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 완결 편
이케다 가요코 지음,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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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만히 눈을 감고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려본다. 그리곤 이내 편안해진 마음으로 무념무상의 상태를 즐기다가 눈을 뜨는 순간 이 모든 노력은 순식간에 날아가고 다시 치열한 생존의 현장으로 돌아온다. 세상사는 일이 쉽지가 않다는 이유로 언제나 칼날을 곤두세우고 일 분 일 초의 순간순간을 다투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안 어느새 행복을 위한 일부의 수단으로 돈을 버는 것인지 돈이 있어야 행복해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행복'이라는 말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 속에 홀로 남아있던 '희망'이라는 말처럼 좀처럼 느끼기 힘든 감정으로 여겨졌다.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행복들이 스스로를 괴롭히며 얻은 스트레스와 여러 상황들에 의해 거북이 등처럼 쫙 말라붙어 버린 것이다. 왜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많이 가진 거지?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욕심들이 바보 같은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이어져 깊고 깊은 우물로 나를 밀어 넣었던 적도 있었다. 헌데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68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지구를 100명의 마을로 축소시킨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을 가진 부유하고도 선택받은 사람이었다.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이렇게 많이 가진 사람이었을 줄, 그리고 우리가 이리도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을 줄을 말이다.

 

 68억 명의 세계 인구를 100명으로 축소한다면 나는 도시에 살고 있는 51명 중 한 사람이고 그 51명 중 부유한 나라에 사는 11명에 속했다. 그리고 자연재해의 위험 없이 살아가는 25명에 속했으며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74명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는 82명에 들었다. 1년에 사는 돈이 1300만 원 이상 드는 가장 부유한 16명에 속했으며 젊은 사람 18명 중 대학에 다닌 2명에 속했다. 그리고 젊은 사람을 100명으로 하면 일이 있는 86명에 꼽혔으며 100명 중 0.7명을 차지하는 한국인들 중 한 사람이었다. 문자를 읽을 수 있는 80명의 사람들 중 한 자리를 차지했으며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13명에 속했다. 책에서 제시한 조건에서 어느 한 문항도 나쁜 쪽에 속하지 않았던 나는 그간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삶을 살아왔는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갖고 싶은 것은 조금만 노력하면 손에 넣을 수 있고 배가 불러 음식을 버리고 때로는 무관심과 부주의함으로 음식을 상하게 해버리는 때도 있었다. 지식에 대한 욕구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책들을 사들이고 잠시라도 행복하고자 여러 번의 외식을 하며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밤이 무섭다는 이유로 전기를 켠 채로 잠이 들기도 했었다. 이 얼마나 부유하고 나태한 삶인가. 나는 하나뿐인 지구에서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상의 20%에 드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복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잠시 할 말을 잃었던 나는 조심스럽게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거실의 한 쪽 벽면을 한가득 메우고 있는 나의 책들과 평생을 다해도 다 읽지 못할 넘쳐나는 신간 서적들, 땀을 뻘뻘 흘리며 깨끗이 빨아 보송보송한 햇살을 머금고 하얀 빛을 자랑하는 흰 운동화, 내 옆에서 언제나 미소지어주는 사랑하는 남자친구, 말은 잘 안 듣지만 언제나 든든한 남동생,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휴대용 게임기, mp3와 같은 전자 제품들, 다달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들, 문을 열고나서면 따사롭게 맞아주는 햇살부터 푸르른 나무들까지 나는 정말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불필요한 비교과 스스로 만들어낸 열등감들 속에 자신을 가두고 힘들게 해왔던 시간들. 이젠 어느 누가 뭐라고 해도 '행복'이라는 두 글자를 온 마음으로 느끼며 살아갈 자신이 생겼다. 100명의 작은 마을 지구촌에서 나는 누구보다 가진 것이 많고 행복한 사람임을 이젠 아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이 샘솟는다.

