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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한 달이 멀다하고 남자친구가 바뀌는 친구의 곁에서 넋두리를 들어주고 위로하기도 수십 번, 이젠 남자 이야기라면 지긋지긋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연애라는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경험들이 겹겹이 쌓여갔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던 내 친구는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무섭게 제일 먼저 시집을 가고 이젠 이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그 친구가 뿜어내던 아픈 상처들의 기억 때문일까? 나는 현대의 사랑이 참으로 짧고 깊지도 않단 생각을 갖게 되었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을 하더라고 결혼이란 단어 앞에서는 조심스럽게 되고 어차피 누구든 헤어짐이라는 가능성 위에서 사랑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곤 했다. 이런 나이기에 여러 문학작품들과 영화 속에서 만나는 그림 같은 천년의 사랑과 현실간의 괴리감이 극복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다가오곤 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랑이 가능할까? 사람의 마음을 다른 사람이 온전히 가진 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수십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상대와 사랑을 하는 헨리와 클레어의 이야기, <시간 여행자의 아내>란 책에서 나는 어떠한 장애물도 넘어버리는 그들의 확고한 사랑을 통해 그 해답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남자 주인공 헨리는 유전학적인 문제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과거와 미래를 옮기며 시간 여행을 해야 하는 사내이다. 처음 시간 여행을 하게 된 5살 이후 그는 잊고 싶을 만큼 끔찍한 순간으로 그리고 때로는 가슴 저리도록 되돌아가고 싶은 추억 속으로 예기치 않게 떠돌아다니게 된다. 시간 여행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동한 장소엔 언제나 알몸으로 떨어져 변태로 오해를 받아 경찰서에 가기도 하고 다른 이의 옷을 훔치거나 싸움을 해야 하는 일들이 불가피하게 일어나곤 한다. 그러한 많은 여행들 속에서 헨리와 클레어는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 무럭무럭 자라나 현실의 헨리와 클레어는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의 결혼까지가 1권의 끝이다.
시간 여행이라고 하면 천재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백 투 더 퓨처"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주인공 헨리의 시간 여행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하고 재미있다. 헨리의 시간 여행 속 가장 큰 특징은 같은 시간 속에서 동일 인물인 헨리가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 시간이 어그러져 미래의 사람이 현실로 오게 되면 그곳에 살고 있던 현재의 그가 아프곤 하는데 헨리의 시간 여행에선 그렇지 않다. 헨리와 또 다른 헨리는 서로를 돕기도 하고 싸움도 해가며 함께 머무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여행 속엔 오로지 한 남자만을 사랑했던 클레어와 과거의 클레어를 찾아가며 사랑을 키워간 헨리의 이야기가 있다. 때문에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보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비겁한 변명 속에서도 변치 않는 그들의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미래에서 찾아오는 헨리와 어린 시절부터 추억을 쌓아가고 사랑을 키워가던 클레어가 현실 속의 헨리를 찾아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알리기 싫었던 헨리와 클레어의 상처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굴레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요즘과 같이 쉽게 데워지고 쉽게 식어버리는 인스턴트식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도 순순했던 사랑. 비록 그들의 사랑 속에 수많은 섹스와 건전치 못한 행동들이 있었다 해도 내 눈엔 그들의 사랑이 순백의 견고하고도 아름다운 건축물처럼 탄탄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랑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아마 시대와 성별을 초월해서 어느 누구도 정의를 내리기 힘들 것이다. 나 역시 사랑이라는 주제로 시를 쓰고 때로는 사랑앓이로 힘겨워하며 눈물로 사랑을 보내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 웃음 짓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겐 사랑이라는 두 단어가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죽는 순간까지도 알기 힘들 것 같다. 이런 혼란스러움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나 아까워 잠시 묻어두었던 의문과 생각의 꼬리들이 헨리와 클레어의 이야기를 들으며 튼 물고를 따라 흘러넘치고 또 넘쳐 나는 잠시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설령 내가 사랑이라는 문제의 해답을 아직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나날들 속의 사랑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나는 왠지 충분히 위로받고 사랑받은 기분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았던 그들의 사랑 속에서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영원하지 않은 사랑은 없음을 그리고 시간과 공간은 사랑의 변함 앞에서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비겁한 변명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헨리와 클레어의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지켜질지 그리고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 속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과 사건들이 숨어있을지 이제 나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 2>권으로의 여행을 준비해봐야겠다. 헨리와 클레어의 사랑이 부디 변치 않고 영원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