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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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 마리카의 장갑

글쓴이: 오가와 이토

그린이: 히라사와 마리코

옮긴이: 이윤정

펴낸 곳: 작가정신

 

 마가목 열매가 빨갛게 익어갈 무렵, 딸을 간절히 바라던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마리카.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세 오빠는 소중한 새 가족을 맞이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축하합니다. 젊은 시절 목공 장인이었던 할아버지는 마리카가 커서 사용할 나무 그릇을 만들고 할머니는 마리카의 작디작은 손 크기를 가늠하며 새빨간 털실로 엄지 장갑을 뜨고 엄마는 가족을 위해 흑빵을 굽고 아빠와 세 오빠는 숲에서 가문비나무를 베어와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합니다. 이곳, 루프마이제공화국의 겨울은 춥디춥다지만, 마리카네 집은 가족 간의 정과 넘치는 사랑으로 오늘도 따스합니다. 가족이 많다는 건 행운입니다. 가족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무럭무럭 자란 마리카는 공부보다는 숲에서 뛰놀고 강에서 물고기 잡는 걸 즐기는 말괄량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루프마이제공화국 국민이라면 꼭 통과해야 할 시험이 다가옵니다. 닷새에 걸쳐 치르는 수공예 과목 시험. 울며 겨자 먹기로 할머니께 급하게 배운 실력으로 마리카는 겨우 시험을 통과하고 어느새 성숙한 소녀로 자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카에게 찾아온 첫사랑. 상대는 학교 춤 동아리 1년 선배인 야니스입니다. 고백의 의미로 용기를 내 전한 엄지 장갑을 야니스가 끼고 나타났을 때 마리카는 날아갈 듯 기뻤죠. 그렇게 두 사람은 예쁜 사랑을 키워가며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양봉업자인 야니스는 벌을 치며 꿀을 만들고 마리카는 예쁜 화단을 가꾸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며 부부는 행복한 삶을 이어갑니다. 비록 아이는 없었지만, 서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죠. 그러던 어느 날, 무자비한 얼음제국이 루프마이제공화국을 점령하고 마리카와 야니스 부부에게도 불행이 닥칩니다. 얼음제국으로 끌려간 야니스. 야니스를 떠나보내던 날, 마리카는 무사히 돌아오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엄지 장갑을 뜹니다. 하루, 이틀, 1년, 2년... 기약 없는 기다림이 쌓여 갈수록, 속절없는 빨리 흐르는 시간에 마리카를 청년에서 중년으로 중년에서 노인으로 그렇게 늙어갑니다. 과연 마리카는 사랑하는 야니스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생이별한 마리카의 삶이 어찌 보면 너무 비극적이고 야속하여 안타까울 수 있지만, 마리카가 이별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의연하고 진지합니다. 그 그리움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냐마는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평생을 버티며 살아갔고 이별 역시 괴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죠. 『마리카의 장갑』에는 사람이 품을 수 있는 모든 아름다운 마음과 행복한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마리카를 위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 마리카를 향한 아빠와 엄마의 사랑, 마리카를 아끼는 세 오빠의 챙김. 마리카를 목숨보다 더 아낀 야니스의 진정한 사랑, 그런 야니스를 존경하고 온 마음으로 사랑한 마리카의 순정. 자연을 아끼고 존중하는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의 위대한 정신, 엄지장갑을 통해 나누는 따스한 정 등등 그저 읽고만 있어도 마음이 정화되고 눈물이 뚝뚝 흐를 정도로 감동적이어서 착하고 예쁜 마음이 들게 하는 소설이라고 할까요? 저는 실제로 참 많이 울고 참 많이 미소지었습니다. 『마리카의 장갑』으로 느낀 벅찬 감동을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는 글솜씨가 원망스러울 만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촉촉하게 젖어 들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제가 마리카인 양 그 인생에 흠뻑 빠져들었죠. 아름다워서, 행복해서, 슬퍼서, 속상해서 그러다 꿋꿋하게 살아가는 마리카의 모습에 감동하여 툭하면 눈물이 터져 나와 혼났습니다. 제가 원래 수도꼭지긴 하지만, 『마리카의 장갑』이 워낙 감동적이라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자자, 아무 때나 눈물 쏟는 주책바가지라고 오해받기 전에 분위기를 바꿔 다른 얘기를 해보자면, 오가와 이토 작가의 소설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는지? 맞습니다. 바로 음식! 『달팽이 식당』, 『따뜻함을 드세요』 등의 소설에서 음식으로 따스한 위로와 끈끈한 정을 선사했던 작가는 『마리카의 장갑』에서도 특별한 요리를 선보입니다. 요리 솜씨 좋던 마리카의 엄마가 기가 막히게 맛있게 굽던 흑빵, 술이 센 마리카의 할머니가 즐겨 마시던 약술 시마코프카, 작고 샛노란 꽃을 따서 말린 보리수 꽃차, 자작나무 수액을 받아 건포도와 레몬 껍질과 박하를 넣고 발효시킨 자작나무 주스, 흰 빵 반죽에 코티지치즈를 넣고 동글동글 빚은 경단에 달콤한 소소를 버무린 클료츠키, 초콜릿을 따끈한 우유에 녹이고 꿀을 듬뿍 넣어 야니스가 마리카를 위해 준비했던 코코아, 숲에서 따먹던 딸기, 직접 딴 사과로 만든 사과 버터케이크, 손으로 분지른 오이에 커런트 잎과 마늘과 줄기 붙은 캐러웨이와 서양고추를 넣고 샘물을 부어 만든 싱싱한 오이 피피, 야니스와 마리카가 함께 즐겨 마시던 도토리 커피... 행복한 추억이 깃든 이 모든 음식을 직접 맛보진 못 했지만 어쩐지 맛을 알 것 같은 이 마음. 『마리카의 장갑』이 전하는 이 감동과 따스한 정을 많은 분이 느껴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너무 좋으면 정작 아무 말도 못 한다더니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제 말문이 막혀버린 것 같아 지금 몹시 답답하지만, 부디 저의 진심이 이 글을 통해 전해지기를... 이 책 정말 꼭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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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 우리의 계절
이창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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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와 당신 우리의 계절