 

 총 네 권의 책으로 되어있는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시리즈 중 마지막 이야기인 이 책의 뒷부분은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유엔 정상회의 개발목표들과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는 하노이 투이 씨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세계를 바꾼 사람들의 가슴 벅찬 업적들, 세계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좋은 뉴스들, 그리고 여러 통계 자료들로 우리가 살고 잇는 지구의 상황을 보다 중점적으로 알려준다. 세계가 단지 100명의 작은 마을이라는 재미있는 가설로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고 눈에 보이는 사실적인 자료들로 타인에게 무관심한 우리들에게 작지만 따스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책 속에 이렇게나 힘차고 대단한 이야기가 들어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 순간 넘쳐나는 행복 에너지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솟아나는 이 기운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글! 그리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깨달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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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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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의 나는 정말이지 명랑한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명랑함을 잊지 않고 항상 밝게 웃고 살긴 하지만 삶의 곳곳에 징검다리 처럼 놓여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두려움과 우울함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데려오기도 한다. 세상 어느 누가 살아가며 단 한 순간이라도 외롭다거나 우울하다고 느껴본 적 없겠는가. 인간은 본래부터 외롭게 태어난 인생이다. 하지만 우울함은 조금은 위험한 감정이라 생각된다. 보이지 않는 벽 안에서 홀로 아파하고 스스로를 꽁꽁 싸매는 행위. 어느 정도의 우울함은 예술 행위에 있어 상상하지 못한 결과물을 낳기도 한다지만 강도가 지나칠수록 온전하게 내 몸을 건사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요 며칠 읽었던 <보트>라는 작품은 정말이지 신기했다. 우울하고자 써내려간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품 곳곳애 숨어있는 깊고 짙은 우울함들이 하염없이 내 발을 붙잡고 어둠의 수렁 속으로 끌어들이는 느낌. 마치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몸부림치며 그것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나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이 책을 읽어갔다.

 

 작가는 베트남계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로 일하다 작가로 데뷔했으며 각종 저명한 문학상들을 휩쓸고 여러 단편 문학 모음집에 그의 작픔을 싣기도 한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헌데 그리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수의 좋은 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들이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보트>라는 이 책은 왠지 모를 난해함과 우울함이라는 생각지 못한 감정의 덫으로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몰입하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막바지엔 조금 힘에 부칠 정도였던 것 같다. 어두운 내용,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현실. 잊어서는 안될 일들. 이 모든 사실들이 내 귓 속에 각자 다른 목소리로 끝없이 속삭여 나는 마치 절대반지를 눈앞에 두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프로도처럼 귀를 막고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보트> 속에는 일곱 개의 단편이 담겨 있다. 베트남 이야기는 물론 미국같은 서양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도 있다. 뒷골목의 가난한 아이들의 이야기와 전쟁 훈련을 받아야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등. 주제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예상을 했음에도 그보다 너무나 깊고도 컸던 그 감정의 골이 당황스럽고 힘겹게 느껴졌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미묘하게 얽히고 섥히는 감정의 고리들은 마치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를 위한 무대인양 우울함이라는 드라이아이스로 온 세상을 뿌옇게 메워갔다.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들. 그것은 이미 나에겐 픽션을 넘어선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던 것이다. 내용이 허무맹랑하다거나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쉽사리 경험하지 못할 이야기들 이었기에 글자 그래돌 받아들이기가 힘들 었던 것 같다.

 

 아들의 글이 적힌 종이를 태우는 아버지, 암이 퍼져가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을 만나지 못하는 아버지, 자식 앞에서 죽어가는 어머니, 보트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 나는 이 순간 이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없었던 일인 듯 기억의 한 부분을 잘라내고 싶다. 도대체 어느 것이 감동적이라는 건지 어떤 부분이 창의적이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나같은 평범하고도 평범한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도 이미 저명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은 작품이니 뭔가가 숨겨져있긴 하겠지만 현실의 나에겐 정말이지 안 맞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혹,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내가 좀 더 성숙하고 나이들면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순간의 그 느낌으로만 단정짓지 말고 오랜 시간 후에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이해하기 힘든 우울함으로 힘겨웠던 시간. 이젠 좀 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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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 - 한지민의 필리핀 도네이션 북
한지민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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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친구와 티비를 보다보면 가끔씩 채널 다툼이 일어나곤 하는데 말할 것도 없이 승자는 항상 나였다. 맘씨 고운 남친이 봐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겼다며 씩 웃고는 보고 싶은 프로를 보곤 했는데 독불장군인 나도 채널 권을 가질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바로 배우 한지민 씨가 나오는 드라마나 프로그램들이 방송될 때인데, 남자친구가 한지민 씨를 너무나 좋아하는 관계로 이 나이에 연예인에게 질투까지 느끼곤 한다. 사실 바보 같은 자존심에 툴툴거리긴 하지만 나도 한지민 씨를 정말 좋아한다. 정말이지 너무 착해 보이지 않는가? 예쁜 얼굴 뒤로 이중성과 가식으로 똘똘 뭉친 여느 스타들과 달리 한지민 씨의 얼굴에선 편안함과 진실함이 느껴진다. 그런 그녀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착한 마음을 자랑할 기회가 생겼으니 바로 필리핀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 알라원 아이들과의 만남을 티비 프로그램과 책으로 만들게 된 일이었다.

