핑을 떠난 맥, 황금 같은 여름의 시간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고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첫째와 둘째는 카누를 더 타보고 싶다며 강으로 떠났고 가장 사랑하는 막내 미시는 캠핑카에 앉아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과연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 순간이 미시가 가족과 함께한 마지막 시간이 될 거라는 것을. 강으로 갔던 두 아이들이 물에 빠지는 난리 통 속에 정신없이 아이들을 구해낸 맥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미시는 그 자리에 없었다. 전후 상황으로 볼 때 유괴된 것이 확실했다. 피 묻은 빨간 원피스까지 발견된 상황에서 미시가 살아있을 확률은 이미 0%에 가깝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 분명히 미시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상처입고 더러워진 모습이지만 그 큰 눈망울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아빠를 향해 달려올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맥의 마음이 나보다 못했을 리 없겠지. 그의 분노에 섞인 울부짖음이 내 귀에서 떠나질 않았고 검은 그림자에게 쫓기는 미시의 꿈이 마치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양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바로 여기까지가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었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재미의 차원을 떠나 진실로 우리가 알아야 할 그리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맥이 파파, 즉 하나님의 부름으로 미시의 피 묻은 옷이 발견되었던 오두막으로 간 순간부터 나는 이미 내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있었다.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으리라, 누가 어떤 말은 하더라도 내 주관을 잃지 않으리라, 그리고 설령 맥이 죽어 귀신이 된다 하더라도 울지 않으리라. 나의 이런 걱정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사라유라는 영은 상냥하게 다가왔다.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충격적인 모습으로. 인류를 창조한 하나님이 여성일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에선 하나님은 성이 정해져 있지 않은 완벽체라고 가르쳐주긴 했지만 그 가르침 속에 돌아오는 것은 여장을 한 남자 같은 조금은 거북한 모습의 하나님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나만의 고정관념 속에서 완벽한 남성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기억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성의 모습 그것도 흑인으로 나타나셨다. 이 부분에서 내 속에 남성이 우선이 되는 사회, 인종차별 등을 비롯한 얼마나 많은 잘못된 고정관념들이 자리 잡고 있었나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비로서야 나를 감싸고 있던 두꺼운 벽 중 하나를 깨고 나올 수 있었다. 예수님은 멋지지 않았고 성령은 너무나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나의 상상과는 정반대였다.
내가 가장 먼저 배운 말은 바로 157 페이지에 나온 "관계 속의 하나님"이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는 삼위일체를 자주 들은 적은 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이들이 하나일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의 명령에 따라야하며 성령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일종의 일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과 성령은 모두 신, 즉 하나님 그 자체였다. 그들은 모두 동등하며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이다. 두 번째로 배운 것은 어린 시절 내가 알았던 "복수의 하나님"이란 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거였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다녔던 교회에선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믿다가 믿지 않는 것이 더 나쁜 거라고. 죽고 나면 다 지옥에 가게 될 거라고, 우리는 불쌍한 그 중생들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여러 모습 중엔 자신을 믿지 않는 이들을 벌하는 복수의 모습이 있다"고 그리 배웠었다. 하지만 책 속에서 만난 하나님은 결코 복수 따윈 원하지 않으셨다. 자신으로 하여금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인간을 만드신 그 분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셨다. 죄를 짓는 인간으로 인해 슬퍼하고 계시긴 했지만 절대로 대홍수나 언어를 섞이게 했던 바벨탑의 이야기처럼 인간을 벌하실 생각이 없었다. 단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믿고 스스로 깨우치도록 시간을 주고 계셨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눈에 흐르는 눈물과 가슴이 저릿한 그 느낌이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세 번째로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과거는 잠시 들를 뿐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현실에 해만 끼치게 되므로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가르치고 계셨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 순간, 하나님께 조심스럽게 손 내밀고 있는 이 순간을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또 무엇을 배웠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 한마디 "사랑"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지구를 주셨고 그 속에서 우리는 죄를 짓고 지구를 해하며 살아가지만 그런 인간들을 하나님은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셨다. 그건 차마 인간의 얕은 마음으로는 가질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들이 절로 솟아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솔직히 교회에 발을 끊은 지 오래인 내가 읽기에 이 책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지식이 없었다. 가장 잘 쓴 글은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이라는데 이 책은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혀 지식이 없는 내가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 그리고 어떤 과학과 신앙으로도 풀 수 없었던 의문들의 답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가히 기적이라 불러도 될 만한 일이었다. 그렇다. 나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하나님은 누구인지?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제 나는 알 수 있다.
길고 길었던 하나님과의 만남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나는 잠시 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목이 타들어가 마시는 물 한 모금, 따뜻하게 내 몸을 감싸주는 담요,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오는 세상 모든 것들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가만히 손가락을 움직여보고 그 손으로 여전히 뛰고 있는 내 심장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여기 이 자리에 살아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죽기보다 하기 싫은 내 성격상, 정말이지 거짓말은 못하겠다. 하나님. 저는 이 책을 통해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온 몸이 저리도록 감동을 받았지만 다시 교회에 나가겠다는 약속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건 정말 싫거든요. 그래도 이것만은 정말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리고 내 삶이 온전히 당신의 손에서 사랑받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수줍지만 이제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고집불통인 내가 이런 말들을 늘어놓게 될 줄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 하나님은 아셨을 거다. 뜻하지 않은 끌림은 언제나 이유가 있듯 이번 만남도 절대적인 이유가 있었다. 고작 이런 책 한 권으로 내가 온 마음이 다 젖도록 울게 될 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맥은 혹시 하나님이 보내신 전달자, 혹 천사가 아닐까라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해보면서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을 만큼 아팠던 머리와 마음, 책을 읽는 내내 수첩에 내용을 끼적이던 손, 그리고 이제는 제법 고른 숨을 내쉬고 있는 나의 몸을 좀 쉬게 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이토록 쉽고 아름답게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그분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줄 책은 다시는 없을 것 같다. 아직 27년 밖에 살지 못한 내 인생을 걸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 믿음과 확신이 든다. 다시 한 번 조용히 속삭이며 이제는 정말 쉬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