지은이: 이창현

펴낸 곳: 지식과감성


 오랜만에 굉장히 풋풋한 에세이를 만났다. 아니 시집이라고 해야 맞으려나? '소중하고, 특별한 사랑이 담긴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나와 당신 우리의 계절』. 일단 제목과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차분하면서도 따스한 느낌. 페이지마다 짧은 글이 채워져 있어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여백의 미도 작품에 포함된다는 생각으로 행간에서 쉬어가며 천천히 읽었던 책. 음... 뭐랄까. 이건 어쩌면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쏟아낸 한 묶음의 원고 같은데 사실 좀 설익은 느낌이 있다. 글솜씨 좋은 고등학생이 쓴 글 같다고 할까? 살짝 떫은맛이 남아 있는 잘 익기 직전의 풋사과. 이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뜨거운 청춘이 담겨 있다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단, 하나뿐인 자랑거리


어딜 가서도 남들에게

널 자랑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자랑에

관심이 없어도 크게 외치며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p23, 나와 당신 우리의 계절 中에서..."


 글을 읽으며 떠오른 20대 초반의 추억. 수줍게 받아들인 고백에 방방 뛰며 좋아서 고래고래 소리쳤던 그 사람. 가진 건 젊음밖에 없기에 더 푸르고 간절했던 그 시절.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그 감성이 살아나 잠시 가슴이 시렸다. 20대 초반 막 사랑을 시작한 이들이 읽기에 딱 좋은 에세이. 사랑이 시작되는 봄을 지나 푸르른 여름엔 함께 꿈을 그리고, 깊어가는 가을엔 성숙해지다가 마음이 꽁꽁 어는 겨울에 시린 이별을 경험한 것처럼 이 책은 사랑의 시작부터 끝을 차근차근 서투르게 표현한다. 풋풋하고도 풋풋하여 세월을 뛰어넘어 잠시 어렸던 그 시절로 하염없이 빠져들게 됐던 에세이! 오랜만의 추억 여행은 즐거웠다. 부디 이 기분 좋은 설렘이 사라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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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그리움이다 - 인문학자와 한옥 건축가의 살고 싶은 집 이야기
최효찬.김장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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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집은 그리움이다.

