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 아픔을 딛고 일어선 청소년들의 살고 싶다는 고백
멘탈헬스코리아 피어 스페셜리스트 팀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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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글쓴이: 멘탈헬스코리아 피어 스페셜리스트 팀

펴낸 곳: 마음의 숲

 

 

 

 나이를 불문하고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게 우울증이라지만, 학교라는 작은 틀 안에서 위태롭게 하루를 살아내는 청소년과 불투명한 미래에 괴로워하는 20대 청춘이 덧없이 사그라질 때면 유독 가슴이 아프다. 청소년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와 불안정한 마음을 주제로 다룬 책은 많지만, 이 책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는 괴롭고 힘들었던 시절을 이겨낸 경험자의 솔직한 고백이란 점에서 더 특별하다.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며 삶의 중심을 잡으려 노력한 용기 있는 사람들', 이 표현이 딱 어울리는 멋진 친구들이 자신의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똑같은 아픔을 겪은 나도 이렇게 살고 있으니, 너도 이겨낼 수 있다고 힘주어 전하는 응원. '우울'이라는 단어에 지레 겁먹고 덮어버리기엔 너무도 진솔하고 마음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니 부디 많은 분이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 우울을 겪으면 솜이 뭉근하게 젖은 듯 움직임이 무거워진다. 물기를 머금은 몸이 가벼워지고 싶어서인지, 별안간 눈물이 흐른다. 귀가 먹먹해진다. 소리를 질러봤자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물속에 잠겨 있다. 물속에선 아무리 울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p17~18 중에서...

 

 

 

 가정 폭력, 남아선호 사상에 따른 가족 간 차별, 학교 폭력, 왕따, 자책과 실망... 우울증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 중심엔 '상처'가 있다. 도움을 받고 싶어 용기를 냈다가 날이 선 한마디와 색안경 낀 시선에 거듭 상처받는 우리 아이들. 그 고통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마음으로 악착같이 살라고. 하지만 고통과 괴로움에 정도가 있을까? 이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잠시라도 숨통이 트이고 싶어 손목을 그어 붉은 피를 내기도 하고, 유서를 쓰며 자살을 꿈꾸고, 여전히 아물지 않은 마음속 상처에 숱한 밤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 힘들었던 나날을 감히 어찌 다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한데, 고독하고 깊은 우울함에 갇혀 내일을 맞이하길 거부했던 이 아이들이 이젠 손을 내밀며 같이 살자고 말한다. 살아보니 세월이 약이라는 어른스러운 말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친구, 상처를 어루만져준 상담 선생님 역할을 자처하며 먼저 다가서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코끝이 찡하고 마음이 뭉클해진다.

 

 

 

 


 

 

 

 누군가의 아픔을 재려고 하지 말자. 아프다면 아픈 거다.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섬세한 아이들. 하지만 유리도 강화하면 단단해진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기로 결심한 아이들은 자신 있게 말한다. '상처는 성장으로 이어진다. 후회가 남지 않게 현재를 열심히 사는 것이 정답이다. 어떤 치료도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내 줘서 정말 고맙다.' 지금 이 순간 울다 지쳐 이불 속으로 파고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주고 따스하게 안아줄 수 있는 포근함.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할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덧없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더는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눈물 뚝뚝 흘리며 읽은 이 책이 부디 아이들의 마음도 따스하게 보듬어주기를...

 

 

마음의숲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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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밀라논나 이야기
장명숙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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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지은이: 밀라논나 장명숙

펴낸 곳: 김영사

 

 

 

 중년에 들어서면 얼굴에 살아온 세월이 그대로 드러나고, 그때는 인상을 바꾸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가만히 내가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봤다. 지난 10년, 쉬지 않고 일했던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지금의 삶을 누릴 수 있음에 행복했던 예전의 나는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나는 인생의 주체가 아닌, 시간과 돈에 끌려다니는 빈곤자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하염없이 땅굴을 파고 들어갈 생각은 없다. 지금의 내 모습 또한 나이고, 마음먹기에 따라 남은 세월은 꼭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거란 믿음이 있으니까. 간혹 긍정적인 마음으로 버티다 유난히 힘든 날이면, 기분 좋은 자극이 간절하다. 그 가시지 않는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소할 거리를 찾기란 사실 쉽지 않은데, 이번엔 운이 좋았다. 유튜브에서 종종 얼굴도장을 찍었던 밀라논나 장명숙 님의 에세이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우와, 이건 뭐 제목부터 힐링이다.