 

 알라원은 깊은 밀림 속에 있는 마을로 차가 들어갈 수 없어 18Km의 산길을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세계적인 봉사단체 JTS에서 학교를 지을 수 있는 자재들을 지원해주고 마을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그 무거운 자재들을 들고 날라 알라원 스쿨이라는 학교를 지은 꿈의 마을이기도 하다. 헌데 문제는 학교는 지었는데 알라원까지 와서 아이들을 가르쳐줄 선생님을 구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었다. 어렵사리 모셔온 선생님은 마을 사람들과의 불화로 하루 만에 돌아가 버리고 결국 학교는 아이들의 아쉬움과 어른들의 불신이 겹겹이 쌓인 안타까운 공간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런 알라원 아이들을 위해 JTS 코리아의 열혈 회원 노희경 작가님과 배우 한지민 씨 그리고 그녀의 기획사 대표 이정희 님이 케이블 채널 tvn과 함께 4박 5일간 선생님이 되어주기로 한다. 이것이 이 여행의 훈훈한 시작이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이것은 이제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라.' 요즘은 이 말이 딱 맞는 세상인 것 같아. 잘난 척 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선행을 널리 알려 여러 사람들이 알게 하고 함께 사랑의 마음을 전할 기회를 나누자는 뜻이다. 한지민 씨도 처음 이런 선행들이 자칫 연예인의 눈요기용 행사로 비춰질까 조심스러워 항상 조용히 활동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공인이 좋은 일을 하면 사람들이 한 번 더 관심을 가져주고 그 관심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큰 도움의 손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누구보다 열심히 목 놓아 소리치고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사랑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너무 예쁜 마음 아닌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만 눈물이 났다. 못된 내 자신이 민망하고 가난한 내 마음이 안타까워서 하염없이 고개가 숙여졌다.

 

 어느 곳에서나 그렇듯이 아이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준비된 이별을 알기에 힘든 헤어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던가? 진심은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통하게 마련이다. 알라원의 작은 천사들은 곧 한지민 씨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은 이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과 멋쟁이 토마토라는 동요를 부르며 춤을 추고 피리를 불며, 밤늦도록 돌아가지 않는 아이들과 촛불 아래서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가슴에 타오르는 배움에 대한 열정과 목마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로지 배움만이 가난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이며 공부만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임을 보수적인 알라원의 어른들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알라원 아이들의 까무잡잡한 피부와 한지민 씨의 하얀 피부가 한데 어우러진 알록달록한 사진 들 속에서 나는 새로운 희망의 빛을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분명 그날을 기억하고 오래도록 추억할 것이다. 그리고 배움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하늘로 전해져 분명 좋은 선생님도 오시게 되겠지.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서 혼났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긴 힘들지만 뭔가 가슴 속에 따스한 감정의 덩어리가 꾸역꾸역 밀려오며 미안한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질책 그리고 따스한 사랑으로 벅차올랐다. 도움의 손길은 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작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자신이 사정 내에서 도와 줄 수 있는 만큼의 여유면 충분하다. 그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언제나 뭐가 문제인지 가난한 마음을 가진 나는 그 사랑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봉사활동과 그 구호의 손길에 참여하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진 못한다. 그 시작이 이상하리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행하지 못하는 일. 이젠 내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풀어 적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 미약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어본다. 한지민 씨의 따스한 마음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져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다 따스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그리고 스스로가 복잡한 상황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에게도 부디 마음만은 부자가 될 수 있는 행복한 결심을 이룰 수 있는 순간이 하루빨리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 시간이었다. 정말 신기하다. 글 한 줄, 사진 한 장에서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고 눈물이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으며 거짓말처럼 행복해진 나는 울다 웃기를 반복하며 혼자 쩔쩔맸지만 어쩐지 모든지 다 잘 될 거라는 희망에 차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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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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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한 달이 멀다하고 남자친구가 바뀌는 친구의 곁에서 넋두리를 들어주고 위로하기도 수십 번, 이젠 남자 이야기라면 지긋지긋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연애라는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경험들이 겹겹이  쌓여갔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던 내 친구는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무섭게 제일 먼저 시집을 가고 이젠 이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그 친구가 뿜어내던 아픈 상처들의 기억 때문일까? 나는 현대의 사랑이 참으로 짧고 깊지도 않단 생각을 갖게 되었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을 하더라고 결혼이란 단어 앞에서는 조심스럽게 되고 어차피 누구든 헤어짐이라는 가능성 위에서 사랑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곤 했다. 이런 나이기에  여러 문학작품들과 영화 속에서 만나는 그림 같은 천년의 사랑과 현실간의 괴리감이 극복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다가오곤 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랑이 가능할까? 사람의 마음을 다른 사람이 온전히 가진 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수십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상대와 사랑을 하는 헨리와 클레어의 이야기, <시간 여행자의 아내>란 책에서 나는 어떠한 장애물도 넘어버리는 그들의 확고한 사랑을 통해 그 해답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남자 주인공 헨리는 유전학적인 문제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과거와 미래를 옮기며 시간 여행을 해야 하는 사내이다. 처음 시간 여행을 하게 된 5살 이후 그는 잊고 싶을 만큼 끔찍한 순간으로 그리고 때로는 가슴 저리도록 되돌아가고 싶은 추억 속으로 예기치 않게 떠돌아다니게 된다. 시간 여행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동한 장소엔 언제나 알몸으로 떨어져 변태로 오해를 받아 경찰서에 가기도 하고 다른 이의 옷을 훔치거나 싸움을 해야 하는 일들이 불가피하게 일어나곤 한다. 그러한 많은 여행들 속에서 헨리와 클레어는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 무럭무럭 자라나 현실의 헨리와 클레어는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의 결혼까지가 1권의 끝이다.

