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속삭여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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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떠날 너에게 런던을 속삭여 줄께> - 이 책을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온갖 컬러풀한 사진과 쇼핑 정보 그리고 런던을 지극히 실용적으로 즐기다 올 수 있는 방법들이 가득 담겨 있을 거라 생각했다. 흐뭇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을 때 블루 톤의 배경에 단아하게 자리 잡은 여러 흑백 사진들에 한 번 당황하고 각 장마다 빼곡하게 들어차있는 깨알 같은 글씨들에 놀라 다시 한 번 앞표지를 보게 되었다. 정혜윤이라. 나는 우선 그녀의 이름을 검색창에 쳐보았다. 책 표지에서 읽은 그녀의 범상치 않은 이력들 외에 더 많은 것이 알고 싶었고 왠지 이 사람이라면 내 독서 인생의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이라는 조금은 건방지고도 염치없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라디오 PD이자 지독한 독서가인 그녀는 2007년부터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낸 모든 이들이 부러워할 만한 그런 인물이었다. 헌데 그 모든 배경들 속에서 내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며 만난 수많은 책들에 대한 추억들과 지독히도 매력적이고 감성적인 글 솜씨였다. 한 번이라도 그녀의 글을 읽는다면 그녀를 온전히 잊을 수 있는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글과 여러 생각들은 치명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매력 그 자체였다. 자, 그럼 내가 읽은 그녀가 떠난 런던 여행의 발자취 속으로 슬그머니 한 발 비집고 들어가 보자.

 

 오래 전부터 "이거 여행기야? 이야기책이야?" 헷갈리는 책을 쓰고 싶었다던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꿈을 이뤄낸 것 같다. 책의 첫 장에서부터 내가 뱉어낸 첫마디가 "아니 이거 여행 책 아니었어?"이니 말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 폴 대성당, 대영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트라팔가르 광장,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런던탑, 그리니치 천문대 그리고 그녀가 여행 중 꼼꼼히 기록해준 여러 메모들이 마치 원래부터 우리는 한 몸이었다는 듯 온전하게 제 자리를 찾고 있었다. 헌데 이것은 단순한 여행의 기록이 아닌 , 그녀가 인생 속에서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기억들을  런던의 여러 장소와 인물들에게 영감을 받아 새롭게 써내려간 이야기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쩜 이렇게 아는 게 많은지 도대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권의 책을 읽어온 건지 나는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는 정혜윤이라는 사람에게 점점 빠져들어 갔다. 그녀가 놓아준 꽃길을 따라 때로는 시체가 즐비한 전쟁터를 따라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박물관을 따라 나는 또각 소리가 나는 하이힐을 신고 가끔은 어디로든 달려갈 수 있는 튼튼한 운동화를 신고서 쉼 없이 걷고 달렸다. 세상 어느 누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내가 런던 한 복판에 있더라도 그녀처럼 느낄 수 있을까, 과연 내가 보게 될 런던이 이토록 아름답고 눈부시며 또 깊고 깊은 우물처럼 끝없이 샘솟는 이야기를 듣게 해줄지 아무리 고민하고 생각해봐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을 한 마디로 정리해보면 딱 이런 느낌일 것 같아.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드래곤볼>. 지구를 구하기 위해 작은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에게서도 기운을 모으던 손오공, 그의 두 팔 위로 물줄기처럼 꿈틀거리던 심줄들, 등을 타고 흘러내려 결국은 온 몸을 적신 땀방울들, 그 속에서 겨우겨우 만들어낸 커다란 크기의 원기옥. 사실 이 장면은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명장면이라 꼽을 그런 명장면이다. 손오공이 지구를 구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이야기가 잠시 삼천포로 빠진 것 같아 급하게 돌아와 마무리 하자면 그녀의 책은 한 마디로 "손오공이 들고 있던 원기옥을 전통으로 맞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맞아보진 못했지만 "아! 이런 느낌이겠구나!"라 생각되는 온 몸에 퍼지는 전율, 손끝까지 찌릿한 짜릿함, 앞으로 나아갈 길의 갈피를 잡은듯한 속 시원함. 이런 기분 좋은 감정들이 어우러져 그 커다랗고도 위대한 폭탄을 맞았음에도 입을 베실베실 웃으며 행복을 느꼈다.

