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문학 여행 × 스페인 - 스페인 문화예술에서 시대를 넘어설 지혜를 구하다 아트인문학 여행
김태진 지음 / 오아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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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트인문학 여행 스페인

지은이: 김태진

펴낸 곳: 카시오페아


 정열의 나라 스페인. 꿀맛 같은 낮잠, 시에스타. 새빨간 천을 흔들며 소를 자극하는 투우. 화려한 플라멩코, 미친 듯이 토마토를 던지는 토마토 축제, 축구, 천재 건축가 가우디! 스페인에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떠오르는 이미지는 셀 수 없이 다양하고 많다. 명화에 관심을 갖게 된 후, 스페인이 배출한 여러 화가와 스페인이 소장하고 있는 명화에 감탄하며 언젠가 직접 볼 수 있기를 고대하지만 먼 미래에나 가능할 듯. 이 안타까운 마음을 채워주는 건 바로 책. 얼마 전에 지식서재 출판사의 『스페인 예술로 걷다』를 통해 예술과 역사라는 주제로 스페인을 탐방했는데, 이번엔 카시오페아 출판사의 『아트인문학 여행, 스페인』과 함께 인문학적 관점으로 스페인의 역사와 예술을 다시 살펴보았다. 1달 만에 재회한 스페인은 더없이 반갑고 새로웠다. 스페인의 무한 매력, 그 끝은 어디인가!


스페인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슬픈 얼굴의 기사라는 돈키호테의 열정적이면서 긴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실용주의자인 산초의 멍청한 얼굴이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p16)

 

 프롤로그를 지나 글의 시작을 여는 서문에서 김태진 저자는 위와 같은 문장을 차용하여 독자에게 스페인을 소개한다. 이런이런, 큰일이다. 스페인을 알려면 돈키호테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실은, 지난번 책을 읽을 때도 <돈키호테>를 제대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읽지 못한 터라 아쉬움과 가벼운 자괴감이 스쳐 지나갔다. 돈키호테와 산초로 비유되는 스페인의 두 얼굴이라... <돈키호테>를 꼭 읽어보자! 이 책은 크게 레콩키스타를 기준으로 쓴 1부와 만국박람회 이후를 기준으로 쓴 2부로 나뉜다. 레콩키스타란 711년부터 1492년까지 780년 동안 에스파냐의 그리스도교도가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 했던 운동을 말한다. 이사벨 여왕이 마지막 남은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을 내쫓은 후, 스페인은 온전한 통일 국가로 발돋움했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과 어깨를 견주는 세계 강대국으로 거듭난다. 이 책에 담긴 깊고 방대한 내용을 이 글에 다 담아낼 순 없기에 큰 줄기만 살펴보자면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 펠리페 2세와 화가 엘 그레코, 화가 벨라스케스와 고야, 건축가 가우디와 후원자 구엘, 화가 달리와 그의 뮤즈 갈라로 나눌 수 있겠다. 스페인의 역사와 예술을 흐름에 따라 인문학적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어 기존에는 미처 몰랐던 유용하고 흥미로운 정보를 다량 접하게 된다. 한 마디로 『아트인문학 여행, 스페인』은 팥소 가득한 찐빵처럼 참 알차다!

 

 

 

 

 

 

 

 

 