 시간 여행이라고 하면 천재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백 투 더 퓨처"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주인공 헨리의 시간 여행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하고 재미있다. 헨리의 시간 여행 속 가장 큰 특징은 같은 시간 속에서 동일 인물인 헨리가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 시간이 어그러져 미래의 사람이 현실로 오게 되면 그곳에 살고 있던 현재의 그가 아프곤 하는데 헨리의 시간 여행에선 그렇지 않다. 헨리와 또 다른 헨리는 서로를 돕기도 하고 싸움도 해가며 함께 머무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여행 속엔 오로지 한 남자만을 사랑했던 클레어와 과거의 클레어를 찾아가며 사랑을 키워간 헨리의 이야기가 있다. 때문에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보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비겁한 변명 속에서도 변치 않는 그들의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미래에서 찾아오는 헨리와 어린 시절부터 추억을 쌓아가고 사랑을 키워가던 클레어가 현실 속의 헨리를 찾아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알리기 싫었던 헨리와 클레어의 상처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굴레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요즘과 같이 쉽게 데워지고 쉽게 식어버리는 인스턴트식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도 순순했던 사랑. 비록 그들의 사랑 속에 수많은 섹스와 건전치 못한 행동들이 있었다 해도 내 눈엔 그들의 사랑이 순백의 견고하고도 아름다운 건축물처럼 탄탄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랑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아마 시대와 성별을 초월해서 어느 누구도 정의를 내리기 힘들 것이다. 나 역시 사랑이라는 주제로 시를 쓰고 때로는 사랑앓이로 힘겨워하며 눈물로 사랑을 보내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 웃음 짓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겐 사랑이라는 두 단어가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죽는 순간까지도 알기 힘들 것 같다. 이런 혼란스러움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나 아까워 잠시 묻어두었던 의문과 생각의 꼬리들이 헨리와 클레어의 이야기를 들으며 튼 물고를 따라 흘러넘치고 또 넘쳐 나는 잠시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설령 내가 사랑이라는 문제의 해답을 아직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나날들 속의 사랑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나는 왠지 충분히 위로받고 사랑받은 기분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았던 그들의 사랑 속에서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영원하지 않은 사랑은 없음을 그리고 시간과 공간은 사랑의 변함 앞에서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비겁한 변명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헨리와 클레어의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지켜질지 그리고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 속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과 사건들이 숨어있을지 이제 나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 2>권으로의 여행을 준비해봐야겠다. 헨리와 클레어의 사랑이 부디 변치 않고 영원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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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길을 가라
로랑 구넬 지음, 박명숙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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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펼쳐진 너른 백사장, 수평선 아득한 곳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구름을 지나 잔잔히 퍼져가려하는 따스한 빛. 그 아름다운 곳에서 아들과 아버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멀리 걸어가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일까? 아니면 스승과 제자의 모습일까? 마음이 고요해지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한참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고 싶은 길을 가라.> 인생에서 이 책의 제목만큼이나 명쾌한 해답이 또 있을까?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현실과의 타협으로 꿈을 잃어가는 경우도 있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 역시 그들과 그리 다를 게 없으므로 책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싸해졌다. 매끄러운 책장 한 장, 한 장을 손끝으로 느끼며 그간 비겁했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기 싫었던 나를 앨범 속 사진들처럼 꺼내보았다. 부끄럽고 속상했던 감정은 어느덧 세월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에 무뎌져 이젠 소탈하게 웃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가고 싶은 길을 가라.>란 책은 주인공이 휴식 차 떠난 발리에서 인생의 멘토가 될 현자를 만나 이런저런 문답 속에서 자신이 가진 마음의 장애를 극복해가는 이야기이다. 이렇다 할 아픈 곳은 없지만 언제나 마음의 짐을 갖고 살던 주인공은 아주 사소한 진리들에서 깊은 가르침을 깨닫고 현자의 말 한마디마다 놓여있는 의미심장한 질문들 속에서 당황하고 감탄하며 자신을 키워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는 것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 그리고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질지는 우리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라는 말은 처음엔 상당히 동의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현자는 말했다. 내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나의 모습이 결정되고 다른 이들도 그대로 느끼게 된다고. 실제로 '나는 매력적이다. 나는 꼭 성공할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모든 이들이 나를 그런 사람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으로부터 생겨난 무의식적인 암시와 그에 따라 생겨나는 자신감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이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정말 쉽지 않은가? 나는 그저 '난 최고다! 난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꼭 성공할 사람이다. 지금의 실패는 내일을 위한 디딤돌이다.'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좀 더 행복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꿈을 이룰 수 있을테니 말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바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 굳어져버리는 잘못된 믿음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는 부모님 혹은 선생님, 지인들에 의해 생성되곤 하는데 상대방의 말에 따라 내 자신이 정말 그런 모습이라 믿어버리게 되면 시도도 해보지 않은 채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주로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는 이런 잘못된 믿음은 내가 가장 조심해야할 부분이다. 어린 시절 성격 나쁘신 선생님들께 받았던 상처를 이제 내가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슬그머니 반성하게 되었다. 긍정적인 말! 칭찬 한 마디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좀 더 사려 깊고 조심스럽게 모든 이들을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어떤 이는 한 쪽 길을 선택하여 앞으로 나가기에 여념이 없기도 하며 어떤 이는 선택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헌데 선택을 안 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그 당시에는 이쪽이 더 마음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은 우린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것도 없게 된다. 선택에 따르는 희생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키우며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스스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는 게 현자의 진리였다. 선택 없는 삶 그것은 곧 무(無)를 의미한다.