 

 

 

 단정하고 바지런한 삶. 끝없는 자기 관리. 도도한 도시 여자 같은 외모지만, 마음은 더없이 푸근하고 따스한 반전 매력. 밀라논나 님 영상을 보며 이런 느낌들을 받았었다. 책으로 만난 그녀는 또 사뭇 다르다. 누구보다 일을 사랑하고 열정적이었던 젊은 시절, 일가족이 유학할 수 없던 시절에 큰아들까지 무사히 데려간 사연, 고지식한 아버지 때문에 난감했던 상황, 지금도 쉬지 않고 실천하는 기부와 봉사 활동, 젊은 시절 수많은 동료를 잃었던 삼풍백화점 참사,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사연 등등 그녀의 삶을 더 깊이 담은 이야기가 한가득. '꼰대'라고 취급받는 기성세대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바꿔야 할 것은 바로잡고 좋은 건 제대로 권해줘야 한다 말하는 밀라논나 님. 그녀의 목소리는 수많은 젊은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에 신경 쓰며 고통받거나 불평하지 말 것. 내 시간의 주인은 나여야 하니 '시간 빈곤자'가 아닌 '시간 관리자'로 살라는 말씀, 있는 것을 비워내고 필요한 것만 남기는 인생의 정리. 본받고 싶은 부분이 참 많다.

 

 

 

 


 

 

 

더 나아지기 위해 내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남이 아닌 어제의 나다.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p38 중에서...

 

 

 

 여유가 있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밀라논나 님 역시 여유로워서 더 매력적이다. 의무와 시간에 쫓기던 과거를 지나 24시간을 온전히 누리게 된 노년을 멋지다고 말하는 그 당당함이 더없이 눈부시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걸은 지 15년째라니. 나도 오늘부터 매일의 운동에 힘써보자. 스트레스를 소소한 쇼핑으로 풀고 문구와 책을 좋아하는 내가 과연 잘 비워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녀의 정돈된 삶을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본다. 비우자, 제발 비우자. 루틴은 몸의 뼈대와 같다는 말씀도 깊이 와닿았다. 기분 좋은 습관은 기분 좋은 삶을 만든다는 걸,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직접 느끼고 싶다. 아침에 눈 뜨면 세수하고 거울 속 나에게 파이팅을 외쳐줘야지. 한 끼를 먹더라도, 자신을 잘 대접해야지. 비싼 명품을 사려고 아등바등할 게 아니라 내가 명품이 되어야지. 머릿속으로 가만히 그려본 미래의 내 모습이 밀라논나 님과 살포시 겹치니, 이 얼마나 기쁜가! 이 좋은 느낌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밀라논나 님 에세이 덕분에 에너지 충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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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신화력 -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신화 수업
유선경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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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를 위한 신화력

지은이: 유선경

펴낸 곳: 김영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 인간은 오랜 시간 그 불안감을 떨치고자 미래를 예언하고 앞날을 예측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부단히도 애썼건만 이렇게 1년 9개월, 그리고 앞으로도 기약 없는 전염병과 싸움을 벌일지 누가 알았을까? 앞을 내다보고 불안 요소를 제거하려는 노력은 그다지 소용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요즘이다. 이젠 그 불확실성을 없애려는 노력보다 있는 그대로 상황을 떠안고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상황. 독자들과 함께 신화라는 타임캡슐을 열 준비가 된 유선경 작가는 우리가 찾아 헤매는 많은 해답이 신화에 담겨 있다고 말한다. 스토리텔링으로서 완벽한 신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세월을 신화는 살아냈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거다. 신화가 불사의 존재가 된 이유는 시대를 초월한 공감 요소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해답과 지혜를 『나를 위한 신화력』에서 찾아보자.


 

 

 


 

 

 

▶▶▶ 크로노스는 무엇을 삼켰을까?

