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사중인격 - …인성에 문제는 없습니다만
손수현 지음 / 지콜론북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어쩌다 보니 사중인격

글쓴이: 손수현

펴낸 곳: 지콜론북

 

 

 찰나의 순간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광고. 그 광고의 중심엔 카피라이터가 있다. 단 한 줄의 광고 문구로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드는 언어의 마술사. 읽고 쓰며 글로 노는 삶을 즐기는 내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다. 이번에 읽은 에세이의 작가분도 어쩜 이리 글을 잘 쓰시는지 부러운 마음이 한가득! 6년째 글로 먹고사는 카피라이터, 3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둔 아내, 3남매 중 둘째 딸, 7년째 고양이를 모시고 있는 집사. 이렇게 4개의 역할을 맡은 손수현 작가의 특별한 이야기, 『어쩌다 보니 사중인격』. 다양한 역할을 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에서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살가운 인생이 녹아 있다.


 밥 먹듯이 야근하고 휴일 없기로 유명한 광고 업계. 물론, 아닌 회사도 있겠지만 야근과 월화수목금금금의 행군은 여전히 이어지는가 보다. 면접 보러 간 회사의 직원 휴게실 냉장고에 배달 음식 전단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면 그 회사는 피해라! 때론 회의 직전에 반짝 떠오른 한 줄이 가장 좋기도 하다. 혹은 몇 년 전에 생각해둔 한 줄을 우려먹기도 한다. 작가가 들려주는 카피라이터의 세계는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워낙 관심이 있던 분야라 그런지 나도 카피라이터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행복한(?) 상상을 펼치며 끝없이 빠져들다 보니 이어지는 작가의 결혼 생활 이야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으면 어느 한 명이 납작 엎드려서 바로 사과하면 2차, 3차 싸움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현명한 팁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도 져주는 사람이 내가 아닌 상대였으면 좋겠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 엄마와의 여행, 언니와 남동생과의 추억 등등 작가의 둘째 딸로서의 삶에서는 끈끈한 가족애가 뿜어나오고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로서 쓴 글에서는 고양이를 향한 깊은 애정이 솟아난다. 이 정도면 정말 사중인격 맞네! 작가의 다채로운 삶 구석구석을 엿보며 어느새 동화된 나는 비슷하고도 다른 그녀의 인생의 여러 페이지를 기분 좋은 마음으로 맞장구치며 공감하고 있었다. 

 

 

 

 경쾌하고 통통 튀는 문장에 마음을 뺏기고 찰떡같이 옳은 말에는 '맞아, 맞아'를 외치며 두 시간가량 짧은 데이트를 마치고 나니 아쉬움이 몰려왔다. 좀 더 읽고 싶었는데 어느새 마지막 장이라니. 글이란 참 신기하다. 작가가 문장을 적는 순간 머금고 있던 감정, 살아가는 방식과 어느 정도의 정신세계까지 담고 있는 '글'이란 마법은 목소리는 없지만, 그 어떤 수단보다도 깊은 울림과 감동, 유쾌함과 따스함을 진하게 뿜어내니까. 가뿐한 마음으로 기분 좋게 읽은 에세이, 『어쩌다 보니 사중인격』. 그럼, 나란 사람은 몇 가지 역할을 하고 있을까나? 골머리 썩으며 고민할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그 질문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 특별한 에세이를 찾는 분께 이 책 『어쩌다 보니 사중인격』을 적극 추천합니다! 재밌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도쿄타워

지은이: 릴리 프랭키

옮긴이: 양윤옥

펴낸 곳: 알에이치코리아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이라면 믿고 읽어도 좋은 만큼 늘 실패가 없었는데, 도쿄타워도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이었다니! 책 표지를 보자마자 10여 년 전에 읽었던 <도쿄타워>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눈에 들어온 띠지 문구. '오다기리 죠 주연 영화 원작소설.' 이런. 역시 그 책이었구나! 반가운 마음에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보니 무려 12년 만에 개정판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20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읽는 『도쿄타워』는 어떻게 다를지 기대하며 가물가물 옛 기억을 더듬어 오래전 읽었던 소설의 흔적을 되짚었다. 예쁜 새 옷을 입었지만, 그 시절 그 감성 그대로인 『도쿄타워』... 역시나 나를 울린다.