 

  도대체 왜 그녀의 이야기를 이제 만나게 된 것이란 말인가. 사실 그녀의 전작들 <침대와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는 서점에 갈 때마다 들었다 놓곤 했던 책들이었다. 한 권을 온전히 완독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나는 어쩌면 이미 정혜윤이라는 작가가 내 인생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런던이 아니면서도 런던인 이야기, 지극히 고리타분하지만 읽다보면 재미있는 그녀의 독서 기록들, 런던이라는 도시를 그냥 마음속에 접어두기엔  너무나 아쉬워 자꾸만 가방을 싸고 싶어지게 하는 그녀의 속삭임, 마지막으로 세상 모든 이들이 런던에 갈 수는 없지만 그녀가 본 런던은 아무나 볼 수 없다는 그 사실이 자그마한 책에서 느낀 감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감동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아, 물론 책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개인에 따라 지독히 다르게 다가올 수 있으니, 책을 그다지 좋아하시지 않는 분들이나 런던 여행의 정보를 얻고 싶으신 분들에겐 지독히 재미없는 책이 될 수도 있음을 꼭 알려드리고 싶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헛헛함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어제 한 번의 클릭으로 결제한 그녀의 첫 작품 <침대와 책>이 나를 향해 열심히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녀의 책을 다 읽으면 그녀에게 이런 무시무시한 영감과 이야기들을 전수해준 그녀가 읽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 볼 생각이다. 언젠가 나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모습으로 정혜윤,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내일이면 도착할 그녀의 또 다른 책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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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머신, 길자 - 환상 스토리
김창완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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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 반짝 빛나는 조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열기가 모여 뭉게구름처럼 두루뭉술 떠오른 뜨거운 공기.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까딱 거리게 되는 리듬. 지금쯤 어느 누구는 "동방신기?" 혹은 "슈퍼주니어?"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2pm이구나!"라고 말할지도... 미안해서 어쩌나. 그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산울림으로 유명한 김창완 씨의 무대였다!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 그 머리칼만큼이나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기타를 잡은 손, 때론 살짝 점프도 뛰어주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하는 중년의 사내! 어린왕자가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면 딱 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그런 장면이었다. 그의 무대를 함께하는 모든 관중들은 놀랄 만큼 흥에 겨워했고 나이와 성별을 떠나 모두가 한 마음이 된 것 같아 보였다. "우와~ 저 아저씨 정말 대단하네."라고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에 아빠는 빙그레 웃으시며 김창완 씨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과 전설적인 락밴드라 말할 수 있는 산울림은 모두 형제들로 이루어진 그룹이라는 것, 그리고 라디오DJ와 연기자, MC까지 못하는 일 없이 다재다능한 분이라는 사실까지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 느껴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어이쿠! 이번엔 책을 쓰셨단다. 신은 공평하다는 말이 이 순간만큼 거짓으로 느껴지는 때가 또 있을까? 궁금증 반 기대감 반으로 읽어간 그의 책은 얇은 두께와는 달리 신비롭고 무게감 느껴지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총 여섯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 책은 135페이지의 날씬한 몸매를 뽐내고 있다. 헌데 얇다고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 그 내용이 상당히 특별하고 새로워서 그 무게감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전제하에 읽는다면 글쓴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쉽사리 알 수 없는 중성적 매력과 우리가 일상에서 쉽사리 지나칠 수 있는 소소한 사건이나 사물에서 시작하는 사건의 전개는 어린 도둑고양이, 편의점의 점원까지도 인생의 주인공으로 끌어들이는 흡입력으로 읽고 있는 독자마저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저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쓴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 글들의 단어 하나하나가 그리 오래지 않아 원고를 채웠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글들의 모임은 결코 쉽다거나 가볍다고 말할 수 없기에 글을 읽을수록 더 신기하고 때론 이해가 잘 되지 않아 한참을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던 것 같다.