 

 우화형 자기 계발서에 속하는 이 책은 솔직히 흥미진진하여 앞으로의 내용이 궁금하다거나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스릴 넘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담담히 현자와 주인공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바쁜 일상 속에서 쉽사리 이들의 대화에 빠져들지 못했다. 자꾸만 아직 못한 일들이 떠오르고 뭔가 다른 생각들이 독서를 방해했다. 이럴 땐 한 박자 쉬워가는 것이 최우선이란 생각으로 늦잠꾸러기인 내가 큰 맘 먹고 새벽 5시에 일어나보았다. 차가운 물로 아직 잠에 취해있는 뇌와 몸을 깨우고 잠시 스트레칭을 한 후 아직 아무것도 담지 않은 하루의 시작을 <가고 싶은 길을 가라.>와 함께했다. 역시나 전 날 읽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눈에 띄지 않던 단어들이 가슴을 파고들고 복잡했던 머리가 마치 포맷된 컴퓨터처럼 새로운 정보들은 백지 상태에서 받아들였다. 이제 나는 현자와 주인공 사이에 있는 다른 인격체가 아닌 현자 그 자신이요, 주인공 그 스스로였다.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싶다면 꼭 하루를 시작하는 시점에 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스스로를 믿으라는 고마운 충고, 혹여 내가 모르고 있던 잘못된 믿음과 다른 이에게 저지를 번 한 나쁜 횡포들(부정적인 말로 잘못된 믿음을 형성하는 일), 그리고 두려움으로 선택조차 하지 못했을 무기력함에 대한 따끔한 한 마디는 내 마음 속에 잔잔한 파동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아쉬운 여운을 남기고 있다. 먼 곳까지 간 주인공이 현자와 어렵게 만나 이야기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오로지 편안하게 누운 자세로 그들의 대화를 훔쳐보고 있으니 이 또한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는 행복한 생각으로 살포시 마지막 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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