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힘 곤도 마리에 정리 시리즈 1
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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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리의 힘

지은이: 곤도 마리에

옮긴이: 홍성민

펴낸 곳: 웅진 지식하우스



 

 화면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주변을 둘러본다. 이사 와서 한동안 서재를 깨끗이 정리했었는데, 지금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난장판. 이리 쌓고 저리 옮기며 어렵사리 깨끗한 공간을 마련한다고 해도 잠시뿐. 하루는 친한 언니와 통화하며 이런 우스갯소리도 했다. '미니멀 라이프로 살려면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르겠지?' 같이 배꼽 잡고 웃었지만 사실 마음은 울고 있었다는... 극상의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더라도 버릴 건 버리고 필요한 것만 깔끔하게 수납하는 삶을 간절히 꿈꿨다. 그런 상황이니 이 책을 만나자마자 눈을 번쩍 뜨고 '유레카!'를 외쳤을 수밖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따끔한 일침을 가하며 많은 이를 정리하는 인생으로 이끈 곤도 마리에가 쓴 신간 『정리의 힘』. 그래, 이건 운명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집을 꿈꾸며 이 책 참 재밌게 읽었다.

 

 

 

 

 '잘 부탁합니다', '그동안 수고했어, 고마워'라고 집 혹은 물건에게 말을 걸라는 그녀. 유치원생일 때부터 엄마가 보는 잡지에 실린 정리법 기사에 푹 빠졌다니 오로지 '정리'에만 집중한 외길 인생이다. 정리는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꾼다고 주장하며 기적의 정리법을 선보이는데, 중요한 건 수납이 아니라 우선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버릴까? 조금 황당한 방법일 수도 있지만, 물건을 만져보며 가슴이 설레는지 아닌지로 판단하라는데... 이게 직접 따라 해보면 은근히 효과가 있다. 실제로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만지작거리다가, 설레지 않는다 싶으니 바로 재활용 통에 던져 넣기 성공!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는 이들의 여러 비법에서 하루에 1개 버리기 혹은 1년 안에 물건 1,000개 버리기란 방법을 본 적 있었는데, 저자는 이 방법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전한다. 매일 무언가 버려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끼며 물욕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물건이 불어나기 십상이라니 날을 정해서 장소가 아닌 물건별로 쓱싹쓱싹 정리해보자. 아까워서 남겨뒀다가 결국 버리게 되는 물건이 속출할 테니 곰곰이 생각해서 바로바로 버릴 수 있도록!

 

 

 

 

 

 

 

 

 인생의 거의 모든 순간을 책과 함께한 나이기에 이사를 할 때도 잠시 집을 비울 때도 애지중지 책을 이고 지고 다녔는데... 이젠 좀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읽으려는 책은 과감히 버려라'라는 소제목이 가슴이 철렁. 책벌레들은 잘 안다. 우리에게 '언젠가 읽으려고 쟁여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과연 그 책을 다 정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지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절대 버릴 수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꼭 줄여보기는 할 생각.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한 권씩 만져보고 좋은 곳으로 보내줘야지. 버리고 정리하는 즐거움, 살이 빠지고 운도 좋아진다는 반가운 효과, 설레는 물건이 주는 행복 그리고 정리 후에 시작된다는 새로운 인생을 꼭 경험해보고 싶다. 읽는 것만으로 벌써 정리를 시작한 것처럼 뿌듯하고 긍정적인 기운이 넘쳐흘렀던 이 책 『정리의 힘』. 사진이나 삽화가 없어 아쉬웠지만, 내용은 대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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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스터 북 by 에드가 드가 아트 포스터 시리즈
에드가 드가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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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포스터 북 by 오귀스트 르누아르

더 포스터 북 by 에드가 드가

《아르테 아트 포스터 시리즈》

펴낸 곳: 아르테

 

 

 

 스릴러 맛집, 에세이 장인에 이어 클래식 클라우드로 인문학 섭렵, 더 포스터 북이라는 기가 막힌 기획으로 예술 분야까지 제대로 평정한 아르테 출판사! 도대체 아르테 출판사의 매력은 어디까지인가! 서점에 진열된 실물을 보고 두근두근했던 더 포스터 북. 그중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에드가 드가가 내 서재로 날아들었다. 이건 정말 실물로 봐야 하는데 사진으로 이 영롱함을 제대로 담을 수 없어 어찌나 안타까운지!