 『아트인문학 여행, 스페인』에서 손꼽고 싶은 내용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이번 글에선 콜럼버스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콜럼버스라 알려진 초상화만 수십 개에 이르러 실제 얼굴을 알 수 없는 그는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제노바 출신이었다. 같은 나라 사람도 아니건만 그를 기리는 스페인 사람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각별하다. 콜럼버스가 안겨준 영광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독서광이자 신비주의에 빠졌던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건너서 해내야 할 과업으로 두 가지를 꼽았는데, 하나는 에덴동산을 발견하는 것이고 하나는 금광을 발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인류의 마지막 왕이 이베리아반도에서 태어나 십자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탈환하게 될 거라는 계시를 믿었던 그는 그 마지막 왕을 이사벨 여왕이라고 믿고 금을 가져와 여왕에게 보탬이 되도록 바치자는 소명을 지녔던 거다. 네 차례나 대서양을 건넜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그는 혼자만의 독단적인 생각으로 원주민을 잔혹하게 다루는 만행을 저질러 현지에서 많은 동료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끝까지 그의 뒤를 봐주던 이사벨 여왕마저 등을 돌리게 된다. 원망에 사무친 콜럼버스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난 앞으로 영원히 스페인 땅을 밟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거든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스페인 땅에 묻어선 안 된다.' 그리하여 그는 오래도록 서인도제도에 묻혀 있었고 스페인 정부의 오랜 노력 끝에 스페인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의 유언을 고심하던 이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바로 관을 번쩍 들어 올린 형태로 만들자는 것. 그래서 지금 세비야 대성당엔 4개의 동상이 받들고 있는 그의 관이 있는데 그 동상은 당시 스페인 지역 4개국을 다스리던 왕이라고 한다. 역시 역사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그라나다, 톨레도,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피게레스를 둘러 보며 역사 속 인물과 예술가를 만났던 『아트인문학 여행, 스페인』. 선명한 사진 자료 덕분에 눈앞에서 관람하듯 생생하게 간접 체험할 수 있어 스페인에 대한 열망과 그리움이 더 간절했던 시간이다. 스페인의 역사와 예술이 전하는 그 뜨거운 울림에 손끝까지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책을 덮는 순간까지 스페인을 향해 요동쳤던 심장. 이 책에 앞서 이탈리아와 파리 편도 출간됐다는데 김태진 저자의 다른 책도 꼭 만나볼 생각이다. 소장가치 100%이므로 이 시리즈도 전부 모았으면 싶은... 특별한 스페인을 만나고 싶은 분, 예술과 역사와 인문학에 관심 있는 분, 알차고 유쾌한 책이 읽고 싶은 분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모든 분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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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1cm - 너를 안으며 나를 안는 방법에 관하여
김은주 지음, 양현정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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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와 나의 1cm

글: 김은주

그림: 양현정

펴낸 곳: 위즈덤하우스

 

 아기자기한 글과 예쁜 그림으로 여러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 1cm 시리즈! <1cm>, <일센티 아트>, <1cm+> 등 다양한 책으로 만난 김은주, 양현정 작가의 에세이는 상큼한 풀 내음과 솜사탕 같은 달콤함을 머금고 있다.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에 내 마음은 벌써 두근 반, 세근 반. 싱그러운 초록빛 가득 품은 언덕에서 노닐고 있는 곰군과 백곰양. 사랑하는 백곰양에게 기꺼이 등을 내어준 곰군의 든든하고 따스한 마음 덕분에 백곰양이 보는 하늘도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반짝. '사랑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하늘은 왠지 더 파랗다.' 예쁜 문장이 전해주는 기분 좋은 감성에 심장이 간질간질 반응하기 시작. 『너와 나의 1cm』가 선사하는 설레는 마법에 취해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손길에 행복이 묻어난다.

 

 

 까마득한 그 시절, 언젠가 나도 느꼈을 그 감정. 가출한 지 오래라 다시 못 만날 줄 알았던 연애 시절 감성 세포가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톡톡 가슴을 두드린다. '어이, 쥔장, 잘 지냈어?'라며 하나둘 걸어들어오는 감성의 물결. 미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맞이한 예상치 못한 만남이지만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기억에 빙그레 미소짓게 된다. 그래. 나도 당신도 그때는 그랬었지!

 

 

 

 

 한없이 사랑만 속살일 것 같은 이 책은 이별에 대해서도 꽤 날카롭게 접근한다. '사랑하니까 헤어진다? 사랑이 끝나서 헤어지는 것이다.' 사랑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며 순간순간의 감성과 진심 그리고 마음에 집중하는 따스한 에세이. 이별에 관해 얘기할 때조차 슬프기보다는 다시 찾아올 진짜 내 사랑을 위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돌보게 해주는 <1cm> 특유의 위로를 전하고, 꽁냥꽁냥 사랑에 관해 얘기할 땐 이렇게 달콤하고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사랑할 때 우리가 지녀야 하는 태도 또한 잊지 않고 전하는 『너와 나의 1cm』. 예쁜 그림과 흥미로운 글에 푹 빠져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놀란 한편, 오랜 시간 헤어지지 않고 주기적으로 만나게 되는 <1cm> 시리즈와 새롭게 쌓은 추억에 한없이 행복했다. 굳었던 마음이 착해지고 순해지는 기분 좋은 떨림. 놓치지 말고 오래도록 간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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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열대어 케이스릴러
김나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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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붉은 열대어