 

 잔소리를 조잘거리는 부인과 시끄러운 세상에게서 잠시라도 말을 빼앗고 싶었던 한 남자, 그가 개발한 침묵 기계의 이름은 바로 사일런트 머신, 길자이다. 작은 실험을 거듭해 이제는 지구 전체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기계의 계발을 눈앞에 둔 과학자, 누구도 반기지 않는 도둑고양이 가족의 한 자리를 꿰차고 태어나 불의의 사고로 가족과 헤어지고 환상의 숲을 거닐게 된 아기 고양이 죠죠의 이야기, 매일 담배를 사러오는 아가씨를 상상하며 소설을 써내려간 점원의 비밀, 사고 후 차츰 기억을 되찾아가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사실까지 기억해낸 한 청년의 안타까운 사연, 그리고 공허함이 느껴지는 한 판사의 사소한 일상까지, 우리는 <사일런트 머신 길자>라는 책 속에서 그간 소소하다 느끼고 아무런 의미 없이 스쳐가던 일상의 부속품들에서 환상을 느끼게 된다. 사물을 보는 시각에 있어서 이리도 새로운 이야기가 창조될 수 있음을 그리고 결국 글은 머리 좋은 사람이 쓰는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읽으면 읽을수록 애매모호했던 감정의 기복들이 서평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져 읽기 쉬운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 생각하는 나를 힘들게 한다. 가볍지 않은 환상동화를 읽고 나니 서평도 왠지 구불구불 알 수 없는 길로 꼬여만 가는 것 같은 이 기분. 마치 잘 타지도 못하는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고 온 세상을 어지러움 속에서 토해내는 듯 한 그런 기분이었다.

 

 분명 얇은 책이건만 이야기 하나하나를 음미했던 것인지 아니면 내용이 좀 새롭고 미묘해 쉽사리 읽지 못했던 것인지 며칠 동안 읽어야만 했다. 다 읽고 나서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음음, 이거 뭐지?"라고 되뇌는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띠지에서 활짝 웃고 있는 김창완 아저씨의 밝은 미소. "이궁. 그렇게 웃지만 말고 설명 좀 해주세요."라 말하며 나도 모르게 뿌루퉁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러다가 이내 혼자서 허탈하게 웃어버리고만 내 모습, 지금 생각해도 시원섭섭, 허탈하다. 결코 가볍지 않았던 환상동화. 다음에 또 읽을 땐 부디 좀 더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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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의 성 - 치정과 암투가 빚어낸 밤의 중국사
시앙쓰 지음, 강성애 옮김, 허동현 감수 / 미다스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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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치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여러 사극들에서 극의 긴장감과 재미를 더해주는 것이 바로 왕과 그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물론 왕의 대외적인 정벌 활동과 정치에 초점을 맞추는 극도 있지만 몇 년 전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여인천하>처럼 후궁전의 권력다툼을 주제로 한 드라마들도 꽤 많은 것 같다. 사극에서는 이례적일 정도의 파격적인 애정 씬들을 선보였던 <장희빈>과 <장녹수>등 우리 역사 속의 여러 미인들은 호시탐탐 성은을 입을 기회를 노리며 더불어 권력을 향해 손을 뻗어가고 있었다. 가끔 후궁전에서 일어나는 왕에 대한 집착과 그에 따른 권력에 눈이 멀어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추악하고 더러워 보일 때도 있었다. 체통과 인의예지 그리고 도를 중시하는 역사 깊은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하긴 요즘 세상도 단지 사람들이 모를 뿐이지 우리가 모르는 어두운 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파다하게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읽게 된 <황궁의 성>이라는 책에서 나는 여색에 빠졌던 수많은 황제들과 그 질투를 견뎌내지 못하고 잔인할 정도로 복수하는 여러 황후들, 그리고 방중술과 춘약(사람을 흥분시키는 약)에 이르기까지 그간 미처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들의 화려하고도 지독했던 밤문화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잔인함, 그 이면에 깔린 인간으로써의 연민과 측은함. 단 한 순간의 지루함 없이 정말이지 재미나게 읽었던 책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서의 교양 과목을 제외하고선 역사는 나에겐 너무나도 먼 이야기였다. 간혹 가다 사극에 흥미를 느껴 열심히 보게 될 때도 언제나 남동생과 아빠의 부연설명을 들으며 감상해야했고 이제는 머릿속에서 말끔히 사라진  국사 책 덕분에 가끔 스스로의 무식함에 당황스럽고 우울해지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 중국의 역사가 다를 리 없지 않았겠는가. 책의 초반에서 여러 시대, 여러 왕조를 오가며 나오는 인물들은 새롭기 짝이 없었다. 열심히 따라가 보며 힘에 부쳐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이 사람 앞에서 나왔던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배경 지식 없이 하는 독서가 지루하게만 느껴졌을 텐데 이 책은 신기하게도 재밌고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성(性)이라는 원초적이다 못해 말초적인 주제를 다룬 책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 주제를 놓고 저자가 풀어가는 중국의 역사가 너무나 재밌고 흥미진진했기 때문에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자신을 키워 준 유모와 관계를 가진 황제, 아버지의 여자를 탐한 이, 어미의 애인을 찢어 죽인 진시황, 80세에 이르기까지 약의 힘을 빌려 소녀들을 취했던 변태적인 황제 등 솔직히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가득했지만 이미 지난 역사 속의 일이고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였기에 자꾸만 빠져들게 되었다.