 릴리 프랭키란 이름만 듣고 여자인 줄 알았던 시절, 여성이라 이렇게 섬세하게 감정을 묘사할 수 있나 감탄했다가 작가가 남자인 걸 알고 어찌나 놀랐던지. 게다가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 작가, 작사 작곡에 사진까지... 이 작가에게 한계란 없는 듯 보였다. 연기도 한다고 알고 있는데 소설은 또 어쩜 이리 잘 쓴단 말인가. 『도쿄타워』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해야 할지, 책임감 없는 아버지라 해야할지 난감한 가장과 자식을 유난히 사랑한 어머니를 둔 '나'의 이야기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아버지를 향한 미움과 사랑.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 아메리칸 드림처럼 도쿄타워가 있는 도쿄에서 성공하겠다는 도쿄 드림.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처럼 무너져가는 자신의 모습. 그렇게 어른 아닌 어른 아이가 되어가는 '나'...

 

 

 

 

 10년 전에는 오롯이 자식으로서만 읽었던 글을 이젠 부모로서도 읽으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부모님의 자식이자, 나 역시 자식을 둔 부모로서 바라보는 또 하나의 가정은 '이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그저 '이런 삶도 있구나', '이 또한 가족이다'라며 있는 그대로 가슴 속에 파고 들어와 더 저릿하고 서글펐다. 부모님이 멀리 계셨거나 혹시 돌아가셨다면 이 책을 읽고 얼마나 더 울었을지... 부모님이 계시기에 감사하고 아낌없이 사랑할 자식이 있어 다행인 그런 시간이었다. 조금 모자라고 겉돌아도 결국 내 품 안의 자식인 것처럼, 자식 역시 부모를 포용하고 안아줄 혜안과 너그러움을 가지길 간절히 바라며 이 못난 딸은 오늘도 반성한다. 꽤 많은 독자가 나와 비슷하게 20대에 자식으로서 이 책을 읽고 이제는 부모로서 이 책을 읽을 텐데, 가족의 소중함과 언젠가 찾아올 가슴 아픈 이별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역시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 10년 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좋은 이 책 『도쿄타워』. 운명처럼 다시 찾아온 이 만남에 여유라곤 없던 가슴마저 촉촉이 젖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굽지 않아도 맛있는 카페 디저트 - 오븐 없이 쉽고 예쁘게 만드는 케이크, 타르트, 푸딩
모리사키 마유카 지음, 조수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굽지 않아도 맛있는 카페 디저트

지은이: 모리사키 마유카

옮긴이: 조수연

펴낸 곳: 위즈덤하우스

 

 

 한때 베이킹에 꽂혀서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서 오븐을 돌리곤 했다. 하지만 오븐 사용으로 인한 전기세, 휘핑기를 돌리며 생긴 근육통, 실력 부족으로 만든 안타까운 결과물로 인해 어느새 오븐은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고 '빵은 사 먹는 것'이란 인식이 깊게 자리 잡았는데... 그러면서도 베이킹에 대한 아쉬움과 갈망이 여전히 가슴에 남았던 걸까? 위즈덤하우스의 신간 『굽지 않아도 맛있는 카페 디저트』라는 책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는 나를 발견! 어쩌면... 어쩌면... 다시 베이킹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만난 책. 책장을 펼치자 알록달록 오색 디저트가 뿜어내는 달콤한 세상이 펼쳐진다.

 

 

 

 

 

 시작은 역시 도구와 재료 설명!

굽지 않는 디저트이기에 필요한 용기와 도구가 비교적 간단하여 좋다. 빵을 굽지 않는데 시트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비스킷과 식빵, 카스텔라 등을 으깨 만든다니 인내심과 꾹꾹 누를 힘만 있으면 될 듯! 그러다 뜻하지 않게 난관에 부딪혔다. 이런... 베이킹 재료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그래뉴당, 코코넛 오일 등 모르는 재료 천지. 특히 다양한 종류의 크림이 낯설게 느껴졌다. 검색해보니 코스트코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라 한시름 놓긴 했지만 우선 재료에 대해 알고 준비하는 게 급선무일 듯하다.