글쓴이: 김나영

펴낸 곳: 고즈넉이엔티


 요즘 책벌레들 사이에서 화제인 고즈넉이엔티 출판사의 케이스릴러 시리즈! 벌써 모으기 시작한 이웃님도 계셔서 궁금했는데 마침 읽을 기회가 생겼다! 한국 작가들이 만들어 내는 놀라운 서스펜스 케이스릴러 시리즈 중 내가 만난 작품은 바로 『붉은 열대어』! 물이 든 투명한 유리잔에 새빨간 잉크처럼 번지는 검붉은 피가 묘한 공포감을 조성하여 오톨도톨하게 소름이 돋는다. 게다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자극적인 문구!


"당신 남편은 연쇄 살인범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목격자일 겁니다."


 2년 동안 혼수상태였다가 극적으로 의식을 회복한 29살 서린. 한데, 이상하게도 지난 4년간의 기억이 사라졌다. 남편과 함께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는데, 어쩌다 다치게 된 건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상황. 게다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서린의 남편이 연쇄 살인마란다. 사건을 해결하고자 탐문하는 형사와 특종 냄새를 맡고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기자들로 인해 서린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잔상처럼 떠오르는 조각난 기억의 파편. 마치 퍼즐을 맞추듯 서린은 자신의 기억을 하나하나 맞춰나가고 서린의 친구이자 남편의 동생인 정호가 그 곁은 지킨다. 정호의 부탁을 받고 서린을 돌봐주기로 한 희주. 그런데 어째 희주는 겉과 속이 다른 위험한 인물 같은데... 그리고 중요한 또 다른 인물! 미치광이와 더 미치광이인 준성과 윤성. 이들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하나씩 드러날수록 진실은 자꾸 멀어져만 가는데... 과연 희생자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 살인마는 정말 서린의 남편 태현일까? 태현이 여전히 의식불명인 상태에서 발생한 또 다른 살인사건의 진범은?


 김나영 작가의 미스터리 스릴러 『붉은 열대어』는 상당한 몰입감과 긴장감으로 초반부터 독자를 사로잡는다. 서린은 기억을 잃고, 남편은 연쇄 살인범으로 의심 받는 상황. 이 두 가지 요소만으로도 흥미를 느끼지 않을 독자가 과연 있을까? 사건의 진실을 알고자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작가가 파놓은 올가미에 걸려들어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 3개, 때론 4개의 이야기가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며 맞물렸다 떨어지기를 반복하여 결말을 볼 때까지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소설 후반부의 잔인한 격투씬.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떠오를만큼 잔인하고 폭력적인 혈투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이런 강도의 폭력에 익숙한 독자라면 뭘 이런 걸로 심장이 벌렁거리냐고 하겠지만, 덩치와 달리 새가슴인 나로서는 심장 떨리는 그 마지막 몇십 장이 정말 고역이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니, 강심장인 분은 꽤 재밌게 보실 듯! 잔인한 후반부 때문에 반은 눈 감고 봤지만, 흡입력 최강이었던 『붉은 열대어』. 김나영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부디 다음 작품은 조금 덜 잔인하기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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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드뷔시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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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녕, 드뷔시

글쓴이: 나카야마 시치리

옮긴이: 이정민

펴낸 곳: 블루홀6


 