 

 길고 긴 중국의 역사 속에서 밤문화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성생활을 화려했다. 황제는 이미 태자 시절부터 직접적인 성교육을 받았으며 태자비 혹은 황후를 맞이했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철저한 실전 연습을 거쳤다고 한다. 대통을 잇고 종묘사직을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정말이지 불쾌한 일이다. 그리고 황제들은 수시로 안을 수 있도록 궁녀와 여러 비들을 비롯한 수많은 미인들을 궁의 은밀한 장소에 모아놓았으며 방중술과 춘약을 통해 회춘하곤 했다고 한다. 황후는 대부분 황제가 권력을 갖기 전에 외척 세력을 고려한 태후에 의해 책봉되었는데 그렇다 보니 황제와 황후간의 사랑은 기대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러다보니 황후들은 외로운 밤을 보내거나 질투에 시달리며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황제를 노리개처럼 부리며 온 권력을 누렸던 무측천, 감히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고도 태후가 된 진시황의 어머니, 그리고 손과 발이 잘리고 두 눈이 멀게 되고 말마저 못하게 된 척씨 부인 등 잊을 수 없는 여러 여인들이 많았다. 성도착자라 생각될 정도의 황제들의 문란한 밤문화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꽃 핀 황후와 여러 여인들의 밤문화 역시 대단히 재밌고 흥미로웠다.

 

 모든 일에는 어울리는 시대가 있기 마련인데 만약 이 책이 보수적이었던 수십 년 전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혹시나 금서가 되지는 않았을지. 사람의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야한 그림들이나 적나라한 성적 묘사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상상과 역사적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고 신비로웠다. 정말 이 시대에 딱 어울리는 중국 역사서다! 지루하지도 않고 성(性)이라는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풀어간 이야기이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하다. 더불어 거침없이 풀어가는 역사 이야기가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처럼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글과 함께 실린 여러 가지 컬러풀한 오래된 그림들은 긴 독서의 여정에서 쉬어갈 수 있는 쉼터 같은 존재로 상당히 정감어리고 정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밤문화를 통한 역사 정리를 이보다 잘한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책! <황궁의 성> 덕분에 즐겁게 중국 역사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 같다.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을 정도였으니 그 재미는 두말 할 필요 없으리라! 누군가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목록에 <황궁의 성>도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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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우리는 - 생태환경단편소설집
위베르 리브 외 지음, 이선주 옮김 / 검둥소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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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헬멧이 너무 답답해요. 잠깐만 벗으면 안 될까요?"