 

 

 

 

 

 

 

 

 더 포스터 북을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하면 받을 수 있다는 접착 메모지 굿즈. 명화를 좋아하는 문구덕후인 내 눈에서는 이미 하트가 뿅뿅! 너무 좋아서 어지러울 정도...크흑 ㅠㅠ 배송 시 책이 파손되지 않도록 각 모서리에 플라스틱 보조물이 붙어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날카로워서 손을 조심해야 할 듯! 그래도 책 모서리가 구겨질 일 없으니 안심, 또 안심이다. 이런 세심한 배려 칭찬합니다!

 

 

 

 

 

 오른쪽 책날개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작품 소개. 더 포스터 북에 실린 명화 10점의 작품명, 완성한 연도와 간단한 감상평이 실려 있다. 따스함과 인간미 넘치는 그림으로 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어루만져 주는 르누아르의 명작들! <시골에서의 춤>, <도시에서의 춤>, <잔 사마리의 초상>, <우산>, <두 자매>, <신문을 읽는 모네>, <책을 읽는 두 소녀>, <해변가의 소녀들>, <아스니에르의 센 강변>,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 식사>. 1880년대부터 1890년대에 이르는 르누아르의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종이가 도톰하고 빳빳해서 이대로 벽이나 가구에 붙여도 좋지만, 액자에 넣으면 한층 고급스러울 듯. 하지만 이 책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너무 아까워서 뜯을 수가 없다. 벽에 붙이고 싶어서 뜯으려 시도했지만,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다가 그대로 내려놓았다는...

 

 

 

 

 

 

 

 

 

 

 

 

 

 아름답게 꾸민 모습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미를 화폭에 담고자 애썼던 드가의 작품들. 발레 하는 소녀들을 그린 여러 작품으로 유명한 드가지만 사실 데생도 꽤 많이 했다고 한다. 『더 포스터 북 - 에드가 드가』편엔 <사진사 앞에 선 무용수>, <스타>, <휴식을 취하는 무용수들>, <무용화를 고쳐 매는 무용수>, <무용수들>, <무용수>, <무대 위의 두 무용수>, <무대 위에서의 연습>, <오페라좌의 무용실>, <연습실의 무용수들> 이렇게 10점의 명화가 실려 있다. 르누아르도 그렇고 드가도 그렇고 더 포스터 북 에디터님은 안목이 탁월하신 듯!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전부 마음에 드는 작품만 쏙쏙 담겨 있다.

 

 

 

 

 

 

 

 

 원작 그대로의 색감을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일 정도로 명화의 느낌을 훌륭하게 재현했다. 방이나 카페, 사무실 벽에 걸어두면 아늑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길 듯! 그러나 역시... 아까워서 뜯을 수가 없다. 그냥 이대로 영원히 간직하며 보고 또 보다가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

 

 

 

 

 

 

 

 

 더 포스터 북의 표지를 장식한 작품으로 만든 굿즈. 역시 굿즈 장인 아르테다. 은은한 색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이것도 아까워서 어떻게 쓴담 ㅠㅠ 누군가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을 때, 기분에 따라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근사한 명화와 늘 함께하고 싶을 때, 그저 넘겨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아르테의 더 포스터 북 시리즈 강력 추천합니다! 실물을 영접하면 책값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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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나를 만들어 팝니다 - 영리한 자기 영업의 기술
박창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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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팔리는 나를 만들어 팝니다

지은이: 박창선

펴낸 곳: RHK / 알에이치코리아

 

 

 

 쉴 새 없이 경쟁하며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어필해야 하는 요즘 세상. 잠시라도 방심하면 눈앞에서 기회를 놓치고 마는 이 사파리 정글에서 어떻게 하면 나를 멋지게 포장하여 잘 팔 수 있을까? 그 고민에 어느 정도 해답을 알려줄 책을 만났다. 『팔리는 나를 만들어 팝니다』. 저자의 이력이 상당히 독특하다. 판매, 영업직과 콜센터, 기획자, 대행사를 거쳐 서른 살에 독학으로 디자인을 시작. 현재 6년 차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브런치에 풀어내어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데다 제7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의 영예까지 안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분은 자기 계발의 달인이자 의지의 아이콘이 아닐지! 어떻게 현명하게 나를 영업할 수 있을지 그 비법을 알아보자!