 

 

 

 

 오븐을 쓰지 않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다양한 디저트를 만들 수 있어 눈이 즐거웠던 시간. 타르트, 케이크, 콜드 디저트, 아이스크림과 셔벗까지 다채로운 디저트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 보통 타르트지 재료를 잘게 부수거나 으깨고 초콜릿을 녹여 반죽하고 잘 깐 후에 크림을 만들어 넣고 굳히는 식의 레시피이므로 재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만 쌓는다면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들고 싶은 디저트를 정하고 재료를 적어 이번 주말엔 마트로 출동! 무모한 도전을 뜻깊은 결실로 보답해줄 거라 믿고 『굽지 않아도 맛있는 카페 디저트』와 함께 베이킹에 다시 도전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선화 살인사건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3
에드거 월리스 지음, 허선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 수선화 살인사건

지은이: 에드거 월리스

옮긴이: 허선영

펴낸 곳: 도서출판양파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자욱하게 깔린 안개를 헤치며 가까스로 도달한 어느 수상한 건물. 두렵지만 그보다 앞선 호기심에 문고리를 단단히 부여잡고 조심스레 문을 열자 천장까지 가득 쌓인 나무 상자가 눈에 들어온다. 나이테처럼 들러붙은 두꺼운 먼지를 걷어내고 조심스레 연 상자에서 발견한 한 권의 책. 영화 '킹콩'의 원작자이자 영국의 유명한 추리 소설가인 존 렉스맨과의 만남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셜록 홈스와 아가사 크리스티를 잇는 영국 추리소설의 대가. 짙은 영국 색과 함께 고전 추리소설 특유의 순수함과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살짝 어렵지만 귀엽게 봐줄 수 있는 허술함까지, 그의 작품은 다양한 매력을 뽐내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중 세 번째 작품 『수선화 살인사건』! 작가가 펼치는 이야기 속에 풍덩 빠져보자.

 

 시인이자 백화점 사장인 손튼 라인은 세상에서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 오만한 인물이다. 백화점 경리인 오데트 라이더에게 호기롭게 치근덕거렸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한 후 앙심을 품은 손튼은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기로 한다. 자신의 친척이자 유능한 탐정인 탈링에게 사주하여 일을 꾸미려 했던 손튼. 한데, 하늘이 노한 것일까? 사건은 의외의 방향을 흘러간다. 주인공인 줄 알았던 요주의 인물 손튼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 상처 입은 가슴을 실크 잠옷으로 단단히 둘러맨 채, 공원에 반듯하게 누워있던 그의 시체에는 자회번뇌(스스로 일을 자초했다는 뜻)란 쪽지와 수선화 한 떨기가 놓여 있었다. 이 기이한 상황은 죽은 이를 향한 애도였을까, 아니면 광기 어린 살인마의 소꿉장난이었을까? 손튼과 어떻게든 연관된 주변 사람 모두가 용의 선상에 오른다. 백화점 공금을 훔쳐 온 매니저 밀버그, 손튼의 미움을 산 오데트, 손튼의 죽음으로 재산을 상속받게 된 탈링, 손튼을 흠모한 전과자 샘 스테이, 게다가 탈링의 중국인 조수인 링추마저 석연치 않은 냄새를 풍기는데... 과연 손튼을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


 추리소설의 재미는 무엇인가? 바로 범인 찾기! 『수선화 살인사건』을 읽으며 어설픈 탐정으로 분한 나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용의 선상에 오른 모두를 추적했다. 피할 수 없는 증거를 발견할 때마다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를 외쳤지만, 이런... 명탐정 코난과 김전일이 보면 코웃음을 칠 엉터리 추리로 좌절하기를 여러 차례. 결국 범인을 맞추지 못했다. 요리조리 독자의 수사망을 피해가며 무사히(?) 범인을 지켜낸 작가는 작품 마지막에 범인의 자술서로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털어놓는다. 그 사연이 어쩐지 안타깝고 애잔하여 살짝 서글프기까지 했다는... 범인을 찾는 추리 부분에선 합격점! 용의자인 오데트를 갑작스럽게 사랑하게 된 탈링의 모습이 부자연스럽기는 했지만, 그 시절 그 감성으로 바라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이런 사랑도 있는 거니까. 알사탕 까먹듯이 하나하나 벗겨지는 진실 앞에 조바심내며 열심히 달린 사건이 마무리되었을 때 비로소 편히 누울 수 있었다. 잘 마른 나뭇잎을 태우듯 내 애간장을 태우며 클래식 추리소설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 『수선화 살인사건』. 이제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은 다 모으기로 결심! 근데, 한 출판사에서 나온 시리즈가 왜 갑자기 판형이 달라진 건지... 시리즈는 같은 크기여야 예쁘건만, 갑자기 낮아진 책등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 대소설의 시대 1, 2