 책 없이 못사는 책벌레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북카페에서 늘 화두에 오르는 이름 '나카야마 시치리'. 그를 아직 몰랐던 시절엔 '시치리~ 시치리~'라는 소리에 '뭐? 시치미?'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을 하나둘 알아가며 이젠 무조건 믿고 읽는 작가란 수식어를 입에 달 정도! 시치리에 대한 애정이 커질수록 이 작가의 책을 맡아놓고 출간하는 블루홀6 출판사에 대한 애정도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그러다 겪게 된 대박 사건! 제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의 대상 수상작이자 시치리의 데뷔작인 『안녕, 드뷔시』가 이정민 번역가님의 손을 거쳐 블루홀6에서 재출간되었다. 흑과 백, 빨강이 어우러진 멋진 양장 표지를 보며 심장이 콩닥콩닥. '자자, 진정하자! 릴렉스!'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펼친 이 책에서는 지독하게 아름답고 가슴 시린 미스터리가 펼쳐졌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열다섯 소녀 하루카. 하루카에겐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촌인 루시아가 있다. 인도네시아로 이민 간 고모의 딸인 루시아는 일 년에 딱 한 번 일본에 머무르는데, 이번엔 부모님의 급한 용무로 인해 홀로 일본에 왔다. 하지만 그사이 인도네시아에 대지진이 발생하고 루시아의 부모님은 세상을 떠난다. 혼자 남겨진 불쌍한 루시아를 양녀 삼으려는 하루카의 부모님 덕분에 이제 둘은 곧 자매가 될 예정이다. 하루카의 가족은 부동산 재벌인 할아버지, 은행원인 아빠, 큰살림을 도맡은 엄마, 만화가를 꿈꾸는 백수 겐조 삼촌, 할아버지의 간병인 미치코 씨 그리고 사촌 루시아. 한데,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이 풍요롭게 살던 하루카를 시기한 운명의 장난일까? 루시아와 함께 할아버지가 계신 별채에서 잠든 날, 걷잡을 수 없이 큰 화재가 발생하고 하루카의 눈앞에서 할아버지와 루시아는 화염에 휩싸여 죽어간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하루카에게 할아버지가 남긴 천문학적인 유산. 그때부터 섬뜩한 검은 그림자가 하루카를 노리기 시작하는데... 화재에서 살아남은 하루카는 과연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덕누덕 기운 피부에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 집의 누군가가 나를 노리고 있다.'


 괴로운 통증, 가족을 잃었다는 고통, 무엇보다 온전한 자신일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하루카 앞에 나타난 천재 피아니스트 미사키 요스케. 어떤 이유에서인지 하루카의 수업을 맡겠노라 자청하고 늘 곁을 맴돌며 위기의 순간마다 백마 탄 왕자처럼 하루카를 구해준다. 유산을 노린 가족이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하루카는 요스케의 마법 같은 이끌림에 끌려 자신의 한계를 넘고 또 넘어선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격정적인 연주에 집중하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피아노 위를 내달리는 하루카와 요스케의 하얀 손이 떠올라 심장이 요동쳤다. 하루카의 성장과 음악이 주는 감동이 소설 후반까지 퐁퐁 솟아오르지만, 사실 하루카가 콩쿠르에 나가는 순간까지도 '대체 이 소설이 어디가 미스터리라는 거야?'라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후반부는... 우와, 대체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책을 쥔 손끝에서 팔을 타고 머리를 지나 결국 온몸을 휘감아버리는 짜릿한 전율.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을 읽었을 때의 놀라움과 흥분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런 발칙한 반전을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마침내 진실을 마주한 순간, 계속 참았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살의 없는 살인이었기에 가슴 아리도록 슬프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하루카의 처지가 기가 막힐 정도로 애처로워 한참을 울었던 시간. 마흔여덟에 느지막이 데뷔한 나카야마 시치리가 갈고 닦은 비장의 칼에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어버렸다. 데뷔작이 이 정도라니! 역시 시치리는 옳다. 어지간해서 소설에는 소장 욕심을 부리지 않는데, 시치리의 작품은 정말 소장각! 지독하게 아름답고 가슴 시리도록 슬펐던 이 미스터리에 취해 한동안은 헤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시치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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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세상의 모든 딸들 1~2 세트 - 전2권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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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의 모든 딸들