 "아가야, 그랬다간 옆집 할아버지처럼 생명을 잃게 된단다."

 "엄마, 이 무거운 옷을 벗고 잠시라도 뛰놀고 싶어요. "

 "아가야, 세상 밖은 우리 몸을 녹여버릴 오염물질들로 가득하단다. "

 "엄마, 한 번 만이라도 엄마를 꼭 껴안아 보고 싶어요."

 "아가야, 엄마는 지금 죽어가고 있단다. 엄마의 몸속에 있는 병균들이 너에게 옮을까 걱정되는 구나."

 

 지금 이 이야기가 먼 미래의 이야기로 느껴진다면 당신은 아직도 우리의 환경이, 오직 하나뿐인 지구가 죽어가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겁니다. 지구는 분명 끊임없이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오로지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나무를 잘라 종이를 만들고 400년 동안 썩지 않는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내고 헤어스프레이로 멋을 냅니다. 지구는 처음부터 우리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우리가 이곳에 살도록 허락해준 좋은 친구이자 평생의 동반자입니다. 그런 지구가 우리에게 땅을 내어준 걸 후회하게 만들어야 할까요? 여러 영화들에서 본적 있는 넓디넓은 우주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외계 생명체가 보다 못해 우리를 처단하고 지구를 구하러 오는 날까지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직 초록빛을 완전히 잃지 않은 지구를 우리의 아이들에게 선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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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우리는>이란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오염된 공기를 막기 위해 방독면을 쓰고 있는 사람 그 손 위의 접시에 누워있는 피 흘리는 지구, 찢기고 으서져 빨간색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그 지구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누가 지구를 이렇게 만들도록 허락했단 말인가! 우리는 도대체 어떤 권리로 지구의 살을 갉아 먹으며 자신의 배를 채우는가.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읽어가기 시작한 책은 오히려 놀랍게도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자포자기한 심정인 듯 언제나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고도의 발달된 문명은 사라지고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삶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 우리가 자초한 일이라고 중얼거리며 한 장, 한 장 책을 읽어갈 수록 평온한 마음과는 달리 머릿속은 수없이 많은 생각들로 조금 복잡했던 것 같다.

 

 이 책은 프랑스의 청소년 소설가로 유명한 10명의 작가들이 모여 지구를 살리고 아이들에게 지구의 중요성과 현재 상태를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쓴 작품들이다. 시로써 지구가 겪고 있는 아픔과 인간의 무지를 슬퍼한 작품도 있고 오염물질로 인해 팔과 다리 손가락이 온전치 못한 아이들의 이야기, 검은 봉지 때문에 기도가 막혀 죽어버린 아기 고래의 사연, 그리고 헬멧과 방어구의 착용으로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있다. 우리가 무심코 버린 비닐봉지가 오랜 시간동안 썩지 않고 심지어는 동물을 죽일 수도 있다니, 미래엔 엄마 아빠의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도 없고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을 가질 인간으로써의 기본적인 소망도 허락되지 않을 삶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니, 자꾸만 눈물이 나고 속이 상했다. 초록빛 숲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될 거라는 사실이 우리의 후대들에게 핏빛 어린 원망의 소리와 찢어질 듯 한 비명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고 또 인정할 수도 없었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여러 글들은 인간이 그간 얼마나 무지하게 살았으며 그 결과물로 우리의 후손들이 겪게 될 고통과 지구의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어느 한 곳에서도 격한 분노나 노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사실 만으로도 그 슬픔과 아픔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만 잘 살다가 죽고 나면 끝이라는 생각, 그런 생각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나만 아니면 되"라는 복불복은 오로지 재미있는 티비 프로그램에서만 허락될 뿐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방식에선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잊고 있는 어른들에게 그리고 이런 어른들 때문에 초록빛 지구에서 살 수 없는 아이들에게 <괜찮아 우리는>이란 책은 목 놓아 외치고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희망의 불씨와 함께 우리가 조금만 더 신경 쓰고 달라진다면 보다 나은 미래를 경험할 수 있음을 약속하고 있다. 이 책의 무게감은 실로 대단하다. 혹여 무겁고 칙칙해서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재미나고 알기 쉬운 글로 풀어냄으로써 성별과 연령을 넘어서 모든 인간들이 쉽게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얇은 책 속에 담긴 진중하고도 솔직한 이야기. 나는 오래도록 이 책을 잊지 않고 가슴 속에 간직하고 싶다.