 

 

아들에게 남근을 잃고, 권력마저 뺏긴 우라노스는 자식들을 티탄이라 비하하며 특히 크로노스를 콕 집어 저주한다. '크로노스, 꼭 너 같은 아들을 낳아서 똑같이 당해봐라.' 신화에서 신이 하는 말은 예언이자 반드시 실행된다. 겁에 질린 크로노스는 레아가 자신의 아이를 낳을 때마다 족족 먹어치운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한 수많은 작품 중에 유독 눈에 띄는 두 작품이 책에 실려 있다. 루벤스의 <아들을 먹는 크로노스>는 자식을 꿀꺽 삼키는 게 아니라 심장부터 뜯어먹는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인가! 반면 고야 작품에서는 이미 다 자란 어른 같은 형체를 우걱우걱 씹는 크로노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작가는 그 부분에 주목한다. 고야의 크로노스가 씹고 있는 존재는 무엇일까? 막 태어났지만, 완전한 그것. 작가가 생각한 정답은 시간이다. '시간은 늘 새로 태어나며 태어남과 동시에 죽는다.' 언젠가 예능 <런닝맨>에서 상꼬맹이 하하는 특별한 능력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시간을 지배하는 자'! 별것 아닌 애들 놀이 같았던 그 능력 놀이가 순간 어찌나 부러웠던지. 우리는 과연 시간을 지배하고 초월할 수 있을까? 크로노스는 새로 태어난 시간을 삼키면서 자신에게 저주가 닥칠 그 시간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결말은? 우리 모두 알다시피 꿀꺽 삼켰던 모든 걸 처절하게 토해내지 않았던가! 신도 거슬를 수 없는 게 시간이라면, 인간인 우리는 정말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매순간 부끄럼 없이, 후회 없이 살아가는 수밖에.

 

 

 

 


 

 

 

 

우리는 '살 수 있기 위하여' 자신을 들여다보고 '동시에' 눈을 돌려 창밖을 내다봐야 한다.

반대로 비치는 거울에 자신과 세상을 가두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은 죽음처럼 위험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나 새롭고 찬란한 탄생으로 안내한다.

신화에 등장하는 죽음이란 거짓된 삶을 끝낸다는 상징이다. 그래도 강요할 수는 없다.

'거짓된 삶'을 계속 살지, 죽이고 새로 태어날지는 저주에 걸린 '그웬돌렌'처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나를 위한 신화력』 p169 중에서...

 

 

 

▶▶▶ 메두사는 괴물이 아니라 피해자였다. 여자가 가장 원하는 건 무엇?

 

 

 눈만 마주쳐도 상대를 돌로 변하게 하는 무서운 여인 메두사. 잠든 사이에 페르세우스가 내리친 칼에 목이 잘려 생을 마감한 그 비운의 여인이 지닌 사연을 아시는지? 굉장히 아름다웠던 메두사는 아테나 신전에서 포세이돈에게 겁탕당했다. 하지만 그 후에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피해자지만 오히려 벌을 받게 된 메두사. 아테나는 메두사의 눈부신 머리카락을 뱀으로 바꾸고 얼굴 역시 흉칙하게 망가트린다. 게다가 눈이 마추지면 다 돌로 변해버리는 통에 철저하게 따돌림 당하며 홀로 고립된다. 이는 피해자를 손가락질하며 피하는 현대 인간의 모습과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다. 어째서 피해자인 메두사는 그토록 처절하게 죽어야만 했을까. 우리 모두 고개 숙인 채,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아서 왕 신화에 등장하는 그웬돌린은 아서 왕이 자신의 주권을 인정해주자 비로소 완전히 저주에게 풀려나게 된다. '여자가 가장 원하는 건 무엇?'이란 수수께끼의 정답은 주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할 수 있도록 존중하고 지지해주는 것.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여자만이 아닌 누구나 바라는 소망이겠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신화의 새로운 해석에 적잖이 당황한 시간이었다. 일단 메두사의 사연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자기애'의 표상인 나르키소스를 '자기 과잉'으로 해석한 시도도 신선했다. 조금만 등을 돌려 시야를 넓히면 새로운 세상과 원하는 답을 얻게 될 거라는 이야기. 물론 답을 구하는 질문자의 태도와 노력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살인과 폭력, 질투와 불신이 난무하는 신화 속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모순 같지만, 시시한 줄 알면서도 모든 이야기가 권선징악으로 끝나길 내심 기대하는 인간의 본성과 어떻게든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박한 욕심이 우리를 원하는 삶의 본질로 이끄는 듯하다. 나도 잘 모르는 나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순간, 우리의 숙제는 시작된다. 신화를 통해 그 숙제의 답을 찾는 과정은 그 어떤 모험보다 흥미진진하니 이만하면 아직 인생은 제법 살만하지 않은가? 이토록 재밌고 신나는 모험을 펼쳐 준 『나를 위한 신화력』과 함께 한동안은 신화에 하염없이 파고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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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G 3호 우리는 왜 여행하는가?
김원영 외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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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거진 G: 3호 - 우리는 왜 여행하는가?