글쓴이: 김탁환

펴낸 곳: 민음사


 방대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고증을 거쳐 자신만의 색과 향을 입힌 역사 소설을 빗어내는 김탁환 작가. 그가 새로운 소설을 품에 안고 화려하게 돌아왔다. '대소설'이 크게 유행했던 1700년대 후반, 그 방대하고 섬세한 작품을 써낸 조선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는데... 여성 독자로서 여인이 주름답던 분야와 활약을 담아낸 『대소설의 시대 1, 2권』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가슴이 터질 만큼 설렜다.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인 '나'와 가까운 주변 인물은 남자지만 그 중심엔 빈과 궁녀, 소설가 등등 신분의 귀천 없이 소설로 똘똘 뭉친 여러 여인이 있다. 하나 같이 비범한 그 인물들을 중심으로 겹겹이 뻗어 나온 줄기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크고 작은 역사적 사실이 툭 건드리면 터질 듯, 잘 익은 석류처럼 알알이 박혀 있다. 생생한 묘사와 미묘한 긴장감이 만들어낸 기분 좋은 흐름에 취해 늦은 밤까지 책을 놓지 못하고 며칠을 잠들었던가! 『대소설의 시대』 덕분에 책과 함께 잠들고 눈뜬 그 며칠은 참 새롭고 신선했다.


 주인공 '나', 의금부도사 이명방은 벗이자 규장각 서리인 김진으로부터 임두 작가를 뵈러 가라는 청을 받는다. 임두 작가가 누구인가? 그는 지난 23년간 <산해인연록>이란 대소설을 써낸 작가로 '이야기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다. <산해인연록>의 열렬한 독자인 '나'는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명의 독자도 만난 적 없다는 그를 찾아 집필실인 설암당으로 향한다.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찾아간 그곳에서 펼쳐진 뜻밖의 상황. 남자일 거라고 굳게 믿었던 임두 작가는 백발이 성성하고 성격 고약한 할머니였는데...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어리둥절한 '나'는 친구 김진을 통해 대소설의 배후에 있는 주역을 하나둘 만나게 된다. 궁궐 왕족의 청을 받들어 시작한 소설 집필을 오랜 세월 무탈하게 이어온 임두 작가. 한데, 무슨 변고라도 있는지 지난 5개월 동안 다음 권을 완성하지 못하여 기다리는 의빈마마의 가슴을 태운다. 아무래도 치매가 온 듯한 임두 작가는 사사로운 실수를 거듭하는 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3년 전 이미 결말을 적어두었던 '휴탑'까지 잃어버렸음을 실토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행방이 묘연해진 그녀! 과연 임두 작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산해인연록>은 무사히 집필될 수 있을까? 『대소설의 시대』는 어떻게 마무리 될 것인가!

 

 

 

그러나 임두는 내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소설이 자유롭기 위해선 소설가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국가에 의해서든 사회에 의해서든 경계를 짓고 틀에 가두는 모든 규정에 반대한다는 것.

그 반대 목록엔 스스로 정한 틀도 포함된다는 것. - 대소설의 시재 1권 p 122...

 

 

여성이 주름 잡던 대소설의 시대는 어쩌면 그 시절 여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가 아니었을까? 작가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인물들이 5대를 거듭하며 작가, 독자와 함께 늙어가고 온갖 희로애락에 젖어 하나로 동화되어 가는 세상. 소설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그 작품의 중심에 여인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인생 최고의 작품이라 손꼽을 단 한 편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작가와 그런 작가를 선망하며 뒤를 따르려는 추종자들. 소설이 널리 읽힐 수 있도록 밤낮으로 필사하며 책을 완성한 필사 궁녀들. 대소설의 등장인물들이 행복하길 간절히 바라며 다음 이야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궁궐의 안주인들. 그 은밀한 움직임을 곁에서 돕는 여러 인물. 대소설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에서 거미줄처럼 뽑아낸 진득한 줄이 얼기설기 엉켜 등장 인물 간의 관계와 갈등에 설득력을 불어 넣고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하여 자꾸만 조바심을 일게 하는 『대소설의 시대』. 세상 어느 꽃보다 향기롭고 진한 역사의 현장 속으로 독자를 쏙 빨아들이고는 이야기의 끝을 보고서도 그 향기에 취해 아쉽고 또 아쉬워 자꾸 돌아보게 되는 그런 작품이었다. 소설의 목차 제목까지도 실존하는 대소설인 이 작품은 단연 소설로 쓴 소설사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뜨겁고 화려하게 한 시대를 풍미한 이 대소설의 시대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터, 역사의 현장에 살아숨쉬는 소설의 한 페이지를 꼭 만나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