지은이: 최효찬, 김장권

펴낸 곳: 인물과 사상사

 

 부모님 슬하에 살 때는 다 해주시니 걱정 없이 살았건만, 결혼하여 새롭게 가정을 꾸리고 살다 보니 자식 키우며 부모님이 참 고생하셨겠구나 싶다. 어렸을 적 잠시 주택에 살았던 적은 있지만, 거의 평생 아파트에 살았던 인생. 집이 주는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보다는 차가운 시멘트 외벽과 콘크리트 바닥이 더 익숙한 나는 닭장 생활자다. 지금 어쩌다 보니 또 이사를 앞두고 있는데, 살고 있는 집값은 뚝뚝 떨어지고 가야 할 집은 물가 상승률에 따라 터무니없이 비싸서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상황. 언제부터 '집'이란 존재가 이렇게 속 썩이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인가! 아니, 어쩌면 이건 내 마음가짐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물던 상황에서 만난 서적이 『집은 그리움이다』란 책이다. 사실, 제목을 보는 순간 조금 울컥했다. 집은 그리움이라니... 그래, 지금은 날 울게 하는 집이지만 언젠가는 웃게 해줄 집이라고 굳게 믿으며, 경제학적인 가치를 떠나 집이 지닌 진정한 의미와 소중함을 깨닫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나에게 이 책은 제법 괜찮은 처방이었다.

인문학자 최효찬과 한옥 건축가 김장권이 함께 엮은 살고 싶은 집 이야기. 이 책은 집을 소재로 쓴 인문학 서적이자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회고록이다. 여러 집에 얽힌 추억과 사연을 들려주고 집이란 공간이 지닌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이 책에서 가장 먼저 가슴에 와닿은 구절은 홈(Home)과 하우스(House)의 차이였다. '홈'은 우리가 흔히 말할 때 안식의 거처로서 가족의 정이 느껴지는 공간을 의미한다면, '하우스'는 건축물의 기능을 갖춘 공간으로써 집을 의미한단다. 그래, 그러니 즐거운 나의 집이 '홈, 스위트 홈'인 것이다! 내가 속을 썩고 있는 '하우스'를 떠나 마음 편히 쉬고 기댈 수 있는 '홈'을 찾고 싶었다. 집이라는 정적 공간이 주는 따스함과 위로가 지독하게 그리운 때이기에...

 

 총 5장을 구성된 이 책은 제1장과 2장에서는 집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이황, 두보, 생텍쥐페리, 데카르트 등 여러 위인의 집을 탐방하며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데, 그 중 퇴계 이황의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유명한 학자인 퇴계 이황이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는 사실을 아셨는지? 한양 생활 중에도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그는 평생 학문에 매진했던 것처럼 건축하며 살았다고 한다. 평생 한 번 짓기도 힘든 집을 다섯 번이라 지었다니 정말 대단! 지산와사, 양진암, 한서암, 계상서당 등을 짓고 소박한 도산 서당을 끝으로 도산 서원을 완성하며 기나긴 건축 여정을 끝냈다는 이황. '괜히 사서 고생'이라며 고충을 토로하면서도 꿋꿋이 건축을 이어갔다는 면에서 건축에 대한 그의 집념과 이상을 다시금 엿볼 수 있었다.

 

 

