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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 - 한지민의 필리핀 도네이션 북
한지민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남자친구와 티비를 보다보면 가끔씩 채널 다툼이 일어나곤 하는데 말할 것도 없이 승자는 항상 나였다. 맘씨 고운 남친이 봐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겼다며 씩 웃고는 보고 싶은 프로를 보곤 했는데 독불장군인 나도 채널 권을 가질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바로 배우 한지민 씨가 나오는 드라마나 프로그램들이 방송될 때인데, 남자친구가 한지민 씨를 너무나 좋아하는 관계로 이 나이에 연예인에게 질투까지 느끼곤 한다. 사실 바보 같은 자존심에 툴툴거리긴 하지만 나도 한지민 씨를 정말 좋아한다. 정말이지 너무 착해 보이지 않는가? 예쁜 얼굴 뒤로 이중성과 가식으로 똘똘 뭉친 여느 스타들과 달리 한지민 씨의 얼굴에선 편안함과 진실함이 느껴진다. 그런 그녀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착한 마음을 자랑할 기회가 생겼으니 바로 필리핀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 알라원 아이들과의 만남을 티비 프로그램과 책으로 만들게 된 일이었다.
알라원은 깊은 밀림 속에 있는 마을로 차가 들어갈 수 없어 18Km의 산길을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세계적인 봉사단체 JTS에서 학교를 지을 수 있는 자재들을 지원해주고 마을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그 무거운 자재들을 들고 날라 알라원 스쿨이라는 학교를 지은 꿈의 마을이기도 하다. 헌데 문제는 학교는 지었는데 알라원까지 와서 아이들을 가르쳐줄 선생님을 구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었다. 어렵사리 모셔온 선생님은 마을 사람들과의 불화로 하루 만에 돌아가 버리고 결국 학교는 아이들의 아쉬움과 어른들의 불신이 겹겹이 쌓인 안타까운 공간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런 알라원 아이들을 위해 JTS 코리아의 열혈 회원 노희경 작가님과 배우 한지민 씨 그리고 그녀의 기획사 대표 이정희 님이 케이블 채널 tvn과 함께 4박 5일간 선생님이 되어주기로 한다. 이것이 이 여행의 훈훈한 시작이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이것은 이제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라.' 요즘은 이 말이 딱 맞는 세상인 것 같아. 잘난 척 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선행을 널리 알려 여러 사람들이 알게 하고 함께 사랑의 마음을 전할 기회를 나누자는 뜻이다. 한지민 씨도 처음 이런 선행들이 자칫 연예인의 눈요기용 행사로 비춰질까 조심스러워 항상 조용히 활동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공인이 좋은 일을 하면 사람들이 한 번 더 관심을 가져주고 그 관심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큰 도움의 손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누구보다 열심히 목 놓아 소리치고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사랑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너무 예쁜 마음 아닌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만 눈물이 났다. 못된 내 자신이 민망하고 가난한 내 마음이 안타까워서 하염없이 고개가 숙여졌다.
어느 곳에서나 그렇듯이 아이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준비된 이별을 알기에 힘든 헤어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던가? 진심은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통하게 마련이다. 알라원의 작은 천사들은 곧 한지민 씨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은 이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과 멋쟁이 토마토라는 동요를 부르며 춤을 추고 피리를 불며, 밤늦도록 돌아가지 않는 아이들과 촛불 아래서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가슴에 타오르는 배움에 대한 열정과 목마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로지 배움만이 가난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이며 공부만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임을 보수적인 알라원의 어른들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알라원 아이들의 까무잡잡한 피부와 한지민 씨의 하얀 피부가 한데 어우러진 알록달록한 사진 들 속에서 나는 새로운 희망의 빛을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분명 그날을 기억하고 오래도록 추억할 것이다. 그리고 배움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하늘로 전해져 분명 좋은 선생님도 오시게 되겠지.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서 혼났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긴 힘들지만 뭔가 가슴 속에 따스한 감정의 덩어리가 꾸역꾸역 밀려오며 미안한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질책 그리고 따스한 사랑으로 벅차올랐다. 도움의 손길은 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작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자신이 사정 내에서 도와 줄 수 있는 만큼의 여유면 충분하다. 그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언제나 뭐가 문제인지 가난한 마음을 가진 나는 그 사랑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봉사활동과 그 구호의 손길에 참여하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진 못한다. 그 시작이 이상하리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행하지 못하는 일. 이젠 내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풀어 적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 미약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어본다. 한지민 씨의 따스한 마음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져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다 따스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그리고 스스로가 복잡한 상황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에게도 부디 마음만은 부자가 될 수 있는 행복한 결심을 이룰 수 있는 순간이 하루빨리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 시간이었다. 정말 신기하다. 글 한 줄, 사진 한 장에서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고 눈물이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으며 거짓말처럼 행복해진 나는 울다 웃기를 반복하며 혼자 쩔쩔맸지만 어쩐지 모든지 다 잘 될 거라는 희망에 차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