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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길을 가라
로랑 구넬 지음, 박명숙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끝없이 펼쳐진 너른 백사장, 수평선 아득한 곳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구름을 지나 잔잔히 퍼져가려하는 따스한 빛. 그 아름다운 곳에서 아들과 아버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멀리 걸어가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일까? 아니면 스승과 제자의 모습일까? 마음이 고요해지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한참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고 싶은 길을 가라.> 인생에서 이 책의 제목만큼이나 명쾌한 해답이 또 있을까?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현실과의 타협으로 꿈을 잃어가는 경우도 있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 역시 그들과 그리 다를 게 없으므로 책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싸해졌다. 매끄러운 책장 한 장, 한 장을 손끝으로 느끼며 그간 비겁했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기 싫었던 나를 앨범 속 사진들처럼 꺼내보았다. 부끄럽고 속상했던 감정은 어느덧 세월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에 무뎌져 이젠 소탈하게 웃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가고 싶은 길을 가라.>란 책은 주인공이 휴식 차 떠난 발리에서 인생의 멘토가 될 현자를 만나 이런저런 문답 속에서 자신이 가진 마음의 장애를 극복해가는 이야기이다. 이렇다 할 아픈 곳은 없지만 언제나 마음의 짐을 갖고 살던 주인공은 아주 사소한 진리들에서 깊은 가르침을 깨닫고 현자의 말 한마디마다 놓여있는 의미심장한 질문들 속에서 당황하고 감탄하며 자신을 키워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는 것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 그리고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질지는 우리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라는 말은 처음엔 상당히 동의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현자는 말했다. 내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나의 모습이 결정되고 다른 이들도 그대로 느끼게 된다고. 실제로 '나는 매력적이다. 나는 꼭 성공할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모든 이들이 나를 그런 사람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으로부터 생겨난 무의식적인 암시와 그에 따라 생겨나는 자신감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이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정말 쉽지 않은가? 나는 그저 '난 최고다! 난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꼭 성공할 사람이다. 지금의 실패는 내일을 위한 디딤돌이다.'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좀 더 행복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꿈을 이룰 수 있을테니 말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바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 굳어져버리는 잘못된 믿음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는 부모님 혹은 선생님, 지인들에 의해 생성되곤 하는데 상대방의 말에 따라 내 자신이 정말 그런 모습이라 믿어버리게 되면 시도도 해보지 않은 채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주로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는 이런 잘못된 믿음은 내가 가장 조심해야할 부분이다. 어린 시절 성격 나쁘신 선생님들께 받았던 상처를 이제 내가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슬그머니 반성하게 되었다. 긍정적인 말! 칭찬 한 마디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좀 더 사려 깊고 조심스럽게 모든 이들을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어떤 이는 한 쪽 길을 선택하여 앞으로 나가기에 여념이 없기도 하며 어떤 이는 선택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헌데 선택을 안 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그 당시에는 이쪽이 더 마음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은 우린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것도 없게 된다. 선택에 따르는 희생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키우며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스스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는 게 현자의 진리였다. 선택 없는 삶 그것은 곧 무(無)를 의미한다.
우화형 자기 계발서에 속하는 이 책은 솔직히 흥미진진하여 앞으로의 내용이 궁금하다거나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스릴 넘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담담히 현자와 주인공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바쁜 일상 속에서 쉽사리 이들의 대화에 빠져들지 못했다. 자꾸만 아직 못한 일들이 떠오르고 뭔가 다른 생각들이 독서를 방해했다. 이럴 땐 한 박자 쉬워가는 것이 최우선이란 생각으로 늦잠꾸러기인 내가 큰 맘 먹고 새벽 5시에 일어나보았다. 차가운 물로 아직 잠에 취해있는 뇌와 몸을 깨우고 잠시 스트레칭을 한 후 아직 아무것도 담지 않은 하루의 시작을 <가고 싶은 길을 가라.>와 함께했다. 역시나 전 날 읽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눈에 띄지 않던 단어들이 가슴을 파고들고 복잡했던 머리가 마치 포맷된 컴퓨터처럼 새로운 정보들은 백지 상태에서 받아들였다. 이제 나는 현자와 주인공 사이에 있는 다른 인격체가 아닌 현자 그 자신이요, 주인공 그 스스로였다.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싶다면 꼭 하루를 시작하는 시점에 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스스로를 믿으라는 고마운 충고, 혹여 내가 모르고 있던 잘못된 믿음과 다른 이에게 저지를 번 한 나쁜 횡포들(부정적인 말로 잘못된 믿음을 형성하는 일), 그리고 두려움으로 선택조차 하지 못했을 무기력함에 대한 따끔한 한 마디는 내 마음 속에 잔잔한 파동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아쉬운 여운을 남기고 있다. 먼 곳까지 간 주인공이 현자와 어렵게 만나 이야기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오로지 편안하게 누운 자세로 그들의 대화를 훔쳐보고 있으니 이 또한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는 행복한 생각으로 살포시 마지막 장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