 

 언젠가 우주에서 내려다 본 지구의 모습이 기억난다. 직접 우주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우주인들이 찍어 보내준 사진 속의 지구는 그 모습만으로도 마치 내가 우주 한 가운데서 아름다운 초록빛별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해주었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그 모습, 파랗고 하얗고 초록빛인 지구는 행복해보였다. 헌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는 서서히 회색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어두워지는 지구의 색만큼 내 마음도 점점 어두워서 슬픔만이 더해갔다. 나 한사람의 노력만으로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이 모여 그것이 한국 여러 곳으로, 이웃 나라로, 온 지구로 퍼져나간다면 지구의 아름다운 초록빛을 다시 찾아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소유가 아닌 땅, 단지 우리가 살 수 있는 100년 정도의 삶만 잠시 허락된 지구는 우리가 후손에게 바통을 넘겨주어야할 삶의 터전이다. 단지 오늘과 내일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나의 아이, 손자들에게 물려주어야할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잘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 작은 노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적을 일깨워준 책! 이렇게 좋은 만남은 인생을 즐겁게 한다. 지구를 사랑하는 작은 노력들 당장 지금부터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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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아프리카 -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의 서사시
조세프 케셀 지음, 유정애 옮김 / 서교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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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파트리샤에게.

 

 안녕? 파트리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소설 속의 너는 열 살이 좀 넘은 어린 아이구나.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갔다면 분명 넌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을 텐데 말이야. 이렇게 생각해보니 내가 파트리샤라고 이름을 부르는 것이 왠지 버릇없고 무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소설 속의 너는 어느 누구 보다도 눈부시고 사랑스러운 소녀였기에 나는 언제까지나 너를 소녀의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 킬리만자로 자락에 있는 국립공원에 사면서 너는 밤이고 낮이고 동물 친구들과 함께 숨 쉬고 뛰놀며 우정을 키워갔지. 난 그 관경이 너무나 신기해서 믿을 수가 없었어. 나는 집 앞에 살고 있는 작은 고양이들과도 친해질 수가 없었거든. 너의 따스한 마음, 동물과 마음껏 교감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누구보다도 그들을 사랑하는 그 끈끈한 진심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와 닿았어. 특히나 맹수라 불리는 사자 '킹'과 너의 우정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것이었지. 몸이 약해 눈도 뜨지 못하는 어린 사자 킹에게 시리얼을 먹이고 담요를 덮어주며 건강한 어른 사자로 키운 너의 사랑과 우정은 내가 살아가면서 다시 보기 힘든 기적일 거야. 목덜미에 킹의 이빨이 닿아도 무섭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믿고 그의 수북한 갈기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던 너의 모습에 나도 슬그머니 그런 친구가 갖고 싶다는 질투를 느끼기도 했어.