지은이: 엘리자베스 M. 토마스

옮긴이: 이나경

펴낸 곳: 홍익출판사


 영문학과 인류학을 전공한 작가 엘리자베스 M. 토마스. 그녀는 문화인류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로 건너가 원시 상태로 살아가는 부족의 삶을 탐구하며 다양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 인생의 깨달음이 지금 이야기할 책 『세상의 모든 딸들』에 오롯이 녹아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시대와 장소만 살짝 다를 뿐인데, 이 소설은 2만년 전 시베리아 툰드라에 살았던 '야난'이라는 여자 원시인의 이야기다. 1987년에 세상에 빛을 본 순간부터 꾸준히 사랑받은 덕분에, 출간 3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판으로 새롭게 태어난 『세상의 모든 딸들』. 책을 좋아하셨던 엄마가 어쩌면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을까 행복한 상상을 하며 예쁜 파스텔톤 표지를 가만히 쓰다듬다가 이내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던 2만년 전으로 시간 여행길에 올랐다.


 

 남자가 사냥하고 여자는 주로 채집과 육아를 도맡았던 그 시절, 한없이 미개할 것만 같은 구석기인에게도 지금 우리와 마찬가지로 '기본'이란 개념은 존재했다. 자랑스럽고 부끄러운 일을 구분할 줄 알며 불을 사용하여 고기를 익혀 먹고 추위를 피했으며 통증에 따라 약초를 찾아 먹고 되도록 근친혼을 피하기 위해 일찍이 자식의 짝을 점찍어놓기도 했다. 온화한 성품을 지닌 야난네 부족은 초원에서 생활하는 매머드 부족을 만나 공동생활을 시작한다. 한데, 가장 큰 목적인 식량과 결혼을 떠나, 난폭하고 개념 없는 매머드 부족을 상대하기란 상당히 괴로웠고 결국 야난의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부족을 떠난다. 꾹 참고 견뎠다면 비극적인 운명을 피할 수 있었을까? 야난의 아빠는 사냥 중에 입은 상처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설상가상으로 엄마마저 출산 도중 하혈로 사망한다. 동생 메리와 함께 덩그러니 세상에 남겨진 야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녀는 낳아서는 안 될 새끼를 낳은 늑대를 만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예전 부족에 합류하게 된다. 2권에서는 성인이 된 야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약혼자와 가정을 꾸린 야난. 이제 핑크빛 인생이 펼쳐지려나 싶었던 순간, 그녀는 여성을 멸시하는 매머드 사냥꾼들의 무뢰한 행동에 단단히 뿔이 나서 이혼을 선언하고 급기야 무리와 결별한다. 하지만 생각지 않은 임신으로 남편과 부족에게 돌아가게 되는데... 어떤 계기로 인해 야난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결국 야난은 구박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야난은 무사히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사전 정보 때문에 읽는 내내 고개를 갸우뚱했다. 페미니즘적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구석기 시대의 삶을 주도면밀하게 탐구한 인류학 보고서에 더 가까운 느낌이랄까? 그만큼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인류학적 요소가 작품 곳곳에 촘촘히 박혀 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는 물론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모호한 샤머니즘 이상에 야난이라는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더한 특별한 소설. 여성은 사냥에 쓸모없는 존재라 여기던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홀로 생존하며 뛰어난 사냥 기술을 터득한 야난은 어쩌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거다. 늘 감정대로 행동하고 어느새 후회하고 마는 야난을 보면서 당당하게 홀로 세상에 맞서는 멋진 여성이라기보다는 공동체와 협동 그리고 인내라는 단어가 떠올랐던 시간. 작가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어쩌면 결국 인간은 지독하게 쓸쓸한 존재이고 절대 혼자 살 수 없으니 서로 존중하며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지...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야난의 넋두리에 가슴이 시큰하고 결국은 엄마와 같은 길을 걷게 되는 장난 같은 운명에 안타까움을 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 이 책. 야난과 함께했던 시간을 가만히 뒤돌아보며 그녀를 만나 좀 더 성숙해진 나를 느낀다. 잘 간직했다가 사랑하는 딸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세상의 모든 딸들』. 우리 딸이 읽을 때 쯤이면 출간 40주년 혹은 50주년 특별판이 나오지 않을까? 세월이 흘러 나는 늙어가지만, 소녀와 엄마의 모습 그대로 그 시공간에 남아 있을 야난과의 재회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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