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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세상의 모든 딸들 1~2 세트 - 전2권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제목: 세상의 모든
딸들
지은이: 엘리자베스 M.
토마스
옮긴이: 이나경
펴낸 곳: 홍익출판사
영문학과 인류학을 전공한 작가 엘리자베스 M. 토마스. 그녀는 문화인류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로 건너가 원시 상태로 살아가는 부족의 삶을 탐구하며 다양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 인생의 깨달음이 지금 이야기할 책 『세상의 모든
딸들』에 오롯이 녹아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시대와 장소만 살짝 다를 뿐인데, 이 소설은 2만년 전 시베리아 툰드라에 살았던 '야난'이라는 여자
원시인의 이야기다. 1987년에 세상에 빛을 본 순간부터 꾸준히 사랑받은 덕분에, 출간 3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판으로 새롭게 태어난 『세상의
모든 딸들』. 책을 좋아하셨던 엄마가 어쩌면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을까 행복한 상상을 하며 예쁜 파스텔톤 표지를 가만히 쓰다듬다가 이내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던 2만년 전으로 시간 여행길에
올랐다.
남자가
사냥하고 여자는 주로 채집과 육아를 도맡았던 그 시절, 한없이 미개할 것만 같은 구석기인에게도 지금 우리와 마찬가지로 '기본'이란 개념은
존재했다. 자랑스럽고 부끄러운 일을 구분할 줄 알며 불을 사용하여 고기를 익혀 먹고 추위를 피했으며 통증에 따라 약초를 찾아 먹고 되도록
근친혼을 피하기 위해 일찍이 자식의 짝을 점찍어놓기도 했다. 온화한 성품을 지닌 야난네 부족은 초원에서 생활하는 매머드 부족을 만나 공동생활을
시작한다. 한데, 가장 큰 목적인 식량과 결혼을 떠나, 난폭하고 개념 없는 매머드 부족을 상대하기란 상당히 괴로웠고 결국 야난의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부족을 떠난다. 꾹 참고 견뎠다면 비극적인 운명을 피할 수 있었을까? 야난의 아빠는 사냥 중에 입은 상처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설상가상으로 엄마마저 출산 도중 하혈로 사망한다. 동생 메리와 함께 덩그러니 세상에 남겨진 야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녀는 낳아서는 안
될 새끼를 낳은 늑대를 만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예전 부족에 합류하게 된다. 2권에서는 성인이 된 야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약혼자와 가정을
꾸린 야난. 이제 핑크빛 인생이 펼쳐지려나 싶었던 순간, 그녀는 여성을 멸시하는 매머드 사냥꾼들의 무뢰한 행동에 단단히 뿔이 나서 이혼을
선언하고 급기야 무리와 결별한다. 하지만 생각지 않은 임신으로 남편과 부족에게 돌아가게 되는데... 어떤 계기로 인해 야난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결국 야난은 구박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야난은 무사히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사전 정보 때문에 읽는 내내 고개를 갸우뚱했다. 페미니즘적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구석기 시대의 삶을 주도면밀하게 탐구한 인류학 보고서에 더 가까운 느낌이랄까? 그만큼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인류학적 요소가 작품
곳곳에 촘촘히 박혀 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는 물론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모호한 샤머니즘 이상에 야난이라는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더한
특별한 소설. 여성은 사냥에 쓸모없는 존재라 여기던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홀로 생존하며 뛰어난 사냥 기술을 터득한 야난은 어쩌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거다. 늘 감정대로 행동하고 어느새 후회하고 마는 야난을 보면서 당당하게 홀로 세상에 맞서는 멋진 여성이라기보다는 공동체와 협동 그리고
인내라는 단어가 떠올랐던 시간. 작가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어쩌면 결국 인간은 지독하게 쓸쓸한 존재이고 절대 혼자 살 수 없으니 서로
존중하며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지...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야난의 넋두리에 가슴이 시큰하고 결국은 엄마와 같은 길을 걷게 되는 장난
같은 운명에 안타까움을 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 이 책. 야난과 함께했던 시간을 가만히 뒤돌아보며 그녀를 만나 좀
더 성숙해진 나를 느낀다. 잘 간직했다가 사랑하는 딸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세상의 모든 딸들』. 우리 딸이 읽을 때 쯤이면 출간 40주년 혹은
50주년 특별판이 나오지 않을까? 세월이 흘러 나는 늙어가지만, 소녀와 엄마의 모습 그대로 그 시공간에 남아 있을 야난과의 재회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