  제3장부터 5장까지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고향 집을 떠나 32번 이사 다니다가 결혼 22년 만에(결혼 후에 했던 이사는 그 32번 중 12번) 은평한옥마을에 '채효당'을 지은 최효찬 작가의 평생에 걸친 집에 관한 경험담과 토지를 매입하고 한옥을 올리고 마침내 완성하는 일련의 과정, 마지막으로 김장권 건축가의 '내가 만든 한옥 이야기'가 이어진다. 집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이리저리 살펴볼 수 있어서, 어린 시절 선물 받고 좋아했던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느낌이 확 풍겼던 책! 나 역시 한옥 짓기에 관심이 있어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이번에 이사하면 20년을 눌러앉아 살다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이사할 생각인데 그때 갈 집은 작가처럼 한옥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대손손 물려주어도 손색이 없는 집이라면 더 좋을 듯. 재테크와 투기라는 풍선에 가려져 돈 먼저 떠올리게 되던 집이라는 존재에 '하우스'가 '홈'으로 다가선 순간, 그간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거짓말처럼 조금 풀어졌다. 다 풀어지지야 않았지만 뭔가 따스한 위로를 받은 느낌이랄까? 선명한 사진 자료와 함께 한국과 외국의 여러 집을 살펴보며 그 집의 주인들과 작가의 인생사에 녹아드니 집이란, 아니 정확히 '내 집'이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공간이라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부디 우리 가족이 언제 떠올려도 행복할 그런 공간이 되기를! 조심스럽게 소박한 바람을 품으며 따스한 집을 꾸릴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분주하다. 집이란 공간에 관심이 있는 분, 한옥을 짓고 싶은 분, 집이라는 주제로 어떤 인문학 이야기가 쏟아질지 궁금한 분, 저처럼 집 때문에 골머리 썩는 분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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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너라는 계절 - 한가람 에세이
한가람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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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온통 너라는 계절

지은이: 한가람

펴낸 곳: 북로그컴퍼니


 학창 시절 심야 라디오 방송을 꼭 챙겨 들었었다. 새벽까지 공부하는 내게 큰 위안과 위로가 돼주었던 단짝 친구 같은 존재. 성인이 된 후론 먹고 살기에 바빠 또는 늦게까지 이어지는 외출로 예전만큼 라디오를 듣진 못했지만, 심야 라디오 방송은 언제나 내겐 친정 같고 고향 같은 존재이다. 음악도 디제이의 나직한 음성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은 건 애청자들의 사연과 라디오 작가들이 세상 온갖 감정을 쏟아부어 짜낸 대본. 대체 어떻게 저렇게 글을 잘 쓸까 늘 부러움 가득한 마음으로 감탄했더랬다. 뜬금없이 심야 라디오 방송, 특히 라디오 작가 예찬을 쏟아붓는 이유는 바로 이번에 읽은 책 때문! <이소라의 FM 음악도시>,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 <윤하의 내 집으로 와요>, <최강희의 야간비행>, <박명수의 라디오쇼>와 함께했던 한가람 작가의 에세이, 『온통 너라는 계절』. 이 책의 존재를 안 순간부터 기대했었다. 결과는 만족!


 책을 읽기 전에 미리 만나게 되는 겸손하고 솔직한 '작가의 말'에서 이미 호감을 느끼며 출발한 이 이야기는 첫사랑, 짝사랑, 뜨거운 사랑, 잊고 싶은 사랑, 추억하고 싶은 사랑 등등 거의 모든 사랑을 경험한 작가의 수줍은 고백이었다. 어렵게 내어준 그 추억에 고마움을 느끼며 그렇게 한 권의 책을 한 편의 영화처럼 관람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지직거리며 돌아가는 영사기로 쏘아 올린 필름처럼 아련한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여러 장면을 지나 엔딩을 향해 달렸던 시간. 가슴이 뭉클했다가 아쉬웠다가 콩닥거렸다가 설렜다가, 롤러코스터처럼 이리저리 널을 뛰었지만 따스한 온기만은 식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감싸주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니,

이미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긴 거나 다름없는 이 게임에서.

-p55, '이미 네가 이긴 게임에서' 中에서..." / 작가가 투정처럼 던진 한마디에 격하게 공감하고!


""좀 나와볼래? 집 앞인데."

심지어 너는 네가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내게 나오라 했잖아.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데 나는 네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간 거였잖아.

겁도 없이.

-41, '봄의 투정' 中에서..." / 글에서 느껴지는 경쾌한 리듬에 심장은 콩닥콩닥!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헤벌쭉

그 사람 앞에서 웃고 있는 나

주체 못 할 만큼 심장이 뛰고 있는 내게

참 쉽다, 헤프다

욕하지 말아줘요.

당신을 사랑했을 때의 마음과 똑같을 뿐일 걸요

- p95, '내 마음은 이토록 이토록인데'" / 마음이 욱신욱신했던 글!