 

 

 

 

 능력을 판매할 곳이 생겼다면 다음 작업은 '잘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다. 누구나 각자 다른 장기와 재능을 가졌으니 자신이 가진 능력을 어떻게 극대화하는지가 관건! 작가는 이 책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생존매뉴얼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생존매뉴얼이라... 이 무시무시한 정글에서 월급 사수는 물론 더 나은 내일을 꿈꾸려면 그래, 이건 정말 생존이다.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이미지 만들기 위해 일 처리를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법, 쉽게 내뱉은 '할 줄 안다'는 말의 무게로 짊어질 수도 있는 엄청난 난관, 어떤 상황에서도 대충하는 법 없이 끝까지 꼼꼼하게 작업할 것,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내 머릿속에만 있다면 아무 소용없으니 제대로 전달할 것, 조리 있게 말하게 될 그 날까지 받아쓰고 반복!

 

 

 

 

 나를 멋지게 포장하고 능력을 극대화하여 선두로 나설 수 있는 다양한 조언도 좋았지만, 평소 늘 고민이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란 생각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부분에선 정말 뜨끔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내가 가진 욕망과 상대가 가진 욕망이 딱 맞물리는 지점을 찾아야 가능합니다'. 좋아하는 게 뭔지 모호하거나, 능력은 받쳐주지 않으면서 무턱대고 좋아한다거나, 혹은 좋아하는 게 너무 많거나, 상대방의 욕망을 모르거나, 그 상대가 돈을 주지 않거나... 그리고 나를 자극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며 일목요연하게 '좋아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는 작가의 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고심하게 만든다.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하고자 하는 분께는 더 도움이 될 이야기가 아닐지. 스타카토처럼 통통 튀는 호흡으로 짧고 굵게 전하는 작가의 노하우가 제법 괜찮다. 대단한 해답을 얻고자 눈에 불을 켜고 읽기보다는 사회생활 잘하는 선배 혹은 롤모델에게 인생 상담한다는 기분으로 읽기를 추천! 그럼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얻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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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의 완벽한 고백 브라운앤프렌즈 스토리북 1
이정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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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브라운의 완벽한 고백

지은이: 이정석

펴낸 곳: 아르테

 

 

 

 카카오 프렌즈가 주인공인 에세이 시리즈로 큰 인기를 끈 아르테 출판사에서 이번엔 네이버 라인 프렌즈와 손잡고 소설을 출시했다!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들보다 덜 친숙한 아이들(?)이어서 낯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세상에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석들이 있을 줄이야! 그저 귀여웠던 여러 캐릭터에 개성을 부여하고 스토리를 더하니 라인 프렌즈 녀석들 여느 영화배우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곧 출판업계에서도 국민적인 사랑을 받겠구만? 브라운, 샐리, 코니, 초코 그리고 브라운과 친구들이 주인공이 총 5권의 스토리북 시리즈에서 운 좋게도 가장 관심 있던 브라운을 만나게 되었다. 이 브라운으로 말할 것 같으면 따뜻하고 세심한 마음을 가진 진국! 곰 주제에 토끼인 코니와 알콩달콩 행복한 추억을 쌓으며 연애 중. 탁월한 손재주와 장인 정신으로 친구들의 손과 발이 되어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믿음직스러운 존재! 더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브라운은 10점 만점에 10점!

 

 

 

 

 

 

 

 황금손을 가진 능력자 브라운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나 슬그머니 나타나 뚝딱 상황을 처리한다. 브라운이 진짜 갖고 싶은 타이틀은 딱 하나, '최고의 친구'! 코니와 함께 일곱 개의 소모임에 참여하는 브라운은 진정한 프로 참석러다. '문'의 꾐에 넘어가 필요하지도 않은 TV를 산 후, 안절부절못하는 소심남이자 번개를 맞으면 몸이 커지는 비밀을 지닌 브라운. 코니와 영화를 보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 후, 이상 증세를 걱정하며 병원에 갔다가 '혹시 사랑에 빠지지 않았습니까?'라는 의사의 말에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고백을 준비하던 브라운. 브라운처럼 무뚝뚝하지만 듬직하고 마음씨 고운 남자 친구가 있다면 어떨까 상상하며 슬그머니 미소 짓고 웃고... 이런, 나... 브라운에게 반한 건가? 이 녀석의 철철 넘치는 매력에 속수무책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초코와 샐리까지 하나둘 모여들어 마치 오랜 친구처럼 함께 웃고 떠들게 된다. 캐릭터와 스토리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구나!

