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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ㅣ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의 나는 정말이지 명랑한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명랑함을 잊지 않고 항상 밝게 웃고 살긴 하지만 삶의 곳곳에 징검다리 처럼 놓여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두려움과 우울함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데려오기도 한다. 세상 어느 누가 살아가며 단 한 순간이라도 외롭다거나 우울하다고 느껴본 적 없겠는가. 인간은 본래부터 외롭게 태어난 인생이다. 하지만 우울함은 조금은 위험한 감정이라 생각된다. 보이지 않는 벽 안에서 홀로 아파하고 스스로를 꽁꽁 싸매는 행위. 어느 정도의 우울함은 예술 행위에 있어 상상하지 못한 결과물을 낳기도 한다지만 강도가 지나칠수록 온전하게 내 몸을 건사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요 며칠 읽었던 <보트>라는 작품은 정말이지 신기했다. 우울하고자 써내려간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품 곳곳애 숨어있는 깊고 짙은 우울함들이 하염없이 내 발을 붙잡고 어둠의 수렁 속으로 끌어들이는 느낌. 마치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몸부림치며 그것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나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이 책을 읽어갔다.
작가는 베트남계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로 일하다 작가로 데뷔했으며 각종 저명한 문학상들을 휩쓸고 여러 단편 문학 모음집에 그의 작픔을 싣기도 한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헌데 그리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수의 좋은 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들이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보트>라는 이 책은 왠지 모를 난해함과 우울함이라는 생각지 못한 감정의 덫으로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몰입하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막바지엔 조금 힘에 부칠 정도였던 것 같다. 어두운 내용,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현실. 잊어서는 안될 일들. 이 모든 사실들이 내 귓 속에 각자 다른 목소리로 끝없이 속삭여 나는 마치 절대반지를 눈앞에 두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프로도처럼 귀를 막고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보트> 속에는 일곱 개의 단편이 담겨 있다. 베트남 이야기는 물론 미국같은 서양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도 있다. 뒷골목의 가난한 아이들의 이야기와 전쟁 훈련을 받아야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등. 주제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예상을 했음에도 그보다 너무나 깊고도 컸던 그 감정의 골이 당황스럽고 힘겹게 느껴졌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미묘하게 얽히고 섥히는 감정의 고리들은 마치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를 위한 무대인양 우울함이라는 드라이아이스로 온 세상을 뿌옇게 메워갔다.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들. 그것은 이미 나에겐 픽션을 넘어선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던 것이다. 내용이 허무맹랑하다거나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쉽사리 경험하지 못할 이야기들 이었기에 글자 그래돌 받아들이기가 힘들 었던 것 같다.
아들의 글이 적힌 종이를 태우는 아버지, 암이 퍼져가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을 만나지 못하는 아버지, 자식 앞에서 죽어가는 어머니, 보트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 나는 이 순간 이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없었던 일인 듯 기억의 한 부분을 잘라내고 싶다. 도대체 어느 것이 감동적이라는 건지 어떤 부분이 창의적이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나같은 평범하고도 평범한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도 이미 저명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은 작품이니 뭔가가 숨겨져있긴 하겠지만 현실의 나에겐 정말이지 안 맞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혹,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내가 좀 더 성숙하고 나이들면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순간의 그 느낌으로만 단정짓지 말고 오랜 시간 후에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이해하기 힘든 우울함으로 힘겨웠던 시간. 이젠 좀 쉬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