 한 사람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잊지 못하는 게 싫지는 않다. 다만 그 마음이 쌍방이 아닌 일방이라면 너무 아플 뿐. 아프고 나면 성숙해진다고 누가 그래? 그런 고통 하나도 안 반갑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용기와 설렘이 나는 좋다. 그런 마음을 정말 잘 표현한 글. 목이 메고 가슴 절절한 그리움과 애달픔보다는 새로 시작하는 그 느낌이 좋았다. 나는 소중하고, 인생을 짧기에. 외도만 아니라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도 좋은 우리, 괜찮다!


 

 책을 덮으면 든 생각.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다니... 참 부럽네.'

언젠가 우리 만날 날이 있다면, 꼭 책에 사인을 받고 싶은 그런 작가.

차기작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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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안는다 - 오늘을 일상을 순간을 그리고 나를
심현보 지음 / 미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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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볍게 안는다

지은이: 심현보

펴낸 곳: 미호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본방송을 사수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주옥같은 OST와 함께 전지현이 웃으면 나도 웃고 김수현이 울면 나도 우는 진풍경을 연출했던 웃픈 추억. 그때 참 마음에 들었던 노래,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 감미로운 성시경 목소리도 좋았지만, 감성 넘치는 예쁜 가사에 이끌려 듣고 또 들었더랬다. 작사가가 누굴지 궁금했다. 심현보. 익숙한 그 이름. 가사가 마음에 들어 검색해보면 여지없이 등장하는 몇몇 작사가 중에 한 사람. 가사를 잘 쓰기에 글은 당연히 잘 쓸 거라 예상했다. 대체 어떤 감성을 품고 어떻게 살기에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 참 궁금했는데, 그의 소중한 추억 한 조각을 나눌 기회를 잡았다. 작사가 심현보의 에세이 『가볍게 안는다』. '가볍게'라는 단어에서 안도와 편안함을, '안는다'라는 말에서 따스함을 느끼며 그렇게 나는 그의 삶을 훔쳐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런 것이다.

당신을 가볍게 안는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삶이란 것도 그런 것이다.

당신을 안을 때처럼,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가볍게 아는 것.

- p18, 가볍게 안는다 中에서..."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적어보고 기억해보는 일들을 좋아한다는 그, 이런 사사로운 관심에서 샘솟는 감성. 똑같은 단어도 비슷한 분위기도 왠지 새롭고 특별하게 느껴졌던 시간. '가만히 앉아 있기'에 관한 남다른 시각이 돋보였다. 어떤 이에겐 그저 허송세월인 그 순간을 그는 행동을 취하기 직전 단계이며 앞으로를 살아가게 해줄 충전기라 여긴다. '그냥 울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울컥하는 순간은 이유가 있다는 그. 한 번쯤 꼭 울어야 비워질 만큼 정성껏 살아왔다는 얘기이니 마음껏 울어도 괜찮다고. 이런 심현보식 위로에 과연 안 넘어갈 사람이 있을까?

 

 내가 엿본 그의 삶 속에는 특유의 느림과 여유가 있다. 발을 동동거리며 빠른 흐름에 울며 겨자 먹기로 휩쓸리지 않고, 마음을 다잡고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천천히 느리게 인생을 즐기는 재주. 늘 '빨리빨리'가 습관이 된 내겐 상당히 신선하고 매력적인 삶의 태도였다. 조금 느려도 괜찮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 위로가 참으로 와닿던 순간. 그나저나 정말 앉아서 마실 때와 서서 마실 때의 맥주 맛이 다를까? 문득 평소에 마시던 맥주가 유난히 맛있어서 깜짝 놀랐던 추억이 떠오른다. 호수에서 선선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한 모금 넘긴 맥주 맛에 놀라 이게 평소에 마시던 그 맥주가 맞는지 살펴봤던 기억. 고민을 거듭한 끝에 캔에 주입한 지 얼만 안 된 신선한 맥주여서 더 맛있었을 거라 결론지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쩐지 그 순간의 분위기와 평소와 달리 서서 마셨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즐겁고 소소했던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의 추억을 공유하는 내내 즐거웠다. 이렇게 난 그의 추억 한 조각을 함께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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