 

 

 

'가끔은 들키는 것도 괜찮아지는 방법' - p84

'어떤 마음은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있는 그대로' - p154

 

 

 그저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예쁜 그림과 따스한 이야기에 푹 빠졌던 시간. 브라운이 이렇게 매력적인 존재라는 걸 이제 알게 된 게 안타까울 정도로 이 녀석에게 푹 빠져버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예쁜 책을 선물하고 싶다면 정말 추천하고 싶은 『브라운의 완벽한 고백』. 이 책을 읽기 전엔 절대 알 수 없는 브라운의 매력에 퐁당 뛰어들 준비되셨나요? 어서 오세요! 망설이면 설레는 마음만 늦출 뿐! 부디 걷잡을 수 없는 콩닥콩닥 심장 테러를 마음껏 음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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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시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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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덕의 시간

지은이: 오승호

옮긴이: 이연승

펴낸 곳: 블루홀6


 

 

 

 

 첫사랑, 첫 만남, 첫 주문, 첫 입학... 우리에게 '첫'이란 단어는 늘 설렘으로 다가오기 마련. 책을 좋아하는 내게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은 그 옛날 짝사랑하던 남자 선배를 몰래 훔쳐볼 때처럼 늘 두근거리고 설렌다. 이번 만남 역시 그러하다. 재일 교포 3세인 오승호 작가가 블루홀 6 출판사를 통해 국내 독자에게 처음 인사한 작품 『도덕의 시간』! 고급스러운 표지 디자인과 더불어 기괴한 사건과 허를 찌르는 반전, 인간의 추악한 면까지 면밀하게 파고드는 그의 글솜씨에 책을 덮은 후에도 쉽사리 잠에 들 수 없었다. 사건을 벌인 동기부터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책. 이 작가 꼭 기억해둘 만하다.




 

 차에 치여 뭉개진 토끼의 사체. 토끼를 담은 상자엔 빨간색 크레파스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생물 시간을 시작합니다'. 4살 여자아이가 누군가에 의해 들어 올려져 철봉에 매달린 채 엉엉 우는 모습으로 발견됐다. 철봉에 공업용 접착제를 바른 악의적인 사건으로, 아이의 등에는 역시 비슷한 낙서가 적혀 있었다. 찢어진 노트에 빨간색 크레파스로 갈겨 쓴 '체육 시간을 시작합니다'.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 가운데 지역 유지인 난보 씨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살로 결론 짓고 유가족의 뜻에 따라 서둘러 장례를 치렀지만, 시체 수습 당시 미처 보지 못했던 큰 낙서가 발견된다. 불단에 누군가 스프레이로 갈겨 쓴 '도덕 시간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 조그맣게 붓펜으로 쓴 '죽인 사람은 누구?' 과연 이 일련의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일까? 흉흉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주인공인 영상 저널리스트 후시미에게 다큐멘터리 촬영 의뢰가 날아든다. 촬영 주제는 13년 전 초등학교에서 은사를 살해한 무카이 하루토라는 복역수의 사연. 그는 강연에 참석한 300여 명의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이 있는 자리에서 미술용 칼로 마사키 선생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하루토가 달려든 동시에 그를 저지하러 달려든 미야모토 선생. 동네에서 벌어진 난보 씨 살인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자신의 아들 도모키가 지목된 상황에서 후시미는 무카이 하루토 사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간다. '도덕'이라는 형체도, 명분도 불분명한 애매한 단어에 휩싸인 채 휘청거리는 이 사건 끝에 숨죽인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도덕이라..."

"참으로 모호하고 그럴싸한 단어. 실상은 무기력한 주제에 마치 규칙처럼 굴려는 단어죠.

대체 누가 그런 걸 정하는 건가요?" - p409



 

 추리 소설을 읽을 때마다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어쩌면, 혹시, 설마?' 하지만 이번엔 정말 해도 너무했다. 아무리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이런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피 튀기는 살육도 무서운 복수심도 없이 모든 경우의 수를 제치고 내달린 결론에 그저... '뭐야, 정말?'이란 단어만 한없이 내뱉으며 당황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폭력적인 아빠와 무기력한 엄마에게 방치된 채 끔찍한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던 하루토, 박해받는 소중한 이의 모습에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직접적으로 말하고자 그 길을 선택한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이야기 중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도덕'이란 개념에 관해 심각하게 고심했던 시간. 바른 생활, 도덕, 윤리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우리 삶 속에 존재했던 그 개념은 과연 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었지만, 꽤 리드미컬하게 흘러간 사건 전개에 진실을 향한 갈증이 점점 더해졌던 책, 『도덕의 시간』. 오승호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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