 

 파트리샤, 너의 아버지는 국립공원을 지키는 전설적인 사냥꾼 불리트 씨지? 아, 너는 아버지가 동물들을 이유 없이 죽이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싫어하지. 미안해. 하지만 너희 아버지는 황소 불리트라 불리실 정도로 너무나 대단한 사냥꾼이었다고 여기저기 서들 칭송이 자자하더라고. 지금은 누구보다도 동물을 사랑하시고 너와 킹의 관계를 이해하시니 더 바랄게 없겠구나. 파드리샤. 너의 어머니 시빌 여사는 사실 좀 친해지기 힘든 타입이신 것 같아. 네가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 뛰어노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시고 언제나 기숙학교로 보낼 생각에 가득 차계시잖니. 어? 아.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래도 너는 엄마를 많이 사랑하지? 네가 어떻게든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잘 헤아리려고 노력한다는 거 나도 잘 알고 있어. 착하고 예쁜 딸 파트리샤. 넌 정말 좋은 아이야.

 

 <소울 아프리카>라는 책에서 너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자 역할을 해주시던 그 아저씨는 잘 계시니? 소설 끝에서 너를 데리고 나이로비로 떠나셨던 그 분. 지금도 너와 친구같이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구나. 그 분은 너를 통해 자연의 신비와 동물과 사람 간에는 있을 수 없다고 믿었던 우정을 보셨던 산증인이지. 그 분이 풀어 놓으시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어찌나 떨리고 흥분되던지 나는 마치 파트리샤 네가 내 눈 앞에서 숨 쉬고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 그대로 손을 앞으로 내밀면 너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 떨리는 심장 소리를 너는 들을 수 없었겠지?

 

 파트리샤, 네가 마사이 족의 전사 오리우냐에게 청혼을 받았을 때는 나는 정말이지 너의 어머니만큼 놀라 마구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어. 너는 어떤 생각으로 그가 청혼하도록 내버려 둔 것일까? 사실 네가 너무 어린 나이이다 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겠지만 나는 네가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거절하고 결혼의 뜻이 없다는 사실을 비췄더라면 너의 친구 킹이 희생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어. 용기의 상징인 사자의 가죽을 얻어 너와 결혼하기 위해 킹에서 덤볐던 오리우냐, 그리고 킹에 의해 다 죽어가는 오리우냐를 구하기 위해 킹에서 총을 겨누어야 했던 너의 아버지. 이 모두가 운명의 장난처럼 한데 얽혀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었으니 말이야. 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빠가 너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 킹을 쏘아야했을 때 너의 아버지 불리트 씨의 마음도 분명 말 못할 정도로 힘드셨을 거야. 그러니 비록 지금은 용서할 수 없을 만큼 힘들겠지만 아버지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해주길 바래. 물론 킹의 죽음은 나도 견디기 힘들어. 너를 탓하는 것은 아니야. 나도 너만큼 킹이 보고 싶고 눈물 나게 그립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해.

 

 마음을 다치고 모든 동물들을 뒤로하고 꽁꽁 숨어버린 너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까? 기숙학교는 마음에 드니? 맨발로 뛰어놀던 거칠지만 포근했던 공원이 생각나진 않니? 킹의 기분 좋은 갸르릉 소리와 푹신한 갈기가 생각나진 않아? 항상 네 걱정뿐인 시빌 여사와 불리트 씨가 보고 싶지는 않고? 나는 아직도 너에게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아. 하지만 내가 너에 대해서 더 알아가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너의 이야기가 담긴 책으로 손이 가고 읽고 또 읽게 되는 것 같아. 너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묘한 매력이 있어서 50년이 지는 지금도 전혀 세대차가 느껴지지 않거든. 마치 지금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더라고. 이토록 멋진 너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고 파트리샤 네가 실제로 존재하는 내 친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을 토해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내가 너무나 부족하고 안타깝게 여겨져. 부디 언제나 건강하기를, 그리고 <소울 아프리카>라는 너의 이야기가 앞으로 50년 ,100년 내가 살아갈 나날들과 나의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하길 바랄께. 파트리샤, 오늘은 유난히 네가 더 그리워지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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