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의 성 - 치정과 암투가 빚어낸 밤의 중국사
시앙쓰 지음, 강성애 옮김, 허동현 감수 / 미다스북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변치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여러 사극들에서 극의 긴장감과 재미를 더해주는 것이 바로 왕과 그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물론 왕의 대외적인 정벌 활동과 정치에 초점을 맞추는 극도 있지만 몇 년 전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여인천하>처럼 후궁전의 권력다툼을 주제로 한 드라마들도 꽤 많은 것 같다. 사극에서는 이례적일 정도의 파격적인 애정 씬들을 선보였던 <장희빈>과 <장녹수>등 우리 역사 속의 여러 미인들은 호시탐탐 성은을 입을 기회를 노리며 더불어 권력을 향해 손을 뻗어가고 있었다. 가끔 후궁전에서 일어나는 왕에 대한 집착과 그에 따른 권력에 눈이 멀어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추악하고 더러워 보일 때도 있었다. 체통과 인의예지 그리고 도를 중시하는 역사 깊은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하긴 요즘 세상도 단지 사람들이 모를 뿐이지 우리가 모르는 어두운 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파다하게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읽게 된 <황궁의 성>이라는 책에서 나는 여색에 빠졌던 수많은 황제들과 그 질투를 견뎌내지 못하고 잔인할 정도로 복수하는 여러 황후들, 그리고 방중술과 춘약(사람을 흥분시키는 약)에 이르기까지 그간 미처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들의 화려하고도 지독했던 밤문화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잔인함, 그 이면에 깔린 인간으로써의 연민과 측은함. 단 한 순간의 지루함 없이 정말이지 재미나게 읽었던 책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서의 교양 과목을 제외하고선 역사는 나에겐 너무나도 먼 이야기였다. 간혹 가다 사극에 흥미를 느껴 열심히 보게 될 때도 언제나 남동생과 아빠의 부연설명을 들으며 감상해야했고 이제는 머릿속에서 말끔히 사라진  국사 책 덕분에 가끔 스스로의 무식함에 당황스럽고 우울해지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 중국의 역사가 다를 리 없지 않았겠는가. 책의 초반에서 여러 시대, 여러 왕조를 오가며 나오는 인물들은 새롭기 짝이 없었다. 열심히 따라가 보며 힘에 부쳐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이 사람 앞에서 나왔던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배경 지식 없이 하는 독서가 지루하게만 느껴졌을 텐데 이 책은 신기하게도 재밌고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성(性)이라는 원초적이다 못해 말초적인 주제를 다룬 책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 주제를 놓고 저자가 풀어가는 중국의 역사가 너무나 재밌고 흥미진진했기 때문에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자신을 키워 준 유모와 관계를 가진 황제, 아버지의 여자를 탐한 이, 어미의 애인을 찢어 죽인 진시황, 80세에 이르기까지 약의 힘을 빌려 소녀들을 취했던 변태적인 황제 등 솔직히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가득했지만 이미 지난 역사 속의 일이고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였기에 자꾸만 빠져들게 되었다.

 

 길고 긴 중국의 역사 속에서 밤문화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성생활을 화려했다. 황제는 이미 태자 시절부터 직접적인 성교육을 받았으며 태자비 혹은 황후를 맞이했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철저한 실전 연습을 거쳤다고 한다. 대통을 잇고 종묘사직을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정말이지 불쾌한 일이다. 그리고 황제들은 수시로 안을 수 있도록 궁녀와 여러 비들을 비롯한 수많은 미인들을 궁의 은밀한 장소에 모아놓았으며 방중술과 춘약을 통해 회춘하곤 했다고 한다. 황후는 대부분 황제가 권력을 갖기 전에 외척 세력을 고려한 태후에 의해 책봉되었는데 그렇다 보니 황제와 황후간의 사랑은 기대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러다보니 황후들은 외로운 밤을 보내거나 질투에 시달리며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황제를 노리개처럼 부리며 온 권력을 누렸던 무측천, 감히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고도 태후가 된 진시황의 어머니, 그리고 손과 발이 잘리고 두 눈이 멀게 되고 말마저 못하게 된 척씨 부인 등 잊을 수 없는 여러 여인들이 많았다. 성도착자라 생각될 정도의 황제들의 문란한 밤문화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꽃 핀 황후와 여러 여인들의 밤문화 역시 대단히 재밌고 흥미로웠다.

 

 모든 일에는 어울리는 시대가 있기 마련인데 만약 이 책이 보수적이었던 수십 년 전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혹시나 금서가 되지는 않았을지. 사람의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야한 그림들이나 적나라한 성적 묘사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상상과 역사적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고 신비로웠다. 정말 이 시대에 딱 어울리는 중국 역사서다! 지루하지도 않고 성(性)이라는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풀어간 이야기이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하다. 더불어 거침없이 풀어가는 역사 이야기가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처럼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글과 함께 실린 여러 가지 컬러풀한 오래된 그림들은 긴 독서의 여정에서 쉬어갈 수 있는 쉼터 같은 존재로 상당히 정감어리고 정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밤문화를 통한 역사 정리를 이보다 잘한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책! <황궁의 성> 덕분에 즐겁게 중국 역사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 같다.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을 정도였으니 그 재미는 두말 할 필요 없으리라! 누군가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목록에 <황궁의 성>도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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