글쓴이: 김원영, 전명윤, 임희선, 정하진, 기시 마사히코, 강인욱, 박세진, 안진국

김선오, 이민지, 심너울, 박한선, 김대식, 전현우, 황정아, 전홍진, 정연주, 한자경, 윤광준, 임준수

펴낸 곳: 김영사

 

 

 

 프리랜서이자 프로 집순이인 내 일상은 대부분 집에서 이뤄진다.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주방에 들러 영양제를 꿀꺽 삼키고 서재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 길어야 5분. 밖에 굳이 나갈 일이 없을 때는 몇 날 며칠이고 집에 있어도 괜찮은 나지만, 때론 차창 밖에 비치는 너무도 화창한 날씨와 푸른 하늘을 보며 탈출을 꿈꾸기도 한다. 여행을 가면 늘 많은 걸 보고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빽빽하게 짠 일정으로 녹초가 되곤 했다.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그저 편히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만 코로나로 하늘길도 바닷길도 막혀버렸다. 여행을 자주 가지 않던 나도 이렇게 좀이 쑤시는데 자주 세상을 누비던 사람들은 이 힘든 시기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어찌 콧바람을 쐬는지, 한가한 시간에는 뭘 하는지... 한 마디로 사람 냄새가 참 그리웠다. 『매거진 G: 3호』 이번 주제는 '우리는 왜 여행하는가?'다. 어쩜 이렇게 마침맞게 만나게 됐는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여행을 주제로 담아낸 글을 읽으며 사람 사는 냄새를 제대로 느꼈다.

 

 

 

자유롭게 떠날 수 없는 날이 계속될수록 명확해지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 아닌 그곳, 익숙한 곳 아닌 낯선 곳, 가본 적 없거나 다시 가고 싶은 곳을

그리고 꿈꾸는 것이 인간 본연의 욕망이란 사실입니다.

『매거진 G: 3호 - 우리는 왜 여행하는가?』 프롤로그 중에서...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나 영상만으로 그 순간을 추억하지 않는다. 자료 수집을 위해 녹음했던 소리, 현지에서 먹었던 음식, 그곳에서 만난 인연 등 여행과 관련된 작은 조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며 추억을 자극한다.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을 참 재밌게 읽었던 터라 글쓴이 중에서 그 이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페이지를 넘겼다. 고고학은 '여행' 또는 '기행'이란 제목을 선호한다. 그 단어가 다소 음침하고 고리타분할 수 있는 '고고학'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여행과는 거리가 먼 고고학 탐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여정이지만 제대로 평가하고 알아주는 이 없는 외로운 싸움. 어지간한 체력과 '오타구'적인 감성이 없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고고학자의 여행이라고 한다.

 

 

 

'있지만 몰랐던 맛을 찾아내 세상을 넓히는 과정'이 곧 여행이라는 푸드 에디터의 경험담도 흥미로웠다. 쉬는 법을 잘 몰라 7년 만에 자신에게 유급 휴가를 준 푸드 에디터는 호기롭게 길을 나섰지만, 이내 방황한다. 결국 길상사라는 절에 다녀온 글쓴이는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빵 가게를 발견! 시오빵으로 유명한 집이란 걸 알게 된 후, 글쓴이의 생각은 도쿄, 오스트리아, 파리 그리고 코로나 시대까지 쭉쭉 뻗어 나간다. 아는 게 많으면 먹고 싶은 것도 많은 법. 푸드 에디터에게 여행이란 주변에 없는 맛과 있지만 몰랐던 맛을 찾아내 세상을 넓히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니, 식도락을 즐기는 나 역시 그 여행에 동의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 듯 신선하고 즐거웠던 『매거진 G: 우리는 왜 여행하는가?』. 잠시나마 집콕 탈출을 꿈꾸는 집순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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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트리플 8
최진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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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주일

《트리플 시리즈 08》

글쓴이: 최진영

펴낸 곳: 자음과모음

 

 

 

 하루에도 수백 권의 신간이 쏟아지는 세상. 그중에 과연 몇 명이나 작가라는 이름으로 기억될까? 단 하나의 작품이라도 독자의 가슴에 가닿을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본다. 내게 최진영 작가란 이름 석 자를 또렷이 새겨 준 작품은 <이제야 언니에게>였다. 아마 많은 독자가 그 책을 통해 그녀의 이름을 머릿속에, 가슴속에 새겼으리라.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트리플 시리즈 다음 주자가 최진영 작가란 걸 안 순간부터 설렜다. 그녀는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소설이면서도 늘 현실 같은 그녀의 글을 읽노라면 어느새 그 이야기의 독자나 청자가 아닌, 화자가 된 듯한 착각과 함께 이야기에 흠뻑 취하게 된다. 그게 바로 최진영 작가의 특별한 기술이자 장점이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란 소설을 읽고 썼다는 단편 <일요일>. 일요일 밤 9시 38분. 고장 난 기계와 함께 홀로 덩그러니 남은 '나'는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 속에서 가장 친한 친구 민주와 도우를 떠올린다. 성당 유치원에서 만난 세 사람. 일요일에 미사가 끝나면 늘 함께 놀던 개구쟁이들이 차츰 학년이 올라가며 세 갈래 길로 갈라지게 된다. 외국어고에 간 도우, 일반계고에 간 민주, 특성화고에 간 나. 우정이란 감정으로 유지되는 세 사람의 관계를 세상은 사뭇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엘리트, 평범한 아이, 공부하기 싫어서 취업하는 애. 과연 그럴까? '나'는 그저 일하고 싶고 저축을 하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싶었다. 차를 타서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고 싶었고 그 모든 걸 서른 전에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최저 시급도 받지 못한 채, 고장 난 위험한 기계 앞에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 채 겁에 질려 있다. '나'는 그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싶었을 뿐인데... 십 대들의 우정과 사랑, 부모님과의 갈등, 자살, 고민 등을 균형 있게 풀어낸 <수요일>, 학교를 자퇴하고 싶어 하는 고1 여학생의 이야기 <금요일>까지, 최진영 작가는 망설이고 고민한 끝에 십 대들의 마음을 제대로 대변해냈다. 어쩌면 아이들도 몰랐을 그 세세한 감정들을 촘촘하게 담아낸 최진영 작가의 노고에 엄지 척!

 

 

 

 

 


 

 

 

 

일해서 번 돈으로 나의 삶을 사는 것. 그게 나의 꿈이었다.

일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학교 다니는 동안 여러 개의 자격증을 땄다. 나는 그 자격증을 써먹고 싶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일은 점점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일은 나를 하찮은 존재로 만들었다.

트리플 『일주일』, <일요일> p45 중에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멍한 상태로 내가 어떤 글을 읽은 건지 한참 생각해야 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힘주어 넘겼던 한 장, 한 장. 그 모든 순간 이야기와 하나였던 나였지만, 한순간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잠시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제일 처음 읽었던 단편 <일요일>의 여파가 상당했다. 세상의 다양한 청소년을 정형화된 틀에 가두는 것만 같아서, 편견과 고정관념을 답습하는 것만 같았고 자신 없었다는 최진영 작가. 고민하던 그녀는 어느새 열다섯의 자신으로 돌아가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에게 '지랄맞게 신경질을 냈던' 그 시절.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누구보다 열렬히 자신을 싫어했던 그때. 최진영 작가의 글에 살아 숨 쉬는 그 시절의 우리는 여전히 추억 한 편에 또렷이 자리한 채 미소를 머금고 있다. 부족하면 부족한 채로, 순수하면 순수한 채로 그 순간의 나, 그대로 충분하단 마음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고민으로 난감해하고 있을 아이들아. 부디 아프지 말자. 이 순간만 지나면, 정말 거짓말 같지만... 이 순간만 지나면, 꼭 웃을 날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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